이문열의 사부곡, 끝나지 않은 노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이 글을 읽기 전에 해두셔야할 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틀으십시오. 자동 되감기를 선택해서 되풀이 듣고 또 들으며 이문열의 아슬아슬한 정신세계를 함께 돌아보시죠. 선택이 아니라 필수 옵션입니다.

이문열이 누구인가. 역작 <사람의 아들>에서 절대 존재에 대한 진지한 문학적 논구와 세련된 문체로 국내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물경 천만권 이상의 책을 팔아치운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문단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는 사재를 털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소설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다(국가에서도 하지 못하는 가난한 문인 구제를 그가 하고 있(었)다). 그 금액은 여러분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선다. 사숙을 만들어 싹이 파릇한 예비작가를 모아놓고 지도하는데 힘을 쏟기도 한다. 수 많은 독자와 추종자, 문하생을 거느린 언필칭 이문열 사단의 지도자,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신문문예의 위원장으로, 한국문단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행세하며, 문학적 성취에 있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위상에 있는 이문열은 "한국문단 최고의 권력"이다.

그런 그가 힘들게 지켜온 금연의지를 꺽으면서까지 격앙된 어조로 조선일보를 옹호하고 나왔다.

이씨의 말 : <조선일보>를 ‘권력’이라고들 하는데, 그 권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나. 발행부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를 국민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최고의 발행부수를 누린 것으로 안다. 군사정부가 <조선일보>를 키웠다고 하는데, 군사정부가 언제 국민들에게 <조선일보> 구독하라고 강요한 적이 있는가? 군사정부가 <조선일보>의 부수를 늘리기 위해 무슨 조처를 취한 적이 있는가? 내 정보가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난 그런 일은 없는 걸로 안다. <조선일보>가 권력을 누리게 됐다면 그건 독자들의 선택이었다.

이문열은 작가이다. 그것도 문호의 칭호를 받는 작가이다. 본질적으로 작가들은 미문을 사랑한다. 구토를 유발시키는 문체를 선택하는 하일지 같은 작가들은 작품을 전달하기 위한 한 장치로 고의로 그럴 뿐이다. 대문호 이문열이 미문은 고사하고 논리구성 자체가 안되는 궤변으로 조선을 옹호했다. 이게 이문열이 한 말이라니. 나는 경악(하는 척)한다.

이 말은 단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 조선일보는 많은 국민이 본다. 그래서 옳다. 이것은 무엇인가. 다수에 대한 열광, 나도 다수에 속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발로, 소수의 불온함(다수에게 대항하는 소수는 필연적으로 불온하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도대체 왜? 무엇에 대해? 이문열은 두려워하고 있는가?
이문열은 이렇게 말한다. 나.. 떨고 있니?

이문열은 분명히 이 사회에서 다수에 속한다. 아니 다수를 이끄는 영도자 중 일인이다. 다수를 대변하는 신문(또는 일부에서 주장하는대로 찌라시) 조선일보를 공박하는 존재들에(한 줌도 안되는 정치권력의 홍위병) 대한 불쾌감이야 당연한 일일 게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려는 움직임에게 그가 느끼는 언짢음이야 이해함직도 하다. 그러나 보라, 이상하지 않은가?

다시 이씨의 말 : <조선일보>의 논조가 극우적이고 수구적이라 치자. 그게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 그러나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신문이 팔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왜 간섭하는가? 극우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하여 사회적 공적(公敵)으로 몰아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씨는 과연 극우 수구들의 특징인 무식함 때문에 이런 천박한 상소리를 내뱉는 것인가? 극우를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게 정당하지 않다는 이씨의 주장을 히틀러와 도조 히데끼가 들었다면 저승에서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또는 얼마나 통분해 할 것인가. 이렇게 유능한 변호인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 이문열은 무식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유식하다. 그의 논리와 세계관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이문열이 자신의 파편화된 자의식과 몰역사성과 반진리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그가 <초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실수다!!! 나중에 이 인터뷰 기사를 들여다 보면서 이문열은 얼마나 낯 뜨거워할 것인가(자기의 무분별함에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자기의 실수에 대해 어이없어함으로 해서). 안쓰럽기 그지 없다. 언필칭 먹물들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행동한 뒤에 드러난 스스로의 정신적 도덕적 파탄보다, '실수로' 그런 자기를 들켜버렸을 때 더욱 수치스러워 하는 법이다.

