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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a

어둠의 심연/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by 중년하플링 2026. 1. 17.

 

- 2026.1 조지프 콘래드 지음/이석구 옮김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유지되는 책이 고전이다. 당시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 나에게 가치가 없는 책은 읽을 이유가 없다. 고전으로 자주 언급되는 책을 읽었을때 나에게 울림이 없다면, 다음 이유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완역본이 아닌 경우,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경우, 내 삶이 부족한 경우, 나와는 결이 다른 경우 등등...

이 책은 감상문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플롯은 단순하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쇼킹한 사건이랄 것도 없다. 훌륭한 백인이 야만의 땅에 교역서 소장으로 가서, (본국의 기준으로는) 본인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정확한 묘사보다는 심상이, 연대기적 진행보다는 장면 위주의 서술이, 마치 꿈을 묘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책 말미에 영문과 교수가 제시한 이 책의 해석에 대한 세 가지 관점, 심리 비평/페미니스트 비평/탈식민주의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니 역시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이 책에서 여성성을 야만과 혹은 순진함과 동일시 하면서 가치 절하하는 듯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식민주의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분명하다. 

- 지구의 정복이란 대개 우리와는 피부색이 다르거나, 코가 좀 낮은 자들로부터 땅을 강탈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실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코 보기 좋은 일은 아닐세. 그런 추악한 행위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상뿐이라네. 그 이면에 있는 이상, 감상적인 허식이 아닌 이상, 그리고 그 이상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 말이야. 모셔 놓고 앞에서 경배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이상 말일세...

하지만, 심리 비평적인 관점에서 여성을 아니마로 치환하고 식민주의를 로고스/남성성으로 치환하는 경우 이런 부분들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내 관점에서 이 소설은 개성화(individuation)에 실패한 자아의 이야기 혹은 개성화 과정에 진입한 서구의 합리성에 대한 은유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장 유사한 책은 융의 'red book'이 아닐까? 

아래는 red book에서 발췌한 구절. 

- If the God grows old, he becomes shadow, nonsense, and he goes down. The greatest truth becomes the greatest lie, the brightest day becomes darkest night. As day requires night and night requires day, so meaning requires absurdity and absurdity requires meaning.
- If you are in yourself, you become aware of your incapacity. You will see how little capable you are of imitating the heroes and of being a hero yourself. So. you will also no longer force others to become heroes. Like you, they suffer from incapacity.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인 '커츠'는 서구의 합리성을 상징하는 영웅이다. 그는 당시 서구사회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인물이었다. 그는 논리와 말, 즉 '로고스'로 표현된다. 

- 그러더니 커츠 씨는 자기 휘하에 있는 최고의 직원이자, 비범한 존재이며, 회사에 최고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나에게 거듭 강조했고...
- '그는 비상한 인물입니다'라면서,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네. '그는 연민과 과학, 진보,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전파하는 사도시지요. 우리에겐.'
- 커츠와의 대화가 바로 내가 오랫동안 고대해 왔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네. 기이하게도 그는 결코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라-아시겠는가-말하는 인간으로 상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의식(아프리카 대륙)으로 걸어들어가 의식화(식민화)하고자 한다. 자아는 무의식에 존재하는 귀중한 통찰(상아)를 얻기 위해 무의식에 접근하지만, 융 심리학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이다. 무의식은 의식이나 자아에 비해 너무나 광대하고 측정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다. 때문에 협소한 의식으로는 무의식을 측량할 수 없다. 

- 우리 둘을 지켜보는 듯한 이 광대한 세계의 표면에 흐르는 적막이 우리에게 호소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네.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이 말 없는 것을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할 것인가? 말도 못하고 필시 듣지도 못할 그것이 얼마나 큰지, 또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지를 나는 느꼈다네. 그 깊숙한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곳에서 상아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고, 커츠 씨가 그곳 깊숙이 있다는 말도 들었지. 맹세코! 말은 숱하게 많이 들었네. 그렇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았네-마치 천사나 악마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일세.

진정한 개성화는 우리의 무의식을 자아의 관점에서 의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소멸/죽음 및 무의식과의 통합을 통해 '자기'가 되는 것이다. 개성화를 위해서는 가장 고귀한 특성만이 아니라, 가장 저급한 욕망을 직시해야 한다. 융의 말처럼 '가장 깊은 뿌리가 지옥까지 닿지 않으면 나무는 하늘까지 자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커츠는 야만의 땅에서 가장 깊은 타락을 경험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 그분은 너무 고통받았습니다. 이 모두를 증오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 그것들은 단지, 커츠 씨가 자신의 다양한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데 있어 자제력이 모자랐다는 것을, 무엇인가를-정작 절실히 필요할 때, 그의 장엄하고 웅변적인 수사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어떤 사소한 것을-그가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네.
- 내 생각에는, 야생이 그에게,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들을, 절대 고독을 알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사실들을 속삭여 주었고, 그 속삭임은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었던 것일세. 

만일 그가 야만의 땅에서의 경험을 성공적으로 체화하고 다시 서구사회에 돌아왔다면, 그는 서구 문명에 귀중한 보물을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옥으로의 하강만으로 그의 모험을 끝마친다. 만일 그가 지옥에서 다시 천국으로 오르는 상승을 완료했다면 서구 문명에 새로운 가치를 전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If forethinking and pleasure unite in me, a third arises from them, the divine son, who is the supreme meaning, the symbol, the passing over into a new creation(red book)

이런 관점에서 재독을 한다면 좀더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것 같기는 한데, 굳이 또 읽을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Red Book을 한번 더 꼼꼼이 읽어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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