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SDE'.님이 쓴 글로.. 현재 정책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실제 금리가 낮아지고 있지 않은 현상에 대해서.. 환율이 왜 중기적으로 불안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본링크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05942&RIGHT_DEBATE=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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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원인의 근본적인 이유는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피상적으로 부동산 버블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이 원인이 어떻게 어떠한 단계와 메카니즘으로 금융시장을 뒤 흔들고 나아가 실물 까지 무너뜨리게 되는지를 올바로 파악하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비 정상적인 "예대율" 입니다. (예금 대 대출 비율)

 

해외에서는 예대율을 126% 정도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 데이터는 2007년 말 데이터 입니다. 또 136% 대로 보고 있는데이터가 있는데 이는 2008년 6월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2008년 9월 말 한국은행 발표 데이터로 추정하면 약141%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일본 금융기관의 예대율은 약 77% 수준이며 아시아권 전체 평균은 88% 정도로 나옵니다.

 

한국은행 에서 작년에 발표한 예대율 추이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보통 80~90% 정도가 적정 예대율이라고 하지요, 한국의 경우 보면 1997년 금융공황 전 보톨95%~110%를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6년 부터 이 예대율이 110%를 돌파하여 130%를 넘어가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CD 및 은행채 발행이 계속 급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대율이 급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그래프에는 잘 없으니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담보대출 증가 등등과 거의 완벽히 맞아 떨어 집니다.

 

정부는 CD를 포함하면 105% 이기 때문에 미국 보다 낮다고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솔직히 한국 보다 채권 및 파생금융 상품의운용률이 훨씬 높으므로 직접 비교가 어렵고 설사 그렇다 손 치더라도 예대율 110%대의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과금융공황으로 전 세계가 이 모양 요꼴이 났는데 CD 포함해서 105%라서 괜찮다고 주장하면 그건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어떻게된 사람" 인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정기예금 및 요구불 예금 같은 장기적 안정적 자산이 아닌 시장성 수신 즉, CD와 은행채에 기반하여 대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행채 라는 것은 사실은 거의 국공채와 비슷할 정도의 신용도를 가지는 채권 입니다.

 

2007년 8월에만 하더라도 동일 만기 국채와 은행채간의 스프레드(이자율 차이)는 겨우 30bp 즉, 0.3% 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이정도의 스프레드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그 효과는 즉각 은행채 금리에 반영되고 따라서 대출 금리에도 반영이 됩니다. 하지만지금은 어떤가요? 기준금리를 25bp 내리는 바람에 현재 160bp 차이 즉, 1.6%나 차이가 납니다. 0.25% 금리 내려서은행채 금리가 약 0.05% 정도 내렸습니다. 대출금리에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은행의 예대율이 이렇게 높아져 시장성 수신에 의존하게 되면 은행은 금융시장의 동향에 지극히 취약하게 됩니다.

 

채권시장은 주식시장 보다 변동성이 작습니다. 그렇다고 변동성이 거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채권 시장의 경우, 기업, 국가, 금융기관 등등의 파산에는 주식시장 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왜냐하면 아예 돈 못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식이나 예금등은 투자자들의 패닉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이 있지만 채권시장은 그런 것 없습니다. 일반 투자자들이 아니라전문적으로 돈을 굴려서 이익을 취하는 사적 금융기관이나 공공적 목적으로 돈을 굴리는 공적 금융기관들의 시장이므로 루머 따위에는꿈쩍도 하지 않지만, 장기적 추세 전환, 파산 등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시말해 채권의 만기가 집중되었거나 일정기간내 채권 만기가 집중되거나 하면 일제히 채권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옵니다. 당연히 금리가 상승하게 됩니다.

 

게다가 지급 요구된 채권의 지급을 못한다? 그건 파산입니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이런 식으로 파산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채권 시장 전체가 패닉이 일어나며 모든 금융거래가 사실상 정지되면서 유동성 확보 즉, 현금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바로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발생합니다.

 

만일 은행이 예금에 기반을 두고 영업을 한다면,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파산에 대하여 채권 상환 유예조치를 취하면서 충격을 분산시켜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성 수신에 의존하게 되면 설사 그런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하더라도 관련된 채권들의 가격이동시에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은 위기에 빠져 버립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CDS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화를 키웠다고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은 채권 입니다. 단지 지급 형태만 다른 채권일 뿐입니다. 은행채나 CD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CDS발행해서 자본 조달하나, 은행채 발행해서 자본 조달하나 사실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 입니다. 단지 CDS 조달하면, 해당법인이 파산하지 않는 한, 발행자는 사실상 무위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은행채는 채권 상환의무만 있을 뿐이지요.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CD 발행 잔액은 115조원, 은행채는 157조원 입니다.

그리고 은행채의 40조원 정도가 2008년 10월 말 부터 내년 1월 까지 만기가 돌아 옵니다.

CD 역시 91일물인 관계로 11월 말과 12월에 집중적으로 만기가 돌아 옵니다.

