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5.19 Psychoanalysis and Zen Buddism
  2. 2019.03.04 The Hacking of the American Mind 1
  3. 2017.05.21 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

Psychoanalysis and Zen Buddism

2020. 5. 19. 09:55 from Lectura
 
  • 2020.5, Erich Fromm
 
기독교는 오랫동안 서구인들에게 삶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 주었다.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질문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동시에 제공했다. 근대 계몽주의의 성공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과학을 통해 제공되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도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프롬에 따르면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는 계몽주의의 지나친 성공에 따른 이성의 비대화에 있다. 이성이 중세의 무지를 물리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자본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폭발적인 생산성 증가를 이룩하자, 스스로 인간의 삶에서 최상위 가치 임을 선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는 모든 삶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기독교가 제공하는 환상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존재의 한계를 깨달은 인간은 탈출을 시도한다. 방향은 두 가지. 퇴행하거나, 실존을 극복하고 ‘개인화’를 이루는 것이다. 퇴행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략적인 형태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모성 고착: 필요를 모두 채워주던 어머니의 품으로 퇴행한다. 
  • 부성 고착: 아버지와의 동일화를 통해 분열을 극복한다. 
  • 죽음 지향: 주변의 모든 것을 소화하고 파괴하려는 충동.
  • 자아 강화: 끊임없이 자아를 확장하고 강화한다. 

 

이런 모든 형태의 퇴행이 현대의 소비주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라!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일 중독 수준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고 이렇게 획득한 화폐를 소비함으로써 퇴행적인 만족을 얻는 것이 전형적인 현대 소비자이다. 우리는 식탐을 통해 주변 모든 자원을 소비하고 명품과 같은 물건을 소비하면서 자아를 강화한다. 광고를 통해 전해지는 모든 메세지는 단 한가지 ‘소비하라’.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머니이다.
 
이렇게 해서 현대인은 일/소비/과식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대중 소비주의로 인해 진정한 ‘개인화’를 위한 성장이 지연된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사회가 일부분 조장하고 있는 면이기도 하다. 
 
  • Any society, in order to survive, must mold the character of its members in such a way that they want to do what they have to do; their social function must become internalized and transformed into something they feel driven to do, rather than something they are obliged to do.
 
즉, 사회는 개인에게 무엇이 합당한 행동/생각이고 무엇이 합당하지 않은 것인지를 내재적으로 강제한다. 끝없는 소비와 일의 일상에서 멤도는 현대인의 삶은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내재화 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의해 조건지어진 기계적인 반응을 벗어나야 한다. 실존을 극복하고 ‘개인화’를 통한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한다. 자아의 한계를 깨닫고 현실 안에서 자유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선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퇴행적인 형태의 종교를 극복한 인간에게 선은 강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가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 세계와의 합일/행복/well-being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주의와 탐욕을 극복해야 한다. 
 
  • Well - being means, finally, to drop one’s Ego, to give up greed, to cease chasing after the preservation and the aggrandizement of the Ego, to be and to experience one’s self in the act of being, not in having, preserving, coveting, using.
 
그리고 이와 같은 자아발전은 선이 추구하는 목표와도 일치한다. 
 
  • The achievement of the aim of Zen, as Suzuki has made very clear in his book, Studies in Zen, implies the overcoming of greed in all forms, whether it is the greed for possession, for fame, or for affection; it implies overcoming narcissistic self - glorification and the illusion of omnipotence. It implies, furthermore, the overcoming of the desire to submit to an authority who solves one’s own problem of existence. The person who only wants to use the discovery of the unconscious to be cured of sickness will, of course, not even attempt to achieve the radical aim which lies in the overcoming of repressedness.
 
정신분석학이나 선불교나 모두 자아의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자아의 성숙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결국 파랑새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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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The Hacking of the American Mind

2019. 3. 4. 17:18 from Lectura

  • 2019.3, Robert H. Lustig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현대인들은 행복과 즐거움(pleasure)을 착각하고 있다. 더 많은 즐거움을 가질 수록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설탕, 카페인, 알코올, 담배, SNS, 초코렛 등은 모두 찰나의 즐거움을 위한 다양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한 생각은 큰 착각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더 많이 더 자주 즐거울수록, 정작 행복을 느끼는 능력은 저하될 수 있다. 뇌과학을 차치하고라도 생활속에서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우리의 행동들은 장기적인 삶의 질 저하로 연결된다. 다양한 중독과 과도한 설탕 섭취로 인한 비만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장기적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체들이 소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유도(마케팅)하기 때문이다. 

위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즐거움을 일으키는 보상회로는 뇌에서 도파민에 의해 조절된다. 
  • 행복감(contentment, 만족감)을 만들어내는 뇌의 회로는 세로토닌에 의해 조절된다. 
  • 도파민에 의한 보상회로는 자극이 지속될 수록 중독성이 높아지며, 역치로 인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 도파민이 활성화될 수록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세로토닌의 생성은 어려워진다. 
  • "The more building blocks for dopamine ( i.e . , reward - seeking behavior ) in your blood, the fewer taxis that are available for tryptophan to head to party central in the brain and whip up some contentment for the evening. This competitive mechanism of tryptophan transport into the brain is but one way by which reward trumps contentment."
  • We spend money on hedonic pleasures, trying to make ourselves happy, and in the process we drive dopamine, reduce dopamine receptors, increase cortisol, and reduce serotonin, to ever further distance ourselves from our goal.
  • We stopped being individuals decades ago after the advent of GDP; we’re all consumers now. Technology, sleep deprivation, substance abuse, processed food—these are the killers of contentment and the drivers of desire, dependence, and depression.
  • The purveyors of hedonic behaviors, devices, and consumables are all looking for that winning formula to provide the public with some form of product(requiring continued purchase), along with an inherent hook that will maintain or even increase consumption and in which the market never reaches saturation to allow for continued expansion.

