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에 있은 참의원 본회의에서 고이즈미 수상이 추진하던 ‘우정성민영화’ 관련 6개 법안이 기명투표로 실시한 결과, 찬성 108표, 반대 125표, 기권 8표로 부결됐다.
이 로써 고이즈미 수상은 약속대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9.11’테러를 자행하니, 어이없게도 일본 국민들은 1인 3역을 한 멋진? 광대 고이즈미의 ‘우정성 민영화’라는 개혁 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말았다. 일본 판 ‘9.11’은 결국 고이즈미 수상의 완승으로 끝나버렸다.
17자로 이루어진 와카(和歌:일본의 단편 시)와 같은 짧은 선전문구로 선전선동에 매우 능한 고이즈미의 ‘개혁장사’가 우매한 일본 대중들에게 먹힌 꼴이니, 이는 대단한 일본의 불행이요, 인근 여러 나라에게도 불행을 알리는 완벽하고도 확신에 찬 첫 경고임이 될 것이다.
멋진 9.11 한판으로 자민당은 중의원 총선거에서 단독으로 모든 상임위원회의 과반과 위원장을 차지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중의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안정 의석인 269석조차 가볍게 넘기는 296석을 확보했다. 이는 480명의 과반인 241석을 훌쩍 넘긴 것으로 고이즈미 정권 연장에 크게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자민당은 토오쿄오 24개 소선거구에서 23개소를 휩쓸었다.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했던 도시권에서조차 민주당을 제압한 것이다. 그러기에 8명 올려도 될 비례대표 수를 7명만 올려 전원 당선되고도 1석을덜 올려 사민당에 빼앗기는 겸손함? 조차 보여주었다.
연립정당인 공명당이 얻은 31석마저 합치면 연립여당은 개헌발의선인 3분의2 의석인 320석마저도 훨씬 넘는 327석을 획득, 평화헌법도 개헌할 수 있게 돼 버렸다. 하여튼 자민당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한 것은 1990년 이래 실로 15년만의 경사라 자화자찬할 만하다.
각 당이 차지한 정당별 의석수는 다음과 같다. 자민당이 중의원 해산 전 237석에서 296석으로 크게 늘었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이 177석에서 113석으로 크게 줄었다. 공명당은 34석에서 31석, 공산당은 9석에서 9석으로 제자리, 사민당은 6석에서 7석, 우정민영화법안 반대파 중심의 신당은 5석을 얻었으며, 반란파 무소속은 13석, 순수무소속 및 기타 6석을 얻었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연 립 여 당 | 야 당 | ||||||||||||||
자민당 | 공명당 | 민주당 | 사민당 | 일본공산당 | 국민신당 (우정민영화 반대파) | 일본신당 | 무 소 속 | 비고 | |||||||
해산전 | 9.11 | 전 | 9.11 | 전 | 9.11 | 전 | 9.11 | 전 | 9.11 | 9.11 | 9.11 | 전 | 9.11 | 합 계 480 석 | |
237 인 | 296 | 34 | 31 | 177 | 113 | 6 | 7 | 9 | 9 | 4 | 1 | 12 (무소속연합 1인 포함) | 19 | ||
+59 | -3 | -64 | +1 | 0 | +7 |
# 9.11중의원 결과 의석 분포도
고이즈미는 우정성과 도로공단의 민영화를 통한 재정건전화를 개혁이란 이름으로 선전하고, 외교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들어 집중공략 했다,
물 론 고이즈미의 특기대로 우정성을 수구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 국민들로 하여금 몰매를 맞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작전에 우정성은 제1야당인 민주당을 지지하고, 결국 민주당은 우정성과 같은 길을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으니, 선거는 고이즈미의 예상대로 흘러간 느낌이다. ‘개혁 대 반 개혁’ , ‘수구세력 대 개혁세력’으로 몰고 간 고이즈미의 단순 명쾌한 선거 전략에 민주당이 완패당하고만 선거였다.
