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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Power/노무현과 한국사회의 변화

[알리]를 보고 드는 잡 생각들

by 중년하플링 2004. 10. 7.
알리]를 보고 드는 잡 생각들 (확대)
분류 : 신변잡기 기타 등록 : 박봉팔(Guest) 조회 : 2,218 점수 : 1,404 날짜 : 2004년 10월 06일 (13시 46분)

1.

작년에 개봉한 영화 [알리]를 어떤 이유로 다시 비디오로 눈 여겨 보게 되었다. [알리]는 걸작 [히트]로 유명한 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이고 헐리우드의 악동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다.

윌 스미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동을 조작하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매우 건조하게 찍었기 때문이다.

난 이 영화를 보고 왜 저렇게 재미없고 밋밋하게 찍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마이클 만 감독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알리의 생애 그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다른 효과를 노린 것 같았다.

사실 알리의 생애를 드라마에 집중해서 찍으면 그냥 감동이다.

근데 감독은 나름대로 그런 뻔한 길을 피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조지 포먼과의 재기전 장면이다.

너무나 리얼한 권투시합의 재현.

윌 스미스 대단하다.

실제 알리의 시합장면과 거의 흡사하다.


알리와 조지 포먼의 이 경기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알리의 철저한 아웃복싱.

전성기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그런 민첩함은 없다.

하지만 알리의 고단한 인생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런 시합이 알리의 인생과 맞물려 나에게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

실제로 마지막에 알리가 다운 뺐을 때 가슴이 찡 하더라.


조지 포먼의 복부공격을 끈질기게 버티다 포먼이 지친 틈을 타서 8 라운드에서 연타를 성공시키고 결국 다운을 뺏는 알리...

지지부진한, 어떻게 보면 겨우겨우 이긴 시합.

이 마지막 시합 장면은 바로 알리의 인생의 축소판인 것이다.


2.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권투도장에 다녀 보시라.

난 지금은 바빠서 못 다니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광선이 운영하는 체육관에 다닌 적이 있다. 아마 다음 달 부터 또 다닐 것 같다.

지금도 나의 꿈은 40살이 되기 전에 신인왕전 데뷔를 하는 것이다.

재작년인가 MBC 신인왕전에서 마흔 살 먹은 신인왕전 출전 선수를 보고 감동받은 적이 있다.


나의 목표는 1승이 아니다. 그냥 신인왕전에 데뷔하는 것이다.

신인왕전에 출전하려면 프로테스트를 통과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이 자격증이 목표다.

김광선은 나에게 프로자격증을 따면 평생 프로권투는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난 12라운드를 다 뛰는 권투선수를 무조건 존경한다.

이런 마음으로 [알리]를 보면 몇 배 더 재미있다.


책에 취미를 붙이고 싶다면 서프라이즈를 눈팅하고 글을 올려보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감상에 취미를 붙이고 싶으면 동네 피아노학원에 등록하거나 기타학원에 등록하면 도움이 된다.

여자분들이 프로축구나 프로야구에 취미를 붙이려면 아무 팀이나 한 팀만 스토킹하면서 그 팀의 선수 이름을 외워보라. 잘 생긴 선수 있는 팀을 찍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정치쇼를 더 재미있게 관전하려면 한 달에 이 천원 내고 정당가입하면 도움이 된다.


3.

노벨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는 노먼 메일러라는 미국 작가가 있다.

이 작가는 이라크전에 대해“이라크전은 미국 백인남성들의 자존심을 돋궈줄 그 무엇이다”라는 특이한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노먼 메일러는 부시를 가리켜 “ 난 ‘악’이란 단어를 10분간 18번 사용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노먼 메일러가 알리 전기를 쓰고“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재는 채플린과 알리”란 말을 했다.

메일러 뿐 아니라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20인에 알리를 포함시켰고 CNN은 알리를 20세기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나도 알리의 전성기 때의 경기는 직접 보지 못했고 일본 프로레슬러 이노끼와의 이종 격투기를 TV에서 직접 본 기억이 있을 뿐인데 더욱이 나보다 젊은 사람들은 알리의 스타성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알리는 위대한가?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켄터키고향으로 금의환향하지만 어느 날 고향의 어느 레스트랑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입장거부를 당하고 심하게 삐진다.

알리는 식당에서 쫒겨난 뒤 금메달을 주저 없이 강물에 던져버리고 이때부터 반항적이고 비뚤어진 성격으로 고생을 사서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프로로 전향해서 1964년 헤비급 챔피언이 되고 말콤X와의 만남을 전후로 백인들이 준 이름이란 이유로 캐셔스 클래이란 본명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알리란 이름을 얻는다.