무엇때문에 이문열이 초조한가? 그것을 찾아내는데 필요한 노래, 그것이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이다. 이 노래가 오랫동안 금지곡에서 풀려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문열의 초조함을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살부충동 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부르는 이 강박관념은 결국 빼어난 한 소설가를 극우로 수구로 만들어 버렸다. 오 광기여, 네가 이겼다. 그리스 이후로 비극은 되풀이 된다...

잘 알려져 있는대로 이문열의 아버지는 이원철이다.

"생사(生死) 여부를 둘러싸고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이문열씨의 부친 이원철씨(84). 이문열씨의 장편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으로, 12권 분량의 대하소설 <변경>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원철씨는 경북 영양이 고향으로 일본 경도제대를 나온 인텔리였다. 남로당 간부였던 그는 6·25가 발발하자 50년 7월부터 9월까지 2개월동안 서울대농대 관리자로 있다가 9·28 서울수복 당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당시 남한에는 만삭의 아내(조남현, 95년 작고)와 어린 4남매(묵·연·렬·정옥), 그리고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월북한 이씨는 육종학자로 북한의 농업연구소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함경북도 어랑군 부호리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슬하에 아들 만경을 비롯해 옥경·애경·충경 4남매를 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요시사 189호>"

이원철은 당대의 인텔리였다. 좌익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수원농대 학장이란 사회적 지위와 그의 처자식을 "버리고" 월북했다. "버려진" 이문열과 그의 가족은 이후 처절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의 소설에 간간히 등장하는 그와 가족들의 수난은 참으로 가긍한 것이다. 도피와 구핍 가운데서도 서울대 사대에 입학할 정도로 우수했던 이문열은 그러나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신분상승의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고(당연히 교사가 될 수 없음을 알았을 그가 왜 사대를 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는 절망한다. 그 절망의 집약은 역작 <사람의 아들>을 만든다.

<사람의 아들>의 주인공 민요섭과 그를 추종하다 결국 살해하는 조동팔은 동일인이다. 아니 민요섭은 월북함으로써 자기와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이문열의 분신이며 동시에 그를 구원할 이원철이고, 민요섭을 살해하는 조동팔은 살부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민요섭 그 자신이다. 민요섭이 기독교의 신에 절망하고 찾아 헤맨 끝에 만난 신은 인간에게 간섭도 하지 않고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 하지도 않지만 너무나 조용하기만 하다. 월북한 아버지를 둔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갖은 핍박과 절망을 요구받은 이문열에게 그런 신은 가치가 없다. 자기의 설움과 피해를 보상해주는 적극적인 신이어야만 한다. 그 신에 절망하여 기독교의 신에게로 돌아가려는 민요섭을 그의 또다른 분신인 조동팔은 살해하고 만다(그가 하산하려는 민요섭을 살해하는 주요한 이유는 또다시 버려지기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동팔은 자기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채 자살한다.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자기를 핍박하는 현세의 권력에 대한 구애와 증오가 이중으로 교직되어 있는 이 소설의 닫힌 구조는 결국 이문열이 극우에게 투항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엄마.. 나는 지금 한 남자를 죽였어요...로 시작되는(원곡은 이 부분 앞에 한 파트가 더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살부충동을 노래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살부충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더 길고 복잡한 정신분석을 요하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일단 그렇게 가정한다면(실제로 그 이유로 인해 이 노래는 우리 나라에서 오랜 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우리는 이 노래가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준 노래라는 어떤 조사(영국 HMV 뮤직 스토어 체인, 채널 4 텔레비전, 클래식 FM 라디오가 연중내내 60만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 결과는 어쩌면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부충동은 패륜이나 끔찍스럽고 저주스러운 범죄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정신분석 또는 의학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일반인도 모두 알고 있는 오이디프스 컴플랙스를 여기서 재론한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하지만 프레이져경의 '황금가지'-금세기 최고의 학문적 업적으로 추앙받는-가 늙은 왕(아버지) 살해를 통해 새 왕(아들)의 생명을 이어가는 전통에 대한 논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실 부친 살해의 충동 또는 실행(정신세계에서의 일이다. 실제로 하는 놈은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동으로 끌려간다)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심리학자들은 말해준다.
(머리는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자를 쓰기 위해서 있다고 믿는 극우파들이 '부친살해'란 말만 가지고 난리를 떨 게 걱정스러워 한마디 하자면, 여기서 '살해'는 '극복'이란 말로 대체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즉, 같은 말이다. 어이구 지겨워, 이런 토 좀 안달게 해주라. 극우님들아... -_-;;;)

