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2022. 6. 2. 10:58 from Lectura

  • 2022.5 테가트 머피 지음 / 윤영수, 박경환 옮김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이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모델이 된 나라이다. 때문에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과거와 현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바탕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일본에 대한 책 중 가장 깊이를 갖춘 분석이다. 한두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 경제,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일본의 특이성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요약하기가 쉽지 않지만, 책을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의 정치체계는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 자민당은 수십년간 일당독재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지만 국가의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얻는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 
  • 오히려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진산하는 세력으로 국가적인 어젠다를 추진할 만한 역량 및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 그나마 전략적인 관점의 책임이 있는 관료는 재무성이지만 이들 조차 제한적이다. (재무성과 정치권이 영향을 주고 받는 메커니즘은,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검찰과 국민의 힘과 비슷한 듯 싶다)
  •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해서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리더쉽을 발휘 할 수 없다. 
  • 이 같이 기형적인 정치체계의 근원은 우선은 미군정 시대로 올라간다.
  • 미군정은 일본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를 원했고, 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었다.  
  • 당시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이 강요한 헌법을 받아들이면서도 과거에 이어오던 통치 방식을 완전히 민주적으로 바꿀 의지가 없었다. 
  • 때문에, 헌법상의 정치 체계와 현실의 정치 체계가 다르게 동작하는 모순이 발생하였다. 
  • 일반적인 국가라면 이렇게 원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할때 어떻게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 하지만, 일본의 특이성은 이 같은 현실과 당위의 차이를 당연한듯 수용하는 것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 이는 메이지 유신 시절에 막부가 천황을 상징적인 주권의 소유자로 만들어 놓고, 실제 권력을 휘두르면서 나타났던 역사에서 기인한다. 
 
일본 민주당 개혁 시도의 실패, 여성들의 자발적인 비혼으로 인한 출산율 급락 등 많은 이슈들이 현재의 우리나라와 너무나 유사한 점이 놀랍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역동성이 일본에 비해 높은 편이라서 일본과 정확히 같은 길을 가지는 않겠지만, 반면교사를 삼을 만한 내용이 차고 넘친다.  
과거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다시 한번 주도권을 쥔 한국은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걸을 것인가? 인구 구조상 2020년이 국력의 최고점이 될 확률은 높지만, 일본처럼 읽어버린 20~30년을 겪을 것인가?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이 가진 정치적인 역동성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근본적인 차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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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