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에 해당되는 글 80건

  1. 2019.05.12 Man for Himself: An Inquiry into the Psychology of Ethics 1
  2. 2019.03.04 The Hacking of the American Mind 1
  3. 2019.02.27 세븐킹덤의 기사
  4. 2019.02.20 느릅나무 아래 욕망 1

-2019.5, Erich Fromm

까뮈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철학적 질문을 하기 전에, 우선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나면 그 가치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진 삶의 지향은 물질적인 성취와 이를 통한 즐거움 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점에 가서 잘 팔리는 책들을 살펴보자. 한편으로는 좋은 학벌을 쌓아 안정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습법 및 자기 계발서들과, 돈을 저축하고 이를 재투자해서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재테크, 부동산, 증권 투자서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들게 쌓아 올린 부를 소비해서 즐거움을 얻도록 도와주는 여행지, 와인, 음식, 주택, 인테리어, 패션에 대한 책들이 있다. 오늘날 현대인이 만들어낸 사회는 거대한 생산과 소비의 순환 고리이다. 우리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 고리를 넘어선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이것은 무척이나 개인적인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도덕적 원칙에 의거해서 살아갈 것인가?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 ‘인간중심의 도덕 Humanistic Ethic'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외부의 권위에 의한 도덕과는 구별되는, 개인의 성장과 생산성의 발현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이다. 인간은 다른 것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도덕적 가치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복리가 되어야 한다. 

* Humanistic ethics, in contrast to authoritarian ethics, may likewise be distinguished by formal and material criteria. Formally, it is based on the principle that only man himself can determine the criterion for virtue and sin and not an authority transcending him. Materially, it is based on the principle that “good” is what is good for man and “evil” what is detrimental to man; the sole criterion of ethical value being man’s welfare.

인간의 복리라고해서 쾌락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다. 프롬이 생각한 삶의 목적은 각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넘어선 거대한 이상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눈앞의 쾌락만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의미한 삶도 아니다. 세계로부터 분리된 인간은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을 보존하면서, 고립을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생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계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을 갖추어야 한다. 

* Humanistic ethics takes the position that if man is alive he knows what is allowed; and to be alive means to be productive, to use one’s powers not for any purpose transcending man, but for oneself, to make sense of one’s existence, to be human.
* The mature and productive individual derives his feeling of identity from the experience of himself as the agent who is one with his powers; this feeling of self can be briefly expressed as meaning “I am what I do.”
* Man comprehends the world, mentally and emotionally, through love and through reason. His power of reason enables him to penetrate through the surface and to grasp the essence of his object by getting into active relation with it. His power of love enables him to break through the wall which separates him from another person and to comprehend him.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생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존재로 살게 놔두기보다는 ‘Marketing Personality’와 대량소비를 통해 생산체계의 부속품이자 소비하는 존재로 만든다.  광고와 마케팅의 기법,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며 개인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사회가 권유하는 소비활동과 (소외된) 생산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 Modern society, in spite of all the emphasis it puts upon happiness, individuality, and self-interest, has taught man to feel that not his happiness (or if we were to use a theological term , his salvation ) is the aim of life , but the fulfillment of his duty to work , or his success. Money , prestige , and power have become his incentives and ends.
* Our moral problem is man’s indifference to himself. It lies in the fact that we have lost the sense of the significance and uniqueness of the individual, that we have made ourselves into instruments for purposes outside ourselves, that we experience and treat ourselves as commodities, and that our own powers have become alienated from ourselves. We have become things and our neighbors have become things. The result is that we feel powerless and despise ourselves for our impotence.

이렇게 자신의 본성에서 소외된 삶을 살게된 현대인들은 상시적인 무력감과 우울증을 겪게 되고, 삶 자체에 대해서 공허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 There is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to whom everything they are doing seems futile. They are still under the spell of the slogans which preach faith in the secular paradise of success and glamour. But doubt, the fertile condition of all progress, has begun to beset them and has made them ready to ask what their real self-interest as human beings is.

실존적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의 도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행복한가?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프롬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그가 이 책을 썼을 때보다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고 있는 무력감은 더 커졌을 수도 있다. 

오늘날 화제가 되고 있는 Jordan B. Peterson의 주장과 거의 유사한 맥락의 주장을 80년 전에 씌워진 에리히 프롬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고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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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cking of the American Mind

2019. 3. 4. 17:18 from Lectura

  • 2019.3, Robert H. Lustig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현대인들은 행복과 즐거움(pleasure)을 착각하고 있다. 더 많은 즐거움을 가질 수록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설탕, 카페인, 알코올, 담배, SNS, 초코렛 등은 모두 찰나의 즐거움을 위한 다양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한 생각은 큰 착각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더 많이 더 자주 즐거울수록, 정작 행복을 느끼는 능력은 저하될 수 있다. 뇌과학을 차치하고라도 생활속에서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우리의 행동들은 장기적인 삶의 질 저하로 연결된다. 다양한 중독과 과도한 설탕 섭취로 인한 비만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장기적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정부와 기업체들이 소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유도(마케팅)하기 때문이다. 

