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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Power/노무현과 한국사회의 변화

[노변정담]노-부시회담, 기대도 낙담도 할 것 없다.

by 중년하플링 2004. 11. 21.
盧-부시회담, 기대도 낙담도 할 것없다
2004-11-19 12:03서영석 (du0280@dailyseoprise.com) 정치전문기자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20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만난다. 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전 기착지인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시에게 북핵해결을 위한 북미대화를 촉구한 것을 놓고 극우언론들은 나라가 절단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한 인터넷 매체는 한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둥 회담 성과를 어둡게 전망하기도 했다. 비단 이런 매체들뿐 아니라 모든 언론들은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낙관적인, 혹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미 정상의 일회적 만남이 아니다. 좀 격하게 표현한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다. 극우신문이나 대부분 매체들의 호들갑은 무지나 무식, 혹은 단견의 소치일 뿐이다. 한국과 미국, 북한과 미국, 한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미국의 정권이 바뀌거나 유지된다고 해서, 혹은 한국의 대통령이 ‘감히’ 북미대화를 촉구한다고 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날 정도로 간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시 2기 내각이 강경파로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히 한미관계에 좋지 않은 징후이긴 하다. 북미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중장기적인 효과로 나타나는 것일 뿐 단기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다. ‘영향이 없다’라는 말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런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움직이는 3국관계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아직 북한 선제공격의 환경 조성은 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3국의 관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포함시킨 6국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대외전략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며, 그러한 조건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눈 나쁜 사람이 코끼리 더듬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과 대외전략 가운데 대북한 전략은 현재 이런 단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은 미국 대통령이 동북아 경영의 필요에 따라 명령만 내린다면, 핵무기까지 동원하는 것도 마다치 않고 북한을 선제공격해서, 영토를 점령하고 김정일 정권을 교체시킬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구축해가는 시기에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이러한 제반 환경은 아직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다.



지금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우선 주한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북한 장사정포 사거리 바깥으로 이전시키는 단계에 있다. 오산-평택에 주한미군의 근거지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장사정포 사거리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미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개재돼 있다.



또한 지금은 대북 선제공격시 이라크전쟁의 경우에서처럼 전통적인 전쟁 개념에서의 전선을 무시하고 첨단무기 등을 대량으로 투사해 북한을 단기간내에 점령하고 평양의 김정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은 물론 미국 동북아 전략의 핵심거점인 일본 주둔 미군의 전력 증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단계다.



사실 미국은 향후 잠재적 적국인 중국을 포위해서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핵심거점으로 일본을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시키려 압력을 넣고, 새로운 주일미군 기지를 일본 자위대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의 모든 행위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본을 핵심거점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는 미국 국무성의 반세기 이래의 사고방식이다. 이미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일본은 자본주의 체제의 방어를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지역으로 판단했고, 한반도의 남쪽은 유사시 버릴 수 있는 곳이란 판단을 내린 역사도 있다. 유명한 애치슨 라인이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니다. 그것이 결국 한국전쟁을 유발시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바 있다.



2008년 전후한 시기가 가장 위험한 순간



어떻든 미국은 일본의 핵심거점이 완성되면 현재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지는 4성장군의 지위를 핵심거점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장소가 되는 것이고, 한반도의 남쪽은 약간의 피해를 감수해도 되는 지역으로 변모한다. 쉽게 얘기하면 다소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준비는 완료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그 시기가 대략 2008년을 전후한 시기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때까지는 지금 미국을 괴롭히고 있는 이라크 전쟁의 늪에서도 벗어날 것으로 미국 전략가들은 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황은, 필자가 전번의 컬럼에서 소개했듯이 미국이 ‘힘에 의한 세계경영’이란 모토 아래 이른바 ‘1-4-2-1 전략’을 채택하면서부터 움직일 수 없는 수레바퀴처럼 굴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세번째 ‘2’의 대상으로 북한과 이라크를 지목했고, 마지막 ‘1’의 대상으로 이라크를 찍어, 침략을 감행한 이후 사실상 북한 전복을 위한 시계는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 펜타곤의 어느 구석방에 앉아 있는 하급관리의 볼펜이 1cm 오른쪽으로 가느냐, 왼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수십만, 수백만의 인명이 살았다가, 죽었다 하는 것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 전략의 큰 틀이 바뀌거나 북한 김정일 정권이 '항복'하기 전까지는 이런 흐름은 변치 않는 진실일 뿐이다.



