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주장에는 이유가 있다”
왜 ‘주한미군 지역역할’이 ‘사활적 문제’인가
2004-12-04 12:14서영석 (du0280@dailyseop.com) 정치전문기자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40년간 계속된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 세계는 크게 바뀌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식자층에게는 익숙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의 종식 이후 달라지고 있는 세계에서 받은 충격을 ‘역사의 종말’이란 용어로 표현했다. 새무얼 헌팅턴은 동서의, 혹은 미소의 대결이 종식되면서 역사의 변증법이 소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 출발해 ‘문명의 충돌’이란 개념을 확립했다.



한반도에 갖혀 있는 우리는 어떤가. 문명의 변방이어선지, 여전히 냉전의 중세적 분위기에 젖어 있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물론 우리 국민들의 각성이 정권의 교체를 불러왔고, 주류의 교체를 맹렬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중이다. 칸트식 표현을 빌리면 냉전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구세력들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의 ‘미성숙’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자, 이러한 냉전의 종식은 정말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동북아, 그리고 한반도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변화는 노무현 정부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시작됐었다. 김영삼 정부가 자칭 문민정부라고 했던 것은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사독재자와 제휴해서 집권했던 자신의 과거를 ‘문민’이란 용어로 분칠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그동안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 수십년간 한미동맹이란, 혹은 안보란 미명 아래 정보를 독점하고 그 독점된 정보 속에서 뭔가 이익을 누려왔던 군부와 극소수 집권핵심세력들의 것이었다. 그 정보 독점은 단순히 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집권세력의 변화 없이 해제되지 않는다.



▲ '글로벌 시큐리티' 홈페이지
김대중 정부와 ‘굴종의 시대’



김대중 정부 초기는 강고한 기득권의 세력과 타협의 시대였고, 중후반기는 불행하게도 굴복의 시대였다. 김대중 정부 핵심 엘리트들의 조급증에서 비롯된 인사정책의 실패는 반호남 연합전선의 구축이란 지극히 불행한 결과를 유발했고, 그것은 수구세력들이 장악한 야당의 우위란 형세를 만들었으며, 당연히 우리는 수구에 굴복하는 굴종의 시대를 살 수 밖에 없었다. 정보독점도 해제되지 않았다.



한미동맹, 대북선제공격,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지역역할 등 지극히 민감한 용어들이 수구들의 대변지인 조선일보 지면에 실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종노릇을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들에 의해 한반도 정세는 그 주체세력인 국민과는 무관하게 흘러갔을 것이 뻔하다. 그것이 바뀌고 있는 것은, 노회찬이나 단병호가 그렇게 비판하는 바로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란 점은 최소한 인정해야만 한다.



어떻든 노회찬이란 인간의 존재는 소중하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작금의 역사적 변화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노회찬은 지난 총선에서 지갑을 주워 국회의원이 됐지만, 그의 존재는 열린우리당 의원 100명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열린우리당 의원 100명은 참여정부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반면, 노회찬은 이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뜻을 갖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역사적 의미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참여정부, 참여정부라고 하지만, 그 구성원을 행정부 전체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참여정부란 역사적 의미에 걸맞는 인간들은 극소수다. 여전히 냉전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 외교통상부나 국방부에 즐비하다. 송영선이 바로 그 극명한 사례 아닌가. 노회찬이 결과적으로 참여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역설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참여정부의 구성성분인 냉전적 사고의 관료집단을 공격하는 것이겠지만, 어디 그것이 제대로 이용되는 것 봤는가. 수구신문이나 일부 무식한 인터넷 매체들은, 공격의 포인트를 항상 노 대통령으로 돌려놓지 않는가. 무식과 정치적 이해가 결합한 결과다.



▲ 미 군사 전문사이트 '디펜스 뉴스'
“무식과 정치적 이해의 결합이 역설 낳았다”



오늘의 주제는 노회찬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노회찬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늘어놓았는데, 어떻든 노회찬의 ‘주한미군 역할 확대’발언이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노회찬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조선일보 같은 수구신문의 지면에 그런 기사가 오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무식하고 무지하기는 여전하다. 그것은 약간의 의도와, 국방부의 군부엘리트의 정보독점에서 비롯된 무지에 의해 진실과는 전혀 엉뚱하고 딴판인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뭐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기도 귀찮고 딱 한가지만 얘기하자면, 다른 건 몰라도 노회찬의 발언이 기밀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어떻게 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이론이 기밀이겠는가. 국내외의 학자들이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에 대해서는 책을 수십, 수백권 만들 정도로 많은 논문들을 쏟아놓았다. 글로벌 시큐리티라든지 디펜스 뉴스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면 조선일보나 국방부로서는 기절초풍할만한 사실들이 매일같이 무더기로 실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국방부 관료들의 기밀양산 버릇도 여기에는 한몫 하고 있다. 나도 26년전 양수리의 한 골방에 앉아서 기밀문건을 한트럭 만든 일이 있었다. 아무거나 군사기밀 도장만 찍으면 끝이었다. 물론 도장 찍는 것은 육군병장의 몫은 아니었으나 내가 3급비밀이라고, 내가 대외비라고 하면 무조건 도장 찍었으니 그게 그거였다.



