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4.08.30 IV. 다가오는 세계 3-2
  2. 2004.08.26 IV. 다가오는 세계3
  3. 2004.08.24 IV. 다가오는 세계②
  4. 2004.08.24 IV. 다가오는 세계①
"군사-석유 자본 동맹의 '화려한' 부활"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7> '부활,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2004-08-27 오전 10:06:52
IV. 다가오는 세계: 군사화, 인플레이션, 불황

3. 1990년대: 군사-석유 자본 동맹과 기술-합병 자본 동맹

앞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깐 정리해본다. 1990년대에 지배적 자본 집단이 평균적 자본의 축적을 능가하는 차등화 축적의 방법으로 사용했던 것은 지구적 규모에서의 인수 합병이었다. 그런데 2000년 벽두로 들어오면서 그러한 인수 합병의 물결은 분명히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지배적 자본 집단이 평균을 능가하는 실적을 올릴 방법이 모호해지고 말았다. 만약 이렇게 되어 이들의 자산 증가율도 평균적 자본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면 이는 그 지배적 자본 집단의 입장에서는 참기 힘든 '차등화 축적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인수 합병 이외에 차등화 축적을 달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유력한 방법이 있다. 이는 자신들의 우월한 권력을 가격 결정력으로 전환시켜 가격 인상을 통하여 매출에서의 이윤율(마크업)을 증대시키는 '깊이 지향' 축적 양식이다.

인플레이션을 그리워하는 소리는 이들 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서도 나오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계속된 경제 성장과 과잉 설비 투자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격 수준은 안정된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세계 각국 경제의 부채 비율은 1930년대 대공황 직전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채 위기가 촉발될 경우 그 결과는 실로 걷잡을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고, 특히 2000년 기술주 폭락 이후로 이러한 우려는 주요한 경제 행위자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기조로 옮아가는 것이 지배적 자본 집단의 이익에서나 전체 경제의 관점에서나 강력하게 선호될 만한 조건이 창출되었다.

사실상 인플레이션은 최소한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의 경험을 볼 때에, (신)고전파 경제학의 주장과 달리 노동에서 자본으로 또 중소 자본에서 대규모 자본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강한 경향을 갖는다. 또 통념과 달리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이 아닌 전체 경제의 침체를 동반하는 경향을 띠며, 따라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오히려 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아야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은 몇몇 개별 행위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몇몇 개별 행위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의 행위 규범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전반적인 것이며, 또 이는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의 구조가 재구조화되는 근본적인 '사회적 위기'를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방향으로 세계 경제가 전환하기 위한 두 가지 정도의 조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전체 경제의 행위자들이 발맞추어 인플레이션으로 행위 규범의 전환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강력하고도 보편적인 신호가 있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전환에 필요한 전체 사회에 걸친 위기는 특히 전쟁과 같은 군사적 분쟁 갈등의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연재의 2부에서 보았던, 닛잔/비클러가 군사-석유 자본 동맹(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이라고 불렀던 집단의 동향에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인플레이션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이 두 개의 조건을 창출하는 데에 대단히 근접한 거리에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원유 가격 인상

현대의 세계 경제에서 원유는 분명히 가장 비중이 큰 기본 생산 요소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원유 가격 상승-원가 상승-국제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연결짓는 통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닛잔/비클러는 이러한 인과 관계 설정에 대해서 좀 더 조심스럽다. 분명 원유가 상승이 비용 상승에 끼치는 영향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각국의 기술 개발 등의 노력으로 에너지 효율성은 두 배로 늘어온 반면 원유의 '실질'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80년까지만 해도 원유 생산 총액은 세계 총 생산의 7.5%를 점유했으나 2001년이 되면 2.1%까지 하락했다는 것이다.
[그림 1] 미국 소비 물가 지수를 이용하여 불변 달러로 표현한 원유가. 출처: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through WEFA (series codes: L64@C110 for CPI in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L76AA&Z@C001 for the price of crude oil; L64@C111 for the U.S. CPI).

하지만 이 연재의 2장에서 보았듯이, 닛잔과 비클러는 원유가의 결정 요인이 실제의 공급량이나 비용보다는 '희소성에 대한 인지(perceived scarcity)'와 같은 심리적 요인임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 원유의 공급이 '물질적으로' 희소한가 아닌가보다 장래의 경향에 대한 불안 심리가 원유가를 좌우하는 더욱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원유 가격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 전체는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일종의 '파블로프의 개'에 필적하는 강한 심리적 외상을 입은 바 있다. 따라서 원유 가격이 세계 경제의 원가에 끼치는 영향이 실질적으로 어떠한가와 무관하게, 1970년대에 놀란 적이 있는 세계 경제에 있어서 원유 가격의 상승은 여전히 물가 전반의 동향을 결정짓는 대단히 강력한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원유 가격의 상승은 대단히 강한 예측력을 보여주는 인플레이션의 선행 지표가 될 것이다. 닛잔/비클러는 다음의 그림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1970년대 초까지의 소위 석유의 '자유 공급(free flow)'의 시대에는 원유 가격은 일정하게 유지되었기에 물가 수준과는 아무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970년대 초의 1차 오일 쇼크 이후 원유 가격의 등락과 선진국 물가 수준의 등락이 보여주는 상관관계는 대단히 밀접한 것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한 가지 더 주의할 것은 두 계열의 시간차이다. 두 계열의 등락의 시점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원유 가격의 등락이 물가 수준의 등락에 항상 몇 개월씩 먼저 벌어졌다는 시간적 선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원유가 등락, 인플레이션, 또 이윤율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 1]이나 또 이 전의 연재에서 나온 그림들은 모두 반세기 정도의 시간 지평에서의 추세를 보이는 것들이다. 세계 경제의 주된 행위자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안정되게 반복되는 추세와 패턴이라면 분명히 학습하고 인지하여 행동 결정의 길잡이로 삼을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따라서 닛잔/비클러는 원유 가격 상승이 지배적 자본 집단을 포함한 전체 경제의 행위자들에게 '인플레이션'으로 행위 규범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효시(嚆矢)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2장에서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OPEC 국가들과 주요 석유 메이저 기업들은 원유 가격의 인상을 놓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닛잔/비클러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인플레이션의 촉발에 있어서 석유 자본의 동향과 위치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볼만한 이유이다.

1990년대: '인동초'가 된 군사-석유 자본

군사 자본에게나 석유 자본에게나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지구화' 시대는 실로 고된 시절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 연재의 3장에서 보았듯이, 시장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발맞추어 벌어진 세계적 인수 합병의 축적 양식은 석유 자본 그리고 군사 자본의 이익과 정반대의 조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2] 출처: Nils Petter Gleditsch, The Peace Dividend (Amsterdam and New York: Elsevier, 1996); U.S. Department of Commerce through WEFA (series codes: GDP for GDP; GFML for military spending).

