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1.01.23 그런 깨달음은 없다
  2. 2020.05.19 Psychoanalysis and Zen Buddism
  3. 2015.01.25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그런 깨달음은 없다

2021. 1. 23. 11:58 from Lectura

  • 2021.1, U. G.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유명하지...응?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아니네? 하... 이젠 이런 책도 짝퉁이 나오네. 

 

어쨌든 돈이 아까워서 마저 읽어버린 책. 이름은 같지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짝퉁이 아닙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도에서 꽤 흔한 이름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슈나무르티와 유명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7년 정도 교류를 했었다고 하네요. 이런 쪽으로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처음엔 되게 근본없이 자기자랑 하는 것 같았는데, 읽어볼 수록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영적인 수련을 받았고, 스스로도 답을 찾기 위해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어느 날 세상이 폭발하는 같은 경험을 하고나서,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상태는 '자아'라는 환상이 존재하지 않는 경지입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복/극락/삼매의 상태와는 좀 다릅니다. 그는 자신과 깨닫지 못한 우리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자신은 '자아'라는 생각의 작용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 일상적인 상태에서 '자아'가 개입해서 여러 사고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멈추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생각은 생명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생각을 멈추라는 말을 하는 스승들은 잘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합니다. 어떤 경지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은 '자아'를 강화하기 때문에 '자아'의 소멸을 목적으로 노력해 봐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 자신은 '우연히' '그 상태'에 이르게 되었지만, 이런 일은 말 그대로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식적인 모든 노력은 무의미 하다고 하네요.

 

다 읽고 나면 의외로 그렇게 파격적인 주장이라기 보다는, 불교의 선문답을 연상시킵니다. 어쩌면 깨달은 사람의 실제 모습은 U.G. 크리슈나무르티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동안 막연하게나마 '깨달음'이라는 상을 짓고 기웃거리던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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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Psychoanalysis and Zen Buddism

2020. 5. 19. 09:55 from Lectura
 
  • 2020.5, Erich Fromm
 
기독교는 오랫동안 서구인들에게 삶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 주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질문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동시에 제공했다. 근대 계몽주의의 성공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과학을 통해 제공되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도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프롬에 따르면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는 계몽주의의 지나친 성공에 따른 이성의 비대화에 있다. 이성이 중세의 무지를 물리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자본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폭발적인 생산성 증가를 이룩하자, 스스로 인간의 삶에서 최상위 가치 임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는 모든 삶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기독교가 제공하는 환상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존재의 한계를 깨달은 인간은 탈출을 시도한다. 방향은 두 가지. 퇴행하거나, 실존을 극복하고 ‘개인화’를 이루는 것이다. 퇴행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략적인 형태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모성 고착: 필요를 모두 채워주던 어머니의 품으로 퇴행한다. 
  • 부성 고착: 아버지와의 동일화를 통해 분열을 극복한다. 
  • 죽음 지향: 주변의 모든 것을 소화하고 파괴하려는 충동.
  • 자아 강화: 끊임없이 자아를 확장하고 강화한다. 

 

이런 모든 형태의 퇴행이 현대의 소비주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라!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일 중독 수준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고 이렇게 획득한 화폐를 소비함으로써 퇴행적인 만족을 얻는 것이 전형적인 현대 소비자이다. 우리는 식탐을 통해 주변 모든 자원을 소비하고 명품과 같은 물건을 소비하면서 자아를 강화한다. 광고를 통해 전해지는 모든 메세지는 단 한가지 ‘소비하라’.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머니이다.
 
이렇게 해서 현대인은 일/소비/과식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대중 소비주의로 인해 진정한 ‘개인화’를 위한 성장이 지연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사회가 일부분 조장하고 있는 면이기도 하다. 
 
  • Any society, in order to survive, must mold the character of its members in such a way that they want to do what they have to do; their social function must become internalized and transformed into something they feel driven to do, rather than something they are obliged to do.
 
즉, 사회는 개인에게 무엇이 합당한 행동/생각이고 무엇이 합당하지 않은 것인지를 내재적으로 강제한다. 끝없는 소비와 일의 일상에서 멤도는 현대인의 삶은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내재화 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의해 조건지어진 기계적인 반응을 벗어나야 한다. 실존을 극복하고 ‘개인화’를 통한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한다. 자아의 한계를 깨닫고 현실 안에서 자유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선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퇴행적인 형태의 종교를 극복한 인간에게 선은 강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가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 세계와의 합일/행복/well-being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주의와 탐욕을 극복해야 한다. 
 
  • Well - being means, finally, to drop one’s Ego, to give up greed, to cease chasing after the preservation and the aggrandizement of the Ego, to be and to experience one’s self in the act of being, not in having, preserving, coveting, using.
 
그리고 이와 같은 자아발전은 선이 추구하는 목표와도 일치한다. 
 
  • The achievement of the aim of Zen, as Suzuki has made very clear in his book, Studies in Zen, implies the overcoming of greed in all forms, whether it is the greed for possession, for fame, or for affection; it implies overcoming narcissistic self - glorification and the illusion of omnipotence. It implies, furthermore, the overcoming of the desire to submit to an authority who solves one’s own problem of existence. The person who only wants to use the discovery of the unconscious to be cured of sickness will, of course, not even attempt to achieve the radical aim which lies in the overcoming of repressedness.
 
정신분석학이나 선불교나 모두 자아의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자아의 성숙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결국 파랑새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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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 2015.1, 강신주


‘무문관’ 48개 화두에 대해 철학자 강신주가 정리한 이야기.  ‘감정수업'과 마찬가지로 48개의 꼭지로 이루어져있고, 한편씩 찬찬히 읽어볼 수 있어서 책 읽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강신주는 ‘무문관’을 바라보는 관점을 ‘주인 되기’ 라는 키워드로 해석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나’가 되는 것을 선사들의 깨우침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일단 혼란스럽기만 한 화두들을 몇 가지의 틀에 맞추어 풀어 준다는 점에서 이해가 쉬운 면이 있다. 또한 화두를 풀어주는 배경에 있는 다양한 불교관련 이론의 소개와 종파에 대한 설명 역시 생각지 않게 얻을 수 있었던 수확. 아마도 강신주의 ‘무문관’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화두는 제12칙인 ‘암환주인'이 아닐까 싶다.


 -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


깨닫는 것은 내 앞에 존재한 모든 사람들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이를 되새겼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것들에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한 규칙들을 배우는 것이 인생 전반기를 모두 차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규칙들은 성인이 된 이후 ‘나’로 살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죽은 관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우리는 어렵게 얻은 규칙들을 파괴 해야만한다. 이걸 하지 못하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사는 손님이 되버리고 만다. 


니체의 당나귀, 사자, 아이의 비유는 그대로 이 책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은 과연 ‘파괴’를 할 수 있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삶 속에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나만의 ‘무문관’을 찾기 위한 시작으로는 좋은 길잡이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예전에 읽었던 ‘괴델, 에셔, 바흐’를 다시한번 들춰봤는데, 여기 나온 공안들의 대부분 무문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괴델..’ 에서는 공안의 목적을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함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매달린..’과 다른 강조점이면서도 무문관이 이 책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깊이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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