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9.01.14 돈후앙의 가르침
  2. 2018.09.30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2
  3. 2017.10.22 호모 데우스
  4. 2016.06.06 사피엔스 1

돈후앙의 가르침

2019. 1. 14. 17:08 from Lectura



- 2017.8.28, 2019.1.14,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지음/김상훈 옮김

이 책은 두 번을 읽었다. 첫번째 읽은 것은 2017년, 그리고 나서 최근 다시 읽었다. 처음 읽고 나서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은듯 한데 감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몇 종류의 책을 더 읽었는데, 이 책들이 두 번째 독서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각각 ‘Acid Dreams: The Complete Social History of LSD’와 ‘How emotions are made: The Secret life of the Brain’,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이다. 

일반적인 상태에서 우리는 외부 세계와 뇌를 통해 경험되는 내부 세계를 각각 분리된 실체로 인식한다. 외부 세계는 나와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며 나의 상태나 인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내부 세계는 내가 온전하게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전혀 별개의 체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원론은 서구 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의심하거나 다른 체계를 생각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때문에 외부의 실체가 우리의 의지에 의해 변화하고, 우리 인식이 특별한 상태가 되면 외부 실체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허황되거나 환각에 빠진 것으로 생각한다.

LSD를 섭취하고 주관적인 현실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7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하였다. 감각의 왜곡 및 변이,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고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등…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고, 이런 변화가 삶의 나머지 과정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원론이 적용되기 힘든 경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증언 하였지만,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70년대 이후 중단되었다. 새로운 해석은 뇌과학의 발달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외부 지각에 대응해서 세계에 대한 내부모델을 만들고 이를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것이 뇌의 주요 활동이다. 우리의 뇌는 지속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예측을 수행하고, 이를 실제 지각자극과 비교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외부의 지각자극을  뇌가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뇌는 세계에 대한 내부모델을 통해서만 외부를 인식한다.  

  • -Simulations are your brain’s guesses of what’s happening in the world. In every waking moment, you’re faced with ambiguous, noisy information from your eyes, ears, nose, and other sensory organs. Your brain uses your past experiences to construct a hypothesis — the simulation — and compares it to the cacophony arriving from your senses. In this manner, simulation lets your brain impose meaning on the noise, selecting what’s relevant and ignoring the rest.   - How Emotions are Made

이런 경우 약물이나 훈련을 통해서 뇌의 ‘내부모델’을 수정하거나, 외부 자극을 해석없이 직접 접하게 되면 LSD를 통해서 겪는 많은 경험이 설명이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부모델’이 유일한 모델이 아닌 가능한 모델 중 하나라고 가정해 보자. 사람은 까마귀가 될 수 없고,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만일 이런 제약이 우리의 ‘내부모델’ 때문이라면? 다른 ‘내부모델’이나 혹은 ‘내부모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현실을 마주치면 이러한 제약이 없는 다른 ‘외부’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이 책은 이와 같은 ‘대체현실’을 묘사하고, 저자는 이를 ‘비일상적 현실 상태’라고 명명한다. 

  • -'우리는 다른 세계들을 경험함으로써 스스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그 결과 우리들 자신의 문화적 구조물과 다른 구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진정한 세계가 실제로는 어떤 것인지를 불완전하게나마 언뜻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돈후앙의 가르침

‘비일상적 현실 상태’는 흔히 말하는 ‘향정신성 약물’의 섭취를 통해 가능해진다. 그것은 메스칼리토, 악마초, 특정한 종류의 버섯 등이다. 저자는 멕시코 야키 인디언을 만나 샤면이 경험하는 ‘비일상적 현실 상태'에 대해서 정리한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식물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사람이 하늘을 날며, 악의를 품은 주술사가 내가 아는 사람으로 변신을 해서 해꼬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비일상적 현실 상태는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과는 다르지만, 내재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다. 이것을 미개한 인디언 주술사들이 만든 체계라고 해서 단순한 환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근본주의 유대교에는 에루브(Eruv) 라는 개념이 있다. 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율법이 있는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안식일엔도 집밖에 나가서 일을 봐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과 막대 등을 이용하여 가상의 벽과 문을 만들고 이를 실내로 간주하는 것이다. 에루브는 이를 위한 전반적인 체계를 의미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집들은 끊임없이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샤머니즘은 단순히 과학이 발전하기 전 미개한 단계의 문명에만 나타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현상일까? 주술사란 이상한 주문이나 외우고 춤을 추며 환각성 약초를 사용하는, 현실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과거의 약물 중독자 같은 존재였을까?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에루브와 과거 문명의 샤머니즘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비일상적 현실 상태’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돈후앙이 전하는 삶의 지혜는 충분히 귀기울일 가치가 있다.