1990년대의 '어제의 세계'를 떠받치던 몇 가지 주요한 조건들이 있다. 세계 어디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구적 자본의 이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신흥 시장들(emerging markets)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높은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이를 엔진으로 삼아 세계 경제 전체도 성장한다. 또 이러한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을 매개하고 또 이용할 수 있도록 지구적인 금융 자본의 이동성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식 가격은 안정된 상승세를 보이고 긍정적인 사업 전망의 예측이 가능해진다. 이를 이용하여 대규모 기업들은 주가 상승의 과대 평가 효과(hyping)를 노리는 인수 합병에 착수한다. 이렇게 굴러가는 세계 경제에 '쥐약'처럼 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가 상승과 군사 분쟁일 것이다.

유가 상승은 신흥 산업국들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환율 변동 등의 불확실성으로 자본의 이동성을 저해하며, 전체적인 사업 전망의 예측을 비관적으로 하거나 불투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낙관적인 장기 전망을 전제로 한 인수 합병 등의 프로젝트에 큰 걸림돌이 된다. 군사 분쟁이나 지구적인 전쟁 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중심부 국가들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진 국지적인 몇 개의 분쟁이면 모를까, 강대국들의 이익이 전면적으로 얽힌 지정학적 요충지나 중근동 등에서의 군사 분쟁은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s)'과 '석유에 절은 세상(world awash with oil)'이 1990년대의 경향을 포착하는 두 개의 중요한 핵심어가 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한때 배럴 당 80$(2002년 불변 달러)에 달했던 원유 가격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락하여 1999년 급기야 10$까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식의 축적 양식이 절정을 달리던 당시 이러한 낮은 유가는 필연적인 것이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9년 3월 6일자 이코노미스트 지(The Economist)의 기사 "석유에 빠져 죽는다(Drowning in Oil)"는 '세계가 석유에 절어'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듯 하다'고 예측한다.

군수 자본 쪽의 상황도 좋을 리가 없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군사 지출 삭감을 막기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GDP 대비 군사 지출은 대폭 삭감되고, 2000년의 3.8%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 숫자로만 보면, 미국은 이제 2차 대전 이전의 '고립주의 미국'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만 셈이다.

결국 1990년대는 군사-석유 자본 동맹에게는 실로 어려운 시절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의 세계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들도 그 시절을 참고 버티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기술-합병 자본 동맹과 군수-석유 자본 동맹

이렇게 창졸간에 '인동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지배적 자본 집단 내에서 군수-석유 자본 동맹의 실적이 저조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실적의 추이를 차등화 축적의 관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고려하기 위해 생각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이는 닛잔과 비클러가 기술-합병 자본 동맹이라고 부른 집단이다. 이 집단은 1990년대 나스닥 등에서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또 거기에 근거하여 활발한 합병을 이루던 컴퓨터 서비스, 정보 기술, 이동 통신 등등의 관련 집단들을 일컫는다.

차등화 축적의 핵심은 여타 집단과의 비교 속에서 얼마나 그들을 능가하는 속도의 자산 증가를 이루었는가이다. 따라서 군수-석유 자본 동맹에게 닥친 차등화 축적의 위기의 절박함을 제대로 짚어보려면, 지배적 자본 집단 내의 경쟁 상대인 이 기술-합병 자본 동맹의 실적을 대상으로 비교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림 3] 주의: 순 이윤은 주식 시가를 주가-수익률(PER)로 나누어 계산하였다. 계열들은 월간 단위 자료를 나타내며 12개월 이동 평균으로 다듬어져 있다. 출처: Datastream (series codes TOTMKWD for world total; OILINWD for integrated oil; DEFENWD for defense; INFOHWD for information technology hardware; TELEQWD for telecom equipment; SFTCSWD for software and computer services).

[그림 3]은 지구적 순 법인 이윤(global net corporate profit)에서 각각의 집단이 차지하는 몫을 퍼센트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바의 1970년대와 1990년대의 기간을 비교해보면 그 두 기간은 특히 군수-석유 자본 동맹에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과 같은 시기였음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전 세계 이윤의 20%에 육박하던 군수-석유 자본 동맹의 이윤 몫은 90년대 들어와 3%까지 떨어지는 '모욕과 수모'를 당하게 된다. 한편, 1970년대에 군수-석유 자본 동맹에 적수가 되지 못하던 기술-합병 자본 동맹의 이윤 몫은 1980년대에 거의 엇비슷한 수준으로 경쟁을 하는 듯 싶다가 1990년대에 들어오면 후자를 멀찍이 제치고 그 절정기였던 2000년 초에는 전 지구 기업 이윤의 14% 몫의 파이를 잘라 가져간다.

1980년대 한국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하려 애쓰던 박노해 시인의 시 중에 "독이 있어야 비약이며, 바이트가 있어야 선반이며, 밸이 있어야 노동자다"라는 구절이 있다. 계급적 이익의 각성에 있어서 '독'이나 '밸'로 친다면 지배적 자본 집단이 노동자에게 뒤떨어질 리 없다. 개중에서도 실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군수-석유 자본 동맹이 과연 '독'없이 '밸'없이 이러한 수모를 당하고만 있었을까. [그림 3]에서 한 가지 더 흥미롭고도 극적인 반전이 보여진다. 2000년을 전후로 그렇게 '모욕적인' 군수-석유 자본의 수난은 드디어 바닥을 치고 그들의 이윤몫도 위로 솟아 오른다. 그리고 이와 궤를 같이하여 기술-합병 자본 동맹의 이윤 몫은 뚝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거울로 뒤집은 듯한 정확한 역상의 경향이 벌어진 것이 우연일까. 물론 아니다. 2000년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주요한 사건들-기술주 폭락, 9.11 테러,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 등-은 한쪽에는 재난이요 다른 쪽에는 호기일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림 3]에 나타난 2000년 이후 두 계열이 보여주고 있는 극적인 대조는 우연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의문은 쉽사리 가지지 않고, 모습을 바꾸어 계속된다.

그 '일련의 사건들'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었을까.