이문열로 다시 돌아간다. 이문열이 월북한 아버지를 어떻게 느끼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험칙상 그가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애증이 엇갈렸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부재는 '버려진'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그가 월북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계셨다면...이라고 이문열은 얼마나 간절히 염원했을까. 옆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또한 그에게 고통을 준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미움은 그와 '버려진' 가족이 받는 고통의 크기에 비례하여 커져갔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갑자기 부친이 사망했다거나 실종되어서 혼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버려졌'다. 그는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것이다. 거세공포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에 대한 부정을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가 저질러버린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사랑하며 동시에 증오하는 마음 상태를 '양가감정'이라고 부른다. 오랜 질병으로 신음하는 부모를 간호하는 자식들이 "빨리 완쾌되셨으면"하고 바라면서 동시에 "당신 괴로운 것 보기도 힘들고 나도 힘겨우니 빨리 돌아가셨으면"하고 바라는 그런 감정을 말한다. 그리고 이 양가감정은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매우 인간적인 감정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아프면 울고 배부르면 즐거운 등의 동물적 감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버림받은 이문열이 신의 존재에 대해 그토록 열심히 논구한 이유를 이제는 짐작할 수 있다. 이문열이 찾아나선 신은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란 특수상황에서 그가 만난 아버지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려야만 하는 첫번째 조건이었다. <사람의 아들>의 초반, 중반에서 이문열은 치열하게 예수와 아하츠 페르츠의 논쟁을 전개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정열을 바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민요섭이 절망하고 다시 기독교의 신으로 돌아가다 조동팔에 의해 죽는 부분은 소설적 긴장도나 문학적 밀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조동팔의 자살과 그가 죽어가면서 남기는 몇마디는 다시 또 강렬한 리얼리티로 다가온다(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이문열이 얼마나 많이 현실에서 좌절하였는지를 짐작케하는 초,중반에 비해 그 결말이 허술한 이유는 늘 내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이번에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던진 말을 보면서 내 궁금증은 풀렸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을 쓸 때부터 전향자였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언제나 갈급하게 절실했던 것은 그라는 존재에 대한 알리바이(그에게만은 현장존재증명이라 불러야 한다), 남한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아버지라는 붉은줄 지우기'였다. 그는 마법에 걸린 듯 충직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으며, 더러는 마취에서 깨어나 소설가의 본분을 기억하고 <황제를 위하여>와 같은 걸작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개는 <변경>, <선택>, <아가> 등과 같은 쓰레기들을 만드는데 정진했다. 그의 재능은 그의 글에 리듬과 생명력을 불어넣었지만 그의 생존본능은 그의 글에서 정신을 앗아갔다. 그 결과는 천만부가 넘게 팔려 인세만으로도 충분한 부가 보장되는 그의 풍족한 삶과, 일그러진 그의 정신세계이다. 보라, 이것이 정말로 "이 세상의 아픔을 맨 먼저 감지하는 안테나"인 작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가?

