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의 제자인 마이클 하트와 쓴 공저 '제국'을 통해선진국의 정치ㆍ경제ㆍ군사적 네트워크가 전 지구를 장악해가는 양상을 '제국'(Empire)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세기 등장한 제국은 단연 미국이었다. 미국은 20세기 전반부터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잠식해갔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는 로마제국에 비견될 정도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미국의 힘은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은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고, 금융경색이라는 격랑은 미국호를 좌초 직전으로 몰고 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체제론'을 분석한 조반니 아리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를 통해 이 같은 미국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지닌 내적 모순에 비춰 필연적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축적순환, 네덜란드와 영국의 자본 축적체제 등 13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미국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노바-네덜란드-영국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축적 순환은 노동과 기계 같은 실물 부문의 투자가 증가하는 실질적 팽창국면과 실물 부문의 신규 투자가 점차 중단되고 금융 부문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는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된다.

  특히 금융부문은 헤게모니 국가의 특권적 우위가 있는 부문인데, 이러한 금융적 팽창은 헤게모니의 쇠퇴국면에 반작용하는 요인으로작용하기 때문에 헤게모니의 쇠퇴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다시 한 번 반전하여 자본의 수익성이 상승해 호황을 누리는 국면이나타나는데 이를 '벨에포크'(belle epoque.경이적 순간)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국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실물보다는 금융쪽에 기대는 금융적 팽창국면으로 진입했다는 것.

  즉,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체제를 재편했던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되면서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전환됐고, 이동자본에 대한규제가 제거됐으며, 공공채무의 증권화가 진행되는 등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시작됐는데 이는 미국의 자본의 수익률이 하락하고20세기 초반의 실물적 팽창이 끝나면서 이를 금융적으로 해결하려는 증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1990년대 '신경제' 호황도 결국 '벨에포크'의 또 다른 증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브레턴우즈체제와 발전주의 정책, 초국적기업망, 냉전체제, 국제연합이라는 틀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전개한미국의 세계 헤게모니가 앞선 세계 헤게모니 국가들이 그 정점에 머문 기간에 비하면 매우 짧다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미국의 몰락과더불어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두지만 대서양 연안의 각 국가들이 연합으로 지배하는 방식, 동아시아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등장하는 방식, 그리고 헤게모니 국가가 부재한 카오스의 세계가 그것이다.

  저자는 "영국 헤게모니에서 미국 헤게모니로 이행기에 평화주의적 사회세력들은 장기의 전쟁과 체계의 카오스의 시기로 미끄러져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과거에 불가능했던 것이 지금 가능할지는 열린 의문이며, 그 대답은 우리의 집합적 인간 행위자들에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번역한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장기 20세기'의 중요성은 자본주의의 경향적 법칙을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문제의식과 결합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사적 구조를 설명한데 있다"고 말한다.

   656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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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