분명히 이런 질문은 '음모 이론'의 영역에 닿아 있다. 그것이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군수-석유 자본 동맹의 이익과 어떤 '인과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를 증명할 자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설령 있다 하더라도 쉽사리 얻어질 리가 없다. 따라서 이런 질문에 계속 집착하면서 근거없는 추측을 남발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차원에서는 아무 소득이 없는 일이다. 닛잔/비클러는 구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있었던 일 공표된 자료들을 꼼꼼히 모아 그럴 법한 설명틀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근거하여 미래의 향방에 대해 조심스런 진단을 할 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일련의 사건들'이 석유 가격의 인상 그리고 세계적인 군사 분쟁이라는 인플레이션 발생의 두 가지 조건과 긴밀한 사건이라는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의 판단과 추측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인플레이션,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일으키는가?"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6>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위기'
2004-08-25 오후 5:35:59
IV. 다가오는 세계: 군사화, 인플레이션, 불황

3.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위기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

인플레이션에 관하여 경제학 교과서까지 뒤질 것도 없이 아예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만유인력의 법칙 만큼이나 굳어져 있는 통념이 있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과 경기 과열과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며, 성장 부진과 경기 침체는 물가 하락과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도 실로 그 유래가 깊은 것이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논리는 20세기의 케인스 경제학에서 성립하였다. 소비, 투자, 재정 지출 등이 증가하여 '총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전체 경제의 고용 수준도 올라가고 총 산출도 늘어 성장이 이루어지지만 그 대신 가격 수준이 올라가게 된다. 그리하여 완전 고용 상태를 넘어설 만큼 총수요가 늘어날 경우엔 가격의 증가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케인스 경제학의 이론은 필립스 곡선(Philips’ Curve)이 발견되면서 경험적으로도 입증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리하여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라는 통념은 한 때 신앙과 같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케인스주의적 경제 정책의 지침이 나온다.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개의 바람직한 목표는 동시에 추구할 수가 없다. 하나를 추구하려면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 같은 것이다(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영어로, 'trade-off' 관계에 있다고들 한다). 따라서 정책 결정자는 상황에 따라 금리 인하나 재정 지출 확대 등의 '성장' 위주 정책을 할 것인지 금리 인상과 긴축 재정 등의 '안정' 위주 정책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엄숙한 결론을 도출한다.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비스켓을 먹고 또 가질 수는 없다"는 자연의 섭리가 다시 한번 장엄하게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이러한 비장미 넘치는 케인스주의자들의 의식(儀式)에 한바가지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물가는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건만 세계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로 처박히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최악의 조합이 나타난 것이다. 한때 케인스 경제학에 밀려나 있던 (신)고전파 전통은 밀턴 프리드먼 등의 통화주의(Monetarism)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맹공을 가한다. 앞에서도 나왔듯이, 이들은 원래 경제의 고용 수준은 '실물' 부문의 상황에 따라 고정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등의 '화폐' 부문에서의 정책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케인스주의자들이 이러한 진리를 무시하고 "완전 고용을 달성한다"는 미명 아래 방만한 통화 정책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듯 실제의 고용 수준은 그런 바람은 전혀 아랑곳 않고 떨어지고 있으며, 방만한 통화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만 잔뜩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고용 수준은 인간의 뜻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물' 시장의 법칙으로 나타나는 신의 뜻이다. 현실의 산출 수준과 고용 수준은 바로 그 신의 뜻에 의해 결정된 '자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책 결정자들은 이제부터라도 "통화 정책을 통한 완전 고용 달성과 경제 성장"이라는 헛된 꿈을 버리고 '자연적 실업률'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통화 가치 안정에나 주력하여라.

결국 전혀 반대되는 두 개의 주장이 각자 '신의 섭리'라는 거창한 차원의 옷을 입고 맞부딪히는 형국이다. 한쪽은 경제 성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인플레이션이 벌어지는 것이 섭리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은 경제 성장이란 '자연적' 실업률 수준에서 고정되는 것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느 쪽 신이 경제를 지배하는 분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실제의 경험을 보도록 하자.
[그림 1] 불변 가격 GDP에 대한 당시 가격 평가 GDP의 비율. 주의: 계열은 20년 이동 평균으로 그려져 있다. 관측치들 사이를 지나는 부드러운 곡선은 이해를 돕기 위해 손으로 그린 것이다. 출처: 1928년까지의 자료는 The Bank Credit Analyst Research Group. 1929년 이후는 U.S. Department of Commerce through WEFA (series codes: GDP for GDP; GDP96 for GDP in constant prices).

닛잔과 비클러가 작성한 [그림 1]은 지난 1890년에서 2002년까지의 1백12년간 미국 경제의 실질 GDP(가로축)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세로축)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케인스주의자들이 옳다면 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경제 성장률도 높아야 하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통화주의자들이 옳다면 경제 성장률은 인플레이션과 무관하게 '자연적인' 수준에서 결정되므로, 아래위로 곧바로 선 막대(혹은 막대들)의 모습을 띠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결과는 양쪽 다 빗나간 것 같다. 강한 상관관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림 1]은 그 둘의 관계가 분명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소하는 음(-)의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과 신의 싸움은 코미디로 끝난 느낌이다.

지난 1백년간의 미국 경제가 "예외적인" 경우일까? 닛잔/비클러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선진국, 개발도상국에 걸쳐 다양한 나라들의 경우를 조사해보지만, 위와 같은 패턴은 항상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①. 게다가 20세기 후반의 경제학은 거의 암묵적으로 미국 경제를 '표준'적인 모델로 삼아왔다는 점을 볼 때에 더 더욱 당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케인스주의자이건 통화주의자이건 이렇게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사실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 현대 경제학의 스캔들의 하나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림 1]이 보여주는 현실의 경험은 결국 통념과는 정반대로, "경제 성장은 물가 안정이나 하락을 수반하며, 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20세기 내내 미국 경제에 나타났던 일반적인 경향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는 케인스 이론이나 (신)고전파 이론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닛잔/비클러는 도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의 이론에 입각하여 보면 이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설명한다②. 이 연재의 앞에서 보았지만, 베블렌은 19세기 말 폭발적인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2차 산업 혁명 이래 현대 자본주의는 만성적인 '과잉 설비'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로 인한 '과잉 생산'으로 인해 가격 인하와 과당 경쟁이 벌어지게 되면 자본의 이윤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생산 설비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행사하여 증대되는 사회적 생산에 "깽판을 놓는(sabotage)" 것이야말로 영리활동(business)의 핵심이요 이윤의 원천이라는 것이 베블렌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생산이 마구 증대되고 생산 설비가 증대되는 경제 성장기에 가격 수준이 안정되거나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반면 사회적 생산의 핵심 주요 부분을 장악한 대자본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의 생산과 고용 증대를 억제하고 자신들 상품의 가격을 마구 인상하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도 또한 필연적이다. 요컨대, 베블렌의 관점에서 보면 스태그플레이션이야말로 대자본의 "깽판놓기"가 본격적으로 보여지는 '당연한' 현상인 셈이다.

