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4.08.24 Ⅱ. 보데의 법칙? ③
  2. 2004.08.24 Ⅱ. 보데의 법칙? ② 세계 석유 자본
  3. 2004.08.24 Ⅱ. 보데의 법칙? ① 미국 군수 자본
  4. 2004.08.24 I. '음모'에 대해 말해보자
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7> Ⅱ. 보데의 법칙? ③
2003-05-20 오전 9:50:46
II. 보데의 법칙?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③ 중동에서의 군수자본과 석유자본의 이익

지난 몇 회에 걸쳐 우리는 닛잔/비클러 이론을 통하여 미국의 군수자본 핵심과 석유자본 핵심이 각각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또 그들이 중동이라는 지역에서 같은 이익을 공유하여 동맹을 결성할 개연성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무기 수출을 원하는 미국의 군수 자본과 유가 인상을 통한 이윤 확대를 원하는 석유 자본, 그리고 중동 특수를 얻고자 하는 엔지니어링 건설회사, 오일 달러를 유치하는 미국의 금융 기관 등이 유착하여 미국의 외교 정책에 강한 영향을 행사한다.
2.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3. 유가가 인상되고, OPEC 국가들의 수입과 석유 자본 핵심의 이윤이 모두 늘어난다.
4. OPEC 국가들은 늘어난 수입을 다시 미국의 금융 기관에 예치하거나 대규모 공사를 미국 건설 및 엔지니어링 대자본에 발주하거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의 무기를 구입한다.
5. 구입된 무기로 갈등의 규모가 확대된다 는 악순환의 고리였다.

그러면 이제 변죽은 그만 울리고 이러한 가설의 ‘개연성’이 어느 만큼의 ‘현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 볼 때가 되었다. 그 인과관계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첫째, 지역 갈등의 고조가 실제로 석유 자본과 산유국의 이윤과 수입을 확대하는가. 둘째, 그 반대 방향으로, 산유국의 수입이 늘어나면 실제로 미국의 무기 수출이 늘어나는가.

1. 지역 갈등 → 석유 산업

1) 원유 가격과 ‘불안’ 지수

먼저 흔히 발견되는 오해 하나는 원유 가격이 ‘희소성’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석유는 그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는 자원이니만큼 귀금속이나 마찬가지로 그러한 희소성의 논리로 가격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적 근거가 희박하다. 물론 석유의 매장량은 유한하지만, 그 현실적인 ‘희소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확인된 매장량’을 ‘현재 생산량’으로 나눈 것이다. 즉 ‘현재까지 확인된 매장량은 현재 수준의 석유 생산이 계속될 경우 몇 년이나 버틸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만약 세계 석유 생산량에 비해 새로운 유전이 활발히 탐사 확인된다면 이 지표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즉, ‘희소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4반세기 동안 바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1960년대 중반 그 지표는 ‘30년’ 정도였으나 1990년대 초가 되면 ‘40년’으로 올라가게 된다. 만약 석유의 ‘희소성’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기간 동안 석유 가격은 크게 떨어졌어야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것은 그 정반대의 사태인 것이다.

원유 가격의 결정이 보통의 경제학 상식과 어긋나는 점이 또 하나 있다. 보통의 상품들은 수요가 과다할 경우 가격이 상승하며 공급이 과다할 경우 하락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70년대 이래의 석유 가격의 등락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즉 운동해왔던 것이다. 닛잔/비클러 이론은 이를 실증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과다 수요’와 ‘과다 공급’을 측정할 대리 지표(proxy)로 원유의 재고량의 변동 즉 연간 소비와 연간 생산의 차이의 변동을 살펴본다. 그 결과는 아주 재미있다.

1970년까지는 원유의 경우도 재고량이 증가(즉 과다 공급의 발생)하면 그 가격이 보통 상품이나 마찬가지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1970년 이후 즉 OPEC 체제가 시작된 이후로는 그 반대가 되어, 재고량의 증감과 원유 가격의 등락이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원유는 잘 팔리지도 않아 창고에 계속 쌓이는데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또 원유가 잘 팔려서 재고가 줄어드는 데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석유는 너무나 핵심적인 자원이라서 수요자들은 현재 시장에서 석유 공급이 충분하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수가 없다. 73년의 석유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중동 지역에 무슨 일인가가 터져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여 혹시라도 생산 중지 혹은 출항 금지(embargo) 등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악몽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여진 상태이다. 중동이 조금만 심상치 않다 싶으면 미래의 안정적 석유 확보를 위하여 금새 더 큰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생기게 된다. 산유국이나 석유 기업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고 이 과점체들 사이의 소위 “가격 합의(price consensus)”가 순식간에 더 높은 점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석유 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는 현재가 아닌 미래 상황에 대한 위험 평가에 근거하여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서의 수급량과 거의 무관하게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닛잔/비클러는, 70년대 이후 현재의 OPEC 석유 레짐에서는 “중동 지역에서 발생하는 석유 공급 불안 요인이 원유 가격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는 70년대 이후의 수 차에 걸친 중동 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유가 인상이 벌어졌던 사실에 비추어 반박하기 힘든 사실이라 볼 수 있다.

2) 원유 가격 등귀의 결과



[그림 1]은 7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석유 레짐이 “자유로운 흐름(free flow)”에서 “제한된 흐름(limited flow)”으로 극적인 변화를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이전까지 원유 가격은 조금씩 하락했지만(그림은 'spot price'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서 멈춰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의 고도 성장으로 인한 수요의 확대에 힘입어 산유국 원유 수출량은 계속 증가하였고 석유 자본 핵심의 이윤도 계속 늘었다. 그러다가 70년대가 지나게 되면 석유 자본 핵심의 이윤이 증대되는 주요 메카니즘은 원유 가격 인상으로 변한다. 또 앞에서 말한 “불안” 요인 때문에, 가격이 계속 인상되는 가운데에서도 산유국 수출량은 증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그림에서의 원유 가격이 급격히 상승되는 계기는 예외없이 중동 지역의 군사 분쟁이었음을 상기해보라.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지극히 낮은 석유 산업의 특성상 산유국과 석유 기업의 이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가격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지역에서의 갈등이 원유 가격을 매개로 하여 산유국의 석유 판매 수입과 석유 기업의 이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원유 수출 증대 → 무기 수입

이번에는 그 반대 방향으로의 연관관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를 알아볼 차례이다. 즉, 정말로 OPEC 국가들의 석유 수출로 인한 소득 증대가 생기면 더 많은 무기의 구입이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해당 년도의 무기 수입액과 그 3년전의 석유 판매 수입의 관계가 어떠한 추이를 갖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무기 거래는 보통 계약에서 현물 인도가 벌어질 때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그림의 무기 수입액은 현물 인도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석유 판매액과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서 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그림에서도 70년대를 전후한 OPEC 석유 레짐으로의 구조적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간단한 회귀 분석을 해보면, 73년 이전에는 석유 판매 수입이 1% 증가할 때마다 무기 수입이 3.3%씩 증가했음을 볼 수가 있지만, 그 이후에는 그 반응도가 0.4%로 떨어지게 된다. 73년 이전에는 석유 판매 수입의 액수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을 무기 구입에 지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73년 이후에는 절대적 크기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에(그래프의 양축이 로가리듬 스케일로 그려져 있음을 주의하라), 그 중 국내의 각종 건설 공사라든가 또 외국 금융 기관에의 자금 유치 등으로 지출되는 부분이 급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실로 인상적인 것은, 이 석유 판매 수입의 증감과 무기 수입액의 증감의 관계가 거의 선형(linear)에 가까운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이다. 실로 73년 이후로는, 어느 한 쪽의 수치만 알아도 다른 쪽의 수치를 대충 계산할 수 있을 지경이다! (다시 한번, 로가리듬 스케일로 그려졌음을 상기하자.) 이는 무기 산업의 실정을 생각해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 닛잔/비클러의 지적이다.