이 물량을 누가 받아 줄 수 있을까요?

 

받아 줄 수 있는 기관은 증권사, 투신권등 제 2 금융권입니다.

하지만, 증권사나 투신권들 모두 이번 금융위기로 해외 부분의 펀드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고객들의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히려 보유 채권을 팔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결국 은행채 상환을 위해 은행채를 또 발행해야 되고 CD 또 발행하게 되면 매 3개월 마다 위기가 반복적으로 오게 되는 구조가 됩니다. 게다가 요즘 같으면 1년 넘는 채권은 발행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만 생각 나는대로 적어 봅시다. 모두가 아는 걸로만 적어 봅시다.

1.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 부도 가능성

2. 유럽 은행들 부도 위기

3. 아이슬란드/파키스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등 이머징 국가 디폴트 위기

4. 미국 지방 은행 부도 위기

5. 미국 카드채/할부금융 위기

6. 한국 저축 은행 유동성 위기

7. 한국 건설 회사 유동성 위기

8. 한국 캐피탈 사 유동성 위기

9. 한국 외환 부분 신용 위기

 

대충 적어도 무려 9개나 되는 위기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솔직하 말해서 적을 수 없는 위기 까지 포함하면 뭐 난리가 아닙니다.

10월 말 부터 12월 까지 약 60일 동안 이 9개의 이미 가시화된 위기가 시차를 두고 나타납니다.

금융시장이 흔들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은행들이 이렇게 취약한 예대 구조를 가지고 이 위기들을 다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때마다, 한국 금융시장은 뒤흔들리고 충격 받고 난리가 나게 됩니다.

 

해결책은 명백합니다.

현재의 은행 예대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안에 즉, 1년 이내에 급격히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결코 단 시간에 해결 되지 않습니다.

 

예대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은행권에 약 200조원 규모의 정기예금에 기반을 둔 자금이 유입되어야 하고,

부동산 담보대출 규모를 최소 50조, 전체 여신 규모를 최소 100조원을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예대율을 100% 정도로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일단, 금융공황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200조원 규모의 정기 예금이 유입되려면 실은, 현재 기업의 수익률 보다 높은 수준의 예금 금리가 필요하며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한대손충당금을 급속히 올려 부동산 담보 대출 잔액을 급격히 줄여야 합니다. 또한 이로 인한 금융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충분히 확충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대책에 의한 영향은 뻔하게 보입니다.

많은 건설사들의 줄 도산, 경기의 급속한 수축, 개인 파산의 엄청난 증가, 제 2 금융권의 연쇄도산

 

하지만, 지금  이것을 겁내다가는 한국 경제를 아예 말아먹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변화 시키게 될 것인가는 다음 기회에 논하겠습니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최근의 그루지아 사태에 대한 월러스틴 교수의 해설입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그루지아가 사태를 잘못판단하고 '오바' 한것 아니냐는 시각인듯 합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전세계적으로 강화된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냉전시대의 '슈퍼파워'의 지위가 아니라, 많은 강대국중에 하나라는 것이구요.. 그런 상황에서 냉전시대때 처럼 일방적으로 미국의 의지를 그 영향범위 안의 국가들에게 강요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그루지아 사태는 미국의 영향범위로 들어오려는 그루지아의 지배층의 결단이었지만, 지정학적으로 그루지아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사례가 된것이죠.

만일 한국이 북한과의 긴장관계에서나 통일 후 주변 2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정책에 일방적으로 추종했을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볼 수있는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또 흔한 말이지만 평화가 정착되는 듯한 현 시점에서 국방을 강화해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입니다.


"Geopolitical Chess: Background to a Mini-war in the Caucasus"



The world has been witness this month to a mini-war in the Caucasus,and the rhetoric has been passionate, if largely irrelevant.Geopolitics is a gigantic series of two-player chessgames, in which the players seek positional advantage. In these games,it is crucial to know the current rules that govern the moves. Knightsare not allowed to move diagonally.


From 1945 to 1989, the principal chess game was that between the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It was called the Cold War, and thebasic rules were called metaphorically"Yalta." The most important rule concerned a line that divided Europeinto two zones of influence. It was called by Winston Churchill the"Iron Curtain" and ran from Stettin toTrieste. The rule was that, no matter how much turmoil was instigatedin Europe by the pawns, there was to be no actual warfare between the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And at the end of each instance of turmoil, the pieces were to bereturned to where they were at the outset. This rule was observedmeticulously right up to the collapse of theCommunisms in 1989, which was most notably marked by the destruction ofthe Berlin wall.


It is perfectly true, as everyone observed at the time, that theYalta rules were abrogated in 1989 and that the game between the UnitedStates and (as of 1991) Russia had changedradically. The major problem since then is that the United Statesmisunderstood the new rules of the game. It proclaimed itself, and wasproclaimed by many others, the lonesuperpower. In terms of chess rules, this was interpreted to mean thatthe United States was free to move about the chessboard as it saw fit,and in particular to transfer formerSoviet pawns to its sphere of influence. Under Clinton, and even morespectacularly under George W. Bush, the United States proceeded to playthe game this way.


