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나서 집사람과 설겆이를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가 있었다. 결국 가장 공평한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해결하기로 하고 심판으로 7살짜리 아들을 내세웠다.
결과는 나의 승리! 승리를 자축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웹질이나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집사람이 뭔가 아들에게 속닥속닥거린다. 모사를 꾸미는 모양이지만....--; 흥 이미 내가 합법적으로 이겼는데 어쩌랴.. 무시했다.
잠시 후 아들녀석이 다가오더니만...
"아빠 아빠는 엄마가 맨날 집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줄 알아? 낮에는 쉬지도 못하고 일만하고, 아빠는 회사에서 커피 마시지? 엄마는 그렇게 쉴시간도 없어... "
집사람은 부엌에서 흑흑 거리면 우는 흉내를 낸다. '흠. 이거였구만..'
"야.. 아빠도 회사 나가서 일하면 힘들어.. 너 회사 나가는게 얼마나 힘들줄 알아?"
"암튼.. 아빠 아빠는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엉.. 설겆이를 아빠가 해야지.. "
"아.. 그래서 가위바위보 했잖아? 아빠가 이겼는데.. 왜 아빠가 설겆이를 해야되.. 우리집에 정의는 어디간거냐?"
아들 녀석이 열을 낸다.
"아빠는 그렇게 맨날 책만 읽고 놀고, 엄마는 다쳐서 아프잖아.. 아빠가 설겆이 해!"
"..."
좋은 토론이 되겠다 싶어서, 개인 간의 계약의 측면에서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아들은 마이동풍 이미 제 엄마에게 넘어간 면도 있고, 나름 감정적인 이유를 들어 주장을 강하게 펴는데.. 말이 안 통한다.
그런 저런 개인적인 갈등을 가위바위보로 해결하기로 계약을 하고 이를 이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에 불복하는 무논리를 지적하려 했지만, 역시 7살짜리에게는 무리였을까?
결국 내가 설겆이를 하게되었고, 뒤에서 모사를 꾸민 집사람의 승리로 논란은 끝이 났다.
애초에 유치원생인 아들이 감정적인 판단에 앞서 논리적인 정당함을 따지는 내 입장을 이해하길 바란것은 무리였던듯 하다. 한데.. 아들과 한참 설전을 벌이다가 드는 생각이 '이거 많이 겪어본 상황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유치원생이 아닌 성인들과도 비슷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토론이라는 것이 내 논리를 펼치고,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한 다음, 이 충돌하는 두 논리를 한단계 높은 차원에서 합하는 것이 생산적일텐데.. 상당히 많은 어른들은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만펼치고, 상대방 논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럴 경우에는 둘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바로 아들과 나같이 입장을 좁힐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겠지.
아들의 한계는 서로간의 '계약' 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은 개인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 방법이며, 상호간에 이를 합의하고 이해했다면 그 갈등을 해결하는 합버적인 수단으로서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봐야한다.
만일 개인들이 계약에 동의하고도 그 결과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면, 우리는 개인 사이의 해결책으로 더 이상 계약에 의지할 수 없고, 오로지 힘이나 상황에 따른 논리로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상황의 유불리에 관계없는 논리적인 일관성. 나만의 문제가 아닌 둘 이상의 문제가 되면.. 모든 계약의 근본은 바로 이 일관성이다.
하긴 어른들 뿐이랴.. 정치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기자실 폐쇄에 언론탄압이라며 길길이 날뛰던 어떤 단체는, 뚜렷한 위법행위도 없는 PD를 강제연행해도 아무말 없다. 자신들이 야당일때 코드 인사라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정당은, 자신들이 집권한 이후 전 정권보다도 훨씬 심한 편파인사를 뻔뻔하게 저지른다.
남에게 주장한 바를 자신은 지키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는 이런 걸 보면...딱 7살짜리 수준이 바로 한국의 정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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