이씨의 말 : 첫째, 다 양보해서 <조선일보>가 과거 군사정권과 결탁했다고 치자. 지금은 안티조선쪽이 현재의 집권세력과 결탁해 있지 않은가. 안티조선쪽의 면면들을 보면 현 집권세력의 모태가 된 운동과 투쟁에 관여했던 사람들이다. 적어도 대부분이 현 정권과 우군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군사정권 시절 이런 운동(‘안티조선운동’을 말함)이 일어났다면 그건 얘기가 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과거의 일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보여 마뜩찮다. <조선일보>가 DJ와 사이가 좋지 않으며 싸우기까지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느냐. 그 때문에 안티조선운동은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까지 보인다. 이제 <조선일보>는 힘을 잃고 DJ는 힘을 다 가졌으니 보복을 벌이되 현행법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안티조선운동이라는 일종의 ‘문화적 위장’을 통해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과문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세상 어느 나라에서든 특정 신문의 존폐를 두고 운동을 벌인 예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신문의 그릇된 태도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존폐까지 논하는 건 지나친 것 같다. 그건 일종의 테러리즘의 변형이며, 우리나라밖에 예가 없는 줄로 안다. 가령 영국의 <더 타임스>가 역사상 그릇된 논조를 펼 때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그 신문을 없애자, 그 신문에 글을 쓰지 말자는 운동이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 벌어졌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신문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신문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은 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문의 존폐 여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일은 참으로 별스런 일로 보인다.

신분상승에 성공한 자는 모름지기 원조보다 더 과격해진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시이저의 갈리아 정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용병술보다는 정복당한 갈리아 족장과 그 일족에게 로마인과 같은 권리를 인정한 것이란 분석은 타당하다. 달콤한 로마의 권력과 문화에 취해 갈리아는 해체되고 독립의 정신은 사라진다. 오... 신참자여, 갈리아 족장 이문열이어... 당신이 쓴 전향서는 한 장이 아니다. 여러번 거듭해서 되풀이 된다. 소설의 탈을 쓰기도 하고, 수상이유서의 이름을 빌기도 하며, 좌담회에서의 발언을 가장하기도 하고, 이번처럼 인터뷰의 형식을 차용하기도 하지만 당신의 글과 말은 단 한마디로 족하다. 전 향 서.

그렇다. 당신의 부끄러운 말들-더 이상 내 글에 인용하기도 더러운-은 당신에게 부와 명예와 세속적 성공을 보장한 가짜 아버지를 사모하는 사부곡(思父曲)인 동시에, 당신의 진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가짜 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부곡(死父曲)이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당신의 데뷰작 제목이 "새하곡(塞下曲)" 인지를...
노래 부르라. 이 시대 최고의 가객 이문열이여. 그대의 미성과 교태를 모두 동원하여 노래부르라. 충성의 노래를, 다시는 나의 불온한 친부처럼 월북하지 않겠다는 충성의 노래를 부르라...

낡은의자 드림

Posted by 중년하플링 :

[통신] FMCA, 유무선 통합 서비스 가시화

NTT 커뮤니케이션즈(NTT Communications)를 비롯해 세계적인6 개의 통신 사업자들은 7.14(水), 유무선 통합서비스 실현을 위해 유무선 통합 연맹(Fixed Mobile Convergence Alliance, FMCA)을 발족했다.

유무선 통합 서비스는 하나의 휴대전화로 밖에서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무선 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서비스는 요금이 저렴한 내선 네트워크나 유선 네트워크로 연결돼 사용자들의 통신 요금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FMCA에는 NTT 커뮤니케이션즈를 포함해 BT, KT, 브라질텔레콤(Brazil Telecom), 로저스 와이어리스 커뮤니케이션즈(Rogers Wireless Communications), 스위스콤(Swisscom)이 회원사로 가입해있다. 의장은 매년 돌아가면서 선출될 예정이며 첫 번째 의장으로 BT가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를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점을 고려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무선 전화 표준으로 알려진 블루투스나 무선랜(WLAN), DECT(Digital Enhanced Cordless Telecommunications)가 거론되고 있다.

