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22 올재 바가바드 기타
  2. 2015.03.22 올재 도덕경
  3. 2013.02.12 군주론

올재 바가바드 기타

2016. 5. 22. 17:37 from Lectura




- 2015.11, 정창역 역


대부분의 종교는 믿음을 요구한다. 삶이 좋든 나쁘든, 유일신의 존재와 그 신이/ 내 삶을 주관할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제들은 믿음이 좋으면 복을 받고, 믿음이 약해지면 불운이 닥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보면 종교란 내 믿음을 대가로 주고, 삶에 대한 안정을 기대하는 거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종교활동이 아니라 각 종교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의외로 다른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은 이런 기복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결과와는 관계없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삶이 가치있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며 살아가는데,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더라도 불행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바가바드 기타는 인도 철학을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책 중에 하나라고 알려져 있어서, 이번에 시도해 보았다. 의외로 도가 및 불가의 철학과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남는 단 한가지의 교훈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것을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으로 제시한다. 결과를 기대하고 행위를 하게 되면, 그 결과에 따라서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이렇게 결과를 기대하면서 행위를 하는 한 끝없는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올바르게 행위를 하는 것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도가에서는 이런 행위(혹은 행위하지 않음)을 '무위’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이런 경지를 '해탈’이라고 일컫는다.


4장 14~15절

 나는 어떤 행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나는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행위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행위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이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대도 고대의 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의 일을 계속 해 나가라.

 행위에 종속됨 없이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라.


사람의 거의 모든 행위는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욕망이 바로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 어떻게 하면 욕망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행위를 하되 결과에 초연한 상태로 행위를 하는 경지에 이르면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결과가 좋아도 기쁠일 만은 아니고 결과가 나빠도 슬퍼할일 만은 아니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덤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행위에 초연한 상태로 행동을 하고 이 상태에 머물게 되면 어떤 종류의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고, 이원론에서 벗어나 만물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현대의 여러 심리학 연구를 참고해보더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일상적인 행복은 삶에서 작은 것들을 통해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살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알지 못하는 사후의 세계를 걱정하며 지금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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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올재 도덕경

2015. 3. 22. 11:27 from Lectura




- 2015.3, 노자/이석명 옮김


개인적으로 노장사상 알기의 일환으로 시작한 3부작 독서의 첫걸음. 도덕경, 장자, 열자의 순으로 읽어나갈 계획인데, 일단 도덕경을 완독했다. 


국가의 운영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수련 방법까지도 포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중간 중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구절이 있어서 영문 번역판을 대조해 가면서 보았는데, 이 ‘도덕경’ 이라는 책은 번역자에 따라서 그 해석이 무척이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자에 따라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 중 상당 수는 내공 수련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더 잘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곳곳에서 호흡법, Bandha를 암시하는 구절이 나타난다. 

 -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게 바로 신비한 암컷의 모습(6장)

 - 숨을 들이쉬고 내쉼에 있어서 암컷처럼 고요히 할 수 있는가?(10장)

 - ‘구멍'을 틀어막고 ‘문’을 닫으면 평생 수고롭지 않을 것이나 구멍을 열어 놓고 일을 이루려 한다면 평생 완수하지 못할 것이네(52장)


물론 이와는 별도로 이 책이 국가운영 및 개인수양에 대한 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노자가 이야기하는 ‘도’가 워낙 애매하기 때문에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국가 운영론은 ‘도’와 ‘무위’ 이다. 백성을 억지로 누르거나 기준에 맞추어서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라는 것이다. 군사를 통해 지나친 국토 확장도 꾀하지 말고, 국가를 작게 유지하라 등.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강아지를 기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같다. 강아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주인의 원하는대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가진 본성에 가장 잘 맞는 형태로 기르면 문제점이 사라진다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는 제목의 EBS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이 책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노자 사상의 특징은 역설 혹은 무위이다. 즉, 세상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 어떤 것(부, 명예, 권력)을 얻으려 하고 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노자는 사람들이 각자 노력을 하면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사람들의 행복을 방해한다고 본것 같다. 때문에 행복하게(도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그쳐야 한다. 자연이 인간과 사물에 부여한 기본적인 질서(도)를 따라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본것이 그의 주장이 아닐까? 


