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2.20 느릅나무 아래 욕망 1
  2. 2016.10.31 깨달음과 역사
  3. 2016.05.22 올재 바가바드 기타

느릅나무 아래 욕망

2019. 2. 20. 17:17 from Lectura


-2019.2, 유진 오닐 / 손동호 옮김


리디북스의 ‘읽기’ 기능을 이용해서 출퇴근 시간 하루만에 ‘들은’ 책. 다음은 간단한 시놉시스.


배경은 서부가 아닌 시골 농가. 아버지 캐벗, 두 아들 시미언과 피터 그리고 이복 형제인 에벤이 살고 있다. 캐벗은 갑자기 집을 나가 세 번째 아내인 애비를 데리고 온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농장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던 시미언과 피터는 실망하여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애비는 캐벗과의 결혼은 통해 농장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캐벗은 애비를 통해 다른 아들을 낳아 농장을 상속시키려 한다. 에벤과 애비는 사랑에 빠지고 이를 통해 애비는 둘의 아들을 출산한다. 하지만 애비가 자신을 이용해 아이를 낳아  농장을 소유하려 했다고 의심한 에벤은 그녀를 떠나려 하고, 이를 막으려한 애비는 아이를 죽여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캐벗은 둘을 저주하며 보안관에게 넘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비와 애번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사랑을 재확인한다. 


시대적 차이 때문인지,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으로 읽힌다. 다양한 상징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작품이 씌여진 시기와 작품의 배경도 약 100년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것은 극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신화를 통해 삶에 대한 은유를 읽을 수 있다면, 한 편의 연극을 통해서는 어떤 은유를 읽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갈등 구조는 부성과 모성의 갈등이다. 신실하며 가부장적인 캐벗이 부성을 뜻한다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느릅나무와 두 어머니는 모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부성과 모성, 양과 음, 질서와 혼돈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짝이다. 문명은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한다. 캐벗의 투박한 농장은 캐벗과 이미 죽은 두 아내가 피땀을 흘려 만들어놓은 세계이다.애비와 에벤은 다음 세대의 어머니, 아버지인 셈. 이 둘은 결국 고난을 함께 하고, 전 세대의 성취(농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나서야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비록 임시적일지라도 다시 한번 새롭게 부성과 모성이 화합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극의 제목에도 들어 있는 ‘욕망’이라는 단어이다. 에비와 에벤 사이의 애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농장을 탐한다. 시미언과 피터가 하루하루 노동의 단조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에벤이 아버지의 무시를 견디며 농장에 붙어있는 것도, 애비가 늙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모두 농장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다. 욕망이란 다르게 보면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지향이다. 농장이란 이미 만들어진 문명과 가치(부)를 상징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농장을 욕망하지만, 결국 어떤 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누구도 농장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심지어는 캐벗마저도 자신이 만든 농장을 파괴하려고 한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세계(가치)를 필요로 한다. 기존 세대가 이룩한 결과물을 상속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욕망이란 세대를 거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명의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사라지고 난 뒤 삶의 가치는 모두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지속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러한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가치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의 교리로 보면 이러한 욕망은 피해야 할 삼독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가치있는 것을 욕망하지만 사실은 이 욕망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 이 연극에서는 삶을 힘들게 만드는 탐애, 분노, 어리석음을 모두 찾을 수 있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대 위에서 너무나 하찮고 어리석게 그려지지만, 실은 우리 삶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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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깨달음과 역사

2016. 10. 31. 04:03 from Lectura




 - 2016.10, 현웅 지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은 무엇인가? 깨달은 후에도 속세에 남아서 세상사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를 설명하는 불교철학에 대한 책이다.   깨달음(Bodhi)이란 ‘연기와 공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한다. 즉 모든 만물은 실재가 없으며 오로지 서로간의 관계에 의해서 존재하며,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상이다.

불교의 핵심사상을 신비화하지 않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태도는 불교에 대한 접근을 훨씬 쉽게 만들어준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깊은 산속에서 면벽수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사유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역사(Sattva)란 중생이란 의미인데, 깨닫지 못한 모든 사람 및 동물의 삶을 나타낸다.  

