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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a

이성과 감성

by 중년하플링 2026. 2. 7.

 - 2026.2 제인 오스틴 / 권민정 옮김

 

'오만과 편견'을 재미있게 읽고, '엠마'에서 중간에 포기한 뒤, 세 번째로 집어든 제인 오스틴의 소설. 1800년대 초 리젠트 시대의 영국 상류층의 일상과 그 당시 여자들이 결혼 및 연애에 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 전자에서는 현재와의 차이점이, 후자에서는 현재와의 공통점이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제인 오스틴 소설 읽기는 여러가지 의미로 즐거웠다. 

 

당시 상류층. 이 소설의 대상이 되는 계층은 귀족 및 젠트리라고 불리는 중산층이다. 중산층이란 하인을 두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계층으로 일부는 노동소득으로 살아가지만 대부분은 상속한 유산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살아간다. 이 계층에 진입하기 위한 최소 년 수입은 일년에 1000파운드. 이 정도 수입이면 가족이 두어명의 하인을 두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이야기 되는 '재정적 독립'을 이룬 계층. 재정적 독립을 이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내게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안 M 뱅크스의 작품을 좋아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미래 사회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이 계층의 가정적 일상은 대체적으로 무위도식. 제인 오스틴 소설의 주요 인물이 활동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중장년 남자보다는 주로 은퇴한 노인, 주부, 아이들과 같이 가정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친척 및 이웃 방문으로 대표되는 사교로 채워진다. 저녁에는 음악, 무도회, 연극 등. 음식과 일상의 편의에 대한 관심의 비중이 지금보다 높았다. 사람에 대한 판단의 정밀함이라고 할까,  그 사람의 식견, 교양, 친절함, 예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특히, 예의에 있어서 오늘날과 비교되는 까다로운 예절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예를 들면 무도회에서 같은 남녀가 두번 춤을 추는 것은 청혼하는 것에 준하는 충격적인 사건. 약혼한 사이가 아니면 남녀 사이의 편지교환은 해서는 안되는 일. 청혼 시에 남성은 여성의 대답에 대해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예의. 이는 존경심의 표시로서 여성의 매력이 뛰어나 다른 구혼자들이 많으리라 여긴다는 뜻... 등등..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기간이 남여 사이 예절이 가장 정밀하게 발달한 기간 중 하나가 아닐까? 이에 비견되는 것은 '겐지 이야기'에서 엿본 일본 헤이안 시대 궁중 귀족 사회의 예법 정도가 아닐까? 공통점은 엄밀한 신분 질서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면서, 기본적인 행동 양식이 극히 정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서민적인 솔직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규범.   

 

사회적으로는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이미 일하지 않아도 이자 생활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부를 이루기 위해 인색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엘리너의 오빠 존 대시우드 같은 사람들도 있고, 결혼을 통해 계층 상승을 노리는 루시와 같은 여자들도 있다. 오로지 연애 감정을 최우선 하며 열정에 몸을 던지는 엘리너의 동생인 메리엔 같은 인물도 있고, 현실적인 고려와 본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고려하는 주인공도 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 여자들에게 결혼은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때문에 결혼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비즈니스. 하지만, 무조건 돈 많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당시에도 여자들은 고민을 했다. 심지어 제인 오스틴 자신도 27세(당시 청혼을 받을 수 있는 노처녀로서의 막바지)에 돈많은 상속자로부터 청혼을 받아 승낙을 하고, 다음날 이를 번복했다. 그리고는 평생 혼자 살았다. 아래는 그녀가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조카에게 썼다는 편지 내용.

 

'애정 없이 결혼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참거나 견디는 게 낫다. 만일 그의 매너나 태도 등의 결점이 그의 좋은 점들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 생각이 계속 든다면 즉시 포기하라.'

 

남녀 관계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비교해서 읽으면 재미있다. 두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각각 1800년대 초반과 1900년대 초반으로 10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데, 이 사이에 연애관이나 불륜, 이혼에 대해 변화된 태도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여기에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겹쳐 읽으면 더욱 재미있는 독서가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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