무기의 거래에는 수많은 외적 환경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몇 개만 언급해보아도, 냉전 당시였으니 미 소 양대국의 지역 정책과 허가, 국내 무기 산업의 발전, 지역 분쟁의 고조,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 관한 한, 무기 수입액은 석유 판매 수입과 거의 선형의 비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그렇게 수많은 ‘외적’ 요인들이 거꾸로 이러한 군수 자본의 이익의 결과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양 방향으로의 연관관계를 밝혀놓아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과연 그 집단들의 이익이 영향을 받는구나’하는 연관 관계 이상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인 것이다. 연관관계는 분명코 ‘인과관계’와는 다르다. 이 지역의 군사 분쟁이 늘고 원유가격이 오르면 미국 군수 자본 석유 자본이 이익을 본다는 ‘연관관계’가 있다는 말과, 그 지역의 군사 분쟁은 그 군수 ? 석유 자본 동맹이 좌우하는 이 지역의 미국 외교 정책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코 다른 느낌이니까. 그런데 필자는 앞 장에서 분명히 ‘CIA의 총탄’ 운운 하면서 대담하게도 후자의 가능성을 암시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이것을 증명하려면, 인과관계의 방향이 군수 ? 석유 자본의 행위에서 중동 분쟁의 발생으로 향하도록 한 번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닛잔/비클러도 바로 이러한 방향의 실증 조사를 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실로 괄목하지 않을 수 없는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편에서 보도록 하자.

추기

이 연재에서 훌륭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죠나단 닛잔(Jonathan Nitzan) 교수와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의 연구 성과로 돌려야 한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으며, 본문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분석은 모두 그 두 사람의 성과물이다. 물론 소개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와 착오는 모두 필자의 몫이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다음의 아카이브에서 원문으로 구해볼 수 있다.

http://www.bnarchives.net

참고할만한 닛잔, 비클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Bringing capital accumulation back in: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military contractors, oil companies and Middle East ‘energy conflicts’",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2(3), 1995.

Ch. 5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 in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2002)
관련 링크(http://www.bnarchives.net)
Posted by 중년하플링 :
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5> Ⅱ. 보데의 법칙? ② 세계 석유 자본
2003-05-02 오전 10:09:38
II. 보데의 법칙? :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② 세계 석유 자본

세계 석유 자본의 핵심 기업들을 집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 석유 시장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저 유명한 “칠공주(The Seven Sisters)”의 이름으로 불려온 초국적 기업 일곱 개가 좌지우지해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일곱개의 기업은, 미국의 Chevron(원래 Socal 즉 Standard Oil of California), Gulf(1985년 Chevron으로 병합), Texaco(2001년 Chevron으로 병합), Exxon(원래 Standard Oil of New Jersey), Mobil(1998년 Exxon으로 병합), 영국의 British Petroleum(원래 Anglo-Iranian, 1998년 이후 BP Amoco), 영국-네덜란드의 Royal Dutch-Shell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Chevron, Exxon, BP Amoco, Royal Dutch Shell 의 네 개로 줄어들었다.

1. 간추린 석유 산업의 역사

1)“칠공주”의 전성시대

산업 혁명 초기의 동력은 물론 석탄이었으나, 19세기 후반 내연 기관이 발명되고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석유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고, 유럽 각국에서는 정유, 운반, 판매 등 석유 관련 산업을 수직적으로 통합시키는 독점 자본이 출현하게 된다. 이미 레닌의 1917년 저서 <제국주의론>서도 잠깐 언급되고 있듯이, 이 주요한 일곱 개의 기업들은 자국 내의 시장을 장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초국적적인 카르텔을 조직하여 산유 지역인 중동, 남미, 인도네시아의 유전 자체를 원천적으로 장악하려들게 된다.

마침내 1928년 경에 이르면 가장 힘이 큰 Exxon, BP, Royal Dutch-Shell의 지도하에 이 “칠공주”들이 전세계 지도를 땅따먹기 하듯 줄을 죽죽 그어 각각의 구역으로 나누어 갖는 동시에 가장 풍부한 매장량을 가진 중동 지방에 대해서 공동 행동의 보조를 취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석유 산업은 흔히 “상류(upstream)”와 “하류(downstream)”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다루어질 때가 많다. 즉 석유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지층 깊이 묻힌 해저 생물의 진액이 흘러흘러 산업 문명의 기어와 바퀴 하나하나에 흠뻑 적셔지는 과정으로 비유한다면, 탐사와 채굴의 과정은 “상류”일 것이며 운반, 정유, 판매의 과정은 “하류”일 것이다. 이제 유전이 매장된 지역의 국가들은 어처구니 없이 불리한 조건 ? 정해진 양의 로열티만 지급받음 ? 을 감수하면서 이들 대기업들이 자국 영토 내의 석유를 파가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유전 외에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이들 국가 입장에서 보면 “하류”로 가는 물길을 장악해버린 이 칠공주들에게 외면 당할 경우 대안이 없기 때문이며, 또 새로운 유전의 탐사라는 비용과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명시적 협정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멋진 콤비를 이룬 이 “칠공주”들은 암묵적인 교감을 통해서도 다른 기업들의 진출을 막으면서 수지맞는 과점 가격으로 세계 유가를 유지시키는 데에 성공하여 확실한 과점 체제를 형성한다. 이들의 전성시대는 전후에도 계속된다. 1950년대 들어 세계 경제 부흥이 본격화되면서 석유 수요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게 되면서, 전전의 세계 최고 석유 수출국이었던 미국 마저 수입국으로 변한다. 그 와중에서도 이들 칠공주들은 공급량 조절과 가격 독점력을 잘 지켜냈다고 한다. 석유는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대단히 낮은 상품이다. 일례로 73년에서 82년 사이 석유의 실질 가격이 23% 인상하는 와중에서도 수요의 감소는 0.7%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는 (독)과점 가격으로 높게 유지만 한다면 수요의 감소없이 고스란히 이윤의 증가로 이어지게된다.

물론 이러한 칠공주의 전성시대에 기둥이 되어준 것은 영미 제국주의의 폭력이다. 여중에는 “칠공주파”라는 일곱명의 언니들이 있어서, 면도칼을 질겅질겅 씹다가 눈 안깔고 그 앞을 지나가는 여학생이 있으면 얼굴에 바로 뱉어 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이다. 혹시 여자라고 깔보고 이들에게 “엉기는” 남학생이 있을 경우 대장격인 “영미” 언니가 인근 OO공고의 무서운 오빠들을 불러와서 손을 봐준다고 한다. 1950년대 초 이란에 들어선 새 정권이 감히 칠공주의 유력한 일원인 영국의 Anglo-Iranian(후의 BP이다)에 도전하여 국유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영미” 언니가 움직였다. 영국 정부는 경제 제재에 이어 무력 행사를 시사하였고, 결국 “중재”에 나선 미국 정부는 이란 정부를 간단히 전복시키고 팔레비 왕정을 세워버린다(그 뒤엔 미국 쪽 회사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2) 60년대 이후: 칠공주의 몰락?