There was only one problem with this: The United States was not thelone superpower; it was no longer even a superpower at all. The end ofthe Cold War meant that the UnitedStates had been demoted from being one of two superpowers to being onestrong state in a truly multilateral distribution of real power in theinterstate system. Many large countrieswere now able to play their own chess games without clearing theirmoves with one of the two erstwhile superpowers. And they began to doso.


Two major geopolitical decisions were made in the Clinton years.First, the United States pushed hard, and more or less successfully,for the incorporation of erstwhile Sovietsatellites into NATO membership. These countries were themselvesanxious to join, even though the key western European countries -Germany and France - were somewhatreluctant to go down this path. They saw the U.S. maneuver as one aimedin part at them, seeking to limit their newly-acquired freedom ofgeopolitical action.


The second key U.S. decision was to become an active player in theboundary realignments within the former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This culminated in a decision tosanction, and enforce with their troops, the de facto secession ofKosovo from Serbia.


Russia, even under Yeltsin, was quite unhappy about both these U.S.actions. However, the political and economic disarray of Russia duringthe Yeltsin years was such that the mostit could do was complain, somewhat feebly it should be added.


The coming to power of George W. Bush and Vladimir Putin was more orless simultaneous. Bush decided to push the lone superpower tactics(the United States can move itspieces as it alone decides) much further than had Clinton. First, Bushin 2001 withdrew from the 1972 U.S.-Soviet Anti-Ballistic MissileTreaty. Then he announced that the UnitedStates would not move to ratify two new treaties signed in the Clintonyears: the 1996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 and the agreed changes inthe SALT II nuclear disarmamenttreaty. Then Bush announced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move forwardwith its National Missile Defense system.


And of course, Bush invaded Iraq in 2003. As part of thisengagement, the United States sought and obtained rights to militarybases and overflight rights in the Central Asianrepublics that formerly were part of the Soviet Union. In addition, theUnited States promoted the construction of pipelines for Central Asianand Caucasian oil and natural gas thatwould bypass Russia. And finally, the United States entered into anagreement with Poland and the Czech Republic to establish missiledefense sites, ostensibly to guard againstIranian missiles. Russia, however, regarded them as aimed at her.


Putin decided to push back much more effectually than Yeltsin. As aprudent player, however, he moved first to strengthen his home base -restoring effective central authority andreinvigorating the Russian military. At this point, the tides in theworld-economy changed, and Russia suddenly became a wealthy andpowerful controller not only of oil productionbut of the natural gas so needed by western European countries.

Putin thereupon began to act. He entered into treaty relationshipswith China. He maintained close relations with Iran. He began to pushthe United States out of its Central Asianbases. And he took a very firm stand on the further extension of NATOto two key zones - Ukraine and Georgia.

The breakup of the Soviet Union had led to ethnic secessionistmovements in many former republics, including Georgia. When Georgia in1990 sought to end the autonomous statusof its non-Georgian ethnic zones, they promptly proclaimed themselvesindependent states. They were recognized by no one but Russiaguaranteed their de facto autonomy.


The immediate spurs to the current mini-war were twofold. InFebruary, Kosovo formally transformed its de facto autonomy to de jureindependence. Its move was supported by andrecognized by the United States and many western European countries.Russia warned at the time that the logic of this move applied equallyto the de facto secessions in the formerSoviet republics. In Georgia, Russia moved immediately, for the firsttime, to recognize South Ossetian de jure independence in directresponse to that of Kosovo.


And in April this year, the United States proposed at the NATOmeeting that Georgia and Ukraine be welcomed into a so-calledMembership Action Plan. Germany, France, and theUnited Kingdom all opposed this action, saying it would provoke Russia.


Georgia's neoliberal and strongly pro-American president, MikhailSaakashvili, was now desperate. He saw the reassertion of Georgianauthority in South Ossetia (and Abkhazia)receding forever. So, he chose a moment of Russian inattention (Putinat the Olympics, Medvedev on vacation) to invade South Ossetia. Ofcourse, the puny South Ossetian militarycollapsed completely. Saakashvili expected that he would be forcing thehand of the United States (and indeed of Germany and France as well).


Instead, he got an immediate Russian military response, overwhelmingthe small Georgian army. What he got from George W. Bush was rhetoric.What, after all, could Bush do?The United States was not a superpower. Its armed forces were tied downin two losing wars in the Middle East. And, most important of all, theUnited States needed Russia farmore than Russia needed the United States. Russia's foreign minister,Sergei Lavrov, pointedly noted in an op-ed in the Financial Times that Russia was a "partner with the weston...the Middle East, Iran and North Korea."