하지만 베블렌이 옳다고 한다 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몇몇 대기업의 가격 인상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전 경제 때로는 전 세계 경제에 걸친 전반적인 가격 수준의 상승인 것이다. 그 대기업들이 제 아무리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또 그들의 생산물이 전 사회적 생산에 있어서 제 아무리 비중이 큰 것이라 해도 그들 몇몇의 경제적 영향력의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심지어 원유와 같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품조차도 그 하나의 가격 인상으로 곧바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 자본주의에서의 가격 결정은 시장이라고 하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몇몇 행위자들이 섣불리 가격을 인상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경쟁자들에 의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십상이다. 따라서 아무리 인플레이션이 지배적 자본 집단에게 매력적인 축적 방식이라고 해도,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전체 경제에 보편화된 정상적 행위(norm)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 그 조건은 무엇인가.

인플레이션과 정치 경제학: 누가 이익을 보며 누가 일으키는가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1970년대 케인스주의자와 통화주의자들의 논쟁은 단순한 경제 이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위기의 70년대'를 통과하던 서구 사회가 겪고 있던 정치, 외교, 사회 전반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진단할 것인가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다.

케인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사회의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것을 주요 모토로 삼는다. 이를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재량적인 통화 정책을 통하여 금융 자본의 횡포를 막고 실물 투자를 조성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또 재정 확대를 통해 사람들의 소득을 늘리는 길을 택한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전후 서구 국가에 보편화되었던 "조합주의적 복지 국가" 모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노동은 강력하게 조직되어 임금 인상 등의 경제적 사안은 물론 국가 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시장의 실패'로 인해 왜곡된 분배를 시정하기 위해 정치 사회적인 논리와 명분을 앞세워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된다.

그래서 케인스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통화주의자들의 공박은 이러한 '복지 국가' 정치 경제 모델 전체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경제는 '실물' 부문에서의 시장의 자연적 조화에 의해 지배되는 것인데 국가가 이리저리 개입한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앞에서 보았다. 이들은 그러한 국가 정책의 어리석음의 원인을 지나치게 강한 노동조합과 각종 '이익 집단'들이 국가 기구를 장악한 것에서 찾는다. 시장의 자연적인 균형과 규율에 따르기보다 정치적 논리를 앞세운 이들 다수가 숫자를 앞세워 정치와 사회 제도 곳곳을 장악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논리는 비슷한 시기에 사뮤엘 헌팅턴 등이 내걸었던 '민주주의의 과잉' 명제와 연결되어 정치적 이념으로 변모한다. 사회 전체의 기강이 무너지고 노동자 학생 빈민 할 것 없이 모두 지나친 요구를 서슴지 않아 시장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가 유린된 것이 경제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하나의 정치적 이념과 노선으로 갈무리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났던 모습은 1070년대 말 경찰과 법을 앞세워 노동조합을 분쇄하고 소위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 마가릿 대처 수상에게서 볼 수 있다. "오직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사회란 없다(there is no society)"라는 유명한 모토를 앞세워 시장과 사유화의 원리 이외의 복지 재정 상호 부조 등 모든 사회적 정치 경제 제도를 분쇄해버린 이 대처 정권이 바로 이후 전 세계를 휘감게 되는 신자유주의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이러한 논쟁은 시장 자본주의의 실패, '수정 자본주의'의 대두와 신자유주의로의 역전이라는 지극히 20세기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드러난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민주주의이다"라는 비판의 논점은 사실 대단히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서구 사상사에서 '민주주의'가 긍정적인 말로 변한 것은 극히 최근인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원래 민주주의란,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을 벗겨먹기 위해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정치 체제"라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정의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립된 민주주의 정부가 부자들을 벗겨먹는 방법이 바로 멋대로 싸구려 화폐를 남발하는 것 즉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시대 숱하게 남발되었던 악화(惡貨)의 가장 큰 원인은 황제들이 평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과다한 재정 지출에 있다는 비판이 옛날부터 있었다.

그래서 화폐 경제가 확립된 19세기 이래 유럽과 미국의 유산 계급은 항상 민주주의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의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신생 미국이 민중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경우 악화의 남발로 부르주아 질서가 위협 당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후 미국 역사에서 인민주의자들(populists)은 항상 '지폐 달러(greenback)'를 옹호하며 안정된 통화 가치를 요구하는 월 스트리트와 맞서는 이들이기도 하였다. 요컨대, 탐욕스런 빈민들의 염치없는 요구에 힘없이 끌려가는 민주정부야말로 화폐 가치 불안의 원인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일견 새로워 보이는 프리드먼 류의 주장은 사실 이 오래된 유럽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 조금 다른 논리적 구조를 갖추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래 물가 불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물가 인상의 주범은 노동자들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라는 논리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표출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 보자. 인플레이션의 와중에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서민들 노동자들인가?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기존의 경제의 분배 구조를 급격하게 재편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상 알고 있는 바는, 그러한 급격한 재편 뒤의 결과가 거의 예외 없이 '빈익빈 부익부', 즉 성경 말씀처럼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조차 뺏기는" 것이라는 점이다. 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험도 그러했지만, 닛잔/비클러가 작성한 위의 [그림 1, 2]는 미국의 경우에도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화폐 경제는 실로 복합적이고 복잡한 체제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그 복잡한 화폐 경제에서 시작하여 사회 구조 전체의 재편으로 이어지는 더더욱 복잡한 현상이다. 그런데 그러한 복잡한 사정을 일체 무시해버리고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화폐수량설이라는 단선적 논리 하나를 내세워 인플레이션은 모두 빈민들에게 장악된 민주주의 정권의 통화 증발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프리드먼 류의 주장은 사실상 20세기 초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집산주의자의 음모(Collectivists’s Conspiracy)"와 궤를 같이하는 '음모이론'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음모 이론'으로서도 어설픈 구성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음모 이론의 첫 번째 황금률은, "주모자는 항상 그 사건을 통해 최고의 이득을 보는 집단이다." 최소한 지난 50년간 미국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나 중소 자본이 아닌 지배적 자본 집단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는 재분배 효과를 낳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주도하는 추동력은 그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지배적 자본 집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은가?

인플레이션, 사회적 위기, 전쟁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몇몇 자본의 음모와 가격 담합 같은 것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의 행동 양식(regime) 차원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속어에 '개판'이라는 말이 있다. 그 정확한 어원은 알지 못하지만, 이 말이 뜻하는 상황은 정치ㆍ사회학적으로 음미해볼 만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경향을 제멋대로 풀어두게 되면 전체에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경향을 억제하는 것이 전체 집단 차원에서의 규범(norm)이 되고, 이를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일정한 처벌이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촉발의 계기가 주어지고 그러한 규범이 흔들리게 되면 한 명 두 명 그 경향을 막 드러내게 되고, 이에 따라 모두 일제히 그 혼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여 전체의 규범 자체가 아예 그러한 혼란스러운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바뀌고 만다.