위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즐거움을 일으키는 보상회로는 뇌에서 도파민에 의해 조절된다. 
  • 행복감(contentment, 만족감)을 만들어내는 뇌의 회로는 세로토닌에 의해 조절된다. 
  • 도파민에 의한 보상회로는 자극이 지속될 수록 중독성이 높아지며, 역치로 인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 도파민이 활성화될 수록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세로토닌의 생성은 어려워진다. 
  • "The more building blocks for dopamine ( i.e . , reward - seeking behavior ) in your blood, the fewer taxis that are available for tryptophan to head to party central in the brain and whip up some contentment for the evening. This competitive mechanism of tryptophan transport into the brain is but one way by which reward trumps contentment."
  • We spend money on hedonic pleasures, trying to make ourselves happy, and in the process we drive dopamine, reduce dopamine receptors, increase cortisol, and reduce serotonin, to ever further distance ourselves from our goal.
  • We stopped being individuals decades ago after the advent of GDP; we’re all consumers now. Technology, sleep deprivation, substance abuse, processed food—these are the killers of contentment and the drivers of desire, dependence, and depression.
  • The purveyors of hedonic behaviors, devices, and consumables are all looking for that winning formula to provide the public with some form of product(requiring continued purchase), along with an inherent hook that will maintain or even increase consumption and in which the market never reaches saturation to allow for continued expansion.

결론은 설탕과 가공음식을 줄이고, 커피,SNS와 같은 중독적인 행동을 멈추며, 트립토판과 오메가3가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종교나 봉사활동 같은 나를 넘어선 보다 큰 어떤 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것. 
  • In one study, a Mediterranean diet improved symptoms of depression. Was it the omega-3s? Or less processed sugar-laden food? One study showed that omega-3s were equivalent in effect to Prozac in treating depression, and the combination was more effective than either one alone.
  • When you are a part of something larger than yourself—whether united by religion, or tribal origin or heritage, or a worldview, or a hobby, or a common goal—you feel a greater sense of contentment.
  • In order to reclaim our contentment, we need to reclaim our capacity for solitude, which is undermined by our technology and our devices.
  • We have three simple methods to give our PFC the rest it needs—sleep, mindfulness, and exercise.

신경전달물질이 뇌에 어떻게 작용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예를 들면 도파민은 VTA(ventral tegmental area)에서 합성되어, NA(nucleus accumbens)로 전파된다. NA는 특정 행동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하며, 그 행동을 기억하는 기능을 한다. 특정 행동이 이루어지면, EOPs(endogenous opioid peptides)가 분비되면서, Prefrontal Cortex가 활성화된다. 이 물질은 헤로인이나 모르핀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를 통해 특정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도파민의 의해 촉발되는 보상물질은 천연의 마약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많은 류의 중독이 이와 같은 도파민 수용체(receptor)에 작용한다. 

세로토닌의 경우에는 도파민과 달리 훨씬 다양한 수용체에 작용한다. 대략 16가지의 수용체과 연구되었는데, 이 중 1a 수용체는 자아와 관련이 있고 2a 수용체는 신비체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즉 세로토닌의 작용에 의해 자아가 해체되는 신비체험을 촉발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LSD와 같은 환각약물은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 합성의 기본이 되는 물질이므로 이것이 많으면 세로토닌 합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책의 전반부는 뇌의 신경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코르티졸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는데,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재미있고 흥미롭다. 신경전달 물질은 우리의 기분과 행동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인자이다. 후반부로 가면 동일한 내용을 조금씩 다르게 말하면서 다소 지루해지지만, 그 또한 이론적인 주장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미니멀리즘이나 ‘종교가 없는 영성 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는 사실들을 과학자의 관점에서 설명해 준다. 이를 활용해서 생활을 바꾸는 것은 읽는 사람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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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킹덤의 기사

2019. 2. 27. 10:06 from Lectura



  • 2019.2, 조지 R. R. 마틴/김영하 옮김

떠돌이 기사, 맹약 기사, 신비 기사 등 세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몇 백년 전의 이야기이다. 조지RR마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잘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전개부터 독자의 예상을 넘어서는 결말들까지. 현대 장르소설로서 이룩할 수 있는 완성도의 상한선에 다가선 작품들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 아쉬움은 세 편의 중편은 너무 짧아서 금방 읽어버린다는 점. 