As for western Europe, Russia essentially controls its gas supplies.It is no accident that it was President Sarkozy of France, notCondoleezza Rice, who negotiated the truce betweenGeorgia and Russia. The truce contained two essential concessions byGeorgia. Georgia committed itself to no further use of force in SouthOssetia, and the agreement contained noreference to Georgian territorial integrity.


So, Russia emerged far stronger than before. Saakashvili had beteverything he has and was now geopolitically bankrupt. And, as anironic footnote, Georgia, one of the last U.S.allies in the coalition in Iraq, withdrew all its 2000 troops fromIraq. These troops had been playing a crucial role in Shi'a areas, andwould now have to be replaced by U.S. troops,which will have to be withdrawn from other areas.


If one plays geopolitical chess, it is best to know the rules, or one gets out-maneuvered.


by Immanuel Wallerstein


[Copyright by Immanuel Wallerstein, distributed by Agence Global.For rights and permissions, including translations and posting tonon-commercial sites, and contact:rights@agenceglobal.com, 1.336.686.9002 or 1.336.286.6606. Permissionis granted to download, forward electronically, or e-mail to others,provided the essay remains intact andthe copyright note is displayed. To contact author, write:immanuel.wallerstein@yale.edu.
Posted by 중년하플링 :
저 광장이 그대를 부른다
- 일어서라 한국인들이여


서태지가 컴백한다는데 그래봤자다. 이미 망가졌다. 철 드는 데 실패했다. 그는 아직도 16살 꼬마 흉내를 내고 있다. 그에게는 존 레넌이 말하였고 신중현이 말하였던 그것을 말할 용기가 없다. 있는 수요에 공급한다면 상품이다. 장사꾼에 불과하다. 예술가가 아니다. 왜?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을 팔기 때문이다. 완제품이 아니면 안 된다. 소통이 아니면 안 된다. 진짜가 아니면 안 된다. 그의 콘서트에 백만 관객이 와도 단지 상품거래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의 가슴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거듭나게 하지 못한다. 그의 음악에 혼이 없다. 옛날에는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왜인가? 그는 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 완전성은 무엇일까? 완제품은 무엇일까? 소통은 무엇일까? 진짜는 무엇일까? 영감은 무엇이고 혼은 또 무엇일까? 이문열이 아무리 많은 책을 팔아도, 김용옥이 TV에 나와서 허벌나게 떠들어도 끝내 어른 되지 못한다. 세상 전부와 홀로 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저 광장에 선다는 것이다.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다. 예수처럼! 백범처럼! 전태일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것이다. 거기 또 다른 지평이 있다.무엇인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었다. 내 성도, 내 이름도, 내 성별도, 내 신분도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 가족, 친척, 대한민국… 모든 것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원래 박정희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박정희=대통령으로 알았다. 모든 것이 원래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른들 말 잘 듣고 내 자리만 잘 찾아가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어느 순간 박씨 아닌 다른 대통령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유신 아닌 다른 체제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받았다. 문득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시간은 정지되었고 태양은 빛을 잃었다. 숨조차 쉬지 못한다. 모든 것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면… 정해져 있는 내 자리만 찾아가면 그만이다. 임금은 임금자리, 신하는 신하자리, 백성은 백성자리… 봉건제도다. 남편은 남편자리 아내는 아내자리… 전근대의 성차별이다.그게 편하다. 법으로, 제도로, 전통으로, 관습으로, 규범으로 그것은 정해져 있으니 편하다. 궤도를 달리는 열차처럼 제시간에 꼬박꼬박 출석만 해주면 할 일 다하는 거다. 수천 년 동안 군말 없이 그렇게 노예 되어 살아왔던 거다.어느 순간 깨닫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선택의 기로에서 되돌아보면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도 없다. 가족도, 국가도, 민족도 모래성이다. 지푸라기 같다. 우주 안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로 거기가 출발점이다. 그 지점에서 자신이 전부 새로 세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로 나아갈 때, 직장을 정할 때, 결혼할 때, 질병에 걸렸을 때, 가족을 잃었을 때, 좌절할 때, 거부되고 배척될 때 인간은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은 본래 버려진 존재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구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철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가치, 모든 의미가 다 그러하다는 사실을.서태지의 노래에 그러한 고민이 없다. 이문열의 소설에 그러한 고민이 없다. 김용옥 강의에는 그러한 고민이 전혀 없다. 서태지의 저항은 기득권의 철옹성에 대한 순진한 소년의 치기 어린 투정일 뿐이다. 무엇인가? 그의 투정은 국가, 민족, 제도, 시스템이 왜 가엾은 어린 나를 보호해주지 않느냐는 칭얼댐이다. 그것이 본래 무(無)였다는, 허(虛)였다는, 적멸(寂滅)이었다는 깨달음이 그의 음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허공에다 대고 목청 높여 항의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 레넌의 Imagine에는 그것이 있는데 서태지에겐 없다. 그러므로 불완전하다.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출발해서 중간에서 어중간하게 결론 내렸으므로 반제품이다. 완제품 아니다. 그러므로 예술이 아니다. 잘 팔리는 상품에 불과하다. 완전성이 아니면 안 된다. 정상에의 초극이 아니면 안 된다. 그 경계를 넘어서고서야 인간으로 하여금 전율하게 하는 소통의 혼은 실리는 것이다. 서태지의 음악에 그 혼이 서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손에 쥐여주는 사탕에 불과하다. 어린이날 하루 써먹는 고무풍선이다. 축제가 끝나고 날이 저물면 바람은 빠지고 그 고무풍선은 쓸쓸하게 버려진다. 내 인생이 통째로 그 길거리에 버려진 채로 떠도는 고무풍선임을 절절하게 깨달아야 한다.