노천극장 같은 곳에서는 모두 다 앉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다 알기에 보통 평화롭게 앉아서 보는 행위 규범이 지켜진다. 그렇지만 꼭 중요한 장면만 되면 저 혼자 더 잘 보겠다고 일어서는 미운 자들이 있다. 그러면 그 뒤에도 일어서고 순식간에 모두 일어서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그 때는 키 큰 사람이 '장땡'이며, 올라탈 수 있는 아빠의 어깨를 가진 꼬마가 '장땡'이다. 그리고 막 이렇게 혼란이 벌어지려는 찰나의 상황을 지칭하는 '개판 5분전'이라는 말도 있다. 즉 자신이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전체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 일종의 행위 규범이 되어버리는 상황 그래서 모두 사람이 아닌 개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바로 이 ‘개판’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바일 것이다.
[그림 2]

닛잔/비클러가 이해하는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메커니즘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개판'과 대단히 가깝다. 시장의 구조는 보통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권력 배치 상태에 따라 일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구조의 균형 상태를 함부로 교란할 수는 없으며, 자칫하면 구조 전체에 의해 철퇴를 맞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지배적 자본 집단이 이러한 기존 상태의 족쇄를 벗어나 마음껏 가격을 올리는 축적 양식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재구조화되면서 사회 전체가 일종의 '개판'과 같은 상황으로 들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점잖은 사회 과학적 표현으로 쓰자면, 총체적인 '사회적 위기(social crisis)'가 필요하다. 이것이 닛잔/비클러의 시각이다.

20세기에 걸쳐 나타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개판'에 맞먹는 사회적 위기를 수반했던 경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차 대전 후 완전히 붕괴된 가운데 초유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1920년대 독일 사회가 그러했고, 1970년대 중동 전쟁 및 석유 위기가 그러했고, 1990년대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 2001년 아르헨티나의 부채 지불 정지 등의 상황이 모두 그러했다. 그런데 사회 전체를 그러한 '개판'과 같은 총체적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최적의 계기는 무엇일까. 닛잔/비클러는 전쟁이나 군사적 분쟁이야말로 그 대답이라고 본다. 그들은 [그림 2]를 통하여 20세기 후반 선진국가들에서의 인플레이션과 무기 수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이 창궐했던 70년대가 세계적인 군사 분쟁과 갈등의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위의 두 계열이 보여주고 있는 긴밀한 상관관계는 그러한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림의 세계 무기 수출량의 계열은 물품이 교부된 시점을 기준으로 측정된 것인데, 무기 시장에서 계약 성사에서 실제 교부 까지는 보통 3년 정도 걸리는 것이 통례이다. 그것을 감안하여 무기 수출량의 계열을 3년 정도 왼쪽으로 당겨서 겹쳐본다면, 두 계열은 거의 한 쌍의 신크로 수영 선수들의 다리만큼 절묘한 일치를 선사하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일치는 과연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세계적인 군사적 위기의 증대는 '사회적 위기'를 통하여 가격 결정력을 십분 이용하려는 지배적 자본 집단의 축적 전략이라는 동전의 두 측면인 것일까. 후자의 가능성이 함축하는 바는 실로 혐오스런 그림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논리로 그것을 믿도록 설득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이 분명하다. 정말 닛잔/비클러가 주장하듯이 인플레이션과 거기에 수반되는 군사 분쟁과 사회적 위기가 새로운 축적 전략을 노린 지배적 자본 집단의 주도하에 벌어지는 것이라면, 최소한 그런 일을 주도하는 '지배적 자본 집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의 집단이며 어떤 동기와 행동 패턴을 갖고 있는지는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음 회에 살펴볼 내용이다.

<주(註)>

① 선진국가들의 1968년 이후를 놓고 작성한 그림은 심숀 비클러, 조나단 닛잔 저, 홍기빈 옮김, <권력자본론 :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삼인, 2004), 251쪽 참조. 필자는 어떤 세미나에서 닛잔 교수가 학생들에게 어느 나라이든 경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이 양(+)의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를 보면 현상금을 주겠다고 하는 것을 기억한다.

② 닛잔/비클러가 이해하는 바의 베블렌의 경제이론의 골자는 <권력자본론> 5장 참조. 또 베블렌의 자본 이론에 대해서는 홍기빈 편역, <자본의 본성과 축적에 관하여>(책세상, 근간) 참조.

이 연재는 Jonathan Nitzan과 Shimshon Bichler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료는 www.bnarchives.net에서 구해볼 수 있다. 특히 4부의 내용은 그들의 최근 논문 "Dominant Capital and the New Wars." Journal of World-Systems Research 10 (2, August): 255-327.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논문은 http://jwsr.ucr.edu/archive/vol10/number2/ 에서 볼 수 있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인플레이션을 통한 자본 축적의 비밀"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5> '인플레이션'이라는 마술
2004-08-23 오전 11:21:25
IV. 다가오는 세계: 군사화, 인플레이션, 불황

② 인플레이션이라는 마술

앞 장에서 우리는 "인수 합병을 통한 차등적 축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지배적 자본 집단은 인플레이션을 통한 차등적 축적을 꾀한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인플레이션이 지배적 자본 집단과 일반 자본, 그리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 커다란 재분배 효과를 가진다는 주장이 되므로, 인플레이션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중립적' 현상이라는 위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대립된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양쪽의 주장과 논리를 들어보면 다 그럴듯하다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닛잔/비클러는 그러한 경험적인 조사를 통하여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존 경제학의 두 가지 핵심 주장을 정면에서 논박한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화폐적 중립적" 현상이 아니라 대단히 강력한 소득 재분배 장치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경제 현상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경제 성장이 아닌 경제 침체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70년대 주류 경제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었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벌어지는 현상)'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

"인플레이션은 중립적 현상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답은 아주 분명하다. "인플레이션은 소득 (재)분배와는 관련이 없다". 경제가 '실물' 부문과 '화폐'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자는 그저 전자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화폐 상품(numeraire)과의 교환 비율을 통하여 숫자를 매겨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즉 실물 교환 과정에 가격이라는 이름을 덮어주는 얇은 베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고전파의 이분법(classical dichotomy)'라고 한다.