NTT 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현재 FMCA는 통합서비스에 가장 적합한 무선 인터페이스를 선정해야하는 단계이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KT는 8월부터, BT는 올해 말 까지 서비스 제공할 계획

6개의 통신 업체 가운데 KT는 8월 말부터 '원폰'이라는 명칭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어 통합서비스 보급의 첫 번째 업체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同社는 이 서비스 제공을 위한 단말기로 2세대 휴대전화인 PCS, CDMA 2000 1×,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SPH-E3700을 사용할 계획이다.

특히 블루투스 전화는 음성과 데이터를 집 내부와 외부 모두로 전송할 수 있어 KT는 가까이에 블루투스 중계국을 설치할 예정이다. 블루투스는 반경 100 미터까지 라디오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Class 1'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BT는 가상이동망사업자(MVNO)로서 英 보다폰(Vodafone)의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해 2004년 말까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 서비스를 출시하기에 앞서 BT는 오는 7월께 시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BT 관계자는 2005년에 이르면 수 천명의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며, 2007년 말에는 수 백 만 명의 사용자들이 이 서비스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루투스 이외에도 BT는 무선 인터페이스로 무선랜과 DECT도 고려하고 있다. 이미 모토로라(Motorola), 알카텔(Alcatel), 에릭슨AB(Ericsson AB)를 포함한 7개의 통신 장비 및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는 통합 서비스를 위해 휴대전화 생산과 중계국 건설 수주에 대한 입찰을 진행 중에 있다.

NTT 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自社도 서비스를 보급할 계획을 갖고 있으나 현재는 개발 단계라고 전했다.

참고기사 -"BT, KT, NTT Com, Others Forge Alliance to Promote Fixed/Mobile Communications", Nikkei Communications, Jul. 22, 2004.

(김은애 연구원)

Posted by 중년하플링 :

휴테크 성공학 1

여가 문화의 부재, 무엇인 문제인가? - 단절된 소통, 그리고 폭탄주와 독수리 5형제 증후군



현대인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바쁘다는 것이다. 뒤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간다.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등장했다지만 정작 사회구성원들 사이엔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돼 있다. 21세기 창의적인 사고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쉼(休)’이다. 국내 최초의 여가학(餘暇學) 전문가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의 저서 《휴테크 성공학》을 통해 여가문화와 휴식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쉬면서 일하시길!

(편집자)

“어떻게 노는 게 잘 노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혼자 놀아도 너무 재미있어서 심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논다는 것은 돈과 시간을 들여 누구나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하게 놀아야 한다는, 또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환상을 말이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나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은 일상 속에 있다. 혼자 있어도 좋고 둘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

이것이 놀이의 시작이고 핵심이다. 놀이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기 때문이다. 잘 놀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과 잘 통해야 한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손쉽게 색다른 재미를 이끌어 낸다.

한국 남성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술[酒]’

한국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사나이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그런 감정을 들킬까 두려워 전전긍긍 하기 일쑤다. 혼자 노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은 떼로 모여 정신 없이 놀아야 잘 놀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술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정치, 경제, 심지어 세계평화까지 걱정한다. 하지만 막상 자기 옆에 앉은 동료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는 모른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의사소통의 단절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떠들썩한 술자리가 끝나면 무기력하고 공허함을 느끼는 현실로 돌아온다. 샌드위치처럼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현실에서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점차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행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탓하고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말이 있다.

‘자기 무덤 자기가 판다’는 옛말, 즉 현재의 위기가 꼭 남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년 남성들의 문제는 우선 술 문화에서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언제부턴가 폭탄주가 술자리의 필수품이 됐다. 왜 폭탄주를 마시는 걸까? 빨리 취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왜 빨리 취하려고 할까?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즉 소통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아야 같이 마실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에겐 긴 시간 동안 공감하면서 나눌 이야기가 없다.

포도주를 놓고 맨 정신으로 서로 마주보는 것은 고문이다. 차라리 폭탄주를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게 낫다.

