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2005-06-23 14:14]

[머니투데이 송기용 기자]"900 포인트가 무너지면 사려고 했었는데..."

연초 급등 시점에 주식을 사지 못한 30대 회사원 강남길(가명)씨는 3월에 종합주가지수 1000이 무너지자 매수기회를 노렸다. 미국 금리인상과 북핵위기 등 잇따라 터지는 악재를 볼때 900선 붕괴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주가는 좀처럼 하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3달만에 다시 1000포인트를 회복했다. "이상하네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인데요. 이 정도면 벌써 800포인트대로 내려 왔었어야 하는데.."

한국 증시가 바뀌고 있다. 주가 저점이 900포인트대로 올라오면서 영원한 화두이던 1000을 넘어 꿈같은 지수 2000을 향한 출발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주식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강씨처럼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얽매인 과거의 경험만으로 이번 장을 진단하고 예측하려 한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 증시의 변화는 경제구조에서 우선적으로 찾을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심한 경기변동성을 보여줬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그대로 노출됐다. 경제성장률이 들쭉날쭉해 장기투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수습한 한국 경제는 2004년 이후 3-5% 수준의 안정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한국이 고성장을 멈춘 것은 분명하다. 90년대까지 보여줬던 연평균 7% 이상의 고도성장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고성장보다는 안정성장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영국도 구조조정이 끝난 1992년 이후 7년간 2.5%-4%대의 성장세를 유지했고 이 기간동안 폭발적인 주가상승을 경험했다. 같은 이익이라도 안정적으로 유지될때 주가가 상승할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게다가 증시에 질적으로 우수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과거처럼 단기 시황에 따라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금이 아니라 장기투자를 염두에 둔 돈이 들어오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4%대의 저금리가 정착되면서 주식투자를 매력적 대상으로 만들었다.

과거 1000포인트를 돌파할때의 금리는 10%-15%대로 현재 금리와 비교할수 없을만큼 높았다. 따라서 안전한 투자대상을 놔두고 굳이 위험을 안고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저금리시대가 확고해 지면서 안전한 은행 예금과 채권형 수익증권에 묻어뒀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받고 은행에 있기 보다는 다소의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작년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적립식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이같은 자금이동의 대표적 사례다.

투자대상인 기업의 체질도 달라졌다. 외환위기는 한국의 경영환경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철석같이 믿고 외형성장에 매달렸던 기업들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안정성,수익성 확보에 집중했다. 그 결과 국내 상당수 기업은 선진국 수준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을 구축했다.

믹룩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4년 전세계에서 10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올린 251개 기업 가운데 미국이 119개로 1위, 영국이 16개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삼성전자,포스코,한국전력 등 13개사가 10억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올려 일본,프랑스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수익성 개선은 기업 경영상태를 판단하는 대표적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기업의 ROE는 2002년 이후 12% 이상에서 지속돼 구조개선과 수익성 증가가 일회성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과거 1000포인트 돌파 당시 ROE는 금리보다 현저히 낮아 금리보다 이익이 발생하지 못하는 버블(거품) 주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의 수익창출력이 금리보다 훨씬 높아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가가 싸다는 점도 주가 상승을 점치게 한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2005년 한국의 예상 PER는 7.4배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과거 주가와 비교해도 현재 수준은 낮은 편이다. 1000포인트를 넘어섰던 1994년과 1999년 PER는 각각 20배,15배로 지금보다 2-3배 높은 수준이었다.

기업지배구조 투명성과 주주중시 경영이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차이점이다. 소버린자산운용 등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강화되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안정적인 지분 확보와 함께 높은 배당,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중시 경영을 펼치고 있다. 경영권을 지키려면 주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확보된 기업의 풍부한 잉여현금이 이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했다. 배당으로 은행이자 수준의 안정적 이익을 얻게된 투자자들이 자연스럽게 장기투자로 돌아서 과거 1000포인트 때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송기용기자 sky@moneytoday.co.kr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