따라서 가격의 전반적 상승을 일컫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은 실물 부문에서 기인하는 현상일 수가 없다. 단지 화폐가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리는 바람에 화폐의 상대적 가치가 저하하여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MV = PQ(M은 통화량, V는 화폐 유통 속도, P는 가격 총액, Q는 총 거래 수량)라고 하는 화폐 수량 방정식이다. 거래량과 유통 속도는 각각 (완전)고용 수준과 제도 및 관습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 수준 P는 결국 통화량 M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상품의 명목치만 바꿀 뿐, 현실의 '실물' 경제나 실질 소득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은 이러한 관점을 간단히 요약한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며 중립적 현상이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본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모든 물건이 10배로 커졌다고 하자. 우리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모든 물건"이 10배로 커졌으므로 그들 간의 크기의 비율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룻밤 자고 났더니 모든 물건의 가격이 10배로 커졌다고 하자. 우리 경제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모든 물건"이 10배로 비싸졌으므로 그들 간의 상대 가격?즉 교환 비율?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단순명료한 논리적 힘 때문에 이 화폐 수량설에 입각한 (신)고전파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16세기의 쟝 보댕, 18세기의 데이비드 흄, 20세기의 피셔와 프리드먼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문제는 그 "하룻밤 사이"라는 가정의 비현실성이다. 현실 세계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모든 물건이 일제히 같은 비율로" 뛰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분명히 각각의 상품에 따라 산업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진행 속도와 정도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에 각 산업 부문별로 또 계급 계층 별로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가 분명히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에서 본 (신)고전파 이론은 이러한 현실적 과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밀튼 프리드먼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현실적 과정을 무시하기 위한 장치로 하늘에서 돈이 쏟아지는 "돈 벼락(money rain)"의 예를 즐겨 쓰고 있다. (신)고전파의 이 비현실적 가정의 고질적 버릇은 수 백 년전 데이비드 흄의 저작에도 나타난다. "영국 전 화폐의 5분의 4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다고 해보자…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모든 노동과 상품들의 가격이 비례적으로 하락하지 않겠는가?"① 아무리 '이론 경제학'이라지만 어떻게 이토록 비현실적인 가정 위에서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불균등하게 진행되는 것이 현실의 인플레이션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면, 시장에서의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이 더 큰 집단은 더 먼저 더 빨리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르는 이득?완전히 불로소득이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은 더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를 가져오는 대단히 효과적인 축적 양식이라는 닛잔/비클러의 주장이 타당성을 얻게 될 것이다.

더 이상의 이론적 사변은 별 소득이 없다. 어느 쪽이 옳은 지를 판단하려면 실제로 벌어진 바가 어떠했는지를 경험적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닛잔/비클러는 20세기 후반의 미국 경제를 대상으로 실제 경험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자본 및 노동의 소득 재분배
[그림 1] 기업 주당 수익은 S&P 500 지수에서 취하였다(주식 가격 대 PER). 임금률은 민간 부문에서의 평균 시간당 수익이다. 계열은 3년 이동 평균으로 그려졌다. 출처: Global Financial Data (series codes: _SPXD for price; SPPECOMW for price/earnings); U.S. Department of Commerce and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through WEFA (series codes: AHEEAP for the wage rate; WPINS for the wholesale price index)

[그림 1]은 1950년대 이래 미국 경제에서 자본과 노동의 소득 분배의 추이와 물가 지수의 추이를 비교해 보이고 있다. 가느다란 선으로 나타난 계열은 주당 수익(EPS: earnings per share)을 임금률로 나눈 것으로서 이것이 클수록 노동에서 자본 쪽으로 소득 분배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임금률은 민간 부문에서의 시간당 평균 임금으로 구하였다. 닛잔/비클러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소득을 개인 차원에서 포착하고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지표를 선택하였다고 말한다. 굵은 선은 도매 물가 지수의 연간 변동률을 백분률로 표시한 것이다.

장 보댕에서 밀튼 프리드먼까지 5백년의 전통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림에 나타난 바 물가 상승률과 자본-노동의 소득 (재)분배의 변동은 대단히 긴밀한 연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50년이라는 이 계열의 시간 지평을 볼 때 그리고 미국 경제가 현대 경제학 논의의 거의 표준적인 모델인양 다루어져 왔다는 점을 볼 때에 이러한 관측 결과는 결코 우연적인 것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최소한 지난 50년간 미국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항상 노동에 대한 자본 측의 소득 확대를 수반하였다. 더욱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 쪽이 인플레이션의 와중에서 얻는 소득의 재분배의 폭은 점점 커져 20세기 말엽이 되면 대단히 극적인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축적 양식으로 활용하는 자본의 권력이 미국 자본주의에 제도적으로 안착되어 왔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지배적 자본 집단 및 중소 자본의 소득 재분배

닛잔/비클러는 이번에는 지배적 자본 집단과 여타의 일반적 자본 사이의 소득 재분배에 인플레이션이 과연 “중립적”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그래프를 제시한다.
[그림 2] 마크업(markup)은 매출에 대한 순 이윤의 비율이다. 포춘 500 마크업은 매출 수입에서 세금 후 이윤의 비율로 계산한다. 영업 부문 마크업은 전체 세금 후 법인 이윤 및 IVA와 CCA(국민 소득 계정에서 취하였다)를 전체 영업 영수증(business receipts)(IRS에서 취하였다)로 나눈 것이다. '마크업 비율'은 그 포춘 500 마크업을 영업 부문 마크업으로 나눈 것이다. 주의: 1993년까지는 포춘 500에는 산업 기업(매출 수입의 절반 이상이 제조업 및 광업에서 나오는 기업)만 포함되었다. 1994년 이후로 모든 기업이 포함되게 되었다. 1992-3의 기간 동안 포춘 5백대 회사의 자료는 SFAS 106 특별 부과가 빠진 채로 보고 되었다. 모든 계열은 3년 이동 평균으로 다듬어졌다. 출처: U.S. Department of Commerce through WEFA (series codes: ZAADJ for total corporate profit after tax with IVA and CCA; WPINS for the wholesale price index); U.S. Internal Revenue Service; Fortune.

[그림 2]에는 두 개의 계열이 그려져 있다. 첫째, 굵은 선으로 그려진 것은 도매 물가 지수 연간 변동률이며,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것은 포춘 5백대 기업을 지배적 자본 집단의 대표로 삼아 그 마크업을 전체 자본의 마크업으로 나눈 것이다. 마크업(mark-up)이란 보통 매출에서 순 이윤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며 해당 기업이 시장에서 어느 만큼의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을 갖는가를 평가하는 지표로 쓰인다. 따라서 가느다란 선은 전체 자본에 대해 지배적 자본 집단이 보유하는 독점적 권력과 차등적 이윤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닛잔/비클러는 이를 칼레츠키(Michal Kalecki)가 독점 자본의 시장 권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독점도(degree of monopoly)'의 개념과 비교한다②. 즉, 이 두 계열을 비교해보면 과연 지배적 자본 집단이 자신들의 우월한 가격 결정력 등을 이용하여 인플레이션을 틈타 전체 자본에 대한 이윤폭을 늘리는 '깊이 지향'의 차등화 축적이 벌어졌는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도 다시 한번 결과는 5백년 전통의 (신)고전파 이론의 참담한 패배이다. 인플레이션이 "중립적"인 현상이기는커녕 지난 50년간 미국 경제에서 두 계열의 상관관계는 너무나 긴밀하여 거의 체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항상 대기업이 자신들의 가격 결정력을 이용하여 평균적인 기업들에 대해 차등적인 이윤을 얻는 기회로 사용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에서 보이는 바, 인플레이션은 결코 "중립적" 현상이 아니다. 노동에서 자본으로, 또 중소 규모 자본에서 지배적 자본 집단으로 소득이 재분배되는 것과 대단히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갖는 조직적 체계적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그래서 닛잔/비클러가 주장하듯, 인플레이션은 자본이 노동을, 또 지배적 자본 집단이 평균적 자본을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축적을 가속화시키는 '축적 양식'이라는 가능성이 점점 짙어진다.