취하면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눈 마추치기를 두려워 하는 이런 증상(?)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중년 남편들은 아내가 묻기 전에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다. 밥이 차려지는식탁에서도 남편은 신문을 본다. 아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식사가 끝난 후 거실에서도 눈은 TV에 고정돼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눈 한번 맞추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땅의 중년남자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눈 맞추기’는 관심을 고유하려는 행동인데 눈을 마주치지 않으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

술 자리에서 서로 어깨동무 하고 노래하지만 실은 각자 다른 세계에서 외롭게 머물고 있을 뿐이다. 남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자기만이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자폐증이다.

자폐증, 그리고 ‘독수리 5형제 증후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국 남성들의 또 다른 증상은 일명 ‘독수리 5형제’ 증후군’이다.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 태권V나 마징가Z에 익숙해 있던 1970년대 당시 아이들에게 독수리 5형제의 최첨단 무기와 기술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그것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30, 40대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독수리 5형제 신화는 지금도 중년사내들이 모여 한잔 걸치는 곳이면 어디든 재현된다.

지구의 환경문제에서 한국의 교육정책, 재벌개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우주의 침략자에 맞서 싸울 에너지인 술만 있으면 된다.

술은 변신을 위한 필수 에너지다. 술을 먹으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 호기를 부리는 중년 남자들의 허세는 자신들의 뿌리 깊은 불안에 대한 방어작용에 불과하다.

이 땅의 중년남성들에게는 세 가지 자부심이 있었다. 생산인, 가장, 수컷으로서의 자부심.

하지만 직장에서는 명퇴 당하고 가장의 권위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지 오래다.

밤이 무서워지는 중년 남성은 아내의 예쁜 잠옷이 부담스럽다. 자신의 존재 기반이었던 세 가지 자부심이 사라진 후, 중년 남성들에게 마지막 남은 방법은 독수리 5형제로의 변신이다.

직장과 가족으로부터 밀려난 이들의 행복은 바로 이때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변신’과 ‘합체’를 반복하며 술과 함께 흐느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일 중독 권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

대다수의 중년 남성들이 겪고 있는 소통 불능의 원인을 살펴보면 놀이의 부재 외에도 일 중독 신화라는 고질적 병폐가 또 하나 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맹신하고 찬양해 왔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제신문의 인물기사를 한번 보라. 온통 일에 중독된 사람 아니면 강박증 환자들의 삶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다.

주어진 과업을 수십 배 초과달성한 노동영웅을 찬양하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나 ‘새벽별보기 운동’을 비웃을 일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 중독 양상은 그들보다 조금 세련된 모습일 뿐이다.

물론 이런 일 중독자들 덕에 우리사회가 이만큼이나 풍요로워지지 않았느냐고 심각하게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 중독자를 양산해낸 일 중독 사회의 이면을 살펴보면 그 풍요로움의 허세와 더불어 각종 병폐가 자리잡고 있다.

일 중독 사회는 필요한 의식주 외에도 각종 불필요한 욕구들을 과잉 생산한다. 그리고 이 과잉 생산을 소비시키기 위해 ‘욕구를 채우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라는 소수의 의견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하지만 일 중독에 빠지면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 일 중독자는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 돼야 옳다.

일 중독의 대표적인 신화, 김우중 전 회장의 일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는 그가 대우 시절 가진 유일한 휴가는 뇌막하혈종으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던 닷새가 전부라고 한다. 남들 다하는 골프조차 쳐본 적이 없단다. 술도 마시지 않는 그의 유일한 취미는 오로지 일이었다.

지금 그는 도망자 신세다. 국가와 기업의 성장을 위해 지독히 일만 했던 그가 경제를 망친 국가적 죄인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끝까지 무사히 달리려면 중간에 쉬기도 하고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가끔 표지판도 살펴봐야 하건만 그저 앞만 보고 달리던 그는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때때로 쉬면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휴식은 대나무에 비유하자면 마디에 해당한다. 마디가 있어야만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기업도 중간에 쉬어야 강하고 곧게 자랄 수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빅3 중 하나인 혼다의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가 남긴 말이다.

