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 장경렬 역

제목처럼 알쏭달쏭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꽤나 재미있는 책. 원래는 이태원 whatthebook에서 발견해서 원서로 읽었으나 이번에 번역본을 읽고나니 내가 처음 읽어서 받아들인 내용은 원래 책의 반 밖에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작품을 잘 번역한 책은 느른한 오후의 아이스커피 한 잔 같은 즐거움이다. ‘괴델, 에셔, 바흐'와 같이 원래 작품의 가치를 깍아먹는 번역이 있다면 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경우 원래 작품의 뜻을 잘 전달하면서도 접근을 용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 철학서이다.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완결되는 형태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가치'이다. 부제도 ‘가치에 대한 탐구'.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란.. 어떤 행위 혹은 산출물과 다른 행위 혹은 산출물을 구분짓는 특성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보다 저것이 우수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가?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별도의 설명 없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잘 씌여진 글과 잘못 씌여진 글을 대할때와 같이..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혹은 좋은 글과 나쁜 글을 어떻게 구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가치를 정의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가치는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상이 아니다. 가치는 개개인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예전 그리스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가치-아레테 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아레테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도' 역시 같은 의미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돈'이나 단순한 ‘인기'를 위해서 자신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만족이랄 수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일을 했고,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현대에 와서 이와 같은 삶의 태도가 가능할까? 저자가 말하는 가치를 따르는 삶의 방식은 몰입을 연상시킨다. 결국 질문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때 ‘돈’을 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우리의 삶은 단지 ‘돈’을 위해 일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질', ‘도', ‘아레테', ‘몰입' 그 무엇이든... 비판적으로 보면 자기만족이다. 하지만, 결국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자신이다. 이왕이면 남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보다는 내 스스로 결정한 가치를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 이것은 단순하게 더 좋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기반을 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철학 일 수 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것을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묻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제서야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모두를 그 부분으로서 내포하는 ‘이름 없는 것'은 형체를 꿈군다. 그렇다면 모든 형체가 소유할 수 있는 최고의 속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이름 없는 것'은 하나의 예술가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선악의 여부가 아니라 미학이다. ‘꿈꾸는 자'들 중 강대한 자, 악 또는 추에 강한 자들과 싸운다는 것은, 현자들이 삼사라와 니르바나의 관점에서 무의미하다고 가르쳐온 일과 싸우는 일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균형 잡힌 꿈을 꾸기 위한 행위이고, 리듬이나 포인트, 균형과 대조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싸우는 일이다.”

혹시 젤라즈니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나서 저 구절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으나 신들의 사회가 67년도에 쓰였고, 선...은 74년도에 쓰였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는 듯 싶다. 그렇다면 진리보다 미학을 추구한 것은 저 시대의 사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진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이성적인 관점은 과거 인간들이 꿈꿀 수 없었던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이성 혹은 과학의 유용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이성의 기준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이라는 것이 작가의 통찰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를 유용성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어떤 것은 유용성 혹은 진리의 관점이 아니라 개개인의 가치에 기반하여 판단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진리가 누구에 의해서나 공유되는 불변의 진리라면 ‘미', ‘가치' 는 일정부분 주관적인 기준이다. 남들이 공인해주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서 삶을 살아가라. 하지만 내가 정한 기준은 말 그대로 주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추의 관점에 따라 결정되는 주체와 객체를 넘어선 무엇이다. 바로 그게 우리가 삶을 살아나가야하는 태도인 것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