역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진 도덕경이 온전히 노자의 저작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는 최근에 죽간본이 발견되면서 더욱 확실해 졌다고 하는데, 시대를 거듭하면서 후대 사람들이 부분부분 첨가하거나 수정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온전하게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피르시그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이야기한 Quality와 ‘도’의 관계는 어떨가? 도의 특징에 대해서 노자가 한 묘사는 피르시그의 ‘Quality’와 상당히 유사하기는 하지만, 유사점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듯. 해석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도덕경 읽기의 재미 중 하나 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원전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경우이고 나처럼 2차 해석에만 의존하는 경우에는 즐기기 힘든 묘미이다. 


전체적으로 참 뛰어난 경전이다.. 라는 감동을 얻지는 못했고,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책이구나 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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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군주론

2013. 2. 12. 14:13 from Lectura



 - 2013. 2, 마키아벨리 / 임명방 옮김

너무나 친숙해서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싸서 산 올재클래식스는 책장에 무려 12권? 정도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서 뭐라도 읽어야 겠다는 의무감이 생길 지경. 막상 읽고나니 역시 직접 읽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고나서 감상은 의외로 마키아벨리즘이 혹독하지않다는 것? 이 정도면 그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현실적인 충고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와 실제로 사람이 살아 나가는 생활방식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제15장, 인간, 특히 군주가 찬양받거나 비난받는 몇 가지 이유

개인적인 미덕과 군주로서의 행동지침을 구분하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요한 주장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정치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정당하거나 도덕적이기만 해서는 불리하고, 때로는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이용해야 할 때도 있다.  

'군주는 자기의 백성을 결속시키고 이들이 충성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잔인하다는 악평 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인간은 두려워하는 자보다 애정을 느끼는 자를 더욱 쉽게 배반한다'  
  -제17장,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해.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외경받는 것 중 무엇이 나은가

'명군이라 할 자는 신의를 지킴으로써 자기에게 해가 돌아올 경우, 또 약속을 맺던 당시의 동기가 이미 없어졌을 경우에는 신의를 지키려하지도 않을 뿐더러 또 신의를 지켜서도 안 된다'
  - 제18장,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킬 것인가

그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잔인하게 탄압하고 주변사람 모두를 무자비하게 다루라고 조언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주변사람을 이용하라는 충고를 했을 뿐이다. 그의 저작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오늘의 기준으로 볼때 범죄적인 행위에 대한 관용보다는 노골적인 현실인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회사 안에서 횡횡하는 office politics 에도 적용이 가능한 주장으로 우리는 이러한 주장의 실례를 이미 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민중이란 머리를 쓰다듬든가 아니면 없애버리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 제3장, 복합형 군주국
'민중의 천성이란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사유를 설득시키기는 용이하나 그 설득된 상태로 그들을 장기간 방치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경우에 말로써 안 될 때는 힘으로 그들을 장기간 방치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경우에 말로써 안 될 때는 힘으로 방법을 강구해야 될 것이다' 
  -  제6장, 자기 무력과 역량으로 지배하게 된 새로운 군주국
'대중은 언제나 외관만으로 그리고 결과만으로 평가하게 마련이며 이 세상은 이들 속된 대중으로 가득 차 있다'
  - 제18장,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킬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군주는 항상 민중을 자기편으로 잡아두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역경에 이르로서 구제방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 제9장, 시민형 군주국

대중의 혹은 민중의 어리석음에 대한 언급을 자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주의 지지 기반으로 삼으라는 충고를 하였다

'인간을 다스린, 또는 아직 다스리고 있는 국가나 주권 집단은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의 어느 하나였다'
  - 제1장, 군주국의 종류와 그 형성과정 중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예전 공화국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체계는 바로 그 공화제의 일부로 대통령제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헐… 단지 지배계층을 국민의 직접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

마키아벨리가 충고한 군주의 세상은 오늘날 수직적인 회사조직과 그닥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인간은 진화하는가? 조금씩 진화한다. 조금씩 문명화 된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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