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11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손영미 옮김
여성심리에 대한 융심리학적 해설서. 다양한 신화/동화를 여성심리에 입각해서 해석해준다. 이것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쏠쏠.
남성 심리의 원형은 비교적 많이 이야기된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무어의 왕, 전사, 마법사, 연인과 같은 책이 있다. 아니마/아니무스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남자안에 있는 여성성인 아니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무스가 여성 심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아니마와이 차이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여성심리의 원형을 늑대와 같은 야성을 지닌 여걸(Wild Woman)에서 찾는다. 여걸은 사회가 강요하는 정형화된 여성이 아니라,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강한 희생정신을 지니고 있고, 호기심이 강하며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주 직관적이고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이러한 여걸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가 주입한 '착한 여자'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직관에 의지하는 야생성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직관은 결국 융 심리학의 집단 무의식, 특히 여성적 집단 무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을 논리/합리성이라고 한다면, 여성성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 직관은 이성과 무관한 희한한 기벽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의 목소리이고, 가장 이로운 존재다. 직관은 자기 보전을 도울 뿐 아니라, 다른 이의 동기나 본심을 알아차리고, 심리의 분산을 막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 세상은 교묘하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선택할 수 있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해도 오래 보고 있으면 점점 좋아질 수 있다.
- 직관과의 연관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아무도 자신의 열정이나 가치관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좋고 나쁜 것을 떠나 그것이 정말 유용한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여성신화와 남성신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삶의 반려자에 대한 태도이다. 남성신화의 전형인 '파르지팔'의 경우, 연인은 그의 삶의 중심이 아니다. 파르지팔의 삶은 성배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험 과정에서 만나는 여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 주기는 하지만,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모험을 찾아 다닌다. 이에 비해 대표적 여성신화인 '프시케 이야기'를 보면, 주 내용이 프시케가 남편인 에로스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는 여정이다. 남녀는 모든 면에서 동등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화가 남녀 차별적이라며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관계지향적인 여성의 심리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인 연인을 가치의 중심에 놓는 것이 마냥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닌듯 싶다.
- 야성적인 여성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사실 두 사람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의 여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사는 정신적 존재가 그것이다.
- 자신의 야성을 사랑할 의지가 없는 배우자를 택하는 여성은 반드시 상처를 입을 것이다.
- 사랑은 단순한 희롱이나 이기적인 향락의 추구가 아니라, 인내라는 심리적 힘줄로 이루어진 확실한 연대임을 기억하라. 사랑은 또한 행과 불행으로 이어진 결합이며 남녀 모두에게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신비한 힘이다.
- 강인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제3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삶/죽음/삶의 여인으로 '해골여인' 또는 '죽음 아가씨'라고도 불리는 존재다.
여걸은 삶의 긍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껴안는다. 이는 사랑도 마찬가지. 이 이야기는 해골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어부가 바다에서 여자의 해골을 길어올렸다. 무서워진 그는 그물이 자기 몸에 걸린 줄도 모르고 도망쳤지만, 마찬가지로 그물에 걸린 해골여인은 그를 계속해서 따라왔다. 결국 지친 어부는 자리에 누웠고, 함께 자리에 누운 해골여인을 보며 측은함의 마음을 갖게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렸고, 이 눈물에 닿은 해골여인은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사랑이 늘 감미롭고 아름답기만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신화는 이야기한다.
- 연인 중 어느 누구라도 해골여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는 절벽 너머로 던져지게 된다. 우리가 생사의 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생사의 주기를 거부하는 연애는 육체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 죽음은 우리가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거나 대어를 낚았다고 확신하는 순간 불숙 나타나는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다.
- 누구나 상대방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싶지만 추한 것까지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해골여인을 밀어내고 마구 달아나도 그녀는 계속 따라온다.
- 누군가를 사랑할 능력을 기르려면 반드시 해골여인을 안아야 한다. 삶/죽음/삶과 함께 연애를 시작해야만 진정으로 사랑할 능력이 생긴다.
삶과 사랑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근시안적이고 충동에 약한 어린아이 같은 자아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자아는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이나 유혹에 약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즉 일정 부분 현재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좋지 않은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 까마귀-자아는 자신이 삶/죽음/삶을 받아들이면 불행해질까 봐 걱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특별히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까마귀-자아는 별로 순진하지도, 그다지 사교적이지도 않은 아이처럼 단순하다. 이를테면 가장 맛있는 빵과 가장 푹신한 이불을 차지하고, 가장 멋진 친구를 사귀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이와 같다.
- 자아가 아닌 영혼에 근거해 사는 이들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배울 능력이 있고, 둘째 험한 길을 갈 끈기가 있으며, 셋째 오랜 세월을 두고 진정한 사랑을 배울 인내심을 갖고 있다. 반면 까마귀-자아는 배우기를 싫어하고, 인내심이 없으며, 충직하지도 않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자아의 힘이 아니라, 야성적인 영혼에서 우러나온 힘 때문이다.
근대화와 함께 많은 남성들은 더욱 더 무자비하게 사회라는 기계속으로 편입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야성성을 잃어버리고 돈이라는 '암캐여신'을 숭배하는 얇팍한 존재가 되어 간다. 어찌보면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던 여성들도 이제는 같은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아래의 이야기가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 여성에게 가장 가혹한 사회는 자신의 영혼과 무관하게 사회의 요구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곳이다. 그런 사회는 사랑으로 용서하는 의식이 없고, 영혼과 사회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경제적/계급적 차이 때문에 연민이 인정되지 않는다. 또 여성의 육체가 정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여성의 호기심이나 창의력은 격려를 받는 대신 처벌되고 비난받는다.
- 정통 융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영혼을 상실하는 것은 대개 35세 이후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여성에게는 매일 매일이 위기다. 나이가 결혼 여부, 혹은 교육 수준이나 경제력과는 상관이 없다. 현대 사회는 멋지고 편린한 물건이 매우 많아진 만큼, 영혼을 위협하는 물건도 예전보다 더욱 늘었다. 중요한 것은 열정과 진솔함, 그리고 깊은 본능은 언제든지 다치거나 없어질 위험이 있으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회는 우리가 직접 만든 신발들을 앗아가려고 노리는 존재들이 너무 많다.
자아가 아닌 영혼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한다. 번역은 영혼이라고 되어 있지만, 융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라고 이해하면 맞을 듯 싶다. 협소한 개인 경험에 근거한 자아가 아닌 집단 무의식과 닿아있는 우리의 존재 저 깊숙한 곳에 있는 에 또다른 실체.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정신 전체의 중심이자 통합의 원형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실현하고,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등 다양한 원형들을 지속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 건강한 자아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이해한다. 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알고 현실에 적합한 세계관을 소유한다. 자아와 영혼은 앞다투어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어릴 때는 여러 가지 욕망을 지닌 자아의 지배를 받기 쉽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영혼의 힘이 강해지고, 자아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으나 심리의 구석으로 쫓겨나 영혼의 지시를 따른 경우가 많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의 지배를 받고자 하는 야성적인 욕구가 있다.
이외에도 되새기고 싶은 좋은 구절이 너무 많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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