보적 동자: 저희 동료들이 이미 보리(올바른 시각)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었는데 그런 다음엔 어떻게 해야 ‘불국토청정’을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청정정토’를 구현하는 보살의 실천은 어떠합니까?
부처님: ‘불국토’란 바로 뭇 삶의 세계(중생계)를 뜩하는데, 이러한 불국토를 허공과 같은 초월적인 곳에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보살은 우리의 뭇 삶 속에서 정토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며, 바른 마음, 깊은 마음, 6바라밀, 각가지 방편, 자비와 희사, 8정도를 비롯한 37가지의 실천수행, 열 가지의 선한 행위 등이야말로 정토를 건설해 가는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깨닫고 나서 그 깨달음에 머무르는 것이 소승불교라면, 개인적인 깨달음을 역사에 적용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깨달음에다 자비와 원력을 덧붙인 사람을 보살(Bhodisattva)라고 하는데, 보살의 역사적 의지는 ‘환상과 같은 자비’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보살은 그가 이룩하고자 하는 정토조차도 공인 줄 알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문수:우리는 이 중생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유마: 중생(뭇 삶)의 존재란 환상적인 것이다. 마치 수면에 비친 달처럼, 거울에 나타난 모습처럼, 타오르는 불꽃처럼, 메아리처럼, 구름처럼…(중략) 그렇게 이 세계를 보아야 할 것이다.
문수: 그렇다면 자비니 실천이니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으며 어떤 형태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인가?
유마: 불교에서의 자비와 실천이란 이 세계가 환상적임을 일러 주어 깨닫게 해 주는 것을 뜻하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다. 
문수: 그러면 근심해 주고 안타까워 도와주는 우리의 실천은 어떠한가?
유마: 그건 우리의 실천을 모든 삶들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문수: 실천적 기쁨과 긍지는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유마: 역사적 성취에 후회 없이 기뻐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문수: 아낌없이 베푸는 헌신적인 희생정신은?
유마: 남을 돋는 행위에서 어떤 보답이나 자신에게 돌아올 어떤것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바가바드 기타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바가바드 기타 4장 14~15절
 나는 어떤 행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나는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행위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이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대도 고대의 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의 일을 계속 해 나가라.
 행위에 종속됨 없이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라.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실존주의 철학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배격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신이나 도덕 혹은 제일자와 같은 인간에 앞서는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라는 것이다.

어쩌면 불교는 2600년을 앞선 실존주의 일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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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올재 바가바드 기타

2016. 5. 22. 17:37 from Lectura




- 2015.11, 정창역 역


대부분의 종교는 믿음을 요구한다. 삶이 좋든 나쁘든, 유일신의 존재와 그 신이/ 내 삶을 주관할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제들은 믿음이 좋으면 복을 받고, 믿음이 약해지면 불운이 닥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보면 종교란 내 믿음을 대가로 주고, 삶에 대한 안정을 기대하는 거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종교활동이 아니라 각 종교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의외로 다른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은 이런 기복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결과와는 관계없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삶이 가치있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며 살아가는데,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불행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 철학을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책 중에 하나라고 알려져 있어서, 이번에 시도해 보았다. 의외로 도가 및 불가의 철학과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남는 단 한가지의 교훈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것을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으로 제시한다. 결과를 기대하고 행위를 하게 되면, 그 결과에 따라서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이렇게 결과를 기대하면서 행위를 하는 한 끝없는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올바르게 행위를 하는 것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도가에서는 이런 행위(혹은 행위하지 않음)을 '무위’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이런 경지를 '해탈’이라고 일컫는다.


4장 14~15절

 나는 어떤 행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나는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행위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이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대도 고대의 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의 일을 계속 해 나가라.

 행위에 종속됨 없이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라.


사람의 거의 모든 행위는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욕망이 바로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 어떻게 하면 욕망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행위를 하되 결과에 초연한 상태로 행위를 하는 경지에 이르면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결과가 좋아도 기쁠일 만은 아니고 결과가 나빠도 슬퍼할일 만은 아니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덤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행위에 초연한 상태로 행동을 하고 이 상태에 머물게 되면 어떤 종류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이원론에서 벗어나 만물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현대의 여러 심리학 연구를 참고해보더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일상적인 행복은 삶에서 작은 것들을 통해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살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알지 못하는 사후의 세계를 걱정하며 지금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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