구태의연하게 지난 중의원 선거 때처럼 민주당은 ‘선거책자 돌리기’에 머물렀다. 물론 각 분야, 특히 매스컴조차 우경화 바람의 선봉에 선 탓으로도 돌릴 수 있지만, 민주당이 야당답지 않았던 점도 선거 패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 제 일본의 고이즈미 정부에 야당이 ‘세계평화’와 ‘아시아 평화’를 위해 반기를 든다 해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헨징(奇人-고이즈미 수상의 별명)’은 가지게 됐다. 그야말로 일본 우경화의 완성을 이제는 큰 반대 없이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길이 뻥뻥 뚫리게 된 것이다. 아우토반보다 더 좋은 고속도로가 우익의 총수 고이즈미 앞에 깔리게 되었으니, 이제 일본이 갈 길은 뻔하지 않겠는가? 그깟 야스쿠니신사 쯤이야 이제 제집 드나들 듯 하게 될 것임은 너무나 훤히 예상되는 일이다.
고 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물론 미국의 매파와 함께 큰 도박을 벌일 거사자금? 확보에 올인하게 될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일제침략 전처럼 고이즈미가 개혁을 팔아가면서 행하려는 ‘우정성 민영화’와 ‘도로공사 민영화’를 통한 ‘거사자금’의 확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이즈미가 여러 분야에서의 민영화를 통한 ‘재정확보’가 과연 일본 내 복제문제 때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고이즈미는 현 5%(90년대 초에 3%이던 것을 올림)인 소비세도 꾸준히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노인들에 대한 복지정책과 의료비 부담 인상 등 복지 후생정책은 줄곧 후퇴하고 있음에서도 그가 말하는 ‘건전재정확보’가 과연 어디에 쓰여 질지 매우 걱정이다. 설마 자위대의 군대로의 전환과 맞물려 군사대국화와 UN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저개발국에 대한 떡값 확보 때문은 아닐 런지? 자금 확보 후 행해질 일본의 행보가 더욱 염려스럽다.
제2의 탈아입구론 -대미굴종외교의 대가로 아시아패권 확보-
1853 년 미국으로부터 검은 군함을 타고 온 페리로부터 큰 충격을 받고 이듬해인 54년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개국의 길로 들어섰다. 아울러 일본은 개국파와 반대파들 간의 국내적 소용돌이 속에 1868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본격적으로 서구 따라하기에 올인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서구 선진국에 대해서는 모든 산업과 문화의 선생 국가로 모시고 모방하면서 그들의 침략정책에는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메이지전후로 불기 시작한 자유민권 사상으로 타루이 토키치(樽井藤吉) 같은 인물은 ‘같은 문화 같은 인종인 중국과 조선의 힘을 얻어 서구 귀축들에 대항하자!(일명, ‘동문동종(同文同種)에 의한 서양세력 축출)’는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을 들고 나왔지만, 이는 중국과 조선의 국력을 정확히 모르던 시절에 나온 ‘연대론(連帶論)’으로 그 후 중국이 서구제국의 총칼에 잠식당하는 것을 보고 무참히 깨졌다.
이후 중국은 잠자는 사자로 일본인들에게 인식되었다면, 조선은 중국에 사대하던 종이호랑이만도 못한 반개화국(후쿠자와 유키친의 표현)으로 인식되어, 어느덧 일본도 서구처럼 이들 미개국을 침략의 대상으로 바꿔야한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했다. 일본인들이 새로이 중국과 한국을 인식한 다음에 그들이 취한 행동은 오직 침략뿐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대만 한국의 식민지화는 물론 잠자는 사자로 인식 된 중국의 침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사상적 기초를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공했으니, 그가 쓴 ‘탈아론(脫亞論)’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미개국인 아시아를 버리고 (일본은) 서구처럼 돼야한다.’는 논리다. 일명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으로 널리 알려진 주장이다.