눈물겹게 깨달아야 한다. 국가나, 제도나, 민족이나, 전통이나, 관습이나, 시스템의 허점을 폭로하고 고발한다는 식은 유치하다. 인간은 원래 벌거벗고 태어난 존재다. 백지상태에서, 제로베이스에서,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존재하는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꿈 깨라. 진짜는 저 광장에서 만들어진다. 그대 저 광장에서 오늘 새로 탄생하는 진짜를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의 증언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 미성숙할 뿐이다. 그대 인생 통째로 그러하다. 혼이 서리지 않은 모조품. 프로야구 감독이 나이가 서른이 넘고 자식이 두엇 있는 선수들을 부르며 '우리 애들이 어쩌고…' 그런다. 감독 입장에서 선수는 여전히 아이다. 왜 나이 서른이 넘어도 그들은 여전히 아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궤도 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팀에 갇혔기 때문이다. 깨닫기 위해서는, 철이 들기 위해서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그 궤도를, 그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적막한 허무 위에 쌓은 모래성임을 알아야 한다.

87년의 그 여름에 동대문에서 종로 2가까지 정신없이 내달렸다. 최루탄, 지랄탄, 사과탄, 별의별 탄을 다 맞아도 끄떡없다. 처음 30분 정도 눈이 따가울 뿐이다. 코앞에서 사과탄이 터져도 부릅뜬 눈 감지 않는다.나는 그해 여름 저 아스팔트 위에서 철이 들었다. 자부심을 얻었다. 당당함을 얻었다. 통쾌해졌다.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그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큰 너털웃음 한 번 터뜨릴 수 있었다. 소요자재로 돌아가기다. 저 푸른 하늘 저 까마득하게 높은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저 깊은 땅 저 깊숙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왜 이 인생을 꼬박꼬박 살아가야 하는지… 지푸라기 같은 인생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때 알았다. 내 인생을 일관하는 테마와 온갖 질곡을 평정하는 나만의 스타일이 그제 정해졌다. 나침반과 지도를 얻었다. 태양은 새롭게 빛나고 아침 안개는 그 거룩한 휘장을 걷어냈다. 돛 높이 올리고 거침없는 항해 가능하다. 원래부터 정해져 있다는 따위는 없다. 전쟁이 나면 총을 들어야 국민의 자격이 있다.

국가는 그 지점에서 건설되는 것이다. 진짜 국가, 진짜 헌법은 조상에게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저 광장에서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저 광장이야말로 국가를 잉태하는 위대한 자궁이다. 무질서의 극을 넘은 저 광장에서 인간에 대한 근원에서의 신뢰가 싹튼다. 조직과, 시스템과, 제도와, 질서에 의존하는 한 그대 결코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 진정 사랑할 수 없다. 그럴 때 아이처럼 울게 된다. 광화문에 버티고 선 저 컨테이너 박스들을 보라. 저것이 이명박의 울음소리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운다. 펑펑 운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운다. "엄마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아!?"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저 광장에 서보지 않는다면, 그대 목숨 걸어보지 않는다면, 그대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 모든 환경이 사전에 세팅되어 있다. 그것은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내 자유의지의 결정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나는 단지 정해져 있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문제는 방해자다. 방해자만 제거하면 된다. 국가가 불안한 건 간첩 때문이지. 사회가 불안한 건 도둑놈 때문이지. 간첩은 신고하면 되고 도둑놈은 잡으면 되지. 높으신 나으리들이, 믿음직한 순경들이 잘도 해결해주지.