그러나 이러한 좋은 시절이 계속 가지는 않았다. 과점 체제라는 것은 본성상 상당히 불안정적이며, 특히 확고하게 제도화된 권력 구조가 없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과점은 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장기호황이었다는 50-6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의 석유 수요는 갈수록 늘어났기에, 상류와 하류 모두에서 이 과점 체제의 테두리를 넘어서려는 압력이 거세어졌다. 상류에서 보자면, 기존의 산유지역 뿐 아니라 알제리, 리비아, 나이제리아 등의 새로운 산유국들이 생겨나면서 독립된 기업들 ? 예를 들어 리비아의 Occidental 같은 기업 ? 이 유전을 손에 넣는 일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1952년 미국과 공산 국가 밖에서의 원유 생산의 90%를 차지하던 칠공주의 점유율은 1968년 경에는 75%로 감소하였다. 또 곳곳에 정유 시설이 생겨나고 유통 공급 업체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하류에 대한 칠공주의 지배력도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53년과 1972년을 놓고 비교해보면, 미국 밖의 산유지에 대한 칠공주의 몫은 64%에서 24%로 떨어졌고, 확인된 유전의 몫은 92에서 67퍼센트로, 생산은 87에서 71%로, 정유 능력의 몫은 73에서 49%로, 유조 용량의 몫은 29에서 19%로, 마케팅은 72에서 54%로 각각 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 점유력의 저하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석유 산업 자체에 대한 지배력 또한 상류와 하류 모두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상류를 보면, 민족주의적 엘리트들이 성장하면서 산유국 내부에 강한 저항의 기운이 형성되면서 칠공주의 권력에 도전해오기 시작하였다. 1960년 칠공주는 생산 과다로 인한 가격 인하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공시 가격(posted price) 인하에 합의하게 되는데, 이 일방적인 가격 인하 조치가 사우디 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시세와 달리 공시 가격은 산유국들이 칠공주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의 계산 근거가 되는 것인 고로 산유국 정부는 일방적인 재정적 손해를 입게된 것이다.

이리하여 몇 몇 국가들이 뭉쳐 석유 생산량, 가격, 나아가 유전 소유권까지를 되찾으려는 모임을 1960년 결성하게 되니, 이것이 산유국회의(OPEC)이다. 착실히 내부 단결력과 협상력을 키워온 OPEC는 70년대 초 아랍 이스라엘 전쟁의 발발과 맞물리면서 칠공주로부터 가격, 생산량, 소유권에 걸친 권력을 빼앗아오게 된다. 즉 이제부터는 산유국들이 상류의 물꼬를 틀어쥐고 양과 가격을 결정하는 “제한된 흐름(limited flow)”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에 걸친 70년대석유 위기로 나타났던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하류에 대한 칠공주의 지배력도 무너지게 된다. 석유 파동의 와중에서 곤욕을 치른 각국 정부는 유가 통제, 대체 에너지 개발, 석유 의존도 억제 등 국내의 에너지 수급 상황 전반에 대한 계획과 통제를 실시하게 된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칠공주의 몰락”이라는 명제(“demise thesis”)를 입에 올리게 되었다. 칠공주의 전성시대는 끝이 났고, 이제 석유 문제는 OPEC국 사이의 정치적 관계 그리고 이스라엘이나 서방의 인근 국가들과의 국제 정치의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석유는 초국적 기업 따위가 좌우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언니들 중 몇 명이 퇴학맞은 데다가 무시무시한 학생 주임이 부임하면서, 칠공주의 전설도 끝이 난 것일까?

2. 칠공주는 살아있다

어떤 사회 조직의 역사를 평가하면서 그 흥망성쇠의 기준이 되는 지표는 그 조직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다양해야 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가족 집단은 자식과 가축의 숫자로 그것을 평가했던 듯 싶으며, 프로 야구단은 승전 횟수일 것이며, 영토 국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리적 범위가 될 것이다. 이 때 어느 한 집단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다른 성격의 집단을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임은 자명한데, 사회 과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오류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한국 고대사의 영광을 믿는 어떤 이들은 시베리아 벌판의 지도를 퍼렇게 칠해놓고서 고조선 이전의 우리 한국(桓國)의 영토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영토 개념은 조직 폭력배의 “나와바리” 나 베스트팔렌 체제의 영방 국가(territorial state)에나 의미가 있는 평가 기준이지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내건 도덕적 공동체 배달국의 흥망을 평가할 게 아니라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 칠공주의 “몰락 명제”의 논거로 등장한 것들은 시장 점유율의 저하, 가격 생산량 유통 등에 대한 제도적 권력의 상실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분명코 기업의 흥망을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지표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자본 혹은 기업이라는 조직의 흥망을 평가하는 정당한 기준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윤으로 평가되는 기업 실적(performance)이다. 70년대 이후 칠공주가 몰락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들의 이윤 실적이 실제로 악화되어왔는지를 보여야 한다. 다음의 표에서 분명히 보이는 바, 실제 이들 기업의 실적을 조사해보면 “몰락 명제”와 상당히 다른 아니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표1-석유 자본 핵심(a): 차등적 이윤 지표 지표 (연간 평균, %)>
기간

1

수익률

수익률의 비율
순 이윤에서 석유 자본 핵심이
차지하는 몫(%)
2
석유 자본
핵심¸
÷
석유
40-42(b)
3
석유 자본 핵심
÷
포춘 500 대 기업
4
석유 자본 핵심
÷
석유
40-42
5
석유 자본
핵심
÷
포춘 502(c)
6
석유 자본
핵심
÷
전 미국 기업
1930-39
9.1(d)
1940-49
3.3
1950-59
18.2(e)
7.2
1960-69
11.5(f)
1.01(g)
1.00(f)
61.3(g)
17.1
8.1
1970-79
14.3
0.99
1.12
61.7
18.0
9.0
1980-89
13.1
1.08
1.03
73.2
17.8
10.5
1990-91
11.5
1.03
1.20
78.1
22.3
9.1
(a) 석유 자본 핵심은 British Petroleum, Chevron, Exxon, Mobil, Royal/Dutch Shell, and Texaco로 구성된다.
(b) 석유 40-42 란 Pforzheimer & Co. group 의 주요 비정부 석유 기업들로 40 - 42개의 전 세계 석유 기업들의 복합체를 나타내며, 총계는 전체 회사 단위로 계산되었다.
(c) "포춘 502"란 포춘 500대 기업에 British Petroleum 과 Royal/Dutch Shell 을 더한 것이다.
(d) 미국 전체의 주식회사 순이윤이 마이너스였던 1931-32 의 기간은 계산에서 제외하였다.
(e) 1954-59.
(f) 1966-69.
(g) 1968-69.
자료: 석유 자본 핵심의 순 이윤과 수익률은 Harvey O'Connor, World Crisis in Oil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2), 포춘 지 자료(directories)와 Standard & Poor's 의 Compustat 에서 계산하였다. 전 미국 주식회사의 순 이윤은 McGraw Hill(online)을 통한 미국 상무성(Department of Commerce) 자료, 미국 상무성, Bureau of Economic Analysis, Statistical Abstract of the United States (1992), Table 871, p. 542 에서 취하였다. 포츈 500대 기업의 순 이윤과 자본 당 수익(return on equity)는 다양한 'The Fortune 500' 에서 취하였다. 세계 40-42 석유 대기업의 순 이윤과 자본 당 수익은 Carl H. Pforzheimer & Co, Comparative Oil Company Statements, reported in the Statistical Abstract of the United States (Annual) 에서 취하였다. Jonathan Nitzan and Shimshon Bichler,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Press, 2002) 222p. 에서 전재.

