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 기억 꿈 사상

2021. 6. 13. 16:19 from Lectura

  • 2021.5.29,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칼융 본격 읽기 두번째 책. 먼저 읽은 '융 심리학 입문'의 말미에서 추천하길래 선택하였다. 형식은 자서전에 가깝지만, 서문에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듯이 외부적인 사건이 아닌 내면적인 사건을 주로 이야기한다. 그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인간 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 

 

과거에 태어났으면 샤먼이나 무당이 되었을 수도 있을만큼, 융은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기 시작한 환상과 우연의 일치들을 보면, 그가 정립한 ‘무의식’이라는 개념과 그 하위 개념들은 그런 초자연적인 경향을 이론화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나는 '무의식' 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신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신'이니 '데몬'이니 하는 말을 똑같이 잘 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신화적으로 표현할 경우에도 '마나' '데몬' 그리고 '신'이 무의식이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서 무의식이란 인류가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접했던 '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이야기한 무의식은 단지 의식되지 않은 경험의 저수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동물이던 시절부터 축적한 거대한 정보의 보물창고에 가깝다. 사람은 무의식이라는 원천으로부터 현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건져올릴때 더욱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 

 

  •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이 같은 무의식과의 통합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의미를 던져준다. 

 

  •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달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하지만, 이성만을 중시하는 현대 문명은 사람들이 무의식과의 통합을 원활하게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방해물이 되고 있다. 

 

  •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떼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잇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이것 역시 조건부이긴 하지만)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제시한 문제점을 훨씬 먼저 깊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조던 피터슨 교수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융에게서 빌려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검증되지 않은 '비합리적'인 신이 사라진 이후, 인간은 어떻게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융의 답변은 과거에 우리가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식이고, 이 무의식 안에는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냈던 많은 유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를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서 통합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삶에서 마주치는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라는 주장이다. 

 

돈, 명예, 소유물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면 어디를 둘러보아야 하는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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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 입문

2021. 5. 14. 20:04 from Lectura

 

  • 2021.5, 캘빈 S. 홀 지음 / 김형섭 옮김

 

내가 찾은 융 심리학 입문서 중 가장 간결하게 융의 이론을 설명해준 책. 

 

  • 인간은 이미 하나의 전체로 태어난다. 일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은 이 전체성을 최고로 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학습과 교육의 기회가 필요하다. 
  • 인격 체계는 의식화되어야만 개성화 될 수 있다. 아마도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 데 있을 것이며, 또 교육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 정신은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 이라는 세 가지 수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 
  • 정신은 네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다. 
  • 자아는 인격의 동일성과 지속성을 규정하며, 유입된 경험을 의식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 자아와 그림자가 서로 사이 좋게 조화를 이루면 인간은 삶의 충만함과 활기를 느낀다. 자아는 본능에서 비롯되는 모든 힘을 방해하지 않고 통과시킨다. 의식은 확대되고 정신 활동이 생기발랄해진다.
  • 자기는 인격을 통일하고 거기에 '하나 됨'과 ' 불변성의 감각을 준다. 누군가가 자신 및 세계와 조화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원형들이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음식물이 신체에 의해 소비되어 생물학적 에너지 또는 생명 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경험은 정신에 의해 '소비되어' 정신 에너지로 바뀐다. 
  • 인생의 여러 단계

 

융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 추억, 꿈, 사상
  • 무의식에로의 접근(Approaching the Unconsc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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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는 법

2021. 4. 21. 20:05 from Lectura

  • 2021.4, 조던 엘렌버그 지음 / 김명남 옮김

 

빌 게이츠가 추천한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 그가 추천한 다른 책을 읽었다. 제목은 '틀리지 않는 법'.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수학의 유용성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나도 늘 궁금해하던 질문이라서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선형성'에 대한 이야기. 과거 추세가 선형적이라면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류를 이야기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추론과 기대이다. 수학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가장 수학적이지 않은 것 같은 분야를 설명하는게 약간 사기 같기도 하다. 확률과 추론은 각각 통계학과 인공지능에 더 가까운것 아닌가?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귀기울일 만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확실한 것을 찾는다. 그리고, 수학이야말로 그런 확실성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수학은 그렇게나 확실한 학문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는 것에서 언제든 모르는 것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하기 전, 그리스 수학자들은 모든 수는 유리수, 즉 비율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트의 발견을 통해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숫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들이 알던 과거의 지식은 틀린것이 되었다. 완전히 평면이 세상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제5공준인 평행성 공준은 반박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구와 같은 형태의 공간을 상상하면 제 5공준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힐베르트라는 유명한 수학자는 형식주의를 통해서 수학의 기초를 탄탄히 하고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완전하게 확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바로 유명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증명된 그것. 충분하게 복잡한 체계는 그 자체에 모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모순을 없앨 수 없다. 끊임없이 모순을 찾아내고 그것을 제거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갈 뿐이다. 그런 노력이 모순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역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어쩌면 수학은 모순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필요한 학문일지도 모르겠다. 