1967년 알리는 "난 베트콩에게 적대감이 없다"란 말과 함께 참전을 거부하여 법원으로부터 5년간 출전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때부터 알리는 시합을 못하고 취직이 안되서 생계의 위협에까지 시달리고 반역자로 낙인찍혀 주변의 테러까지 걱정해야 하는 기나긴 고난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가장 전성기를 자신의 신념과 고집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인파이터 천재복서 타이슨이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복서로서의 전성기를 허비한 것과 대비된다. 근데 난 타이슨도 좋아한다. 귀여워서.

타이슨은 시합 전 날 있는 인터뷰에서 “상대방이 죽을까봐 겁나요”라는 식으로 인터뷰한다. 아무 생각 없다.)


알리는 지난한 법정투쟁으로 3년 반 만에 법원으로부터 기어이 무죄판결을 받아내고 1971년 다시 복귀하지만 조 프레이저에게 지고 1974년 조 프레이저를 꺽은 신예 조지 포먼(당시 팔팔한 24세)을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오른다.

이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바로 이 경기가 영화 [알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이다.

이후 알리는 레온 스핑크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으나 곧 이은 리턴매치에서 다시 타이틀을 되찾아와 3차례 헤비급 챔피언 등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현역 챔피언으로 지낸 알리는 명실상부한 영원한 챔프다.


4.

스포츠 영웅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진정 존경받는 스포츠 영웅은 드물다.


마이클 조던은 미국의 한 인권단체가 나이키의 하청업체인 동남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행사를 후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자신의 광고주인 나이키사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흑인의 우상으로 떠오른 타이거 우즈는 자신은 "흑인이라기보다 어머니가 태국계이므로 동양인에 가깝다"란 발언을 하여 흑인운동가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했다.


소위 국민타자 이승엽은 선수협 파동 때 굳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겠지만 선수협은 막 프로생활을 시작하는 대다수 고졸 프로지망생에겐 절실한 문제였다.

난 지금도 이승엽을 좋게 보지 않는다.


선동렬도 선수협지지 선언을 하기로 해놓고 마지막에 배신했다.

삼성의 양준혁은 이를 두고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언젠가 [일요신문]의 인터뷰기사에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위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워낙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이라 스포츠 영웅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에겐 알리에게 주어졌던 그런 영광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무식해서 그렇든 이기적이라서 그렇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외면한 사람이 어떻게 오래도록 존경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신념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불행히도 이 사회에서 신념을 지키려면 알리처럼 개고생을 해야만 한다.


5.

난 알리를 생각하면 지금 개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꾸 떠오른다.

말도 안 되는 정몽준의 단일화 조건을 받아들인 것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일을 한 적이 많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알리는 자신의 펀치에 다운 된 상대선수에게 “늙은 곰아 빨리 일어나” 따위의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대고 (물론 쇼맨쉽이다.) 시합 전 인터뷰 말미에 챔피언이 되라는 덕담을 하는 기자들에게 “난 당신 백인들을 위한 챔피언 벨트는 따지 않는다. 오직 나를 위한 챔피언 벨트를 딸 것이다”라는 삐딱한 멘트를 굳이 날리고야 만다.

시간나면 시합 중 계속 떠드는 알리의 경기모습을 한 번 구해 보시라.

시합 중의 수다 때문에 체력이 저하될까 걱정될 정도다.

지금 돌이켜보면 알리의 수다는 수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사회에서 외로운 돗단배였던 알리는 달리 기 죽지 않고 싸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팬이 된 이유도 일차적으로 거침없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의 솔직성에 끌렸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알리의 반항적인 쇼맨쉽은 없다.

모두 정치적 신념에 따른 정당한 발언들이다.

하지만 기질이나 성격은 비슷할 거라고 본다.


“대통령 하겠다고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라는 말을 이전의 그 어떤 정치인이 함부로 할 수 있었을까?


재신임표명을 위한 국회연설에서 굳이 송두율씨 문제를 언급하는 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노무현 대통령은 굳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야 만다.

알리가 떠오른다.


난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줄타기행보를 결심하고 “자신의 국내 정치 입지에 연연한 결정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발언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그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의 처지가 슬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진솔한 행보에 대한 대가는 주위로부터의 엄청난 비난과 질시이다. 심지어 개혁세력이라고 분류되었던 이전의 아군들도 그저 비 현실적인 원칙을 내세우며 무책임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씹어대고 있다.

하지만 적당한 진보인사로 남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진흙탕에서 개고생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우리는 진정한 존경을 표시하고 열광한다.


나는 김근태, 천정배 같은 정치인들에겐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다.

알리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진솔한 짓을 하지 않아 사람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근태나 천정배는 지금처럼 젊잖게 행동하고 적당히 대인관계 쌓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이라 생각하겠지만 앞으로의 진정한 지도자는 진흙탕에서 뒹굴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이제 진심을 본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리는 '복싱'보다 위대하다." (알리 자신이 한 말이다.)

"노무현은 '정치'보다 위대하다." (박봉팔이 방금 지어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