표 1은 석유 자본 핵심의 연간 순 수익률(자기 자본(equity)에 대한 순 이윤)과 순 이윤(이자와 감가상각을 제한 이윤)의 추이를 다른 벤치마크 집단과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 표가 명확히 보여주는 바, 어떤 벤치마크로 보더라도 석유 자본 핵심은 쇠망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1열에서 보이는 바로, 석유 자본 핵심의 수익률은 70년대에 오히려 신장되었으며 60년대의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2열에서 보듯, 세계 최대 40-42대 석유 기업 전체의 평균 수익률과 비교해보아도 이 석유 자본 핵심 기업들의 수익률은 크게 뒤쳐지지 않았으며 80년대 들어오면 오히려 상회하고 있다. 포츈 500대 기업과 견주어보았을 때 오히려 이들의 수익률은 70년대 이래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올라섰음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순 이윤이 차지하는 몫의 비교이다. 전체 40-42대 석유 기업의 전체 순 이윤에서 이들 석유 자본 핵심이 차지하는 몫은 감소한 적이 없고 80년대 이후로 오히려 크게 증가해오고 있다. 5열과 6열에서는 더욱 오랜 기간의 자료를 통한 역사적 추이의 판단을 가능케 한다. 칠공주의 전성시대였던 1950년대와 비교해보아도 포츈 502 전체의 순 이윤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몫은 오히려 계속 증가해온 추세가 분명하다. 6열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분명히 입증된다. 1928년 세계 분할을 이루고 승승장구하던 석유 자본 핵심이 1930년대 미국 전체 주식회사의 순 이윤에서 차지한 비율은 9%였는데, 이는 5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마침내 8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그것을 상회하는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결국, 어떤 벤치마크로 평가해본다고 해도 석유 자본 핵심은 “몰락”은 커녕 오히려 개선되어왔으며,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더욱 강화되어 온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앞에서 보았듯이 이들의 시장 점유도 감소하였고, 가격, 생산량, 소유권에 걸친 권력도 잃고 말았다. 즉 외양 상으로 보면 분명 이들은 쇠퇴일로에 들어섰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들의 자본 축적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리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런 추측을 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이 OPEC의 횡포에 좌우되는 이 세계 석유 시장의 새로운 제도적 환경과 권력 구조는 애초부터 오히려 칠공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장치였던 것이 아닐까? 새로 부임한 호랑이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꽉 잡혀버린 그 칠공주파 언니들이 되레 그 김에 교내 선도부장으로 완장을 차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기존에 해오던 각종 비지니스를 더 신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② 세계 석유 자본" 절은 원고량이 많아 두차례에 걸쳐 나눠 실을 예정입니다. "3. OPEC, 석유 자본 핵심, 미국"과 "4. 미국 정부와 군수 ? 석유 자본 동맹의 형성"은 다음주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필자 소개

필자 홍기빈은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소장학자로, 외국에 체류중이면서도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슈에 관한 통찰력 있는 글을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보내며 많은 반향을 얻고 있다. 프레시안 연재글의 제목 '현미경과 망원경'은 정치와 경제, 국제와 국내의 이분법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와 논문「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外>(책세상) <자본론을 넘어서>(백의), <지구적 축적과 변형의 이론>(근간, 삼인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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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4> Ⅱ. 보데의 법칙? ① 미국 군수 자본
2003-04-11 오후 1:58:23
II. 보데의 법칙? :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① 미국 군수 자본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전쟁의 진짜 이유가 미국 군수 자본과 석유 자본의 이익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의혹은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이라크 전에서 나오는 “장물”을 둘러싸고 딕 체니 부통령 이하 워싱턴 인맥에 줄을 댄 이런저런 군수 석유 자본들의 활극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군수 ? 석유 자본 동맹이라는 용어 자체는 비판적 지식인들과 언론에 숱하게 회자되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와 어떤 작동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체계적 논의는 많이 만나지 못한 듯 하다. 많은 주류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아예 “음모 이론”과 하나로 보아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다루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닛잔/비클러 이론은 이를 1970년대 초를 기점으로 하여 형성된 “무기 달러 ? 석유 달러 동맹(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으로 이름붙여 그러한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어, 중동 지방의 석유의 정치경제학과 군사 갈등의 정치경제학을 이 집단의 행태와 연결지어 설명하려 시도한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그 연구의 결론은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부분의 기사는 다시 세 개의 글로 나누어 진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군수 자본 핵심(arma-core)의 형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다음 글에서는 석유 자본 핵심(petro-core)을 살펴본다. 세 번째에서는 70년대 이래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 갈등과 석유 가격의 역사적 추세를 이 무기-석유 동맹의 자본 축적 패턴과 연결시켜 살펴본다.

1. 자본주의와 군비 지출

오귀스뜨 꽁뜨(August Comte)는 전쟁의 원인이 자원의 희소성에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역사가 산업 사회의 풍요로 진보하면서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은 스펜서같은 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굳이 소로킨(Sorokin)의 호전성 지수(bellicosity index)를 살펴보지 않아도, 20세기의 역사가 그러한 예측과는 정반대로 각종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음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그래서 이미 20세기 초부터 레닌이나 부하린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필두로 하여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발전이 오히려 전쟁과 군비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초기의 연구는 주로 자본주의 경제 구조 전체 ?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거시 경제’ 차원 - 의 논리에서 군비 지출을 설명하려 시도하였다. 홉슨이나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자본주의 구조 발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과소 소비 및 과잉 축적의 결과로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나오게 된다 논리를 편 바 있었으며, 이는 멀게는 60년대 미국의 신좌파에게 큰 영향을 끼친 바란과 스위지의 “독점 자본” 이론으로 이어진다.

