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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Power/노무현과 한국사회의 변화

대통령의 어법과 정국변화

by 중년하플링 2004. 7. 10.

대통령은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닙니다. (확대)
분류 : 조중동 박살 등록 : 어라연(Guest) 조회 : 1,983 점수 : 1,173 날짜 : 2004년 07월 09일 (21시 58분)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흔히 말할 때 주로 회자되는 여러 일들 중에 인상적인 것으로는 그의 철학 방법론이었던 산파술(産婆術)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방 앞에서 일부러 무지를 가장함으로써 상대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의 질문이나 발언의 요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사고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방법 등이 있었다고 알려집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가 위대한 스승으로 공인 받고 난 후의 일이니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지만, 만일 우리들이 소크라테스 당대의 제자 또는 주변인들이었다면 그렇게 한결같이 소크라테스의 방식을 수긍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우리들 중의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매우 게으르거나 진정으로 무지한 사람이라 판단하여 그의 곁을 미련 없이 떠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매우 사람 좋은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 분의 교수 방식이 전형적인 소크라테스의 그것과 유사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분을 매우 존경하며 따랐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려한 언변으로 열강을 토해내는 다른 교수님들과 비교해서 배울 것이 없는 분이라고 단정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교수님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점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역사의 검증이 끝났고 또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죠.

한 사람의 언행과 업적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인을 받는 과정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만 해도 당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비판하고 적대했는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치의 경우 70%가 말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해도 아마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정치인의 말은 때때로 전범이 되는 어록으로 남거나 가차없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구분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단순한 실수인가 아니면 의도를 가진 계산된 발언인가 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실수라면 어떤 경우라도 비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지를 담은 발언으로 이해될 경우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경우에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세력의 행정수도 건설 정책에 대한 발목잡기를 비판하면서, 그러한 움직임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한다고 강력하게 성토했습니다. 인천에서의 이 발언이 즉각 알려지자마자 한나라당과 수구 언론은 일제히 대통령의 올인병이 또 도졌다고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대응만큼은 전례 없이 신중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들이 알기 힘든 어떤 의도 혹은 의지가 숨어있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실제로 몸통들의 대응이 그러할진대, 쉬운 말로 찧고 까부는 속없는 알바들이 '쩍하면 못해먹겠다는 것이냐' 며 대통령에 대한 유치한 조롱을 일삼는 것은 매우 안되어 보입니다. 이건 망조입니다. 이런 수준의 수 읽기로는 절대 쟤들은 집권 못합니다.

다시 말에 대한 이해로 돌아가서, 흔히 소쉬르 이후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기호와 기의' 의 관계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면 그렇습니다. '기호'는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양한 문법적 배열에 의하여 그 안에 어떤 의미를 상징하게 될 뿐인데 이 경우 거기 담겨 있는 뜻이 '기의' 가 되는 것이죠. 자고로 의미란 문자적 나열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적 발화행위도 유사합니다. 똑같은 언설이지만 처한 상황과 환경과 그 뉘앙스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이번 인천 발언을 놓고 심지어 지지자들 내부에서도 '쓸데없는 소리다' 혹은 '오버다' 또는 '피곤하다'는 반응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대개가 애정이 담긴 안타까움의 발로이고 개중에는 진짜 피곤해 지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이번 경우는 분명한 말실수이고 지지자로써 너무 자주 같은 말을 듣게 된다고 느낄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도 실수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진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이번 경우는 아닙니다.

이것은 전례 없이 강력한 통치권자의 의지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기호와 기의의 관계를 잠깐 말씀 드렸는데 똑같은 '못 해 먹겠다' 소리를 한다 해서(물론 이 경우는 표현 자체도 다릅니다만) 같은 의미를 지니는 말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늘 똑같은 소리를 해 온 것 같지만 실상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 문제와 관련한 발언들에 있어서 고도로 계산된 발화행위를 지속해 왔습니다.

역사상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각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대통령 못해먹겠다' 라고 한 건 정서적 친밀감과 동정의 효과를 노린 것이 맞습니다. 비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흘림으로써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일반에게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었죠. 바둑으로 보자면 기본 포석에 해당하는 발언입니다. 재 신임 발언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마치 코너에 몰려 있던 복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카운터 펀치를 날림으로써, 일거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죠. 매우 도전적인 방식으로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방식입니다. 탄핵 당시의 태도는 또 달랐습니다. 무언가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내비치면서도 원칙과 명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관중들에게 개입할 명분과 기회를 던져 준 것입니다.

