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 기사) 대일외교에서 본격 가동된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김종성
출처: http://www.jkim0815.com/

월간<말> 2005년 5월호 기사

* 쉽게 잘 설명되어 퍼왔습니다.

노무현독트린, 대일외교에서 본격 가동





2004 년 7월 21·22일 제주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간에 새로운 합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내 임기 동안에는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거나 쟁점화시키는 것을 가급적 피하려 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노무현은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려 한다”는 국내 여론의 질타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지정을 계기로 촉발된 한일간 외교분쟁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노무현은 대일외교에서 강경하고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입장은 지난 3월 23일 노무현이 이메일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발표한 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하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노무현은 “이제는 다르게 대응할 것”,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일본 과거사 문제를 사실상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노무현의 입장 변화를 그저 ‘변덕의 발동’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자신의 입장 변화의 합리적 사유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는 이러하다.


‘우리 정부가 이제껏 참아온 것은, 일본이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일본 중앙정부의 방조 아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며, 왜곡된 교과서가 다시 부활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일본이 이제까지 해온 사과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일본의 사과가 무의미해졌으므로, 한국도 과거사 문제 등을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노무현의 이 같은 입장은 작년 7월 제주 정상회담 때에 밝힌 입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내 임기 동안에는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간에 새로운 합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가급적’ 피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화적인 발언의 한켠에는 강경책의 가능성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일 공세를 강화한 덕분인지, 최근 수주간의 한일관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 강경하고 정부는 이를 뜯어말리던’ 종전의 양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국민과 정부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속에 대일 강공 드라이브가 진행되었다. 또 이는 중국인들의 호응까지 얻어 한·중 양국의 연합공격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5월을 ‘일제상품 불매의 달’로 선포했으며, 중국 내의 반일시위는 이미 일정한 한계를 넘어선 상태다. 독일 등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일 정도로 사태는 상당히 악화되었다. 거기에다가 이번 사안은 일본의 국제연합(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결코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도 무방하리라 본다.

뜻밖의 사태 전개에 놀란 일본 내부에서는 고이즈미 책임론까지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4월 13일 “독도수호 및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 한국 국회특위 대표단”(단장 김태홍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무장관은 “1945년 이전에 한국에 아픔을 드린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전후문맥을 볼 때에 일본이 완전하고도 진실한 사과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뭔가 도피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본의 다급한 사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적어도 지금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에, 노무현의 강경하고도 단호한 대일외교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의 국민여론은 분명 노무현의 대일외교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를 가질만한 부분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매번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11월에는 대미외교 또는 북핵외교를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대일외교를 통해 종전과는 확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이 뭔가 외교적 비전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그리고 노무현의 공격적 대일외교는 이른 바 ‘동북아 균형자론’(東北亞 均衡者論)과 맞물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노무현이 강경한 대일외교를 구사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살펴보고, 뒤이어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 작년 연말에 표방된 노무현의 외교 독트린을 검토하기로 한다. 동북아 균형자론과 노무현 독트린에 대한 종합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노무현의 대일외교에 대한 인식의 폭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거론한 것은 지난 3월 22일 육군3사관학교 제40기 졸업식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및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러한 발언은, 동북아 균형자론의 궁극적 목표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및 번영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것은 도덕적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는 동북아 균형자가 되기 위한 수단이 바로 도덕적 방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과연 동북아 균형자가 될 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는 한국이 그러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근거로서 강력한 군대,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력, 민주화 실현, 평화 지향적 역사 등을 거론했다.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논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노무현의 인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상이 노무현이 스스로 밝힌 동북아 균형자론의 대강이다.