내겐 착한 아이의 배역이 주어져 있고 그 배역을 열심히 연기하면 되지.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대 상실할 때, 그대 낙방할 때, 그대 배신당할 때, 그대 운명의 기로에 설 때 아무도 대본을 보여주지 않는다. 퍼뜩 깨닫는다. 그대 인생이 통째로 우스꽝스런 연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철이 든다는 것은 그 세팅되어 있는 모든 것을 無(무)로 되돌리기다. 원점에서 새로 시작된다. 그것들이 차차로 세팅하여 가는 전체과정을 안다. 초기조건을 안다. 자궁을 얻는다. 출발점을 확인한다.시작부터 끝까지 1 사이클의 전개과정을 안다. 피드백을 얻는다. 기어이 완성한다. 수도꼭지만 틀면 저절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유수지로부터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이 나오도록 했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가 저 아스팔트 위에서 그 거룩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오늘 그대에게 허용된 약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무로 되돌아갈 수 있는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창조자의 관점에 서는 것이다. 정해진 궤도 안에서 그냥 자기 자리만 찾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대통령은 그냥 어떤 아저씨였더라. 국가는 그냥 사람들의 복잡한 약속과 관습의 어정쩡한 집합들이었더라.길 모르고 무리지어 가는 군중처럼 말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다. 윤리, 도덕, 규범, 체제, 그 모든 것이 근본을 알 수 없다. 모래성 위에 지어진 허상이다. 그대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만다.

어쩔 것인가? 그대는 어떤 나침반으로 인생의 항로를 새로 설계하고 세상과 맞서는 그대의 고유한 포즈를 세팅할 것인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 궁극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근원의 신뢰다. 그 신뢰는 존엄에서 얻어진다. 그 존엄은 인간 개개인이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의 1단위로 작동하는 데서 얻어진다. 내가 주인이고 내가 결정한다. 내가 서명한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개인의 무게가 인류 전체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 광장에 서보지 않고는 그대 그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 존엄을 얻을 수 없다. 그 주인자격을 얻을 수 없다. 그럴 때 그대 인생 헛살고 만다. 그대가 권력을 믿고, 제도를 믿고, 법을 믿고, 시스템을 믿고, 부모처럼 의존하며 의심하기를 두려워하는 한… 그대 어떤 글을 써도 아류에 불과하다. 어떤 작품을 내도 모조품에 불과하다. 반제품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대 인생이 통째로 짝퉁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그 전체과정이 오롯이 그대 내부에서 나와야만 한다. 국가도 개인도 매 순간 새로 태어나야 한다. 저 광장에서 오늘 진짜가 탄생한다. 목격하고 증언하기를 두려워하랴?

ⓒ 김동렬

Posted by 중년하플링 :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과 전망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글로벌 정책공조의 지속불가능성


사회진보연대

3월 13일 칼라일 캐피털이 사실상 청산을 선언했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를 운용하던 칼라일 캐피털은 자산규모의 30배가 넘는 돈을 빌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저당대출)에 투자했다가 결국 부도를 맞았다. 그리고 다음날 14일 미국 뉴욕 월가의 5위 투자 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베어스턴스의 사례는 미국 금융기업 부실화의 파장이 모기지회사와 사모펀드를 넘어서 은행부문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누가 제2, 제3의 베어스턴스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자은행의 ‘빅 파이브’라고 불리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 중에서 베어스턴스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리먼브라더스가 그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시티그룹과 메릴린치는 이미 2007년 4/4분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에 관해 각각 180억 달러, 167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상각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주택경기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이들의 추가 상각이 불가피하며 이를 감당할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980년대 미국 모기지 혁신과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

현재 미국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기원은 2006년 10년에 걸친 주택호황의 붕괴에 있다. 미국 정부는 오랫동안 다양한 세제상 특전과 보조금으로 주택소유를 지원했다. 안정적인 주택자금 공급을 위해 설립된 정부지원은행인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각각 2위와 3위 규모의 대부기관으로 성장했고, 미국 모기지(주택저당금융)의 거의 절반을 통제한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은 그들은 자금조달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실로 독창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기지를 집합(pool)으로 묶어서 채권을 발행했고, 이는 현재 주택연계증권(MBS)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머지않아 다른 은행들도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은행은 MBS를 통해 수수료가 높은 새로운 중개서비스를 제공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을 외부로 이전하고, 대부된 자금을 신속히 회수함으로써 새로운 대부를 제공할 수 있었다. 수익에 굶주린 투자기관들로부터 MBS 시장에 대한 자금공급이 쇄도했고, 은행은 흥청망청 모기지 대부를 확대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은행은 재융자(리파이낸싱)와 주택담보가계지원대출(홈에퀴티론)을 제공함으로써 신용수요를 부양했다. 재융자는 모기지 대출자가 주택가격 상승을 반영하여 은행으로부터 더 큰 액수를, 더 낮은 이자로 대출 받게 했다. 이로써 모기지 대출자는 기존 융자를 갚고도 남는 돈으로 추가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다른 용도로 투자나 소비에 지출할 수 있게 되었다. 홈에퀴티론은 주택 구입가격에서 은행으로부터 집을 담보로 대출 받은 돈을 제외한 집의 가치를 담보로 또 다시 대출받는 ‘2차대출’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 미국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FRB는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는 2000년 6%에서 2001년 이후 2003년 중반까지 1%로 인하되었다. 초저금리 상태에서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확대되었다. 특히 가계부채는 대부분 모기지 부채로 누적되었다. 한편 기업의 부채는 주가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과 인수합병에 활용되었다. 결국 저금리 기조가 주식시장 부양과 부동산 투자 확대라는 쌍생아를 낳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모든 것이 좋아보였고, 미래는 낙관적이었다. 주택 호황이 거품으로 전환되는 시점인, 2004년 후반부터 2006년 초까지 은행은 오히려 공격적이며 모험적인 혁신을 가속화했다. 모기지 추가대출(피기백)은 주택구입자가 계약초기에 납부하는 금액에 대해서도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써, 이제 가계는 현금이 전혀 없어도 완전히 빚을 통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출자의 소득, 재산, 신용거래기록 등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높은 이자율로 모기지를 제공하는 알트-A(중간) 등급 모기지와 서브프라임(비우량등급) 모기지가 확산되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750만 명의 대출자에 6천억 달러로 미국 모기지의 약 20%를 차지했다. 조정금리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보통 3년 이상 운영되며 가입 3년 후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대부기관은 초기의 1% 수준의 ‘미끼금리’가 나중에 재설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 (2007년 4/4분기에는 서브프라임 금리가 20.2%까지 급등했다.) 다수의 대출자는 모기지 조건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금리 재설정이 이뤄지기 전에 주택가격 상승으로 재융자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이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 사슬의 연쇄 위기