대나무의 줄기는 속이 비어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금방 부러지거나 휘어질 것 같지만 선비의상징으로 불릴 만큼 그 꼿꼿함을 자랑한다. 그 이유는 중간 중간에 마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디 덕분에 대나무는 30미터 이상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김우중도 대나무처럼 그의 삶에 마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출처 : [창업 & 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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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자산 경제...스티븐 로치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 기사를 통해 자산 경제로 선회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고용 및 실질 임금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소비자들은 富 효과 또는 자산 인플레를 현금화해서 이를 구매력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신속하게 확대하고 있는데, 로치는 이를 성장 역동성이 종래 소득 주도 방식에서 자산 주도의 富 효과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자산 경제 부상에는 이례적인 통화·재정 부양책이 특히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가운데 거품 확대 및 지속, 가계 채무 급증, 국내저축 기근, 막대한 쌍둥이 적자 등 경제적 해악이 수반되고 있다. 로치는 팽창적 경제 부양책들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자산 경제가 혹독한 시련에 처할 것으로 전망한다(原題: "The asset economy is a house of cards," FT, 7/19).



미국 경제성장이 종래 소득 주도 방식에서 이제 자산 주도의 富 효과로 전환되는 가운데 그 성장 역동성이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 자산 경제에서 기존의 거시적 규칙들이 전복되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회복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발생하고 있다.

자산 경제와 富 효과의 배경

1990년대 중반 자산 경제가 붕괴되면서 호된 대가를 지불한 적이 있다. 1994∼2003년 가계부문 자산은 명목 GDP 성장에 비해 84%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미국 가계들의 자산 對 GDP 비율은 1999년 5.25배로 과거 기준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2000년 증시 거품 붕괴 후 同 배수는 4.9배로, 이는 거품 전 기준에 비해 무려 20%나 높은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오래지 않아 자산 경제의 기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富 효과 또는 자산 인플레를 현금화해서 이를 구매력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신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필요의 산물이다. 고용 및 실질 임금 기근과 함께 개인소득에서 임금 및 급여 부문이 유례 없는 부족 상태에 있다. 올해 5월 실질 임금 소득은 2001년 11월 경기침체 때의 저점에 비해 고작 3% 가량 상승했는데, 이는 종전 경기회복기에서 처음 30개월 동안 무려 10% 상승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이는 2,600억 달러의 실질 개인소득 손실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득 기근의 경제회복에서 구매력 유지를 위해 富 효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증시/부동산 자산경제의 비교

자산경제는 1990년대 말 증시 거품과 최근 부동산 시장 거품의 결과 등 2단계로 구분된다. 부동산 富 효과는 증시 富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 이런 차이는 자산 경제의 최대 리스크와 관련해서 핵심이 되고 있다. 부동산 富 효과는 증시 富 효과에 비해 매우 채무 집약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근 미국 소비자들의 채무 급증에서 입증되고 있다. GDP 대비 가계 채무 비율은 1995년 70%에서 지난해 85%로 증가하였다. 이런 사태는 저금리와 주택 가격 급증에 대한 합리적 대응으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

가계 채무 급증/국내저축 기근/막대한 대외수지 적자

그러나 이런 만족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연준리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 동안 40년來 최저 금리에도 불구하고 부채 상환 부담은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높은 수준을 있다. 또한 일반적 통념에 의하면 합리적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富 효과 자금을 조달하는데 있어 고정 금리부 부채를 통해 금리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차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변동 금리부 모기지로 전환은 이런 가정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변동 금리부 여신이 신규 모기지에서 점하는 비중은 지난해 초 20%에서 올해 5월 50%로 급증하였다.

