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6, 제러미 리프킨 / 이경남 역

인간은 단순한 생존 이상을 추구하는 종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충동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교섭을 넓히고 심화시키려는 것이다. 우리의 문명은 그러한 충동을 만족시키는데 이바지해왔으며 현재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범지구적인 공감을 가능케 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와있다. 하지만 이런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에너지체계가 필요하고, 현재 이 체계는 지구문명의 존속을 시각하게 저해할 수 있을만큼 지나치게 비대해져있다. 우리의 전지구적인 공감능력과 전지구적인 자원소모 능력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주아주 단순하게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저 정도가 적당할 듯 싶다.

이 책은 저 주장을 아주아주 다양한 사례와 예제를 들면서 무려 838page(주석 포함)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다. 전체적인 책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호모 엠파티쿠스
- 생물학적 심리적 측면에서 개인의 발달과 공감능력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의 편견과는 다르게 인간은 공감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진화적인 필요성에 의해 이 능력을 발달시켰다. 자연상태에서 만인에 만인에 대한 투쟁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이기적인 존재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2. 공감과 문명
-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각 시대별 에너지 체계와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관계를 논한다. 인류 문명이 에너지 소모는 커지는 방향으로, ‘우리'라는 개념은 확대되는 방햐으로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3. 공감의 시대
- 우리는 분산에너지체계(중앙집중적인 발전소와는 대비되는 각 건물마다 태양광, 풍력 발전들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소규모로 생산/소비하는 체계)와 분산 컴퓨팅에 힘입어 새로운 수준의 에너지소비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반면에 현재와 같은 화석 연료 중심의 문명을 존손시킬 경우 기후변화와 같은 전지구적인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공감의 문명'이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생명권과 전체 인류에게로 공감의 범위를 빠르게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공감적 유대 관계를 다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기후 변화와 대량살상무기의 증식이라는 형태로 무섭게 속도를 올리고 있는 엔트로피라는 괴물과 충돌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주장을 과도한 예제와 불필요한 사례를 들면서 장황하게 주장하는 책으로 만드는 것은 일부 미국 출판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듯 싶다. 사회과학..이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얕으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에서 이런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류의 책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편이다. 순수하게 독자적인 주장만을 이야기한다면 짧은 논문 한편 정도의 분량이 될까? 가격이야 들어간 종이값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이 긴 책을 읽으면서 들어간 시간대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측면에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무신론자로서 무신론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해 봤다면 이런 측면의 논의를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듯. ‘왜 우리는 홀로 떨어진 섬으로 살 수 없나' 라는 질문에 종교적인 배경 없이 순수하게 논박가능한 사실과 이론만으로 줄 수 있는 답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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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