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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3.22 올재 도덕경
  3. 2013.03.30 레 미제라블

채털리 부인의 연인

2024. 4. 20. 19:02 from Lectura

 

- 2024.3.24,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이미선 옮김

 

로맨스 소설을 가장한 문명 비평서. 야하다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로맨스 소설? 사용되는 단어가 다소 직접적이어서 그렇지 파격적으로 야한 내용은 없다고 봐도 좋을듯. 

작가가 이야기한 그 시대의 문제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한 문제이다. 

 - 문명사회는 미쳐 있었다. 돈과 소위 사랑이라는 것이 사회의 두 가지 큰 광증이었다. 돈이 단연 첫 번째 광증이었다. 개인은 각자 따로따로 미쳐서 돈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주장했다. 
 - 암캐 여신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개들은 크게 두 무리가 있었다. 하나는 암캐 여신에게 오락과 소설과 영화와 희곡을 바치는 아첨꾼 무리였고, 다른 하나는 훨씬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야만적인 족속으로 고기, 즉 돈이라는 진짜 알맹이를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 ‘돈만 생가카지 맘씨다. 필요한 것들로 마라자면 우리에게는 거의 다 이씀니다. 돈 때문에 살지 맘씨다’

작가가 일찌감치 예상한 바와 같이 산업화 이후 다른 삶의 목적을 갖지 못한 현대 문명은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고 있다. 가정이라는 말은 따뜻한 의미를 잃고, 그냥 모여사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쥐어짜이고, 그렇게 번 돈을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교육을 시키기 위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아파트를 사서 한몫 잡기 위해 소비한다. 그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지출이라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하고 있다며, 위에 서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야 한다며, 그렇게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정당화 한다.
 
  - 코니가 보기에 좋은 말은 전부 그녀 세대에게서 소멸되어 버렸다. 사랑, 기쁨, 행복, 집, 어머니, 아버지, 남편 같은 역동적이고 근사한 말들은 지금 반쯤 죽어 있었고 날마다 죽어 가고 있었다.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일 뿐이고, 사랑이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기쁨이란 즐거운 찰스턴 춤에 쓰는 말이고, 행복이란 점잔을 빼며 남들에게 허풍을 떨기 위해 사용하는 위선적인 말이며,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개인일 뿐이고, 남편이란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하는 남자였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에 의하면 남자는 다시 한번 남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자들도 여성스러워질 것이다. 모든 돈을 쫓는, 암캐 여신을 쫓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일그러져 있다. 보기 흉하게 돈의 노예가 된 삶.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결합을 통해, 관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황당한 소리처럼 들린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차이를 아는가? 두 유인원 종류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가깝다. 처음에 학자들은 둘을 같은 종으로 구분했다. 둘다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며 식습관이나 외양이 비슷하기 때문인데, 사회적 협력을 위한 행동전략에서 차이를 보인다. 침팬지는 인간과 비슷하다. 폭력, 위협, 외교 등의 전술을 활용한다. 이에 반해 보노보는 섹스를 상호 협력의 수단으로 삼는다. 

로렌스의 주장이 그렇게 황당하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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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재 도덕경

2015. 3. 22. 11:27 from Lectura




- 2015.3, 노자/이석명 옮김


개인적으로 노장사상 알기의 일환으로 시작한 3부작 독서의 첫걸음. 도덕경, 장자, 열자의 순으로 읽어나갈 계획인데, 일단 도덕경을 완독했다. 


국가의 운영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수련 방법까지도 포괄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중간 중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구절이 있어서 영문 번역판을 대조해 가면서 보았는데, 이 ‘도덕경’ 이라는 책은 번역자에 따라서 그 해석이 무척이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자에 따라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 중 상당 수는 내공 수련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더 잘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곳곳에서 호흡법, Bandha를 암시하는 구절이 나타난다. 

 -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게 바로 신비한 암컷의 모습(6장)

 - 숨을 들이쉬고 내쉼에 있어서 암컷처럼 고요히 할 수 있는가?(10장)

 - ‘구멍'을 틀어막고 ‘문’을 닫으면 평생 수고롭지 않을 것이나 구멍을 열어 놓고 일을 이루려 한다면 평생 완수하지 못할 것이네(52장)


물론 이와는 별도로 이 책이 국가운영 및 개인수양에 대한 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노자가 이야기하는 ‘도’가 워낙 애매하기 때문에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국가 운영론은 ‘도’와 ‘무위’ 이다. 백성을 억지로 누르거나 기준에 맞추어서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라는 것이다. 군사를 통해 지나친 국토 확장도 꾀하지 말고, 국가를 작게 유지하라 등.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강아지를 기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같다. 강아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주인의 원하는대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가진 본성에 가장 잘 맞는 형태로 기르면 문제점이 사라진다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는 제목의 EBS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이 책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노자 사상의 특징은 역설 혹은 무위이다. 즉, 세상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 어떤 것(부, 명예, 권력)을 얻으려 하고 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노자는 사람들이 각자 노력을 하면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사람들의 행복을 방해한다고 본것 같다. 때문에 행복하게(도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그쳐야 한다. 자연이 인간과 사물에 부여한 기본적인 질서(도)를 따라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본것이 그의 주장이 아닐까? 


역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진 도덕경이 온전히 노자의 저작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는 최근에 죽간본이 발견되면서 더욱 확실해 졌다고 하는데, 시대를 거듭하면서 후대 사람들이 부분부분 첨가하거나 수정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온전하게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피르시그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이야기한 Quality와 ‘도’의 관계는 어떨가? 도의 특징에 대해서 노자가 한 묘사는 피르시그의 ‘Quality’와 상당히 유사하기는 하지만, 유사점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듯. 해석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도덕경 읽기의 재미 중 하나 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원전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경우이고 나처럼 2차 해석에만 의존하는 경우에는 즐기기 힘든 묘미이다. 


