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아 슬프냐? 나는 아프다! -도끼 (토론 / 미국 뒤집어보기)
2004-06-30(수)(myhome.naver.com/anar)


제국아 슬프냐? 나는 아프다!

『제국의 슬픔』 찰머스 존슨 지음, 안병진 옮김, 삼우반


영화 『스파이 게임』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최고요원 뮈어(로버트 레드포드)가 중국 본토의 교도소에 감금된 자신의 부하 비숍(브래드 피트)을 구하기 위해 비밀스런 작전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뮈어는 CIA 국장의 사인을 위조하고 중국 근처에 있는 미군기지의 특수부대를 동원해 비숍을 구해낸다. 이 영화의 대립구도는 CIA와 전 세계(미국의 다른 부처들도 포함)이고, 중앙정보국 국장(대통령이 아니다!)의 사인 하나만으로 중국본토가 침략을 받는다. 주인공들의 멋있음만큼 현실은 더욱더 위험해진다.

『제국의 슬픔』 찰머스 존슨 지음, 안병진 옮김, 삼우반에서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이미’ 위험해진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미국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해외에 퍼져 있는 수많은 미군‘기지들’을 통해 증명한다. 직접 얘기를 들어 보자. “우리 미국은 50만이 넘는 병사와 스파이, 기술자와 교관 및 그 가족들과 민간 계약자들을 다른 나라들 그리고 5대양 6대주에 나가 있는 10여 개의 항공모함 기동함대에 배치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영토 밖에서 수많은 비밀 기지를 운영해 왔고, 이러한 기지들을 통해서 미국 국민을 포함한 각국 국민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팩스 및 e메일 내용까지 모니터하고 있다.”(15∼16) 실감이 안 나면 이렇게 얘기를 바꿔 보자. “우리는 189개 유엔 회원국들 중에서 153개 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고, 특히 그 중 25개 국에는 대규모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적어도 36개 국과 군사 조약 내지 구속력 있는 안보협정을 맺고 있다.”(p.384) 이 정도면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 국가國歌는 장난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존슨은 왜 하필이면 기지를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를 증명하려 할까? 그가 보기에 군 기지는 현대판 ‘식민지’로 제국주의의 기본동력이다. 현대의 제국은 과거처럼 직접 영토를 점령하지 않고 대신에 남의 땅 안에 배타적인 군사기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 기지는 위에서 봤듯이 본국을 위해 여러 가지 첩보·군사활동을 하며 식민국을 지배한다. 게다가 이 기지는 민간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군산복합체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기지 주변의 토착 문화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우리네 동두천이나 여타 기지촌들처럼). 또 미국의 기지는 오로지 자신들의 상부(군부)에만 복종하고 그 수나 규모를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은폐한다. 자연스럽게 기지가 늘어날수록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데, 존슨은 그런 성장을 측정하는 세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 첫째는 직업군인의 출현과 그들에 대한 미화, 둘째는 다수의 군 장교들이나 군수산업 대표들이 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는 것, 셋째는 군비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존슨은 이런 지표에서 미국이 이미 수준에 도달했다고 비판한다.

존슨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을 조장하는 비밀세력으로 세 가지 권력기구, 즉 대통령과 펜타곤(국방성), 중앙정보국을 지목한다. 이들은 검은 예산을 마음대로 굴리며 힘을 키울 뿐 아니라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정보를 감추거나 허위 정보를 흘려 의회를 농락한다. 그리고 이런 공식적인 권력기구만이 아니라 이들 권력의 변형된 형태인, 하지만 아주 중요한 ‘군산복합기업’이 있다. 현대에서 군산복합기업은 단순히 전투기나 탱크를 만들어 팔아먹는 회사가 아니다. 이제 이들은 군대를 훈련시키고 기지를 관리한다. 존슨은 미군 퇴역 장교들이 세운 비넬사를 예로 든다. “이 회사는 1975년 이래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사우디 방위대를 훈련시키고 있다. 사우디 방위대는 10만 명의 강력한 병력으로 왕정을 보호하고, 정규군으로부터의 위협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몇 년간에 걸쳐 비넬 사는 5개의 사우디 군사 학교와 7개의 사격장, 의료 체계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인력도 지원했다. 그러는 한편 4개의 사우디 기계화 여단과 5개의 보병 여단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갖추게 했다.”(p.186) 더 놀랍게도 이런 군사집단인 “비넬사는 훈련 교관과 용병 및 경찰 임대 사업을 하는 약 35개 민간 기업 중의 하나”(p.186∼187)일 뿐이고 이제 이런 기업들은 “소위 기지 관리 전담회사들”가 되어 “기지의 건설, 유지, 보안까지”(p.196) 책임지고 있다. 거대한 ‘사설권력’이 군사기지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준군사 조직은 민간기업이기에 의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이제 군과 민의 경계는 게릴라들만이 아니라 정규군 속에서도 지워지고 있다.

