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2013. 10. 9. 19:35 from Lectura






- 2013.9, 박해천 지음


오늘날 우리사회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된 아파트에 대해서, 그 시작부터 더듬어보는 '아파트 역사서' 랄까? 논문 형태로 쓴 글들을 다시 소설 형태로 재창조한 방식이 독특하다. 각각 '픽션' 과 '팩트' 라는 대주제로 정리했는데, 일단 '팩트' 부분에 들어간 내용들은 건조하게 과거 아파트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분석하고 있다. 


'픽션' 부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 시선의 모험

 2. 아파트의 자서전

 3. 영웅시대: 어느 강남 1세대의 회고담

 4. 화양연화: 꽃무늬 이야기


미학적인 견지에서 아파트가 계승한 관점. 한국에 들어온 아파트의 역사. 아파트, 특히 강남의 아파트와 함께 삶을 살아온 가상적인 어느 중산층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아파트라는 공간을 두고 자연적인 혹은 키치적인 인테리어 양식의 흥망성쇠. 이렇게 네 가지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준다. 


아파트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과소비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고, 과거 생활양식과의 충돌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생활방식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면서 베이비부머세대의 신분상승 욕구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파트는 한국에 최적화된, 심지어 투기수단이 되어버린 주거양식의 하나가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키고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싶다. 아파트 없는 서울, 강남을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나거나, 청장년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아버지세대에게 아파트란 무엇일까?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아파트란 평생 일해도 구매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우리세대에 비해서, 전쟁의 어려움을 알고 있고, 한두칸 짜리 집에서 많은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잠든 기억이 있는 그들 세대의 관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관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거의 처음으로 그 세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녀던" 세대, "윗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자라났고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고 할 수 있는 세대. 그들의 삶은 분명 내가 살아온 삶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지긋지긋한 구세대의 보수정당 사랑이라든지, 지나치게 물질만능적인 관점 등에 대해서 조금은 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행태'가 정당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랄까.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과거에 아파트를 사고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주변에서 인정받고 자산 증식을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좋은 시절은 지나갔고, 다시한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런 부침의 배후에는 아파트가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아파트와 함께 일어섰지만, 우리 아들 세대는 아파트의 무게에 짓눌린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중이다. 우리사회는 언제까지 이 아파트라는 허상에 매달려야 할까?



'팩트' 부분 목차


 1. 마포아파트: 주거모델의 실험실

  - "생활의 혁명"

  - 좌식생활 vs 입식생활

  -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도래

  - 개량 부엌의 문제들


 2. 한강맨션: 현대적 문화생활에 대한 동경

  - "구름 위의 별세계"

  - 실내장식 붐

  - 입식 부엌과 식모 방

  - 쇼핑과 여가

  - 한강 개발과 아파트 프리미엄


 3. 사물의 세 가지 질서

  - 피엑스의 판타스마고리아

  - 가난의 문화, 버네큘러 디자인

  - 메이든 인 코리아


 4. 강남의 아파트 단지들: 중산층 시대의 개막

  - 평범치 않은, 그러나 평범한 중산층

  - 스위트 홈의 이미지

  - 제2의 거실, 시스템키친

  - 안방에서 침실로

  - 여가와 쇼핑


 5. 분당과 용인: 포스트 강남의 모델하우스

  - 분당

  -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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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