전체적으로 참 뛰어난 경전이다.. 라는 감동을 얻지는 못했고,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책이구나 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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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레 미제라블

2013. 3. 30. 15:01 from Lectura




2013.3.26, 빅토르 위고/이형식

작년 연말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에 겨워 뮤지컬 10주년, 20주년 기념 공연을 모두 섭렵한 뒤에 냅다 원작까지 구매해 버렸다. 구매 당시에 선택이 3가지가 가능했는데, 각각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 그리고 동서문화사가 그것이다. 일단 다소 고전적으로 번역된 펭귄클래식을 선택했는데, 소설 자체가 예전 배경이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번역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듯.. 

5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이북으로 구매해서 가격 부담은 적었다는 점이 쉽게 지갑을 열게 만들었던것 같은데, 사고나서 읽다보니 이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저자의 장광설에 질릴 정도. 1권의 반 이상을 뮤지컬에서는 잠깐 나오는 주교의 이야기로 채운다. 이 주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얼마나 소탈하고 등등… 그 덕에 주교가 그 처럼 파격적으로 장발장을 용서한 상황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긴 했으나, 5권 전반에 걸쳐서 이 느린 진행은 그대로 계속된다. 단지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다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1789년의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겪고 나서 다시 한번 왕정을 거치게 된 1840년 무렵의 프랑스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참으로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사회상과 그 격변의 시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평면화된 역사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그 당시의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창을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의 반동에 대해서 역사책으로만 읽으면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통해 그 역사적 격동을 헤쳐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작가 스스로 아래 구절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 독자들 앞에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체나 부분 할것 없이, 간헐적 중단이나 예외 혹은 약화되는 현상 등이 어떠하건, 악으로부터 선으로의, 불의로부터 정의로의, 거짓으로부터 진실로의, 밤으로부터 낮으로의, 욕망으로부터 양심으로의, 부패로부터 생명으로의 행군이다.    -레 미제라블 5권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종교 및 비참한 상태로부터의 결별을 열망하는 작가의 사상을 느낄 수 가 있다. 결국 장발장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저지르고 오늘날 말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장 극단적인 악의 상태로 타락했지만, 단순한 '종교' 가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구원받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구원이 사랑에 의한 깨달음이라면 사회적 차원에 대한 구원은 바로 진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듯 하다. 하지만, 그 진보는 한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가끔씩 뒷걸음칠 때도 있다. 

백성이 원하지 않는 한, 백성으로 하여금 얼떨결에 서둘러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백성의 손을 억지로 이끌려 하는 이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 레 미제라블 5   

"미래가 도래할까?" 그 많은 무시무시한 그늘들을 볼 때마다, 특히 이기주의자들과 비참한 이들을 정면으로 대할 때마다, 누구든 거의 그러한 회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유지해야 하지만, 늘 이 믿음에 반대되는 실례들을 보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시야를 가까운곳만 바라보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 

능란함만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째째함이 있다.   -레 미제라블 4권

부유한 젊은이는 경마, 사냥, 개, 담배, 도박, 좋은 식사 등 화려하고 상스러운 오락거리를 가지고 있는 바, 그 모든 것들은 영혼이 고결하고 섬세한 측면을 희생시켜 가며 자기의 천한 측면으로 하여금 몰두하게 하는 것들이다.  -레 미제라블 3권

교조 속에서 화석이 되었거나 이윤에 의해 문란해진 족속들은 문명을 이끌어 가는 데 적합치 않다. 우상이나 금화 앞에서 굽실거리다 보면, 걷는 데 필요한 근육과 전진하는 데 필요한  의지가 쇠약해진다.   - 레 미제라블 5권

끝으로 노동에 대한 작가의 다음 말은 곱씹어볼만 한다. 결국 우리는 죽는 날까지 우리가 먹을 빵을 벌어먹어야 한다. 비록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행복한 상황이 있지만 이는 결국은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은 곧 법일세. 그것을 권태롭다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형벌로 그것이 주어질 걸세. 자네가 노동자 되기를 원치 않을 경우, 자네는 노예가 될 걸세.  - 레 미제라블 4권
 
길고긴 5권의 독서가 끝나갈 무렵.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던 장발쟝의 삶이 끝나갈 무렵에야 뮤지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힘의 정체,내가 뮤지컬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 소설의 저자인 빅토르 위고의 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독서였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은 전체 독서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묘한 효과가 있다. 

… '레 미제라블'은 자비와 정의라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양날 검이다. 가난과 압제 속에서 살던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되, 언제 어디에서건 잠복하여 우리 사회를 노리고 있는 집단들에게는 좋은 선동의 도구 내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작품을 웬만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정의라는 칼날이 자칫 헤픈 자비와 미신적 몽상에 감싸여 희미해질 위험도 있다… .이제 우리의 주변에, 미리엘 주교나 쟝 발쟝을 닮은, 혹은 닮은 척하는 이들은 상당히 많다. 또한 앙졸라처럼, '진보'라는 어설픈 깃발을 휘두르며 가난한 사람들 편인 양 스스로를 내세우는, 별로 정직하지 못한 지진아들도 지나치게 많다. 

바로 이 옮긴이의 말이 '레 미제라블'의 힘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발표된지가 150여년이 지난 책인 데도, 그 영향력을 경계하는 글을 옮긴이가 추가하게 만드는 힘. 아직 우리는 빅토르 위고가 염원한 문명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며, 그 때문에 이 작품이 단지 박물관의 전시물과 같이 소중한게 아니라 오늘 날에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폭약처럼 취급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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