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7, 마크 맨슨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게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을 하는 도발적인 책.
교육 시스템에 의해 길러진 근면 성실한 어른이는 세상 모든 문제를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렇게 열심히 시는 것은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한 기대를 수반한다. 밝은 미래를 보고 현재를 희생하는 것. 하지만, 삶에서는 오히려 될 데로 되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원제는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uck'. 미국판 '건투를 빈다'.
불교 및 실존주의의 영향이 강하긴 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도그마에 의존하지 않고, 현대인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길잡이를 제공한다. 불교는 삶이 원래 '불만족 Dukka' 이라고 설한다. 늘 극적인 고통을 겪지는 않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불만족스러운 것이 삶의 본질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허구적인 행복을 찾아다니지 않는 현명함을 얻을 수 있다. 실존주의는 삶에 주어진 목적 따위는 없고,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실용적 깨달음이란, 삶이 늘 어느 정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은 실패, 상실, 후회를 수반하고 마지막엔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려는 욕망 자체가 부정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부정적인 경험을 받아 들이는 것이 곧 긍정적인 경험이다.
- 고통은, 삶이라는 천에 얽히고설켜있는 실오라기다. 삶에서 고통을 떼어낸다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오늘 1시간 운동하는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10년 혹은 30년 후 나이에 비해 쇠약해진 몸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칼로리보다 과잉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쾌감을 즐김으로써, 미래에 과체중이라는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종류의 고통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삶은 기본적으로 고통/불만족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에 대한 회의가 발생한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회나 가정이 우리에게 교육과 양육을 통해 주입시킨 것들이다. 우수한 학업성적, 부와 명예, 행복한 가정. 사회는 이러한 목표를 지향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며, 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열심히' 공부/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 가치관은 인간의 존재와 행동의 밑바탕을 이룬다. 우리가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가령 엉뚱한 것을 성공 또는 실패로 생각한다면, 그 가치관에 기초한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생각, 감정, 일상적인 느낌 모든 것이 말이다. 어떤 상황에 관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에 좌우된다.
삶이 본질적으로 불만족이라면, 사회가 주입한 목표로부터는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만족을 위해 추구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불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삶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 어떻게 하면 정교하게 다듬은 개인적 가치관에 기초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할 것인가를 정하는 거다. 이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 우리 인생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길일 것이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에 신경이 쏠릴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대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삶을 성숙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감정 건강을 위한 채소는 무엇일까? 바로 무미건조하고 일상적인 삶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넓은 세상을 고려하면, 내 행동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혹은 “내 인생 대부분은 지루하고 평범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와 같은 자세 말이다.
사회가 혹은 부모가 뭐라 하든, 우리가 어렸을 때 생각한 장밋빛 행복은 이룰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고통 받을 것이다. 그래서 삶의 목적으로 고통을 없애고 행복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종국에 우리의 삶은 허무할 것이다. 대신, 우리는 인생에서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내가 찾은 의미 있는 일을.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하더라도 장밋빛 행복은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일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찾은 의미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인생은 충만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충만이 다른 의미의 행복이 될 수 있다.
- 죽음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로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걸 넘어서는 가치를,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통제할 수 있고 혼란한 이 세계에 적합한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행복의 뿌리다.
- 현대인의 정신 구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대단히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온갖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것들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자기 책임은 저버린 채, 사회가 자기 기분과 감정을 맞춰주길 바란다. 제멋대로 자기가 뭐든 안다고 확신한 뒤, 말 같지도 않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한다.
- 근본적인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겁낼 것 없다. 전혀. 그리고 이 깨달음을 마음의 정중앙에 놓는 데 도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상기하는 것이다.
결국 돈후앙의 Controlled Folly, 바가바드기타의 카르마요가, 스토아학파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런 모든 주제를 큰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해 준다. 심각한 철학서도 아니고, 성스러운 삶을 이야기하는 종교서적도 아닌데, 결론은 같다.
진지한 책의 백종원 버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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