  • - 두려움은 전혀 나쁜게 아니라네. 두려우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니까 말이야.
  • - 난 누구한테든 화를 내거나 하진 않나! 그 어떤 인간도 내 화를 돋울 만큼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없어. 누구한테 화를 낸다는 건 상대방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느낄 때나 가능한 일이지. 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아.
  • - 자, 그게 뭔지 얘기해주겠네. 그 길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가? 이거야. 모든 길은 똑같다네. 어디로도 통해 있지 않지.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는 길이든, 덤불로 들어가는 길이든 그게 그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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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8.9, 유발 하라리 / 전병근 옮김

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곳곳에서 처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지구적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지구적 규모의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들은 국가단위의 조직과 민족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적 국가모델이 삶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 올라섰지만, 이 주류 사상이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통찰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오늘날 IT와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으로 빠르게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던 과거의 도덕은 빠르게 폐기되어야 하지만, 아직 새로운 도덕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저자는 과거 대중에게 ‘착취’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부적절함irrelevant’이 문제라고 본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부를 일군것은 지금까지의 경제체제였다면, 앞으로는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이 왔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로서 겪게 되는 문제점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무직 일자리들도 이미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선의 경우 ‘보편소득’을 통해서 생존의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할일 없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실험이 일-이후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퍼센트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일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데 삶을 바친다. 
    • - 만약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알고리즘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일의 성격에 변화함에 따라서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정보를 주입하고, 정답에 맞춰서 선택하는 능력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모두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4C(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에 중점을 둔 교육이라는 개념은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변이 아닌가 싶다. 

    • -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 -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 어느 동네의 구식 학교에 묶여 있는 15세 소년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이것이다.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 대부분은 나름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허구를 만들어 낼 것인가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무척이나 신선하다. 대부분 진실의 추구를 위해 시작된 종교들이 조직화되고 교조화되면서 권력을 갖게되고, 이렇게 확보한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진실->(사람들을 조직하기 위한) 허구->권력->희생->믿음->무지의 강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 - 진실과 권력의 동반 여행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머지않아 각자의 길을 가게 돼 있다. 권력을 바란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허구를 퍼뜨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세상에 관한 모든 허구는 베재한 채 진실만을 알고 싶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권력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 - 희생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할 뿐 아니라 믿음에 요구되는 다른 모든 책무를 대체할 때가 많다. 
    • - 세상이 짜인 방식이라는 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 있다. 

불교와 명상에 대한 설명도 눈여겨 볼만 하다. 

    • -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 
    • -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모든 허구적 이야기를 포기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 -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이 문제들이 주요한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21세기가 20세기와는 다를 것이며 변화의 폭도 커질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경제활동, 삶의 의미, 일상의 소비활동, 인간관계 등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것. 

‘호모데우스’ 보다는 전작인 ‘사피엔스’에 가까운 책.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호모 데우스

2017. 10. 22. 20:03 from Lectura



- 2017.10.9, 유발 하라리/김명주 옮김


과학기술을 통해 힘을 가진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할 것이다. 먼저 죽음을 극복할 것이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뇌의 쾌락기제를 변경할 것이다. 그리고는 신과 같은 힘을 소유한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언이 아니다. 현재의 추세를 미래로 확장하면 얻을 수 있는 예상이다. 이런 예상을 하는 것 자체가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 아닌,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만일 예상되는 미래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고, 이 책은 하나의 그러한 시도이다. 


희생이라는 관념은 현재 이익을 포기함으로써 미래의 (확대된) 이익을 기대하는 전략적인 행동이다. 즉, 인간이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재의 편익을 포기한다는 ‘희생’이 따른다. 이것은 생산력이 제약된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하지만, 인류는 과학을 통해서 희생없는 생산력의 증대를 추구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희생없는 힘의 추구가 근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 되었다.

 

- 140page, 2. 인류세, 원시시대 사냥꾼은 사바나에 나가면 야생 황소의 도움을 구했고, 황소는 사냥꾼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고대의 농부는 자신이 키우는 젖소들이 젖을 많이 생산하기를 바라며 하늘에 계신 위대한 신에게 도움을 청했고, 신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네슬레 사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하는 흰 실험용 가운을 입은 직원들은 유제품 생산량을 늘리리 위해 유전학을 연구한다. 그리고 유전자들은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충격적인 주장은 ‘인본주의’가 유신론을 대체한 새로운 신앙이라는 주장이다. 인본주의는 가치의 중심이 인간이며, 가치의 근원을 개인의 내적 성찰에서 찾는다. 신 중심의 중세사회로부터 인간 중심의 근대사회로 변화한 세계의 중심에는 과학적 세계관이 있다. 과학적 세계관과 원대한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며, 세계의 의미를 제공해주던 신을 포기했기 때문에 인류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 306page, 근대 계약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계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묘한 면책조항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든 그 우주적 계획에 바탕을 두지 않고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계약위반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307page,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인본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경험에서 인생의 의미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해라. 이것이 인본주의가 우리에게 내린 제1계명이다. 