결론은 설탕과 가공음식을 줄이고, 커피,SNS와 같은 중독적인 행동을 멈추며, 트립토판과 오메가3가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종교나 봉사활동 같은 나를 넘어선 보다 큰 어떤 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것. 
  • In one study, a Mediterranean diet improved symptoms of depression. Was it the omega-3s? Or less processed sugar-laden food? One study showed that omega-3s were equivalent in effect to Prozac in treating depression, and the combination was more effective than either one alone.
  • When you are a part of something larger than yourself—whether united by religion, or tribal origin or heritage, or a worldview, or a hobby, or a common goal—you feel a greater sense of contentment.
  • In order to reclaim our contentment, we need to reclaim our capacity for solitude, which is undermined by our technology and our devices.
  • We have three simple methods to give our PFC the rest it needs—sleep, mindfulness, and exercise.

신경전달물질이 뇌에 어떻게 작용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예를 들면 도파민은 VTA(ventral tegmental area)에서 합성되어, NA(nucleus accumbens)로 전파된다. NA는 특정 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하며, 그 행동을 기억하는 기능을 한다. 특정 행동이 이루어지면, EOPs(endogenous opioid peptides)가 분비되면서, Prefrontal Cortex가 활성화된다. 이 물질은 헤로인이나 모르핀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를 통해 특정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도파민의 의해 촉발되는 보상물질은 천연의 마약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많은 류의 중독이 이와 같은 도파민 수용체(receptor)에 작용한다. 

세로토닌의 경우에는 도파민과 달리 훨씬 다양한 수용체에 작용한다. 대략 16가지의 수용체과 연구되었는데, 이 중 1a 수용체는 자아와 관련이 있고 2a 수용체는 신비체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즉 세로토닌의 작용에 의해 자아가 해체되는 신비체험을 촉발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LSD와 같은 환각약물은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 합성의 기본이 되는 물질이므로 이것이 많으면 세로토닌 합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책의 전반부는 뇌의 신경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코르티졸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는데,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재미있고 흥미롭다. 신경전달 물질은 우리의 기분과 행동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인자이다. 후반부로 가면 동일한 내용을 조금씩 다르게 말하면서 다소 지루해지지만, 그 또한 이론적인 주장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미니멀리즘이나 ‘종교가 없는 영성 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는 사실들을 과학자의 관점에서 설명해 준다. 이를 활용해서 생활을 바꾸는 것은 읽는 사람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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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 2016.5, 베리 슈워츠, 케니스 샤프 지음/김선영 옮김


일반적으로 관리자들이 직원을 관리하는 방법은 채찍과 당근이다. 혹은, 규율과 인센티브라고도 할 수 있다. 늦지 않게 출근할 것,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킬 것, 보고는 제 시간에 할 것, 언제까지 이러이러한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할 것 등…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한다면 규율을 느슨하게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일을 잘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규율만으로는 모든 사람을 최대치로 일하게 만들수 없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당근/인센티브이다.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면 승진을 시키거나, 일을 성사시키면 보너스를 지급해 주는 것과 같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자체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원들은 비록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이왕이면 일 자체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심지어는 삶의 의미까지지도 얻고자 한다. 규유을 지키는 것은, 월급을 받는 만큼은 일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게한다. 이게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센티브를 바라보며 일하게 된다. 일을 통해 관리자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채찍이거나 당근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은 채찍을 피하고 당근을 추구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승진을 하지 못했을때 절망하는 것이다. 어쩌면 승진을 하지 못해 우울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우울한 이유는, 승진을 통해 기대되는 금전적 보상만이 아니라, 승진을 통해 인정받는 자신의 일의 가치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승진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한 일을 회사는 가치있게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승진은 반드시 열심히 일한 순서대로, 회사를 위한 기여도 순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경쟁이 심한 모든 경우에 그렇듯이 일정부분 우연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고, 주변에서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는 핵심은, 일에서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규율을 따르거나, 인센티브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천적인 지혜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적인 지혜로움은 단지 많은 지식을 갖춘 것과는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본적인 사회적 실천에는 끊임없는 선택이 있고 올바른 선택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실천적 지혜로움이란 선택지를 숙고하는 능력이자, 특정상황에서 도덕성을 파악하는 능력이고, ‘상황에 맞게 자를 구부리는 것’이다. 오늘날의 언어로는 올바른 의사결정 능력이 아마도 같은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일듯 하다.   


오늘날 많은 회사들은 ‘실천적 지혜’를 갖추도록 돕기 보다는 오로지 단편적인 규율과 인센티브만을 사용해서 직원들을 관리하려고 한다. 때문에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관료제의 어리석음은 바로 이러한 관리 부재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실천적 지혜’를 인식하고 직원들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관리자는 자기 스스로 먼저 이것을 갖추어야 한다. 관리자가 ‘실천적 지혜’를 갖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가 관리하는 직원들이 그와 같은 것을 갖추기를 바라겠는가? 실천적 지혜를 갖추고 이를 알아보는 이가 조직을 이끄는 경우에만, 그가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유사한 미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상황이 그처럼 이상적이지 않다면, 모든 개인들은 스스로 이러한 미덕을 추구하기 위해, 규율과 인센티브로만 조직된 회사생활을 헤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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