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5.4, 로버트 A. 존슨 지음 / 이주엽 옮김
삶의 두 가지 확실한 상태는 고통과 권태이다. 그 중간 어딘가에 행복이 있겠지만, 행복이란 신기루와 같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고통에 대해서는 다들 어느 정도 익숙하다. 부풀어오른 자아상으로 인한 오만함과 이로 인한 욕망, 어리석음, 분노. 세상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유아적인 신경질. 불교관련 서적이나 종교적인 서적을 조금만 읽어도 이 고통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실행은 다른 이야기이고.
그런데, 다른 하나의 상태인 권태는 왜 권태가 발생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상태를 해결 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는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태는 고통부터 해결하고 생각할 배부른 고민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마이카벨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니라 생에 대한 권태"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술, 숏 컨텐츠, 섹스,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탐닉하는 바탕에도,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 권태가 자리하고 있다.
- 중독은 영적 추구의 부정적 측면이다. 우리가 찾고 추구하는 것은 영의 기쁨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잠식시키는, 만성적 공허를 결코 채울 수 없는 일회적인 물리적 스릴만으로 이를 얻으려 한다.
- 서구 사회는 기쁨에 찬 디오니소스의 춤이 아니라 격하된 바쿠스의 파행을 따르기로 선택하면서부터 감각과 물질주의를 혼돈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고통이 아닌 권태일 수도 있다. 권태에 대한 처방으로 취미를 통한 창조적인 활동, 지속적인 배움, 관계를 통한 성장 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진정 권태에 빠진 인간은 활동적이며 창조적인 일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애초에 목적이 소진되어 발생한 권태로움을 어떻게 새로운 목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권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목표에 도달해도 다를게 없다는 자각?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지금', '여기'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다른 선행조건 없이 삶 자체에서 경외감을 찾아야 한다.
- 열정은 서로 반대되는 양극성의 간격을 무효화한다. 이것이 엑스타시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열정을 통해 신이 방문할때 우리는 삶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성을 초월하고, 하나 됨을 이룬다.
- 조이Joy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영의 환의 Exultation 낙원의 지복 Beatitude"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덧없고, 단명한 상태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영과 육을 더불어 길러주고, 지탱해주는 가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조이는 더 큰 자극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권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 방법으로 신적인 희열이나 기쁨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단지 과거에 존재했던 디오니소스적인 희열을 현대인들이 다시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줄 뿐이다. 그것은 신적인 에너지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고(surrender), 협소한 자아상을 희생하여 죽음 너머를 지향하는 태도이다.
- 어쩌면 우리는 마음속 깊이 엑스타시의 상실보다 도리어 그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을 더 두려워하는 지도 모른다. 항복하고 내어맡김이란 그것이 신을 향한 것이라 해도 우리 문화가 권장하는 바는 아니다.
- 오늘날 치밀한 법률적인 종교에는 사실 신을 향한 사랑이없다, 경외심의 자리가 별로 없다. 너무 청결한 영국 음식에 도리어 영양실조가 되었던 힌두 인도인처럼 현대인도 영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본인의 열등기능을 주의해서 살펴보라는 충고를 한다. 그리고 이 열등기능을 통합하기 위해 적극적 상상, 꿈작업, 의례와 같은 수단을 활용하라는 조언을 해준다.
- 우리 내면의 이 통제불능의 면을 융은 열등 기능이라 했다. 열등 기능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디오니소스 에너지와 만날 수 있게 된다.
- 칼 융은 열등 기능이 언제나 신과의 연결점이라고 말한다. 신은 달리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무의식으로 내려가야 한다. 상승하기 위해서는 하강이 필요하듯, 죽음을 극복하고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