<주(註)>

① David Hume, "Of the Balance of Trade"in E. Rotwein ed. Writings in Economics(Madison: Wisconsin Univ. Press, 1955). pp. 62~3.

② Michal Kalecki, "Costs and Prices", in Selected Essays on the Dynamics of the Capitalist Economy, 1933-197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1) pp.
43~61.

이 연재는 Jonathan Nitzan과 Shimshon Bichler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료는 www.bnarchives.net에서 구해볼 수 있다. 특히 4부의 내용은 그들의 최근 논문 "Dominant Capital and the New Wars." Journal of World-Systems Research 10 (2, August): 255-327.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논문은 http://jwsr.ucr.edu/archive/vol10/number2/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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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벽두, 도래한 디플레이션 위기"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24> 파국의 조짐과 '인플레이션 동맹'
2004-08-11 오후 4:32:50
IV. 다가오는 세계: 군사화, 인플레이션, 불황

① 지배적 자본 집단과 세계 경제의 위기

앞에서 보았듯이, 21세기의 벽두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역사의 완성'과 지구화라는 낙관주의의 거품 너머 뒤숭숭하고 불길한 조짐들로 시작되었다. 그 불길한 조짐은 지배적 자본 집단의 차등화 축적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전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차등화 축적 차원의 위기: 인수 합병 붐의 종언

앞에서 보았듯이, 닛잔/비클러 이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주된 추동력은 지배적 자본 집단(dominant capital)의 차등화 축적(differential accumulation)에 있다는 것이다①. 그리고 90년대에는 나스닥에서의 기술주와 금융 지구화, 신흥 시장(emerging market) 등장 등을 배경으로 지배적 자본 집단 간의 대규모 인수 합병이 차등화 축적의 주된 방식이 되는 '넓이 지향(breadth)' 축적 양식이 지배했다는 것이 닛잔/비클러의 주장이다. 그런데 1998년의 신흥 시장에서의 연쇄적인 금융 위기 그리고 2000년의 나스닥 기술주 폭락을 거치면서 인수 합병의 붐도 함께 수그러들게 되고, 이에 넓이 지향 축적 양식은 더 이상의 차등화 축적의 주된 방법으로서의 위치를 잃게 되었다.

다음의 그림은 닛잔/비클러가 인수 합병의 추세를 살피기 위해 지표로 사용하는, '매입-건설 비율(buy-to-build ratio)'이다. 즉, 해당 기간의 인수 합병 거래액을 전체 고정 자본 형성으로 나눈 것이다.
[그림 1]
인수 합병의 최절정이었던 1999년 214%에 달하던 그 비율은 2001년에 74%로 급격하게 줄어 들었다.

여기서 닛잔/비클러가 차등화 축적 과정에 대해 힘주어 강조하는 논점을 기억해야 한다. 리카도 맬서스 등의 고전파 경제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의 '이윤율 저하의 경향'같은 것은 경제 행위 주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운동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차등화 축적이란 그러한 논리적인 '운동 법칙'이 전혀 아니다. 다른 사업체들보다 더 높은 이윤율을 확보하려는 구체적인 '지배적 자본 집단'―따라서 다분히 논리적 추상체인 고전파 및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총자본(capital in general)' 개념과도 크게 다르다―의 갖가지 실천 전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 상태(stationary state)'나 공산주의 혁명이 도래할 그날까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리카도나 마르크스의 자본 '축적' 개념과 달리, 이 차등화 축적은 벌어질 수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배적 자본 집단이 자신들의 차등적 이윤율을 유지할 만한 책략이나 혁신 등에 실패하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이윤율이 평균보다 뒤쳐지게 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 경우 차등화 축적(accumulation)이 아닌 차등적인 축적 감소(differential de-cumulation)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압도적인 힘과 크기를 가진 지배적 자본 집단이라고 해서 그들이 항상 차등화 축적을 이루게 해주는 보장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21세기 벽두에서 인수 합병이라는 방식이 벽에 부딪혔다는 것은 곧 지배적 자본 집단의 차등화 축적 자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큰 덩치의 인수 합병을 통해 눈부신 속도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주가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었던 대기업들이 이제는 꼼짝없이 '땀 흘려 생산해 정직하고 값싸게 내다파는', 미시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맥 빠진 기업 활동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활동으로 챙길 수 있는 이윤이라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 '땀 흘리는 개미'들인 약방 주인 아저씨나 중소 생산업체하고 똑같은 이윤율로 만족하란 말인가?

지배적 자본 집단에게는 이는 결코 참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크기와 권력을 십분 이용하여 특권적인 이윤율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위기: 디플레이션의 위협

1990년대 지구화의 또 하나의 귀결은 디플레이션의 위협이었다. 신흥 시장 그 중에서도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산업화와 엄청난 생산 수출 물량은 세계 시장 가격 하락의 주요한 압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전 세계를 지배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보수적 금융 운영(financial orthodoxy)도 물가와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리하여 '주가는 오르고 고용은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물가는 오르지 않는' 소위 '신경제(New Economy)'라는 관념이 유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②.

그런데 경제학 문헌에서 1940년대 이후 항상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인플레이션이었다. 1930년의 대공황의 디플레이션 사태는 1930년대 말의 유럽 정세가 세계 대전으로 접어들고 각국이 군비 지출을 늘리는 소위 '군사 케인즈주의(military Keyensianism)'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수습되었고, 1940년 케인즈의 저작 <군비 조달론(How to Pay for War?)>의 출판 이후 경제학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악성 인플레이션을 막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왔던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를 거쳐서 또한 이러한 디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는 처음에는 크게 들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1990년대의 말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림 2]
1980년대 이후 디플레이션 언급 논문의 비율은 3%를 넘지 못하는 적은 숫자였으나 1998년에 그 숫자는 네 배 정도로 늘어난다.