기술 혁신과 대기업 조직에 기반한 독점 자본 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에서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과 같은 이윤율의 저하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잉여’의 계속적 증가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점 자본주의는 그 남아도는 경제적 잉여를 배출할 곳이 필요해지게 되므로, 베블렌도 예언한 바 있는 “제도 차원의 낭비”의 방법을 찾아 헤매게 된다. 광고, 공공 사업 등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은 약점이 있다. 첫째 엄밀히 말해서 순수한 “낭비”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적 잉여를 창출하기 일쑤이며, 둘째 그 규모에 있어서 불충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주 이상적인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군비 지출”이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지출 규모도 천문학적 숫자이거니와 이 무기의 소비란 그야말로 “파괴” 행위이니 아무런 경제적 잉여도 생산되지 않는 순수한 낭비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이들의 주장이 앙상한 이론적 추리라기보다 미국 외교의 역사와50년대 이래 꾸준히 계속된 엄청난 규모의 미국 정부 군사 지출이라는 현실적인 경험을 반영하는 산물임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 경제학자 쯔르 시게또(都留重人)도 이미 1956년 “자본주의는 변했는가(Has Capitalism Changed?)”라는 논문에서 미국 경제의 저축을 연구하여, 미국 경제가 계속 현재의 성장율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GDP의 10%에 해당하는 군사 지출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는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러한 GDP 성장과 10% 군비 지출의 추세가 10년간 계속 될 경우엔 군사 지출의 절대적 크기 자체가 “평화 상황에서는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는” 크기에 도달할 것이라는 실로 의미심장한 암시도 던지고 있다. 과연, 10년후인 1966년의 미국은 여전히 GDP의 9% 정도의 군비 지출을 하는 한편 베트남 전쟁에 깊숙히 빨려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966년에 발표된 바란과 스위지의 이론이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서 군비 지출과 전쟁을 설명하는 논리는 몇 가지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첫째, 현실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군비 지출이 1968년을 정점으로 하여 감소 추세를 보이게 되었고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소위 데땅뜨 국면이 도래하게 되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론적인 면에 있다. 이렇게 문제를 구조의 논리로 환원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항상 호전적이고 사악한 추세를 갖는다”는 포괄적 결론 ?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망한다”는 묵시록적 교훈 - 이외에 현실의 구체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게 되어 망하게 되어 있다”는 1920년 이전의 레닌식 주장의 폐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았다. 또 항상 전쟁과 군비 지출로만 치닫는 것도 아니다. 평화의 국면도 도래하며 또 급박스런 위기 국면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항상 “총 자본”의 구조적 논리로만 상황을 설명하려는 이론적 틀로 인해 그렇게 다양한 현실의 설명에 무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한계의 인식과 맞물리면서, 1970년대 초부터는 “추상적인 자본주의 체제 발전의 논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핵심적 군수 자본 집단의 존재와 그들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에 촛점을 맞추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선구적인 연구로는 역시 칼레츠키(Michal Kalecki)를 꼽아야 할 것이다. 이미 40년대부터 거대 독점 자본이 경제 및 사회를 재구조화해버리는 과정에 착목했던 그는 60년대에 쓰여진 일련의 논문에서 미국 내의 구체적인 자본 분파 집단의 존재와 갈등을 확인한다. 주로 미국 동부 해안에 자리잡은 오래된 민간 산업 자본에 대하여 군수 산업과 연결된 자본 집단이 서부 해안 지방에서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 전 등을 거치면서 서부의 군수 자본이 우월한 집단이 되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는 방향으로 자본 집단 내부의 재분배가 벌어지게 될 것이며, 또 이 분파가 미국 지배 계급에 합류하게 되면서 더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외교 정책을 밀어부치는 세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과연 이러한 칼레츠키의 예측은 이후에 실현되었는가? 더 많은 이윤 몫을 가져가는 군수 자본이라는 집단은 정말로 그 정체가 뚜렷하게 형성되었는가?

2. 군수 자본 핵심 기업들과 그 ‘차등적’ 이윤의 동향

이 “군수 자본 핵심(arma-core)”의 존재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닛잔/비클러는 미 국방성이 매년 발표하는 “일차 계약 액수에 따른 100대 군수 조달 기업(100 Companies Receiving the Largest Dollar Volume of Prime Contract Awards)” 을 살펴 다음의 두 가지 기준으로 핵심 기업들을 걸러낸다. 첫째, 군수 산업에 특화된 기업이라해도 크기가 작은 것들은 배제한다(Teledyne, E-System 등이 그래서 배제된다). 둘째, 큰 기업이라해도 총 매출에서 군수 관련의 매출의 비중이 적은 기업들도 배제한다(AT&T, IBM, Exxon, Ford 등이 그래서 배제된다). 그 결과 닛잔/비클러는 Boeing, General Dynamics, General Electric, Grumman, Honeywell, Litton Industries, Lockheed, McDonnell Douglas, Martin Marietta, Northrop, Raytheon, Rockwell International, Texas Instrument, Textron, United Technologies, Westinghouse의 16개 기업을 얻어, 이들을 잠정적으로 군수 자본 핵심 기업으로 상정한다. 물론 이 선정의 기준이 어느 정도의 자의성을 가질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이 16개 기업이 66년에서 91년 사이에 따낸 국방성 일차 계약이 평균 36%에 이른다는 점을 볼 때 현실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16개의 기업들이 과연 칼레츠키가 60년대에 예언했던 대로 미국 경제의 전체 자본가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점점 더 많은 이윤 몫을 챙겨가는 우월한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형성되어 왔는가? 이를 실제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교의 대상이 되는 ‘미국 전체 자본가’라는 것을 좀 더 주의깊게 정의해야 한다. 이 16개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해왔는가를 비교할 적절한 대상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은 모든 중소 기업을 포함한 미국 기업 법인 전체가 아니라 ‘대기업 집단(big economy)’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닛잔/비클러는 <포춘(Fortune)> 선정 미국 500대 기업으로 잡고 있다.

그리하여 1966년에서 1991년의 기간 동안 이 16개 군수 자본 핵심 기업의 순 이윤과 포춘 500 대 기업의 순이윤을 비교해 보니 흥미로운 결론이 나온다. 베트남 전이 절정에 달하던 1967년에도 16개 기업의 순이윤이 전체 포춘 500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몫은 5% 남짓에 불과했었는데, 이 수치가 이후 계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려 마침내 1990년이 되면 10%를 넘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를 양쪽 집단의 개별 기업당 평균 순이윤으로 비교하면 더욱 극적인 결과가 나온다. 1967년 ‘전형적인’ 군수 자본 핵심 기업의 순이윤은 ‘전형적인’ 포츈 500대 기업에 비해 1.7배 정도의 크기였으나 이 또한 1990년에 이르면 3.13배를 넘게 된다.

닛잔/비클러는 이에 근거하여, 칼레츠키의 예측이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한다. 70년대 특히 80년대에도 “군사 케인즈주의(military Keynesianism)”에 입각하여 꾸준히 지속되어 온 미국 정부의 군비 지출이 결과적으로 분명하게 ‘차등적인’ 이윤을 챙겨가는 군수 자본 핵심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3. 무기 수출의 필연성

무기 산업에 따르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수요의 불안정성이다. 사람은 하루 몇 끼니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식품 산업의 수요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그런데 무기의 ‘소비’란 곧 전쟁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이 사람의 식사처럼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일어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이 닥쳤을 때 무기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이면 되지 않을까? ‘죽창’이나 ‘몽둥이’ 따위의 무기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근대 이후 무기가 기계화되어버리고 또 끝없는 연구 개발이 절대절명의 과제가 되어 버린 이상, 평화시에 수요가 없다고해서 그렇게 무기 생산 라인을 간단히 폐쇄해버리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다. “버터의 생산이냐 총의 생산이냐”하는 선택은 사무엘슨 경제원론에 나오듯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 무기 산업의 딜레마가 있다. 수요가 불안정하여 안정적인 ‘시장 확장의 예측’에 근간한 사업이 되기 힘들다. 그렇다고 생산을 폐쇄해버리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다.