 

 "The function of the devil is to be always loosing the battle, but never finally lost. And the function of the good side is to be always winning the battle, but never to be the victor."       - Alan Wa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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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2021. 3. 14. 19:03 from Lectura

  • 2021.3,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이창신 역

 

스티븐 핑커의 ‘Enlightment Now’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합쳐 놓은 듯한 책.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과 이를 파악하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를 활용하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우리가 오류를 저지르는 10가지 본능은 다음과 같다.

 

  • 간극 본능: 극단적인 두 가지 분류만으로 파악하려는 경향.

  • 부정 본능: 부정적인 사실에 집중하는 경향

  • 직선 본능: 미래의 추세는 현재 추세의 연장일 것이라는 편견

  • 공포 본능: 공포에 휩쓸렸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

  • 크기 본능: 하나의 숫자만으로 판단하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

  • 일반화 본능: 지나친 범주화로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하려는 경향

  • 운명 본능: 현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오류

  • 단일 관점 본능: 하나의 설명으로 모든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려는 경향

  • 비난 본능: 일이 잘못될 경우 희생양을 찾아 잘못된 원인으로 지목하는 오류

  • 다급함 본능: 시간에 촉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경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경향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느리지만 세상이 착실하게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Dollar Street 프로젝트는 특히 인상깊다. 유용한 독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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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ning Silver

2021. 3. 8. 20:17 from Lectura

  • 2021.3, Naomi Novik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 Clarke

 

자신의 삶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하루의 삶에 고착되어, 그것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살아간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것은 마법과도 같은 경험이다. 전혀 알지 못했던 실체의 새로운 측면이 펼쳐지고, 세상은 다시 한번 놀라움과 경이가 가득한 장소로 바뀐다. 판타지의 미덕은 그런 경험을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의 입장에  보는 .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있도록 많은 환타지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화려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준다. 중세시대 귀족과 영웅의 이야기들, 가만히 앉아서 하인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하고, 파티에 가고, 화려한 옷을 걸치는  혹은 상상하기 힘든 괴물과 싸우고, 적을 물리치는 .

 

다른 한편  우리는 이미 마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뜨거운 물을 원할 때마다   있고, 요리를 위해서 연기를 마시며 불을 피울 필요가 없고,말이 없는 마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다니며,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작은 전자기기로 대화를 나눈다. 이런 모든 것들은 200 전의 사람에게 마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은 또한 적응의 동물이다.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고, 하려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익숙한 것들은 인식의 뒷편으로 물러서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우리가  배은망덕한 이기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위해 만들어진 진화의 결과물이다. 과학기술에 의해 뒷받침되는 우리의 삶을 환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이 본다면 마법처럼 느끼지 않을까? 중세 사회구조의 밑바닥에 있던 일반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자. 오늘날로 치면 하루 1$ 이하의 생활비 살아가는 세계인구 10% 정도의 절대빈곤층을 생각해 보자집은 좁은 흙바닥이고, 벽은 통나무로 만들어져있다.  사이의 빈틈을 통해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난방과 요리는 집안에 있는 하나뿐인 벽난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기는 탁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인해 호흡기 관련 질병을 앓는다. 침대는 없고, 짚을 엮어 만든 잠자리가 전부이다. 이런 삶을 살던 사람이 오늘날 일반적인 도시인의 삶을 경험한다면, /그녀에게는 분명 마술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의 주인공  한명인 Wanda에게는 심지어 글을 쓰는 것과 숫자를 기록하는 것도 마법과 같은 일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적합한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Miryem 그녀의 부모를 통해 일반적인 삶을 옅보게된다. 그녀와 동생들에게 일상적인 삶은 마법과도 같다. 자신들의 집보다도  방이 Miryem 외할아버지 집에서는 하인들이나 사용하는 방이라는 것을 알지만, 마술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환타지는 마법을 다루는 장르이지만,  책은 마법과 일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는 익숙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하루를 스쳐가는 많은 마법 같은 순간을 놓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한편 겨울 나라의 왕인 Staryk에게는 Miryem 은화를 금화로 바꾸는 재능이 마법이다. 그가 Miryem 재능을 마법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무척이나 과학적이다.

 

“A power claimed and challenged and thrice carried out is true; the proving makes it so.”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다른 축은 탐욕이라는 주제이다. 소설에서 가장  악은 내부의 뜨거운 욕망으로 끝없는 제물을 탐하는 악마인 Chernobog이다. 불의 화신인 그는 Lithvas 왕에게 달라붙어 그의 욕망을 자극하지만, 또한 스스로가 끝없는 욕망의 희생물이다. 지나친 성장에 의한 욕망으로 인해, 그는 결국 몰락한다. 소설에서 계속해서 욕망을 추구한 인물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맞게 된다. Chernobog, Wanda 아버지, 겨울의 왕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Staryk  Miryem 통해서 끝없는 겨울을 추구하지만, 결국 악마를 자신의 왕국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설을  읽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마법을 살고 있으면서,  마법에 대한 경탄을 잃고, 끝없는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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