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는 MBS, 회사채, 신용카드매출채권담보증권 등 다양한 종류의 채권을 묶어놓은 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10만 달러를 차입한 사람을 가정하면, 유동화전문회사(SPC)는 사람의 모기지를 다른 모기지와 섞은 뒤 MBS를 만든다. 그 다음 투자은행들은 CDO를 만들어 MBS와 회사채등을 섞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풀을 투자자들의 금리선호에 따라 자른다. CDO가 처음 등장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최근에 그 발행이 본격화되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06년 투자은행들은 5천억 달러어치의 CDO를 발행했고, 이는 2002년의 840억 달러의 네 배를 넘는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은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3차위기). SIV는 은행들이 출자한 자산을 근거로 단기성 기업어음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를 발행해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MBS, CDO와 같은 고수익 장기증권에 투자했다. 2007년 8월 말, 9월 초의 ABCP 시장의 혼란은 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의 단기투자수단을 차단했다. 이는 기업어음시장이 압력을 받게 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제4, 제5의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에,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듯 커지자 모노라인들의 부실이 커졌고, 앞으로 대형 모노라인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된다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일반 채권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마저 있다.

한편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은행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투자금액의 5억 6300만 달러(52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채권이 편입된 CDO에 투자한 국내 은행은 우리, 농협, 외환, 신한, 산업, 부산, 대구은행 7곳이며, 특히 우리은행이 투자금액의 90.6%인 4억 4500만 달러, 농협은 78.7%인 1억 7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겸업은행모델의 확산과 금융혁신