이런 흐름이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시간은 있다. 이 남은 시간 속에서 북한은 벼랑끝 외교를 펼치고 있고, 미국은 심심하면 공갈을 쳤다 달랬다 어르고 있는 중이다. 이름도 그럴듯한 인권법안을 통과시킨다든지, 탈북자들에게는 어렵기로 소문난 미국 망명을 허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북한을 향한 일종의 ‘잽’이다.



이 와중에서 한국은 미국의 북한공격이 가져올 남한의 파멸적 결과를 막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김대중 정권시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은 이런 몸부림의 결과물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엔젤레스에서 한 발언도 그러한 몸부림의 연장선에 서 있다. 가진 자들이 어떡하면 미국으로 재산과 함께 내뺄지 머리 싸매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을 재빨리 간파했기 때문이며, 재벌들이 부지런히 공장을 해외로 빼돌리면서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도 사실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한미간, 혹은 북미간 오가는 것들은 모두 외교적 수사이며,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부시 2기 정권에 매가 아니라 독수리들로만 가득 채워놓는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북한을 때려 부술 준비가 덜 된 이상, 말로 하는 공갈 이상의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러한 미국의 대북한 전략을 막을 능력이 있는가.



진정한 자주, 불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세계경영전략에 변경을 가할 만큼 우리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까지는 없다. 경제대국 일본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고이즈미가 부시의 베스트 프렌드로 꼽히는 것은, 일본이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경영전략에 적극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패전 이후 ‘덴노 헤이까’의 자리를 ‘맥아더’로 대치하면서 별로 부끄럼 없이 미국의 우산 속에 들어갈 태세를 갖춰 왔다. 사실 미국의 동북아 핵심거점으로서, 아시아의 ‘유일한’ 미국 대리인이 되는 것이 일본인의 심성에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이즈미가 지금은 부시의 베스트 프렌드로 꼽히고 있지만 일본도 미국의 콧털을 건드린 적은 있었다. 1993년 북일수교를 시도했는데, 미국은 제1차 한반도 핵위기를 조성해 무산시켰고, 2002년 9월에는 바로 그 고이즈미가 방북해 두번째로 북일수교를 시도하자 미국은 다시 2차 한반도 핵위기를 조성해 무산시켰다. 미국은 동북아 경영을 국무부나 국방부의 하급관리들 볼펜에 맡길 지언정 일본이나 한국이 숟가락 드는 것은 참지 못한다. 그래서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이 미국을 물먹이는 비밀외교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미국 허락없이 김대중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했다고 지금도 뒷다마 까는 인간들이 있는데, 사실 이런 류는 부시 똥꼬나 빨 인간들에 불과하다. 미국에게 허락을 구했더라면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참모들이나, 핵심적 전략가들은 사실 김대중 정권이래로 봉사해 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북정상회담을 이뤄냄으로써, 그동안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북한이 전매특허로 써 먹었던 ‘자주’란 단어를 남한의 품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자주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발언은 결국 6·15공동선언 정신의 연장이요, 부연에 불과하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아직도 시간은 남아 있다. 이 시간 속에서 미국의 동북아경영전략 자체를 바꿔놓을 수는 없겠지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공격을 위해서는 남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물론 협조 없이도 공격은 가능하나 미국의 전략인 영토 점령과 정권 붕괴를 위해서는 남한의 주한미군이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억제하고, 북한에게 '항복'할 수 있는 명분과 체면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지금쯤 한승주 주미대사는 장관급 외교관인데도 불구하고, 미 국무부의 하급관리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공격적 발언을 하지 않도록 두 손 싹싹 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시 역시 내가 앞서 말한 전략의 큰 흐름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 만큼 공격적 발언이나 북한을 자극할 발언은 자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조짐들은 좀 있다.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는 어제 서울대 강연에서 한미정상회딤이 성공적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대외적인 수사나 표현이 부드럽다고 세상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외적인 수사나 표현이 좀 껄끄럽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궁금한 것은 정말로 없는 살림에서나마 미국을 억제시킬 수 있는 진짜 얘기들, 결코 언론발표문에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논의들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이름으로 어제 발표된 우리 국방부의 지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 더 글을 쓸 예정이므로 상세하게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든지 하는, 국민들에게는 덜 민감하지만, 실제 한미관계에서는 지극히 민감한 얘기들이 오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종석 NSC 사무차장 등 노 대통령의 대미 참모들은 그런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앞서 표현했듯이 ‘없는 집안살림’에도 불구하고, 2008년 파괴의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미국 국무부의 시계를 과연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 20일의 한미정상회담으로 이 모든 것이 해결될 리는 없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노 대통령이야말로 이런 문제의식을 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부시 2기의 날카로운 매의 부리들과 과연 어떤 게임을 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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