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2019. 1. 30. 17:04 from Lectura


  • 2019.1, 조지 R. R. 마틴 / 이수현 옮김

이제는 SF 작가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진 조지 R. R. 마틴의 1982년도 작품. 리디북스로 구매해서 아이폰 리디북스 앱의 ‘듣기’ 기능을 이용해서 출퇴근 시간에 주로 들었는데, 2주간 출퇴근 시간의 지겨움을 없애주었다. Audio Book 시장이 거의 없다시피한 한국에서는 상당히 쓸만한 기능이다. 

소설은 뱀파이어와 미국 미시시피 강을 오가는 증기선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못생겼지만 강인한 증기선 선장인 ‘애브너 마쉬’와 아름답지만 강한 ‘조슈아 요크’, 그리고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데이먼 줄리안’과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추악한 ‘심술보 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살 수 있는 존재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늙는 다는 것은 단순하게 나이를 먹고 추해지거나 현명해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모험에 대한 갈망을 잃은 상태에서, 생을 계속해 나가는 존재는 무엇이 될까? 어쩌면 이 소설에서 묘사한 ‘데이먼 줄리안’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모든 관심을 잃고 오로지 생존본능만 남은 야수와 같은 존재. 

뱀파이어-백인-흑인-가축 관계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미있는 비교 요소들이 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가 된듯 하다. 예를 들면, 줄리안이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하고 학대하는 것을 들어, 뱀파이어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장면. 자연상태인 종간의 관계에서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지만, 종간의 우위를 논할때 힘이나 물리적인 능력을 생각한 줄리안을 틀렸다. 종간의 관계에서 진정한 힘은 ‘번식력’이다. 땅위에 번성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종간의 ‘우위’를 굳이 따지자면 논할 수 있는 요소이다. 그것은 지능도, 문화도, 예절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생존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다른 질문이다. 인간은 문화를 이루었고, 도덕을 만들어냈고, 종교를 만들어냈다. 개인은 인류 진화의 발자취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 2018.11, Seth Stephens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의 욕망과 궁금증이 사회적 압력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표현되는 시대이다. 인터넷과 구글은 거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역으로 사람들의 내밀한 마음에 대한 접근 역시 가능케 하였다. 이 책은 빅데이터와 데이터과학을 활용한 분석을 통해 사람들의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내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남자들이 자신의 성기 크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쉽게 관찰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 무엇을 걱정할까? 남자와 비슷하다고 한다면, 신체 사이즈에 관심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외의로 구글 검색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여자들은 그곳의 ‘냄새’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인구 증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게이일까? 학계에서는 보수적으로는 2% 많게는 10% 라는 가정이 있다. 저자는 SNS을 통해 게이로 판명된 사람들과 포르노 사이트의 키워드 분석을 통해 실질적인 게이는 약 5% 정도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탄탄한 논리와 실제 데이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론은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 Digital truth serum has revealed an abiding interest in judging people based on their looks; the continued existence of millions of closeted gay men; a meaningful percentage of women fantasizing about rape; widespread animus against African - Americans; a hidden child abuse and self - induced abortion crisis; and an outbreak of violent Islamophobic rage that only got worse when the president appealed for tolerance. Not exactly cheery stuff.

재미있는 사례 하나 더. 우리가 좋은 학교에 입학 했을 경우와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입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성공의 정도는 얼마나 될까? 즉,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보다 나은 학교 입학을 통해 성공의 확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유명한 Stuyvesant 학교의 사례를 통해 학교 입학을 통한 사회적 성공 확률의 증대는 거의 없다고 한다. 2점 차이라 합격한 사람들과 불합격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 The entire reason that Stuy students achieve more in life than non - Stuy students, the researchers concluded, is that better students attend Stuyvesant in the first place.

사회과학은 관념적인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고,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과학처럼 엄밀한 실험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학자마다 주장을 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아내는 형태로 이론화 하였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관련 분석방법의 발달은 사회과학에도 실험과학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빅데이터가 기존의 데이터 분석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 설문조사를 위해 필터링된 데이터가 아닌, 사람들이 찾는 행위에 바탕을 둔 ‘솔직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 거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 중에 일부분을 zoom-in해서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 사용자들의 실시간 반응에 기초한 실험(A/B 테스트)을 가능케 한다.  

빅데이터 관련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거대 기업들이 이러한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할 있을지 아직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해야 할 미래임에는 틀림 없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2018. 11. 18. 17:04 from Lectura


  - 2018.10, C.G. Jung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아주아주아주 단순하게 내가 기억하는 형태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꿈은 소망충족의 형태이다. 하지만 늘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암시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또한 꿈은 인과관계를 모두 나타내지 않는다, 축약하거나 압축해서 소망을 표현한다. 