이 같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놓고 국내의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한-미-일 삼각연대에서 벗어나 중국-북한 편에 기우는 것’이라면서 적지 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러한 입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작년 연말에 23일간(11월 12일~12월 9일)의 북핵 외교투어에서도 그 같은 대외정책의 기조가 천명된 바 있다. 기자는 월간 <말> 1월호에서 이를 ‘노무현 독트린’으로 개념화하여 그 내용을 분석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노무현이 발표한 내용은 지난 연말의 노무현 독트린을 좀더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노무현 독트린이 대일외교 현장에서 본격 가동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독트린이 작년 연말에는 북핵외교에 적용되었지만, 이번에는 한일관계에 적용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럼, 작년 연말에 천명된 노무현 독트린의 내용을 다시 검토함으로써 동북아 균형자론의 함의(含意)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보기로 한다.

월간 <말> 1월호에서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노무현 독트린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를 핵심 요소로 하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은 유럽연합(EU)이다. 작년 12월 6일 프랑스 소르본느대학 강연에서 노무현은 “EU는 ‘평화와 번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며, 유럽은 EU 통합을 통해 제국주의시대의 약육강식과 극단대립을 극복하고 있다”고 격찬했다. 동북아에도 이러한 질서가 필요한 이유와 관련하여, 그는 “과거사의 앙금이 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북아에 또 다시 배타적 국수주의가 등장할지 모르는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날 프랑스동포 간담회에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의 구체적 모형으로서 ‘동아시아 공동체’(EAC)를 제시하기도 했다.

노무현 독트린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한국이 주도하는 도덕적 포용’을 그 수단으로 설정하였다. 노무현이 말한 ‘도덕적 포용’이라는 것은 덕치(德治)에 기반을 역내 통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 포용의 주체로서 한국을 거론했다. 그는 소르본느대학 강연에서 “프랑스는 전쟁의 고통을 받은 국가이면서도 독일을 포용하는 도덕적 결단으로써 과거를 청산했으며,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면서 EU 통합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프랑스를 모델로 한국도 동아시아공동체 통합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노무현의 ‘희망사항’이다.

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거론했다. 첫째로, 중·일 양국은 동아시아를 주도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아를 주도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불안에 떨고, 일본은 과거의 원죄 때문에 주변국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한국이 평화적인 역사를 갖고 있고, 독창적인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으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인데다가,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라는 점 등을 언급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은 강대국은 아니지만 동아시아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소르본느대 강연)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상이 작년 연말에 노무현이 밝힌 외교 독트린 즉 노무현 독트린의 대강이다. 이번 3월 22일에 발표한 동북아 균형자론과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뀐 게 있다면, 독트린의 명칭이 동북아균형자론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점과, 이번에는 그 적용범위가 대일외교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3월 22일에 나온 동북자 균형자론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반노(反盧) 진영에서는 “사석에서 우연히 나온 이야기를 외교정책으로 내세울 수 있느냐?”면서 그 의미를 폄하하기도 하였지만, 노무현 독트린은 위와 같이 상당히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이 북한-중국 쪽으로 기우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노무현의 의도는 분명 거기에 있지 않다. 리빈 주한중국대사가 노무현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한국 속담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미리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다. 소르본느대학 강연에서 노무현이 밝힌 바와 같이, 노무현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도 동아시아를 주도하기에는 부적절한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노무현의 인식이 그러할진대, 노무현이 중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려고 한다는 것은 노무현의 의중을 완전히 오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은 ‘노무현은 동북아의 중립자를 꿈꾸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주도국가를 꿈꾼다’는 점이다. 그 점은 작년 연말의 외교투어에서도 이미 강조되었고, 이번 동북아 균형자론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동북아 균형자’에서 균형(均衡)이라는 표현의 뉘앙스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균형’에서 ‘형’(衡)은 ‘저울’을 의미한다. 衡의 고대적 용례를 음미해보면, 균형자가 단순히 중립자가 아니라 사실은 ‘주도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衡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것이 권력(權力)의 權이다. 權 역시 본래 저울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그럼, 어떻게 ‘저울’이 ‘권력’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전화(轉化)되었을까? 그것은 저울이 ‘판단의 기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특권 중 하나는 ‘판단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국가가 그 통치지역에서 최고의 판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동아시아 고대사회에서는 저울이 권력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제 등의 고대 동아시아 제왕들이 중앙집권화의 수단으로 도량형 통일을 중시하였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사용하는 균형 즉 저울이라는 표현 속에도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노무현은 한국의 비전을 영세중립국에 두고 있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주도국가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의 이미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무현의 대일외교의 배경을 검토하기 위하여 동북아 균형자론(혹은 노무현 독트린)을 살펴보았다. 그럼,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무현의 대일외교의 배경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소르본느대학 강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노무현은 일본이 동아시아 주도국가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위에서 누차 강조한 것처럼, 그는 ‘한국이 도덕적 포용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이 보인 일련의 행보는 자신들이 동아시아 주도국가가 되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일본은 납치자문제와 유골문제를 빌미로 북한을 몰아세웠다. 일본은 그 과정에서 북한을 부도덕한 국가로 몰아세움으로써 자신들의 부도덕성을 은폐하려 했다. 자신들의 부도덕성이 은폐되지 않으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은 유골 감정결과를 조작하면서까지 북한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그리고 야스쿠니참배문제나 교과서문제 등을 통해, 일본은 “우리는 반성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의 태도를 내보였다. 거기에다가 일본 지도부는 지방의회를 내세워 한국의 영토주권까지 위협했다. 그런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면서 의욕을 불태우자, 노무현은 일본의 무법 질주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일본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렸으며, 미래마저 불안하게 느꼈던 것이다’(‘국민에게 드리는 글’).