따라서 무기 수출의 활성화가 그 한 해결책일 것임이 명확하다. 1913년 독일의 무기 회사 크루프(Krupp)의 부패 시비가 있었을 때, 제국 의회에 나온 전쟁상 헤링겐(Josias von Heeringen)은 당당하게 이렇게 답변한다. 유사시에 필요한 무기 생산 능력을 유지하려면 평화시에는 무기 회사들이 수출을 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철저한 장사꾼이 되도록 두어야 하며, 이들에게 공무원같은 청렴 윤리를 강요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그리하여 크루프, 노벨, 카네기, 듀퐁 등의 무기 회사들은 그 당시 모두 거의 규제받지 않는 ‘자유 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차 대전 이후 국제 연맹은 이 무기 회사들을 국제 분쟁 발생의 한 원인으로 지적하여 국제적인 무기 수출에 대해 철저한 감시를 시작하였고, 이러한 시대적 조류가 계속 강화되어 2차 대전에 즈음해서 특히 미국에서는 무기 거래는 국가의 외교 정책의 일부로서 통합되기에 이른다. 무기 회사들은 자율성을 잃었지만 그래도 2차 대전 이후 5~60년대의 미국의 냉전 전략 하에서 아시와와 유럽 각지로의 미국의 무기 이전 ? 이는 사적 거래가 아니라 정부 간 거래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 이 활발히 이루어졌었기에 그 팽창하는 미국 군사 예산의 수주를 주 원천으로 하여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저 유명한 “군산 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등장하여 미국 국가를 지배할 위험을 경고할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60년대가 끝날 무렵이 되면, 베트남전이 미궁에 빠지며 국내의 군사 예산이 삭감되면서 다시 무기 회사들이 해외 수출에 의존하는 정도가 깊어지기 시작한다. 세계 대전 이전의 ‘사적 무기 거래’의 시대가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80년대 말까지 그 수출량이 87년 달러 가치로 9십억달러에서 1백5십억달러 사이를 오르내리는 정도가 된다. 혹자는 이 수출액이 전체 매출의 크기에 비해 작다는 이유로 군수 산업에서 무기 수출의 중요성을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 축적의 핵심은 매출이 아니라 이윤임을 기억하라. 브로즈카와 올슨(Brozska and Ohlson)에 의하면 무기 수출의 이윤 마진은 보통 국내 거래의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여 계산해보면 63년에서 89년의 기간 동안 무기 수출의 이윤은 전체 이윤의 평균 22.7%라는 무시못할 비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닛잔/비클러는 강조한다.

4. 외교 정책의 변화?

여기에서 칼레츠키의 예측의 두 번째 측면 즉 새로 형성된 이 군수 자본 핵심이 외교 정책에 끼치는 영향의 문제가 나타난다. 아이젠하워가 경고한 군산 복합체라는 개념도 분명히 국가 정책이 이들에게 장악되어 갈 위험을 뜻하는 것이긴 했지만 이는 주로 정부의 군사 예산 책정과 분배 문제에 집중되었었다. 그런데 70년대에 접어들어 형성되기 시작하는 이 군수 자본 핵심은 외교 정책으로 그 영향력 행사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이동해나갈만한 동기가 뚜렷하다.

이들의 영업은 이미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였고, 그나마 삭감을 겪은 미국의 군사 예산만으로는 이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던 고로 무기 수출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해외의 수요자’는 그냥 생기는가? 그냥 앉아서 어디에 전쟁과 갈등아 생겨라 하고 기다릴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들은 수출 진흥을 위해 ‘해외의 판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을 국가의 임무로 삼고 있으며, 아예 전담 부서까지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무기도 꺼림칙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냥 ‘수출 상품’으로 본다면, 국가의 외교 정책이 그 수출 판로를 창출하는 데에 일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무기 수출이 진흥되면 미국의 군사 기술이나 능력도 유지 및 월등히 신장되게 마련이니 그야말로 외교 정책의 핵심인 ‘국익과 안보’에도 부합하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추론은 그야말로 짐작과 개연성에 불과한 것들이므로 이런 정도를 근거로 하여 “미국의 외교 정책이 군수 자본에 휘둘리고 있다”고 한다면 음모 이론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거기에 함축된 메시지가 얼마나 섬뜩한 것인가. 말이 좋아 ‘무기 수출의 판로 개척’이지 이는 쉽게 말해서 지구 도처에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짓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인류 역사에 자유를 실현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담지자 미국의 외교 정책을 사람들의 목숨을 팔아 배를 채우는 흡혈귀의 책략이라고 근거도 없이 몰아부치다니. CIA 누군가의 총탄에 맞아 죽어도 싼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만약 그 70년대가 시작되면서 정말 미국이 관여하면서 분쟁과 갈등이 심화되며 그를 통해서 무기 수출도 활발해지게 된 곳이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무기 수출의 규모도 그냥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폭발적이었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 그러한 지역은 최소한 무기를 ‘폭발적으로’ 수입할만한 경제적 자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제 3세계 어딘가에서 제 아무리 피가 튀는 화끈한 분쟁이 벌어져도 그들이 맨날 무기 외상이나 달라고 빌어대는 ‘거렁뱅이’들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이러한 우리의 의혹을 입증할만한 지역의 조건은 첫째, 미국이 개입된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폭발적인 무기 수출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그렇게 할 만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조건들을 꼭 맞추는 지역이 있다. 바로 68년 73년에 벌어진 아랍-이스라엘 전쟁과 함께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버린 중동 지역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좀 더 살피면 진실에 좀 더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중동 지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아랍 국가들이 무기 살 돈을 조달하는 데에 관련된 또 하나의 국제 자본 분파 즉 석유 자본 핵심(petro-core)이다. 다음 편에서 곧 만나자.

추기

이 연재에서 훌륭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죠나단 닛잔(Jonathan Nitzan) 교수와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의 연구 성과로 돌려야 한다. 필자는 단지 그들의 연구를 소개하는 역할만 하고 있으며, 본문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분석은 모두 그 두 사람의 성과물이다. 물론 소개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와 착오는 모두 필자의 몫이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다음의 아카이브에서 원문으로 구해볼 수 있다.

http://www.bnarchives.net

특히 이번 부분과 관련된 본문으로는

“Bringing capital accumulation back in: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military contractors, oil companies and Middle East ‘energy conflicts’”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2(3), 1995

Ch. 5 “The 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 in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Israel, (London: Pluto, 2002)

필자 소개

필자 홍기빈은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소장학자로, 외국에 체류중이면서도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슈에 관한 통찰력 있는 글을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보내며 많은 반향을 얻고 있다. 프레시안 연재글의 제목 '현미경과 망원경'은 정치와 경제, 국제와 국내의 이분법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와 논문「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外>(책세상) <자본론을 넘어서>(백의), <지구적 축적과 변형의 이론>(근간, 삼인출판사)가 있다.
관련 링크(http://www.bnarchiv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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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자본축적과 지구정치경제의 향방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3> I. '음모'에 대해 말해보자
2003-03-27 오전 8:41:28
지구 정치경제는 어디로: 전세계적 자본 축적과 이라크 전쟁

들어가며

모두 다 잠들어 고요하다. 지금 이 시각 인류 문명의 요람지였던 이라크에서 색색의 불벼락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고, 남녀노소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팔다리 머리통이 툭툭 굴러다니고 있을 지도 모르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옆집 이웃의 살타는 불고기 냄새"를 지겹게 맡게 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죽기로 죽이고자 하던 일부 미국인들 얻고자하는 것을 얻고 말았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이제 CNN이 신나게 중개할 전황을 프로 야구보듯 넋놓고 보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는 것일까.