이 책은 프로이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칼융의  책이지만, 프로이드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진다. 현대의 인간은 맹목적인 종교로 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그로인해 삶의 목적을 상실하기가 쉽고, 신경증이 발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각성을 통해 삶의 목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래와 같은 인디언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문제점과 일치한다. 

  - “We don’t understand the whites; they are always wanting something - always restless - always looking for something. What is it? We don’t know. We can’t understand them. They have such sharp noses, such thin, cruel lips, such lines in their faces. We think they are all crazy.”

인류는 근대 이후 물질적인 추구를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영적인 측면에서는 길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영적인 삶의 측면 없이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The modern man has lost all the metaphysical certainties of his medieval brother, and set up in their place the ideals of material security, general welfare and humaneness. But it takes more than an ordinary dose of optimism to make it appear that these ideals are still unshaken.

신경증이나 다양한 정신병의 원인 중 하나로, 목표를 잃은 현대인을 제시한다. 물질적인 만족 만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인간이기에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 실패하면 다양한 정신적 긴장이 나타나고, 때로는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다. 

  - What drives people to war with themselves is the intuition or the knowledge that they consist of two persons in opposition to one another. The conflict may be between the sensual and the spiritual man, or between the ego and the shadow. It is what Faust means when he says “Two souls, alas, dwell in my breast apart.” A neurosis is a dissociation of personality.

  - A psycho-neurosis must be understood as the suffering of a human being who has not discovered what life means for him.

  - When we speak of the spiritual problem of modern man we are dealing with things that are barely visible - with the most intimate and fragile things - with flowers that open only in the night.

짧은 논문을 엮은 것과 같은 구조의 책으로, 전체적으로 통일된 그림을 얻기는 어렵지만 영적인 문제점을 학문적인 방향에서 접근한 학자의 시도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새롭다. 융은 삶의 종교적인 측면이 삶 자체와는 분리된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찍부터 고민했고, 심리분석 상담가는 환자의 이런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중년의 위기를 맞는 전형적인 ‘소프라노스’ 와 같은 케이스의 근본원인을 삶의 영적인 부분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 셈. 

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구만을 가지고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 


Posted by 중년하플링 :



  • - 2018.9, 유발 하라리 / 전병근 옮김

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곳곳에서 처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지구적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지구적 규모의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들은 국가단위의 조직과 민족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적 국가모델이 삶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 올라섰지만, 이 주류 사상이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통찰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오늘날 IT와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으로 빠르게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던 과거의 도덕은 빠르게 폐기되어야 하지만, 아직 새로운 도덕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저자는 과거 대중에게 ‘착취’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부적절함irrelevant’이 문제라고 본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부를 일군것은 지금까지의 경제체제였다면, 앞으로는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이 왔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로서 겪게 되는 문제점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무직 일자리들도 이미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선의 경우 ‘보편소득’을 통해서 생존의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할일 없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실험이 일-이후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퍼센트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일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데 삶을 바친다. 
    • - 만약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알고리즘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일의 성격에 변화함에 따라서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정보를 주입하고, 정답에 맞춰서 선택하는 능력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모두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4C(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에 중점을 둔 교육이라는 개념은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변이 아닌가 싶다. 

    • -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 -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 어느 동네의 구식 학교에 묶여 있는 15세 소년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이것이다.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 대부분은 나름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허구를 만들어 낼 것인가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무척이나 신선하다. 대부분 진실의 추구를 위해 시작된 종교들이 조직화되고 교조화되면서 권력을 갖게되고, 이렇게 확보한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진실->(사람들을 조직하기 위한) 허구->권력->희생->믿음->무지의 강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 - 진실과 권력의 동반 여행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머지않아 각자의 길을 가게 돼 있다. 권력을 바란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허구를 퍼뜨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세상에 관한 모든 허구는 베재한 채 진실만을 알고 싶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권력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 - 희생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할 뿐 아니라 믿음에 요구되는 다른 모든 책무를 대체할 때가 많다. 
    • - 세상이 짜인 방식이라는 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 있다. 

불교와 명상에 대한 설명도 눈여겨 볼만 하다. 

    • -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 
    • -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모든 허구적 이야기를 포기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 -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이 문제들이 주요한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21세기가 20세기와는 다를 것이며 변화의 폭도 커질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경제활동, 삶의 의미, 일상의 소비활동, 인간관계 등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것. 

‘호모데우스’ 보다는 전작인 ‘사피엔스’에 가까운 책.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