고이즈미의 ‘우정성 민영화’란 대도박이 성공한 데는 일본 내 우익세력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합작에 의한 것이었다. 즉, 방송?언론 등 우익대변 매스컴과 학계, 경제계(케이단렌 등)의 공조에 의한 합작품이다. 반면 민주당은 자민당에 이슈를 선점 당함은 물론 구태의연한 ‘정책 책자에 의한 공략’뿐으로 국민들에게 고이즈미보다 더 개혁적인 자신들의 정책을 시청각으로 보여주질 못했다.
금번 중의원 선거를 보면 마치 메이지유신 때처럼 ‘존황양이(尊皇攘夷:천황을 받들어 모시면서 서양 오랑캐를 배척함)’를 기치로 천황제를 철저히 이용하던 시골무사(사쓰마, 쵸오슈) 출신들과 비슷함을 느낀다. 중국, 한국의 국력 신장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일본 판 ‘민족주의’를 부추 킴으로써 이 번 선거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중국의 민족주의 경향을 지속적으로 일본국민들에게 주입시키면서 우경화 일변도로 사회분위기를 몰아간 것이 승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나마 일본 내 양심 세력이었던 사회당과 공산당이 몰락하고 말았으며, 이번 선거에서는 2003년 11월 중의원 선거에서 확보한 177석에서 무려 64석을 더 잃고 만 민주당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고이즈미 일당독재체제로 간다 해도 이젠 막을 방법이 정치적으로는 일본에서 없게 된 것이다. 양심적인 시민단체는 눈 씻고 찾기도 힘들게 됐으니, 메이지 유신기의 자유민권운동 때만도 못한 것 같다.
군국일본의 앞길은 제국일본의 부활
이 제 일본은 자민당 일당체제 굳히기로 나아갈 것이 뻔하다. 사지에서 돌아온 개선장군 고이즈미의 임기연장은 물론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군대로의 전환 등 일본 우익세력들이 꿈꿔오던 ‘보통국가’가 나카소네 수상의 이념대로 20여년이 지난 현재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로써 점점 군사 및 정치대국화 돼 가는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패권 다툼을 벌일 것이 명약관화함으로 근린제국과의 불협화음과 외교 분쟁은 더욱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지유신 때처럼 일당독재가 불러온 이웃 일본의 고이미즈미 체제를 보면서 가장 찹찹한 기분이 드는 나라는 바로 우리 한국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우경화로 가장 먼저 가장 많은 피해를 겪어온 우리로서는 토요토미시대의 재 도래라 판단하고 고이즈미정권에 대하여 철저히 대비하여야할 것이다.
일 본은 이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를 고이즈미라는 예측할 수 없는 우익인물에게 일본 국민들이 9.11테러로 위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에 따라 중국을 공격할 수 있음은 물론 북한 문제를 빌미로 언제든 한반도로 뛰어들 태세를 착착 갖추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일본세력들에게 이제 거칠 것이 없게 됐다. 우리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로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에 버금가는 시간대에 한일관계는 놓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처해있다. 이럴 때 일수록 조선말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민족은 두 번 다시 외세에 짓밟히지 않도록 남한은 국론통일과 국력 강화에 힘쓰면서 남북관계도 진척 시켜 평화통일을 이뤄야할 중차대한 시기에 처해있다. 지금 우리 끼리 지역간 계층간 이념간 노사간 싸우면서 국론을 축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웃 일본, 고이즈미의 기세등등함을 의식하고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막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그 경고음을 고이즈미 자민당의 완승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 1년 전 현소라는 일본 스님이 조선에 염탐 차 건너와 조선침략을 알리는 시(詩) 한수로 암시해주고 떠났듯이, 21세기 들어 일본은 테러와도 같은 9.11 중의원 선거로 일본 우익세력들은 그들의 분명한 뜻을 이웃 한국에 발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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