물론 인간 세상의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가 어디 한 두번이었으며 그 앞에 그냥 맥놓고 퍼질 수 밖에 없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그러니 적당히 해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 그래도 될까? 이번 부시 일당의 이라크 전쟁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역사에 가득한 "예사의" 부조리와 달리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첫째, 그들의 다음 "무대"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을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다. 둘째, 이 사건은 단지 좁은 의미의 지정학이나 국제 정치학의 사건을 넘어서서, 세계 경제와 사회 전체의 재구조화와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후 약 10년간 우리에게 친근했던 "지구화 시대"의 경제, 사회, 문화는 이제 이번 전쟁을 전환점으로 아주 새로운 방향의 세계 질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즉, "먼곳에서 벌어지는 비인륜적 학살"이라는 윤리적 의의를 훨씬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현실적 문제로 나타날 심대한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번 전쟁을 전지구적 정치 경제 체제의 구조 변환이라는 포괄적인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토론토 요크 대학교의 죠나단 닛잔(Jonathan Nitzan)과 심숀 비클러(Shimshon Bichler)는 이러한 지구적 규모의 축적 체제의 해명을 위하여 실로 괄목할만한 작업을 해온 바 있다. 필자는 이후의 일련의 기사를 통하여 그들의 연구 성과 중 현재의 전쟁과 관련하여 함의를 던져주는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독자들을 위하여 전문적인 경제학과 정치 사회학 이론의 논의는 피하고자 하였으며, 그 부분의 논의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구적 축적과 변형의 이론>(닛잔과 비클러 저, 홍기빈 역, 삼인출판사) 이라는 이름으로 곧 출판될 책을 참조하시기 바란다.(서명 변경 가능)

앞으로 게재할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I. 연재에 앞서서: "음모"에 대해 말해보자
II. 보데의 법칙? :무기-석유 연합의 "차등적" 이윤율과 중동의 분쟁
III. 90년대의 축적 체제: 신자유주의의 번성과 지구적 인수 합병
IV. 부시 집단의 성격
V. 앞으로의 축적 체제: 지구적인 군사 분쟁과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
VI.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

I. 연재에 앞서서: "음모"에 대해 말해보자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음모이론"과 과학적 이론에 관하여 몇 가지 해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하여 분명 어떤 이들이 "음모이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자 할 것이 분명하기도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우리의 사고를 탄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능력한 기존의 "사회 과학" 이론의 사고 방식의 맹점을 짚고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음모이론이란 이런 저런 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을 소수의 특정 집단의 "음모(conspiracy)"의 결과로 돌리는 태도이다. 유럽의 모든 혁명과 정변은 모조리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음모로 돌린다든가, 국제 정치 정세의 변화의 모든 원인을 소위 "시온 의정서(Zion Protocol)"에 나타난 바 있는 "유태인의 세계적 음모"로 돌리는 따위의 것들이 고전적인 예이며, 가깝게는 케네디의 암살에서 소련의 몰락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을 "외계인"과 그 앞잡이인 "그림자 세계 정부"의 책동으로 설명하는 것 까지 그 명맥을 이어온다.

이러한 음모이론이 불신과 냉소를 받는 것은 두가지의 다른 이유에서 기인한다. 첫째, 음모 이론은 그 진위 여부를 아예 검증할 수도 없도록 짜여진 논리 구조로 자의적인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비과학적 이론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들이 통념으로 갖고 있는 상식에 비추어 기상천외한 원인을 들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을 음모이론으로 몰아 잘못된 것으로 공박하는 주장들을 볼 적에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두 번째 종류의 이유에서의 비판은 자칫 새로운 과학적 이론을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에서 무조건 기각해버리는 반대의 지적 오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 음모이론인지 아닌지는 첫 번째의 관점 즉 그 이론이 철저하게 "과학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특히 인간 사회의 많은 일들은 실제로 특정 집단의 의도적 행동 ? "음모"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 을 통해 결정된다. 여기에 소개하는 닛잔/비클러 이론도 그런 의미에서라면 분명히 세계적 자본 축적과 전쟁을 둘러싼 지배 계급 분파의 "음모"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통상의 사회과학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음모이론으로 취급되는 것은 단연코 거부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명제"의 형태로 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과학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과학성: 인과율과 경험적 논박 가능성의 문제

대부분의 이론은 어떤 현상의 인과 관계를 해명하는 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즉 A 라는 사건의 원인을 B, C, D….등 무수한 사건 중에서 특별히 B 라는 사건으로 돌리는 인과귀속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즉 "싹이 나왔다"라는 사건 A의 원인을 "물을 주었다"는 사건 B에 돌려, "물을 주면 싹이 나온다"라는 이론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인과귀속에 근거한 이론도 있지만, 아주 자의적이고 엉뚱하게 들리는 인과율에 근거한 이론들도 있다. "까마귀날면 배가 떨어진다"든가 "초치면 풍나온다"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이 세계의 만물은 서로 연관된 흐름안에서 존재하며, 인과율이란 그 흐름에서 두 개의 사건 만을 쏙 뽑아 내어 그냥 얽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리상 어떤 이론의 인과율이 다른 이론의 인과율보다 본질적으로 더 과학적이거나 비과학적이거나를 따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물을 주면 싹이 나온다"는 주장이나 "초치면 풍나온다"는 주장이나 임의적인 인과관계 설정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므로 어느 쪽이 특별히 우월한 진리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젯밤에 벌어진 월식을 설명하려는 각종의 "과학적 명제"들은 그 원인을 "하나님의 분노"로 돌리는 미신적 주장과 비교하여 어떤 형식적 특수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 과학적 명제가 "경험적으로 논박가능(empirically falsifiable)"한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할 것이다. 흄이 말하는대로 인과율이라는 것에 어떤 본질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게 아니라면, 어떤 명제가 "과학성"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 이론이 주장하는 인과관계가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가"에 달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생에서 유의미한 진리들에 과학적 명제만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최소한 누군가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 명제로 내세우려면 반드시 그 "경험적 논박 가능성"을 갖춘 형태로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분노로 월식이 벌어졌다"는 명제는 과학적 명제가 아니다. 이 명제를 경험적으로 입증하거나 논박하려면 우선 "하나님이 분노했다"는 사건 A와 "월식이 벌어졌다"는 사건 B가 독립적으로 관찰 가능해야 하며, 둘째 그 두 개의 사건 발생의 상호 연관이 어떠한가를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분노"를 어찌 우리 중생들이 관찰할 수 있겠는가. 그 하나님의 분노라는 것이 단지 "월식이 벌어지는 것"을 통해서만 세상에 나타나는 법이라면, 이 명제는 사실상 동어반복이 되어버려 입증이고 논박이고 불가능한 것이 된다.

반면, 그런 면에서 "초치면 풍나온다"라는 명제는 그 깜찍함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입증 가능성"을 띤 버젓한 과학적 명제의 틀을 갖추고 있다할 것이다. 그 인과귀속의 성격이 상식에 부합하고 않고는 과학성과 아무 상관이 없고, 경험적으로 입증 논박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관건이 된다. 오히려 그를 통해 상식을 비판하고 파괴하는 것이 과학의 임무가 아니던가.