존슨은 공존의 사슬로 연결된 이런 ‘암흑의 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키는데 그 중심에 군산복합체가 있다고 본다. “군산 복합체는 점점 과잉 생산능력을 가지고 비대해지면서, 더 자주 ‘먹어야’ 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지를 세우게 되면, 새로 세운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새로운 기지가 필요하게 되고, 그리하여 군국주의와 전쟁, 무기 판매, 기지 확장이란 더욱 꽉 짜인 순환이 생기는 것이다.”(p.286) 그래서 존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의 원인도 바로 이 악순환의 사슬에서 찾는다. 흔히 얘기되듯이 이라크 전쟁의 목적이 단지 석유였다면 존슨은 페르시아만 여러 곳에 있는 기지의 병력이나 항공모함 기동함대가 주는 위협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침공했고 상륙하자마자 기지 건설에 들어갔다. ‘기지의 제국’을 완성하기 위해서(현재 미국은 구舊소련 지역에도 여러 개의 기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존슨은 미국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를 한 개인의 성향이나 잘못이 아니라 미국 역사에서 지속적인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 그래서 존슨은 부시에 대한 비판이 클린턴에 대한 향수로 전환되면 안 된다고 본다(부시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공격이 지극히 정당하고 올바르지만 무조건 떠받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 “손자의 논리에 따르자면, 빌 클린턴이 사실상 조지 부시보다 훨씬 더 유능한 제국주의자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은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의지에 따르도록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조지 부시 정부는 모든 정당성의 원칙을 버리고, 힘이 곧 정의라고 하는 관점을 택해야 했다. 팽창 추세에 있는 국가는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위장해야만 자신이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p.341) 사실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언제부터 우리를 협박했는지 생각해 보라. 부시의 등장 이후부터인가? 미국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금력과 무력을 번갈아가며 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존슨은 이런 휘황찬란한 제국도 언젠가는 붕괴를, 붕괴의 슬픔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강력한 제국은 첫째, “항구적인 전쟁 상태가 지속될 것”이고 두 번째, “대통령직이 의회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고, 정부의 '행정부executive branch'에서 일종의 '펜타곤화 된 대통령Pentagonized presidency'으로 변모함에 따라,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실종될 것이다. 세 번째로 이미 갈갈이 찢겼지만 진실성이란 원칙 대신 점차 선전 체계와 허위 정보, 그리고 전쟁과 권력 및 대규모 군대에 대한 찬양이 들어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경제 자원을 점점 더 거대해져 가는 군사 프로젝트에 쏟아 부으면서도 국민들의 교육과 보건, 안전은 무시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될 것”(p.380)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국으로 인한 마지막으로 슬픈 점은 재정적 파탄이다.”(p.408) 과거의 모든 제국이 그랬듯이 미국도 그 붕괴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제국의 붕괴를 기다리는 걸까? 존슨은 기다리지 않고 제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붕괴를 막기 위해 “국민들이 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의회를 특수한 이익을 가진 자들의 포럼으로 전락시킨 부패한 선거법을 의회와 함께 개혁하여, 그래서 진정으로 민주적인 대의 기구로 거듭 나게 하”고 “펜타곤과 비밀정보기관들에 대해 돈줄을 끊는 것이”(p.416)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존슨은 제국의 붕괴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는 제국이 맞이할 슬픔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주장한다.

『제국의 슬픔』은 기지제국 미국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한 책이다. 존슨은 미국이 독재로 변해가는 슬픔, 그로 인해 언젠가 맞이할 붕괴로 인한 슬픔을 우려한다. 그런데 아마도 그는 제국이 주는 고통을 직접 겪을 수 없기에(그는 제국의 시민이다) 단지 슬퍼할 뿐이다. 이건 진솔함이다. 만약 그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고 말했다면, 우리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이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는 뒤에 나올 지젝의 얘기를 들어 보라). 존슨의 과제가 슬픔sorrow의 극복이라면 우리의 과제는 고통agony의 극복이다. 우리는 다가올 슬픔을 우려할 게 아니라 지금도 아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제국의 슬픔』은 이 고통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지만 치유법을 찾아가도록 도움을 준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