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9, 무라카미 하루키/김춘미 옮김

사고나서 두 번째 읽은 책. 아마도 2006년 정도에 처음 읽었던 듯 싶다. 독특한 캐릭더와 유머, 그리고 다소 뜬금 없는 섹스, 이 세상 너머 이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형적인 하루키의 소설이다. 읽으면서 내내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떠올랐다. 아마도 액자식 구성과 저 세상에 대한 묘사가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듯.

15세의 소년이 주인공이고 그의 이름은 ‘카프카'이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모친과 누나를 범한다' 라는 저주를 내린다. 그는 집을 뛰쳐나와 방황을 하고 결국 ‘입구의 돌'을 찾아 저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다.

간단한 줄거리를 나열해 보면 결국 이 소설은 ‘통과의례'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15세의 소년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통과의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키는 다양한 신화적인 장치를 활용해서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죠셉캠벨의 저 세상에서 돌아온 변화된 영웅, 트릭스터이자 영혼의 안내자로서의 까마귀 소년, 오이디프스 이야기,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연상시키는 오시마 상, 미로의 이미지 등등...

‘다무라 카프카' 가 모험을 거쳐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른의 삶에 대한 통찰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설에서는 ‘속이 텅 빈 사람들' 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나카타 상, 그렇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속이 텅 빈 껍데기가 아닐까? 밥 먹고, 똥 싸고, 시시껄렁한 일을 해서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고, 이따금 오만코나 할 뿐이잖아? 그 밖에 뭐가 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게 살고 있잖아?... “

“...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 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 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

맥락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공허한 사람들'은 15세의 소년 다무라가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인듯 싶다. 이렇게 공허함의 극단으로 가면 주인공의 아버지인 ‘다무라 고이치'와 같은 사람이 된다. 현실에서 그는 존경받는 조각가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고양이 살해자' 이다. 고양이를 죽이고 모아 알 수 없는 피리를 만들어 권력으로 삼는 순수한 욕망의 화신. 다무라 카프카가 피하고자 했던 운명은 바로 이렇게 공허하게 욕망만 남은 상태로 살아가는 어른이었을 것이다.

다른 편에는 ‘사에키 상'이 있다.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몸은 어른이지만 완전한 행복이 있었던 유년 시절에 고착되 버린 어른. 카프카와 같이 입문의례를 거치지만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 어른이다. 유아적 이상향을 잃어버린 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

그는 ‘입구'를 통과해 저승을 여행하고 통찰을 얻고 자신의 힘으로 현실로 돌아옴으로써 입문의례를 통과한다. 저승은 시간이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삶’ 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욕망도 없기에 어떻게 보면 천국과도 같은 곳이기도 하다. 오로지 ‘현재' 만이 있는 삶. 거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이계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로 돌아오면서 소년은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어" 하고 나는 말한다.
“그림을 보면 알게 돼"라고 까마귀 소년은 말한다. “바람의 소리를 듣는 거야.”

마지막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는 구절은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를 의미하는 것 처럼 보였다. 결국 이 소설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삶의 덧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 이 아닌가 싶다.

“... 나는 이 방에 있는 가장 신성한 서적, 즉 알파벳 순 전화번호부에 맹세코 진실만을 말한다. 인생은 텅 빈 것이다라고. 그러나 물론 구원은 존재한다. 즉, 본디 모든 것의 시작에 있어서 그것은 완전히 텅 빈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고난에 고난을 거듭하며 열심히 노력하여 그것을 줄이고, 끝내는 텅 빈 것으로 만든 것이다. 어떤 식으로 고생을 하고, 또 어떤 식으로 그것을 감소시켜 왔는지는 일일이 여기에 적지 않겠다....”

.. 그녀는 술잔의 얼음을 손가락 끝으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흰 테이블보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제가 죽고 100년이 지나면 아무도 저의 존재 따윈 기억하지 못하겠죠"
“그렇겠죠”

삶은 바람처럼 덧없는 지나감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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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