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1 그레고리 번스 지음/홍우진 옮김
모든 사람에게 세상의 중심은 '자아'이다.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나'를 중심으로 사건들이 발생한다. 세상에 가장 확실한 것 한 가지를 들라면 '나'라는 자아개념이다. 영화 '매트릭스'나 필립 K 딕의 소설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들이 현실과 가상을 섞어서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주인공들의 '자아'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유일한 개념이다.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라는 개념은 속일 수 없다고 가정된다. 이 '자아'개념에 혼돈이 발생하는 것이 필립 K 딕 소설의 묘미이다. 현실 세계에서 이 같이 '자아'개념에 혼돈이 발생한 사람을 우리는 정신병자라고 구분한다.
정상인인 우리들의 '자아'개념은 얼마나 단단한 기반에 서있을까? 내가 느끼는 나라는 연속되는 관념은 누가 봐도 부정하기 힘든 객관적 실체일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 기억에는 결함이 있고 뇌는 모든 시간 조각을 연결하기 위해 빈 곳을 채우는 방식으로 기억을 보완한다.
- 뇌의 한계 때문에, 우리 자신의 서사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여 우리가 소유한 모든 지식은 압축되고 축소된 형식으로 기록된다.
- 현재의 '당신'과 어린 시절의 '당신'을 연결하며, 미래의 자아로 확장된다. 이를 '서사적 자아'라고 부른다.
- 단일한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서사적 허구일 뿐이다. 과거의 자아, 미래의 자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이라는 자아 그리고 사회에서 발현되는 당신의 모든 개성이 있을 뿐이다.
- 자신의 정체성을 한데 묶어주는 유용한 망상과 극단적인 망상 사이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우리는 이들 망상을 받아들여 각자의 개인적인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자아라는 개념은 불완전한 기억을 임의적으로 편집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나라는 서사를 충족시키는 망상이다. 이 같은 주장은 뇌과학에 발견한 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뇌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자아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뇌가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것부터 문제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서 지금 들어오고 있는 감각 입력을 해석함으로써 '현실'이라는 시뮬레이션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가깝다. 외부 인식에 있어서조차 우리의 뇌는 객관적이지 못하다.
- 당신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당신의 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정보를 처리하느라 바쁘며, 동시에 끊임없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함으로써 남들보다 한발 앞서려고 애쓴다.
이렇게 부정확한 입력에 기반한 '자아'라는 개념이 왜 우리 자신에게는 매끄럽게 느껴지는가? DMN이 지속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인간은 명백히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들조차 연결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한 가지 가능성은, 우리의 뇌가 인과성의 환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때 서사는 '그렇지 않으면 무서울 정도로 무작위적인 세상'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결국 '나'라는 개념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즐긴다. 책, 영화, 게임, 음악 등은 모두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우리 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이나, 어떤 이야기를 즐기느냐가 '나'라는 관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당신이 소비하는 이야기, 특히 당신이 읽는 이야기는 마음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당신이 소비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일부가 되고, 감각 중추의 반복적인 자극은 근육 기억과 동등한 서사를 형성한다.
자아라는 개념은 자기 연속성의 편안한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감옥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독적인 행위나 '몰입'의 경험을 갈망하는 이유는 이런 활동을 통해 불만족스러운 자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화를 통해 어렵게 확립한 '자아'가 왜 감옥처럼 느껴질까? 현재의 내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다면 '자아'를 잊는 경험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나보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인기,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 자아를 원하기 때문에 자아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정작 원하던 그것을 달성하고 나면, '나'는 변한다. 그토록 원하던 것이 별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왜 이걸 원했던가 의아해한다. 외부 조건은 동일하지만, 내가 바뀐 것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정된 '자아'란 없기 때문에, 감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가 무상하다. 융심리학적로 말하자면, 사회에 의해 조건지어진 기계적인 반응을 벗어나 ‘개인화’를 통해 자아의 한계를 깨닫고 현실 안에서 자유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의 독서 스토리는 '나라는 착각'이라는 과학책에서 불교와 융심리학으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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