때문에 우리가 삶을 대하는 모든 태도의 바탕에는 ‘나’라는 자아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내면의 목소리이다. 너무나 성공한 인본주의는 세개의 분파로 나뉘게 되었다. 


 - 343page,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가 사회적 신망과 정치적 힘을 얻으면서 서로 매우 다른 두 분파가 생겨났다. 바로 수많은 사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와 나치를 가장 유명한 신봉자로 둔 진화론적 인본주의이다.  


이러한 인본주의 분파간의 갈등을 20세기 역사의 가장 큰 이야기로 간주할 수 있다. 인본주의를 하나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새롭지만, 읽다보면 무신론 전체를 인본주의로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인본주의가 종교라는 주장은 단지 무신론을 인본주의로 지칭하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한대로 인본주의는 우주적 계획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의미를 찾았는가? 이제는 아무도 우주적 계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하였는가? 오히려 21세기의 위기는 개인들이 긍정할 만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저자의 미래예측은 충분히 설득력있다. 어쩌면 내면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개인들은 약물이나 다른 과학적 수단에 의한 끝나지 않는 만족의 추구와 질병없는 영원한 삶을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또다른 바벨탑이 될 것인가?   


재미있고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사례들을 풍부하게 나열하고 있어서, 두껍지만 읽기가 어렵지 않다. 아울러,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상한다는 점에서 전작인 ‘사피엔스’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책 제목과는 달리 우리가 추구할 미래의 방향 보다는 여기까지 오게 된 역사적 사실들을 검토하는데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인류가 추구할 신과 같은 능력이 어떤 것일지, 지금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는지가 궁금하다면 관련 내용은 짧은 것이 아쉬울 수도 있다.  


전작인 ‘사피엔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다시 한번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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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2016. 6. 6. 03:07 from Lectura



- 2016.6, 유발 하라리 지음/조현욱 옮김


특이점에 대한 빅히스토리적인 각주, 혹은 최근 SF 트렌드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인류가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최근의 SF는 단순히 우주를 모험하는 활극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과학 기술을 통해 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물질과 마음의 문제를 극복한 이후를 다루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리처드 모건의 ‚다케시 코바치’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http://lectura.tistory.com/385) 항성간 통신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업로드/다운로드 해서 새로운 육체로 갈아입을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culture 시리즈에서는 기술발전을 통해 물질적인 한계를 극복한 불사에 가까운 인류가 주인공들이다(http://lectura.tistory.com/36).


이런 다양한 SF의 아이디어들은 결국 기술발전을 통해 인류가 손에 넣은 새로운 능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들의 답변 목록이라고 볼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사피엔스라는 종의 시초부터 미래까지를 개괄한다. 이를 위해 인류학, 생물학, 경제학, 고고학 등의 연구결과를 오가며 흥미로운 지적 여정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자칫하면 산만하기만 한 지식 나열에 가까울 수 있었을텐데,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적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해외로 혹은 멀리 휴가 혹은 여행 떠나는 것이 당연한 욕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과거 수천 수만년동안 인류는 휴가라는 개념이 없이 살아왔다고 이야기한다. 소유를 위한 소비는 대체적으로 피해야 할 것이지만, 경험을 위한 소비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신선한 생각이었다.


-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향상을 단순히 기술의 발달로 파악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조직화해내는 방법의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보고 있다. 생물학적인 협조의 한계인 수백명 단위를 넘어서는 규모의 협력은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상상에 의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즉 국가, 주식회사와 같은 가상의 혹은 상상의 실체를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 현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신뢰하는 덕분이며, 자본주의자들이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할 의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은행이 하나의 거대한 사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사기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또 무엇을 이루었는지 주목한다. 은행이 포함되는 사기, 즉 신용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보다 나은 미래’라는 상상이 공유되어야 가능하다는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즉, 은행 시스템이란 단지 정교한 기술일 뿐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라는 제도가 가능한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사람들이 모두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소유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전세라는 제도가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 부처의 가장 심원하고 중요한 통찰은 따로 있다.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이 역시 불교 교리에 나름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내게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결론부분에서 저자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인류의 다음 단계를 예상한다. 생명이 엄청나게 연장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극복하고, 인류를 포함한 다른 생물들에 대해 신과 같은 능력으로 진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종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그런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다. 혹은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의 정의조차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런 세상은 눈앞에 와있고, 이미 우리의 힘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부분에서 이 진지한 거시역사서는 SF의 영역을 침범한다.


엄밀한 과학적 사실들에 기초해서 특이점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제안하는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우 면서도 흔치 않은 독서경험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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