음모 이론의 문제: 입증도 논박도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음모이론으로 공격당해온 주장들이 어째서 비과학적인 것인지를 따져볼 수가 있다. 그 대부분은 그 명제를 경험적으로 입증도 논박도 할 수가 없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음모"라지 않는가. 모두 다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열려져 있다면 이미 "음모"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음모를 꾸민자들"의 존재도 의도도 경험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모든 음모이론의 줄거리에는 항상 그 "음모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이나 "유태인" 같은 집단들은 아예 정의상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우리같은 범인들로서는 아예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위 "외계인 음모 이론"도 마찬가지여서, 그 외계인의 존재라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세계 각국 정부의 음모가 모름지기 한창인 모양이다. "돌부리에 채어도 미제국주의의 음모"라는 농담도 마찬가지. 미 CIA는 항상 모든 음모를 은폐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입증이 불가능할 뿐 오늘도 도처에서 반미주의자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입증이고 논박이고 그 내부 집단의 사정을 잘 아는 자신들이 던져주는 설명을 믿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음모이론의 해악성이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냉철히 이성적 경험적으로 따져볼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람들 마음 속 깊숙히 자리잡은 공포와 증오에 기생하여 자칫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리는 어거지에 불과한 것이다. 즉 음모이론의 문제는 그들이 "음모"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명제의 기본적 조건조차 갖추지 못하여 합리적 생산적 토론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미신이라는 데에 있다.

현대 사회과학 안의 "음모이론"

재미있는 점은, 이 "경험적 논박가능성"이라는 과학적 명제의 기본 요건은 존경받는 현대 사회 과학자들에게서도 무시되고 있는 예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의 성공 비결은 "근면한 민족성"에 있다는, 국내 한국 경제론의 최고 대가라는 이의 주장을 생각해보라. "근면한 민족성"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 측정하여 비교할 방법은 개발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는 그냥 통념에 기댄 "의견(doxa)"에 불과하다.

상식처럼 유포된, "8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 발전을 통해 중산층과 시민 사회의 성장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비슷하다. 도대체 그 중산층이라는 것은 몇 몇 사회학자들의 "중민이론"이라는 것 이외에 어떤 경험적 실체가 있으며, 그들의 구체적인 역사적 실천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런저런 민주화의 계기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인가? 이러한 경험적 근거들이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채 만약 이런 명제들이 사용된다면 이는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나아가 어떤 경제학자들은 음모이론과 판박이인 진짜 음모이론을 마구 유포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 경제의 자체적 작동은 항상 완벽한 일반 균형을 일관되게 지향하는 법이란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무지하고 탐욕스런 노동 조합 및 이런저런 이익 집단들 그리고 거기에 부화되동하는 줏대없고 근시안적인 정치가들이 계속 그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가장 유명한 버젼은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집산주의자들의 음모(collectivist's conspiracy)"라는 주장이다. 그 이후 이 주장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소위 "시장 개혁"이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를 변호하는 보신술로 지겹게 변주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과학적 명제로 제출이 되려면 먼저 그들은 그 "이상적 일반 균형이 지배하는 시장 경제"라는 것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단 한 번이라도 경험적으로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일반 균형"이라는 것도 "철학자의 돌"처럼 학자들의 책에나 나오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며, 거기에 근거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음모"에 모든 탓을 돌리는 것은 저질의 음모이론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람들이 얌전히만 따라주면 철학자의 돌이 나타나서 현실 경제를 이끌어주련만, 그들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오늘도 철학자의 돌은 요원할 뿐이다". 이런 것을 과학적 명제라고 내미는 것인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음모를 이야기해보자

앞으로 보게 될 닛잔/비클러의 이론은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자본 분파 즉 "지배적 자본(dominant capital)"의 축적 행태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 방식은 기존의 주류 사회과학과는 크게 다르며, 그야말로 "음모"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화끈한 고급정보같은 것을 기대하는 분들은 곧 실망할 것이다. 평범한 사회과학자인 이들이 손에 넣어 사용하고 있는 자료들은 만인에게 개방된 역사적 통계적 자료이며, 또 이들의 이론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내년에 백악관과 JP모오건이 더욱 유착할 것이다"는 식의 엽기성 예언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자본 축척 패턴의 변화와 그에 수반되는 정치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분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론에 동의하건 않건 한 가지 분명하게 인정할 수 있는 점은 이 이론이 분명히 "경험적으로 논박가능한" 형태를 띠고 있는 "과학적" 명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론이 "음모"에 대한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분명코 구체적인 특정 인간 집단들일진대, 언제부터인가 현대 사회과학은 몇 가지 범주의 사회적 행위자들 ? 계층, 성, 지역, 인종, 민족 등 ? 만을 설정하고 그 각각의 행동을 깔끔하게 이론화하여 그러한 교과서적 법칙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된 몇 종류 행위자들 이외의 집단의 의도와 행동을 강조하게 되면 대번에 "음모이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만다.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맹점이 생겨나게 된다. 사회 변동과 그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집단, 즉 "지배 계급"의 의도와 행동에 대한 연구가 빠져 있는 것이다.

한번 묻자. 쌍동이 빌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또 조만간 어디어디에서 벌어질 사태들 또 크게 오르락내리락할 석유 가격과 그 여파가 그렇게 해서 설명될 사태인가? 오히려 부시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 또 전쟁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자본 분파의 의도와 행동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닌가? 자본의 축적에 따라 모든 정치 사회적 역동이 크게 좌우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 "지배적 자본"의 행태를 연구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가 아닌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각종 수요 공급 곡선과 생산 함수의 분석, 국가 관계의 게임 이론적 분석에 집착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또 뚫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오히려 현대 사회과학에 오염되지 않은 18세기의 아담 스미스는 자본가 계층을 설명하는 데에 "음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업종의 자본가들은 잘 만나서 놀고 즐기지도 않지만, 일단 만나서 대화가 벌어졌다하면 반드시 공공에 대한 음모와 가격 인상 책략으로 귀결되는 법이다"(A. Smith, Wealth of Naitons, (New York: Modern Library, 128p.))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는 카이제르 소제라는 신비의 인물이 나온다. 국제 범죄계의 지존으로 여겨지는 그이지만 전혀 꼬리가 잡히지 않아 꼭 봉래산 신선마냥 실재 인물인지 조차 의심되는 존재이다. 그에게 놀아나는 범죄자들 또 그를 잡아보려는 경찰의 숨바꼭질이 숨차게 벌어진 뒤, 경찰은 카이제르 소제가 실재 인물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다음의 진리를 뼈아프게 배운다. "최대의 음모는 카이제르 소제가 가공 인물이라는 소문이다".

"음모이론"은 이성적 상황 판단의 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음모"에 대한 과학적 연구마저 무작정 "음모이론"으로 몰아부치는 태도야말로 또 하나의 "음모이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의식적으로건 아니건 그 "음모"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말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필자 홍기빈은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소장학자로, 외국에 체류중이면서도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슈에 관한 통찰력 있는 글을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보내며 많은 반향을 얻고 있다. 프레시안 연재글의 제목 '현미경과 망원경'은 정치와 경제, 국제와 국내의 이분법을 넘나드는 글을 쓰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와 논문「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外>(책세상) <자본론을 넘어서>(백의)가 있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