미국 정책 당국도 자산 경제 기적 놀음에 가세하고 있다. 연준리는 최저금리를 통해 자산 시장을 미지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과다 채무 소비자와 과도하게 노출된 금융 기관 등 도덕적 해이가 초래되고 있다. 이런 양대 리스크는 오래 지연되고 있는 통화정책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비자 수요에 있어 자산 기반 저축이 소득 기반 활력을 점차로 잠식하고 있다. 이는 막대한 연방정부 재정적자와 함께 국내저축의 전례 없는 기근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GDP 대비 純국내저축은 지난해 사상 최저인 2% 미만으로 떨어졌다. 국내 저축 부족 때문에 미국은 해외 저축을 수입하면서 막대한 경상수지 및 무역수지 적자를 운용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유례 없이 확대되고 있는 쌍둥이적자가 자산 경제의 최대 암초로 등장하고 있다.

회의적인 자산경제의 지속성

자산 경제에서 전통적인 거시경제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적자, 부채, 저축을 파악하는데 이용되는 소득 토대 추계 방식들(metrics )이 부적절한 것으로 묘사된다. 대신 이제 자산 결정 富에 의한 균형 모색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나는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990년대 말 그랬듯이 나는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증시 거품 붕괴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산 가치 지속과 그로 인한 富 효과 지속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 특히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저금리에 의해 자산 가치가 부풀려진 경우에 그러하다.

이처럼 위험스런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소득 기반 美 경제의 불균형과 자산 주도 대안의 의도적인 건전성간 병렬에 직면하게 된다. 새로운 개념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미국은 저축률과 경상수지 적자와 같은 소득 기반 불균형을 아주 위험스런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례적인 고강도의 통화·재정 정책이 없었다면 이런 사태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들 정책들이 정상화되면서 자산 경제는 가장 어려운 시험무대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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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VoIP, 서비스 보완되어야 유선전화 시장 대체 가능할 것...포레스터 리서치

[편집자 註] 인터넷 음성서비스(VoIP) 기술은 기존 유선전화 서비스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많은 업체들이 VoIP 서비스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VoIP 기술을 폭넓게 보급하기에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가 VoIP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서비스 상호운용성 및 전화번호 목록 정확성 확보해야

기존의 美 유선 전화 서비스 시장은AT&T에 의해 독점 운영되어 오다이른바 베이비벨 업체들로해체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VoIP 경쟁구도는 유선전화 시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존의 유선전화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소규모 VoIP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신규 진입해 경쟁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레스터 리서치社의 피어스 부사장은 인터넷 전화 서비스 사업자들의 활발한 시장 진출이경쟁적인 시장 구도를 형성하는 데에는 바람직할 수있겠지만, 서비스의 상호 운용성 면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많다고 평가했다. 화상회의 서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서비스 전반에 사소한 기술적인 결함 없이 운영되려면 이러한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모든 인터넷 전화의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업계는 최근 전화 번호 목록을 작성하는 일에 착수했으나, 그것도 원하는 고객에 한해서만 이루어질 예정이다. 피어스 부사장은 인터넷 전화 번호를수집한 후 이를 목록으로 작성하고, 다시 이에 대한정확성 여부를 판단하기까지는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긴급구호 서비스 보완 시급

또한 긴급구호 서비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피어스 부사장은 모든 VoIP 사업자들이 911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이뿐만 아니라 현 기술로는 정확하게 통화위치를 추적할 수 없는 점 또한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피어스 부사장은 최근 VoIP 업계에 회자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사건의 내용인 즉, 최근 自社 본부 건물에 VoIP 서비스 제공을 시작한 어떤 통신업체의 직원이 심장발작을 일으켜 VoIP를 통해 911에 신고했으나 정확한 통화 발신지점을 파악하지 못해 시간을 지연시킨 결과 직원이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피어스 부사장은 이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현재 VoIP 업계가 당면한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녀는 "기존의 구식 전화 네트워크는 정착하는 데 수 십 년이 걸렸다"며 VoIP가 신기술로 각광받고 있다해도 현재 유선전화 서비스를 완벽하게 대체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참고기사 .
-"VoIP: Ready for Prime Time?", NewsFactor Network, Jul. 19, 2004.
-"The price of VoIP's thriftness", CNet News, Jul. 19, 2004.

(김은애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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