기사(Knight)라는 원형(Archetype)을 표현한 장르소설에서 신화를 읽어낼 수 있다. 특히나, 현대의 독자에게도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라면 그 주인공이 현대 원형 중 하나라고 해석 하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덩크의 매력을 분석해 보면 실마리가 나타날 것 같다. 
 
  • 물질적인 가치를 쫓거나, 실리를 따져 행동하지 않는다. 
  • 기사도라는 행동 지침에 일치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 옮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피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사도란 왕에서 봉신으로 이루어지는 중세의 위계질서를 따르면서도 약자에 무관심하지 않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행동지침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위계질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약자를 위함 삶을 살기 위해 위계질서를 부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들은 지배층의 일원이면서도 소외받는 자들을 위해 봉사한다. 기사도란 그 시초부터 상반된 원칙을 지향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는 지침인 것이다. 현실과 마주치면 기사도는 늘 틈을 드러내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도에 일치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완벽하게 조화시킬 수 없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며, 그렇게 사는 것만이 의미를 가진다. 

지나치게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은 기사도에 대응되는 ‘임원도(executive code)’를 만들었을법도 한데, 아직까지 들어본 바는 없다. 현대에서 생산하는 것은 기업이지만, 약자를 보살피는 업무는 정부가 되었다. 때문에 기업인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없이도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세금만 잘 낸다면. 하지만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생산적인 일을 전담하는 기업 내부에서 약자에 대한 고려는 아예 그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 것이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조직내부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는 근본원인이 아닐까?   

현실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약삭빠르지도 않고 순진한 사람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결론적으로는 대단한 모험들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의 모험을 따라간 나는 순수한 즐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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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욕망

2019. 2. 20. 17:17 from Lectura


-2019.2, 유진 오닐 / 손동호 옮김


리디북스의 ‘읽기’ 기능을 이용해서 출퇴근 시간 하루만에 ‘들은’ 책. 다음은 간단한 시놉시스.


배경은 서부가 아닌 시골 농가. 아버지 캐벗, 두 아들 시미언과 피터 그리고 이복 형제인 에벤이 살고 있다. 캐벗은 갑자기 집을 나가 세 번째 아내인 애비를 데리고 온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농장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던 시미언과 피터는 실망하여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애비는 캐벗과의 결혼은 통해 농장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캐벗은 애비를 통해 다른 아들을 낳아 농장을 상속시키려 한다. 에벤과 애비는 사랑에 빠지고 이를 통해 애비는 둘의 아들을 출산한다. 하지만 애비가 자신을 이용해 아이를 낳아  농장을 소유하려 했다고 의심한 에벤은 그녀를 떠나려 하고, 이를 막으려한 애비는 아이를 죽여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캐벗은 둘을 저주하며 보안관에게 넘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비와 애번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사랑을 재확인한다. 


시대적 차이 때문인지,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으로 읽힌다. 다양한 상징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작품이 씌여진 시기와 작품의 배경도 약 100년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것은 극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신화를 통해 삶에 대한 은유를 읽을 수 있다면, 한 편의 연극을 통해서는 어떤 은유를 읽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갈등 구조는 부성과 모성의 갈등이다. 신실하며 가부장적인 캐벗이 부성을 뜻한다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느릅나무와 두 어머니는 모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부성과 모성, 양과 음, 질서와 혼돈은 상반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짝이다. 문명은 이 둘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한다. 캐벗의 투박한 농장은 캐벗과 이미 죽은 두 아내가 피땀을 흘려 만들어놓은 세계이다.애비와 에벤은 다음 세대의 어머니, 아버지인 셈. 이 둘은 결국 고난을 함께 하고, 전 세대의 성취(농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나서야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비록 임시적일지라도 다시 한번 새롭게 부성과 모성이 화합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극의 제목에도 들어 있는 ‘욕망’이라는 단어이다. 에비와 에벤 사이의 애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농장을 탐한다. 시미언과 피터가 하루하루 노동의 단조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에벤이 아버지의 무시를 견디며 농장에 붙어있는 것도, 애비가 늙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모두 농장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다. 욕망이란 다르게 보면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지향이다. 농장이란 이미 만들어진 문명과 가치(부)를 상징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농장을 욕망하지만, 결국 어떤 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누구도 농장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심지어는 캐벗마저도 자신이 만든 농장을 파괴하려고 한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세계(가치)를 필요로 한다. 기존 세대가 이룩한 결과물을 상속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욕망이란 세대를 거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명의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사라지고 난 뒤 삶의 가치는 모두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지속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러한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가치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의 교리로 보면 이러한 욕망은 피해야 할 삼독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가치있는 것을 욕망하지만 사실은 이 욕망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 이 연극에서는 삶을 힘들게 만드는 탐애, 분노, 어리석음을 모두 찾을 수 있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대 위에서 너무나 하찮고 어리석게 그려지지만, 실은 우리 삶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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