이러한 우려에 기초하여 노무현은 일본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의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 하고 왜곡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 등은 지난날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면서 맹비난을 퍼부었다(‘국민에게 드리는 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동북자균형자론(노무현독트린)에서는 도덕적 포용을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잘한 점은 칭찬하고 못한 점은 꾸짖으면서 상대를 덕으로써 포용하겠다는 것이 바로 도덕적 포용이다.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노무현은 일본의 부도덕한 면들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일본에 대한 노무현의 도덕적 비난은 민족공조와 관련하여서도 일정한 의미를 띠고 있다. 북한을 범죄자 취급하는 일본에게 “너희는 원초적 범죄자”라는 도덕적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북한에 대한 일본의 공격을 차단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노무현의 일본 공격은 한-미-일 삼각연대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국의 대북압박과 관련하여서도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도덕적 비난은 한-미-일 삼각연대가 그 근저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면서 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노무현의 선택이 설령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욱 더 강고한 민족공조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일본에게 도덕적 비난을 퍼붓는 과정에서 노무현이 사용한 방법 중의 한가지는 독일과 일본을 대조하는 방식이었다. 4월 13일 독일 연방의원들이 주최한 만찬에서 노무현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독일 예찬론’을 역설했다.


“나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존중합니다. 독일은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으로 반성할 줄 아는 양심 및 용기와 그에 상응하는 실천을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지금까지도 제2차 대전 관련 피해를 배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들과 협의하여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노력은 주변국들과의 화해는 물론 EU 통합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소르본느대학 강연에서 피력된 것처럼 노무현은 프랑스를 모델로 동북아 주도국가가 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방식을 칭찬하면서 독일의 노력이 EU 통합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프랑스와 독일은 제2차 대전 피해자-가해자의 관계다. 노무현이 높게 평가한 것은 ‘피해자가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가해자의 협력을 얻어 역내 통합을 이룩하고 있는 점’이다. 노무현은 그 같은 모델을 한일관계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식민통치 피해자인 한국이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가해자인 일본의 협력을 얻어 동아시아 통합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협력을 얻는 방법으로 그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도덕적 포용이다.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노무현이 일본에 대해 정력적 공격을 퍼부은 배경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은 한국 주도의 도덕적 포용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연다는 자신의 외교독트린(동북아균형자론)을 최근의 대일외교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