[그림 2]는 닛잔과 비클러가 이러한 공포의 확산을 검증하기 위해 작성한 흥미로운 시도이다. EBSCO의 Business Source Premier라는 데이타 베이스는 경제 경영 관련으로 영어로 된 2천8백개의 학술 저널 논문의 텍스트 검색이 가능하다. 텍스트 중에 인플레이션이 언급된 논문에 대한 디플레이션 언급 논문의 숫자의 비율을 매년 조사하여 그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림에서 뚜렷이 보이는 것처럼, 1980년대 이후 디플레이션 언급 논문의 비율은 3%를 넘지 못하는 적은 숫자였다. 그러다 아시아를 필두로 한 신흥 시장 국가들의 연쇄적인 금융 위기가 벌어진 1998년에 그 숫자는 네 배 정도로 늘어난다. 과잉 설비 투자와 과잉 생산의 위기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공기 중을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한 분위기도 1999년과 2000년의 시장 활황으로 누그러지는 듯 보였으나, 주식 시장이 내려앉았다는 것이 분명해진 2001년부터 다시 그 숫자가 급증하여 2003년 초 4개월의 기간에는 16%까지 증가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공포는 비단 지배적 자본 집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재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 전체의 부채 비율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디플레이션이 경제 전체에 엄청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공포를 피할 길이 없다.

[그림 3]의 세 시계열들은 위부터 미국의 총 신용 시장 부채(공공 및 민간 부채), 선진국가들의 민간 부채, 개발도상국의 민간 부채가 각각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먼저 시선을 잡는 것은 미국 경제의 총 부채 비율의 급증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의 공공 및 민간 부채 속도는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재정 적자 팽창기의 그것과 맞먹는 것이었다. 농산물 가격의 하락의 불꽃 점화로 전체 금융 시장이 주저앉아버렸던 1929년과 2002년 현재 미국 경제의 부채 규모를 비교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다. 후자는 전자의 두 배인 것이다! 대공황 직후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명목 GDP가 감소하면서 1934년께에는 그 비율이 바로 160%에서 270%까지 올라간 바 있다. 만약 똑같은 정도의 디플레가 오늘날 벌어진다면 미국 경제의 부채-GDP 비율은 400%가 되고 말 것이다. 다른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의 상황도 크게 나을 것이 없다. 민간 부채만 가지고 1960년대 초와 비교해 보아도 전자는 3배, 후자는 4배로 그 비율이 급증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림 3]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의 공공 및 민간 부채 속도는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재정 적자 팽창기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로 급증한다.

미국의 언론 등은 그래서 중국의 '과잉 수출'을 이러한 디플레이션 압력의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보호 무역주의로의 선회를 옹호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포의 확산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2002년 한 해 동안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에서 앨런 그린스펀에 이르기까지 틈만 나면 "디플레이션이 임박했다는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로 시장을 안심시키려 했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필자도 이러한 이어지는 발언들이 오히려 그러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확인시켜주는 미묘한 효과만 낳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바 있다.

인플레이션을 기다리며

앞에서 우리는 인수 합병의 '넓이 지향' 축적 양식과 함께 지배적 자본 집단의 차등화 축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 경제 불황을 틈탄 가격 상승이라는 '깊이 지향' 축적 양식을 논의한 바 있다. 크기에 있어서나 사회적 영향력과 권력에 있어서나 압도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지배적 자본 집단이다. 이들이 이러한 자신들의 차등적인 우위를 이용하는 것에는 인수 합병―고관대작 집안끼리의 '결혼'에 비유할 수 있다―도 있겠으나, 자신들의 독점력을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으로 전환시켜 계속 가격을 높여나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다른 기업들도 따라서 가격을 올리는 소위 인플레이션 악순환(inflationary spiral)이 시작되겠지만, 더 큰 독점력을 가진 이 지배적 자본 집단은 그 가격 인상 게임에서 항상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이에 "평균을 능가하는(beating the average)" 차등적 이윤율의 자본 축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적 자본이 이러한 가격 상승을 계속해 나가려면, 어느 몇몇 기업만의 가격 상승이 아닌, 경제 전체에 그러한 경쟁적 가격 상승이 하나의 규범(norm)으로 확산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이미 기세가 꺾여버린 인수 합병 대신 가격 상승을 이용하여 차등적 자본 축적을 계속하려는 지배적 자본 집단에게 있어서 전체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도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희망 사항이 된다.

지배적 자본 집단 이외의 각 경제 행위자들도 인플레이션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엄청난 액수의 차입을 해온 기업들 및 금융 기관 그리고 미국 정부(!) 모두에게 있어서 디플레이션과 그로 인해 발생할 자신들 부채량의 폭증과 공황은 상상하기 싫은 악몽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과 지배 세력 전반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단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점점 넓게 펼쳐지고, 그러한 단비를 불러오기 위한 가지가지의 기우제같은 행사들―중앙 은행의 팽창 기조의 통화정책 등―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진다. 즉, 지배적 자본 집단을 필두로 한 '인플레이션 동맹'이 지난 몇 년간 급격히 형성되어왔다는 것이 닛잔/비클러의 진단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이 깊이 지향 축적 양식의 '인플레이션 동맹'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추 세력이 있다. 바로 우리가 오래 전에 살펴본 바 있는 군수 석유 자본 동맹(Petrodollar-Weapondollar Coalition)이다. 이들의 동향은 어떠한가.

둘째, 과연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그렇게 현재 지배적 자본 집단과 경제 전체가 처해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가. 분명히 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또 밀턴 프리드만 이하의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을 모아 인플레이션이란 그저 '화폐적 현상'일뿐 '실제 경제'에는 아무런 충격도 가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귀가 아프도록 가르치지 않았는가. 과연 인플레이션은 '마법'인가.

한 가지 더. 인플레이션이 정말 그러한 '마법'이라면, 거기에 수반되는 비용은 무엇인가. 유럽의 마법사들은 신통력을 얻기 위해 악마와의 계약을 서슴지 않았고, 그 대가는 보통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그 영혼을 악마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마법사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처음의 악마보다 더 큰 마력을 얻음으로서 그 영혼의 지불을 계속 회피해나가는 식의 계략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인들의 '카드 돌려막기'와 흡사한 이런 전술도 결국 그 말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저 유명한 16세기 독일의 파우스트 박사 같은 이는 결국 온 몸이 갈가리 찢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들 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마법에 따르는 대가는 어떤 것들인가. 이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주(註)>

① 이 연재 1장 4절(책은 2장 4절)과 2장 2절(책은 3장 2절) 참조. 또 조나단 닛잔, 심숀 비클러 저, 홍기빈 옮김, <권력 자본론: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삼인, 2004) 7장 참조.

② 곧 보게 되겠지만, 닛잔/비클러의 시각에서 보면 통념과는 달리 경제 성장은 본래 디플레이션적인 경향을 수반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이 '신경제'라는 현상은 별로 이상하거나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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