이번 경우는 앞의 세 경우들과 많이 다릅니다. 첫째로 앞선 경우들에 있어서 대통령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 일반입니다. 뒤에서는 여전히 불량한 놈들이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있고 대통령은 자신의 뒤쪽을 돌아보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스탠스 또한 대단히 수세적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힘을 모으고 세를 결집하는 차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번의 인천 발언은 대단히 공격성이 강한 발언입니다. 공격의 대상도 매우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마치 양날의 검처럼 한 편으로 공격의 대상을 향하면서 한 편으로는 분명한 지지세력의 정제된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 지지세력이 아닌 정예 지지세력의 결집! 이 번 싸움은 가장 피아 구분이 확실한 형태로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의 금번 발언 속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어느 때보다도 강한 의지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발언을 놓고 보면 세간에 떠도는 국민투표 따위는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지난 2년 간 끊임없이 대통령을 흔들고 탄핵의 숨은 몸통 역할을 해 온 수구의 본진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대처한다고는 하지만 저들은 이미 이 싸움에 말려들었습니다. 뉴스를 보니 이석연이가 주축이 되어 150명 명의로 헌법소원을 낸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기각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 법적인 하자가 없기 때문이죠. 이 문제는 한나라당이나 수구언론이나 공히 그들 내부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협소한 기득권의 본질을 까발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헌법소원은 스스로 놓은 덫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놓고 지역 이기주의 극복이니 어쩌니 하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접근하게 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정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도가 아닙니다.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수도를 분할하고 집중을 분산해서 국토의 종합계획을 새로 짜는 문제가 지금 절실히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발언은 그 문제에 종속됩니다. 저는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철회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대통령의 발언은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계의 전술로 읽혀집니다. 한마디로 각을 좁힌 것이죠. 우리가 3대 1정도로 싸움을 벌인다고 칩시다. 벽 쪽에 등을 대고 상대방의 공격 가능 범위를 제한해야 합니다. 이 '각' 좁히기 게임에서 대통령은 이미 정곡을 찌르고 나갔습니다. 개중에는 이제는 좀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접근 할 수 없겠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상대방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긴장을 풀 수 없는 싸움이고 속전속결을 요하는 싸움이란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예전에 한 두 번 검토 된 것도 아니고, 지난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서 이미 국민의 심판이 끝난 일이며 정부 정책의 골간으로 대통령 임기 내 지속적인 준비가 이루어져 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들이 말하는 '천도'(수도 이전이라고 박박 우기죠) 어쩌고 하는 논리는 서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결국은 시간 끌기로 발목을 잡고 상처를 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형적인 야당의 정략적 행위이므로 결코 말려들어서는 안될 문제입니다. 국민투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저들에게 말려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속전속결의 필요성 때문에 이번에도 대통령은 일정량 출혈을 감수하는 방식을 통해 반대자들을 링으로 끌어올린 겁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들은 외곽에서 무한정 링사이드를 돌며 시간을 끌고자 했을 겁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행정수도 이전도, 그 반대도 아니고 그로 인해 오로지 정권에 데미지를 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발언.. 다소 식상한 감이 있겠지만 그런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 이제는 좀 도전자나 인파이터 형의 모습을 버릴 때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들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린 아직까지 챔피언 벨트를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야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알리와 이노키 간의 싸움을 보셨습니까? 지금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이노키와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말리면 절단 납니다. 바로 치고 들어가 붙들어서, 조이고, 꺾고, 쌍 코피 터뜨려야 합니다.

대통령은 개혁 저항 세력의 본진으로 조중동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가진 서울시내의 대형 건물들을 언급했습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지역이기주의에 대한 계도가 아니라 구체적 사례에 대한 접근과 지적을 통해 싸움에 불을 붙였다는 말입니다. 다음 순서는 줄줄이 사탕으로 행정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기득권 투정을 벌이는 집단들의 리스트를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알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역이기주의라 싸잡아 비난하는 여론의 흐름 속에서도 진성과 가성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우이동 변방에서 막대한 융자 끼고 근근히 살아가는 놈이 무슨 기득권이 있겠습니까만.. 실제 저의 이웃들 중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막연한 불만을 갖는 사람이 상당수 됩니다. 그것이 어떻게 조장되었고 이 분란의 와중에 진정으로 제 밥그릇을 챙기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려내야 합니다.

'아! 결국 우리하곤 별 무관한 문제이거나 어쩌면 우리한텐 그게 더 낫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국민 인식이 확대되도록 싸우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죠. 행정수도이전은 다같이 고르게 잘 살기 위한 것이고 수구언론은 국민 여론을 호도 하여 제 밥그릇이나 챙기는, 절대 객관적이거나 공정하지 않은 사익 집단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싸움의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탄핵을 이겨냈다 해도 언론환경은 유례 없이 적대적입니다.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들은 기득권 집단이고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므로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 싸움의 주적은 수구언론입니다. 언론에 눈과 귀를 온전히 맡기고 있는 이들을 각성시켜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사태를 보게 만드는 충격파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또 한차례 출혈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게 정석이라고 봅니다. 노빠라서가 아니라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이번 경우엔 이런 식으로 접근 할 거라는 말이죠.. 그건 뭐랄까 스타일입니다.

단순한 자연인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스타일은 좀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통치권자의 의지와 관계되었을 경우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시간이 흘러야 검증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준비된 전술을 내어 비춘 것입니다. 지지자 여러분들은 이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