부동산 대부의 증권화, 파생금융상품의 사슬의 중심에는 겸업은행 모델의 확산과 금융혁신이 존재한다. 1989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2차 은행업지침, 1999년 미국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률로 은행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제약이 제거되자 은행들은 겸업은행모델을 추구했다. 겸업은행은 상업은행(예금유치와 대출), 투자은행(증권), 펀드관리, 보험 등을 결합함으로써 손쉽게 새로운 금융상품들을 도입했고, 이러한 상품들을 위한 시장을 조직하고 대량의 유동성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한 지붕 아래에서 모든 금융업무를 실행하는 겸업은행은 거대한 자산거품의 와중에서 시장조작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뮤추얼펀드의 주문을 받아 체결해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정보접근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고객들의 매수주문을 미리 알아서 자기거래를 통해 해당 물량을 매입, 이득을 볼 수 있다 (이른바 프론트 러닝. 물론 투자은행들은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투자은행은 정보의 강점을 이용해 고위험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이를 위해 단기자금 차입(레버리지) 확대도 불사했다. (SIV의 사례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나아가 거품이 커질수록 규제당국, 은행내부 평가인, 신용등급평가기관, 기업내부 회계감사관, 기관투자가 주주는 이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과실을 나누는 데 급급했다. 투자은행의 트레이더들은 “1~2년간 고위험에 베팅해 큰 수익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만큼의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2006년 리먼브라더스의 실적 상위 6위권의 매니저들은 1억 5천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챙겼고 베어스턴스의 제임스 케인 CEO는 4천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한편 겸업은행의 발전과 함께 은행간 경쟁의 가속화는 ‘금융혁신’을 자극했다. 금융상품은 쉽게 서로 모방하며, 발전 사이클이 매우 짧다. 따라서 은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라는 압력에 항상 노출된다. 증권화, 파생상품, 구조화금융과 같은 금융중개업의 새로운 경로가 세계적 규모에서 경쟁적으로 거대한 투자자 집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공황과 공포로 급격히 전환되었고, 신용체계의 단계적 붕괴가 개시되었다. 모기지 대출자-모기지대출회사-유동화전문회사-투자은행-투자자(헤지펀드, 보험회사, 은행)-구조화투자회사 등 다층적인 피라미드로 구성된 증권화 사슬에서 투자자들은 최종대출자(모기지대출자)와 여러 층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신용정도를 평가하고 손실을 예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누구도 증권화 풀에서 언제, 어떻게 손실이 발생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연기금과 헤지펀드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CDO나 ABCP의 불투명한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그 가격을 책정하는 매우 정교한 컴퓨터 계산 모델을 활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모델은 판매하려는 금융상품을 어떤 가격에서 구매하려는 자가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델은 주어진 가격이 적절하다면 위험성을 이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가시화되면서 그들의 상품을 위한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도래할 때, 그들의 모델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은 신바젤협약(바젤2)을 통해 은행의 리스크 관리의 정교화를 추구하고 있다. 신바젤협약은 은행리스크에 신용리스크(기업부도로 인한 채권회수 불능 위험)와 시장리스크(투자목적의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의 손실위험) 외에 운영리스크(내부 통제제도 미흡, 담당자의 실수,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위험)를 추가했다. 그리고 신용리스크 산정 방식에서 기존 표준방법(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에 따라 위험가중치 차등적용) 외에 감독기관의 승인 하에 은행 자체적으로 신용리스크를 측정, 관리하는 내부등급법을 인정했다. 결국 은행은 더욱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 도입에 대한 보답으로 스스로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협약은 은행이 위험자산을 보유할 경우 적립해야 할 자기자본 비율을 높임으로써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평가 모델 역시 스스로 가정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신용경색의 힘 앞에서는 무능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글로벌 정책공조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의 규모가 거대하고 전 금융분야에 단계적으로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데도, 각 경제기관들은 1-2년 내로 미국의 금융부실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낙관적 전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융기업들이 단기간 내에 1,800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상각을 신속히 발표했다. 주요 금융기업들이 호황기에 축적한 유보자금 규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응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부실화 위험에 조응하여 아시아와 중국의 이른바 ‘국부펀드’가 자원공급원 역할을 했다. (국부펀드는 대략 2005년부터 사용된 용어로서 정부자산을 운영하는 정부소유기관을 뜻한다. 대개 국부펀드는 외환보유고에서 유래했고, 국가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활용된다. 2005년 설립된 한국의 ‘한국투자공사’(KIC)가 여기에 해당된다. KIC는 2008년 1월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 지원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성을 반영하는 외국 중앙은행의 준비통화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도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 비중은 1995년 59.0%에서 2001년 70.7%로 상승한 후, 점진적으로 하락했지만, 2007년 3/4분기 말에도 63.8%를 유지한다.

이처럼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최강 제국주의로서 미국경제의 특이성을 반영한다. 미국은 세계 각국, 특히 동아시아 국가(일본, 중국,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감당하는 세계경제의 ‘최종소비자’이며, 동시에 각국이 가정하는 최종적인 투자안전국(자본도피처)으로서 ‘자본수입국’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미국이 해외로부터 흡수하는 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과 같은 자본소득을 통해 이처럼 불균형한 메커니즘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메커니즘은 미국이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직간접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메커니즘의 붕괴는 세계 각국의 경제 메커니즘의 동반 붕괴를 가리킨다.

따라서 세계 각국 정부(특히 G7이나 G8)는 정책조정을 통해 미국경제의 요구를 반영하는 경제정책을 실행한다. 즉 미국 경제의 객관적 상태를 반영하여 달러에 대비한 자국통화(엔화, 유로)의 환율을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1985년의 플라자합의와 1995년의 역플라자합의). 특히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는 전례 없이 세계 중앙은행들이 미국 FRB의 요구에 따라 금리조정을 단행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까지 정책금리를 잇달아 올려왔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을 보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지 않는다면, 경착륙이 의미하는 바대로 폭탄을 실은 비행기, 곧 세계경제의 폭발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필사적인 정책공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이윤율 하락 추세를 반등시킬만한 생산혁신을 조직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처해있고, 최강 제국주의 국가로서 누리는 달러 발권이익이 이중적자의 누적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경착륙이 중심부 국가들의 정책공조를 통해 지연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에서 먼저 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에 따라 수출국가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세계 증시를 주도하는 동아시아 신흥시장에서 증시가 폭락했으며, 글로벌 과잉유동성 축소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즉 저금리국가 일본에서 대출된 투자자금을 흡수했던 고금리국가(호주, 뉴질랜드)의 금융위기 우려나, 해외자금유입이 높은 유럽 신흥국(불가리아, 보스니아, 루마니아)의 위기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당분간은 세계경제의 몸통 격인 미국이 위기의 폭발을 그럭저럭 관리해나가더라도, 미국 제국주의의 부의 원천인 세계경제의 주변부에서부터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출처 및 링크 : 사회진보연대
http://www.pssp.org/main/issue.php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