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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Power/노무현과 한국사회의 변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by 중년하플링 2004. 8. 11.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에 대한 규정은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린다.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는 좌파정권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대처나 레이건과 다름없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평가도 있다.노무현은 동시에 레닌도 되었다가 레이건도 된다. 둘 다 틀렸다는 얘기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을 경제정책으로 분류하고자 할 때, 서구의 전통적인 좌우구분은 썩 잘 들어맞지 않는다. 서구의 기준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시장과 국가의 경계를 어떻게 가르느냐의 문제다.시장의 자율적 작동을 강하게 신뢰할 수록 우파쪽에 가깝고, 국가의 개입 필요성을 더 많이 인정할 수록 좌파쪽에 가깝다. 현실 속에 존재했던 중앙계획경제는 국가가 시장을 아예 추방시키려 했던 극단의 프로젝트였다 (물론 암시장의 존재를 비롯해 시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런데 한국에서는 재벌체제로 상징되는 국가주도의 개발전략이 근 30년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단순한 시장-국가의 이분법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이제까지 한국의 국가는 시장에 "비교과서적인 방식"으로 개입을하며 고도성장전략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그 파국이 97년의 외환위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한계에 직면해서 한국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기존의 국가개입을 해체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개입"을 주장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들의 최종목표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유경쟁시장의 완성이지만, 이들은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국가의 개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내용은 우파, 형식은 좌파인 한국 자유주의 분파에게 붙여진 이름이 그 유명한 "개혁"이란 레테르다.

예컨대 참여정부의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보자. 이는 엄연한 규제이고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다. 하지만 이 개입의 최종목표는 "원할한 시장의 작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꽤 괜찮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이는 지극히 우파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라는 좌파적 도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전경련 입장에서는 툭하면 시장에 뛰어드는 정부를 "좌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있고, 진보진영 입장에서는고전적 시장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부를 "우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개혁적" 자유주의니 기득권을가진 우파들의 반발을사고, 개혁적 "자유주의"니 평등을 중시하는 좌파들에게 '겨우 그 정도냐'는비난을 받는다. 이런 걸 쉬운말로는 "동네북'이라고 한다.

현재 노무현 정부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경제적 비전이 없다"는 비난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노무현 정부가 막연히 믿는것은 시장의 잠재력이다. 이제까지 여러 반칙들에 의해 왜곡되고 망가진 시장을 바로 잡으면 성장의 동력이 자동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이다. 이 믿음이 과연 한국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안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비전없음을 탓하는 좌우양측의 집단들이 노무현 만큼의 비전조차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우파는 이미 1997년에 극적인 방식으로 몰락해버린 박정희식 발전모델의 신봉자들이다. 한국의 좌파는 1930년대의 스탈린 모델이건 1950년대의 사민주의 모델이건, 이미 생명력을 다한 경제모델의 신봉자들이다.좌파건 우파건, 이미 역사의 수명이 다한 모델을 부둥켜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치의 다름도 없다.

비전을 전혀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앙상한 비전을가진 자를손가락질 하고 있는풍경, 이것이2004년한국의 자화상이다.


(http://www.mediamob.co.kr/yot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