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내 중국의 급부상과 쇠락하는 미국의 영향력...IHT


지난 주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3개국을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美국가안보보좌관에 있어 최대의 주요의제는 단연 북한 核문제였다. 그러나 北核사태가 여전히 어려움을 주고 있는 가운데 더욱 중대한 난제가 부시행정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미국과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안이다.

바로 그 중심에 동북아의 핵심 중재자로서 급부상하는 중국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부시행정부로선 중국의 이 같은 새로운 역할과 관련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강화되는데 반해 미국의 역할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미국 측에 분명 달가울 리만은 없겠지만 부시행정부가 현 상황을 보다 빨리 받아들임으로써 그에 대한 대처 또한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안타깝지만 부시행정부는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사실상 간과한 측면이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너무 집착한 탓이 크다. 무역통계수치를 보면 동북아지역의 역학관계 변화를 잘 이해할 수가 있다. 향후 6년 이내에 중국의 경제력은 현 세계 3위에 해당하는 독일의 2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에 이르러선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마저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일본은 미국보다 중국과의 교역(수입부문)규모가 더 늘어난 상황이다. 세계 12위 경제국인 한국의 경우 중국은 최대의 교역대상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불가항력적인 동북아 패권의 이동현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제상의) 통계수치는 왜 중요한 것인가? 중국의 마오쩌뚱 前 주석은 '힘이란 군사력에서 나온다'(power grows out of the barrel of a gun)고 했지만 오늘날 중국 지도부는 바로 그 힘이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 또한 이를 잘 깨닫고 있다. 경제안정에 있어 중국이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중국에 기꺼이 반대입장을 보였던 자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미국측의 입장에 반하게 되는 경우에도 말이다.

부시행정부는 단극화된 세계에서 여전히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은 이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양극화된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이나 중국 모두 중요한 강대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근본적인 역학관계의 변화는 북핵사태 해결의 핵심중재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이나 일본이 중요한 안보현안과 관련해 미국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은 소위 포용정책을 언급하며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내년에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부는 북한과의 교역과 상호 군사접촉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홀로 우두커니 남겨진 모습이다. 과거 약 60년 간이나 영향력을 지배했던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역할지위 상실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지역 내 동맹국의 지지 없이 대북 강경정책의 행사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부시행정부는 지난 달 6자회담에서 기존보다 더 확대된 보상안을 제공했지만 솔직히 늦은 감이 있다)

중국의 경제적 급부상은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수반하고 있다. 이는 또 미국이 동북아지역에 대해 매우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더욱 진전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대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 편에 서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값비싼 대가를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문제 대처와 관련해 이미 이 같은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현상이 또 재현될 것이다. 게다가 인도의 경제력이 중국과 일본을 추월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에 미국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모순되긴 하지만 골치덩어리 북한의 존재가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북핵문제 대처를 위한 동북아 안보기구를 신설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 회복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동북아 안보포럼은 우선 6자회담 참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으로 구성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나라들, 심지어 북한도 이 포럼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북아 안보포럼은 안보관련 현안을 비롯해 무기통제, 위기관리, 갈등예방, 갈등 해소, 그리고 신뢰구축방안 등 여러 가지 안건을 다루게 될 것이다. 동북아 현안에 대해 초점을 맞춤으로써 보다 광범위한 차원의 아세안 지역 포럼(ARF)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적절한 틀이 마련될 때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주도권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다른 회원국들의 의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일 때 이것이 가능하다) 다행인 점은 한 때 다자차원의 기구조성에 반대의견을 보였던 중국이 최근 이를 적극 수용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동북아 안보포럼 신설에 대한 여건이 상당히 무르익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북한의 핵프로그램 포기를 조건으로 북한체제의 안전보장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 덧붙여 중국과 일본, 러시아, 한국, 미국이 동의한 서면상의 체제안전보장 확약은 궁극적으로 이 지역 안보포럼의 형식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동북아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수십 년 간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들의 목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 나라들의 경우 미국의 지시나 권고를 받아들이는 데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미국이 이 같은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동북아 주요국의 이익을 한데 연계시킨 새로운 지역포럼을 수용하지 못할 경우, 주요현안의 선택과 관련해 동맹국들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이는 무려 10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세계적 경제강국이 세 나라나 있는 동북아 지역에 있어 미국의 입지와 이익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수년간에 걸쳐 동북아 라이벌 국가들의 반목관계 해결을 위한 일종의 평형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같은 갈등관계가 있었다 해서 이들 나라가 서로 협력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미국편에 서든지 아니면 서로 협력체계를 갖추든지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오늘날 그다지 위험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이들 나라의 지지를 미국이 얻어내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매우 중대할 것이다.

필자인 제이슨 T. 샤플런은 1995년∼1999년까지 한반도에너지기구(KPEO)의 정책자문을 지냈으며 공동필자인 제임스 레니는 前 주한 美대사를 역임(1993년∼1997년)한 바 있는 대표적 한반도전문가임

참고자료
"China's Ascent Weakens U.S. Influence," IHT, July 13, 2004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