자, 전략적 유연성이라든지 지역역할이라든지, 주한미군의 기동군화라든지 하는 용어는 생소하다. 군사와 외교가 뒤범벅이 된 용어이며, 엘리트군단이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사기쳐 먹기 위해 교묘하게 포장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걸 파헤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런 용어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대외전략을 약간은 이해해야만 한다.(굳이 깊이 이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미 코넬대 정치학과 서재정 교수가 쓴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라는 논문과, 백산서당에서 나온 ‘한반도 안보관련 조약의 법적 재조명’이란 책, 그리고 2003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한울아카데미(서재정 교수의 논문도 이 출판사에서 곧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의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이란 책, 그리고 이들 책에 인용된 논문 가운데 국회도서관에서 일일이 복사한 몇편의 논문들을 토대로 ‘썰’을 한번 풀어보자.



내가 몇번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은 냉전의 해체와 더불어 시작됐다. 그것은 클린턴 행정부를 거쳐 부시 행정부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고, 그 핵심은 이른바 1-4-2-1 전략이다.(궁금하신 분들은 위의 서재정 교수 논문이나 내 지난 글들을 검색해보기를 권유한다)



내가 앞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밥맛 없는 인간이라고 했는데,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부시행정부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란 그룹인데, 여기에는 국제적 말썽쟁이들이 몽땅 포진하고 있다.



▲ '디펜스링크'의 인터넷 홈페이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밥맛 없는’ 이유



이 그룹이 출범하면서 밝힌 97년의 원칙선언문(이것도 인터넷 보면 원문 다 나온다)이 지금 세계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네오콘들의 행동강령이 되고 있다. 이 원칙 선언문의 서명자로는 딕 체니(부시 행정부의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국방장관)가 눈에 띄며, 그밖에도 부시행정부의 매파인 폴 울포위츠, 잘마이 칼릴자드도 서명자다. 아버지 부시의 재선 러닝메이트였던 댄 퀘일도 사인했다. 문제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서명자다.



1-4-2-1 전략에서 재수없게 지목된 것이 이라크(뒤쪽의 1), 이란과 북한(2)이란 건 몇번 얘기했던 바이고, 어떻든 미국은 냉전체제의 붕괴로 소련이란 ‘절대악’이 사라진 만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악’들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3개국이 ‘악의 축’이란 용어로 표현됐다. 자. 세계각지에 포진된 작은 악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자못 수준낮은 카우보우 심리가 미국에는 있다. 이걸 위해서는 해외미군들을 재배치하고 재조정할 필요가 당연히 생길 것이다. 과거 군사력과 배치는 냉전시대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는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그 대상이다. 주일미군을 장차 아시아전선사령부로 격상시켜 태평양의 하와이, 괌과 더불어 미국의 전력투사 중추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한국은 그보다 한단계 낮은 주요작전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며, 이 구상을 위해 주한미군을 1개 사단규모로까지 감축시킬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일본의 아시아전선사령부에 스트라이커 여단형의 기동군을 배치해 필요하면 한반도에 즉시 투입하면 된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인 듯하다. 물론 배치대상은 비단 한반도만은 아니며, 아시아 분쟁의 또다른 진원지인 양안도 들어간다.



즉 미국은 동북아 주둔 미군을 재편해 기동군화하고, 거점을 일본에 두면서, 필요시 신속한 개입을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속기동군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에는 당연히 주한미군이 주체 가운데 한 요소다. 주한미군을 변환시키고(신속기동군화, 경량 첨단군화) 재배치(병력 축소, 기지 이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의 활동범위를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재편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미동맹이란 틀 속에 묶여 있는(묶여 있다는 표현도 중요하다) 한국군의 역할도 한국방어에서 미군의 작전지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대만해협이나 동남아시아, 심지어는 중동에 파견되는 미군을 위한 기지와 후방지원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서재정 교수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조정은 한국을 미국의 해외전쟁에 자동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주한미군 중 일부가 이미 이라크전에 파견되는 등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태다.



노회찬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미국의 압력을 비단 한국만 받는 것은 아니다.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것은 ‘신방위 가이드라인’으로 나타난 바 있다. 나토 역시 미국의 공갈에 못이겨 이미 아프카니스탄에 국제안전지원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세계전역의 해외미군을 기동군화해서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든 해외미군과 그 지역에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의 군대를 ‘동시 패션’으로 파견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전략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복잡한 문제이니 이 정도에서 그치고, 그러한 미국 전략의 일환에서 한미간에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져 왔는지 이해해야만 노회찬의 발언에서 비롯된 논란들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국방부 당국자들은 한미연합사(즉 주한미군 + 한국군)의 작전반경을 지역적 내지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한미동맹의 성격을 한국방어에서 세계분쟁 개입으로 전환하려는 논의를 1990년대 초부터 진행시켜 왔다. 우리로서는 김영삼 정부 시대였고, 미국은 아버지 부시에서 클린턴 행정부로 교체되는 시기였다. 물론 학자들은 엄밀하게 얘기한다. 1988년부터 시작됐다고 말이다.(이혜정, ‘한미동맹의 변화’ 제2차 한국학술연구원 코리아 포럼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우리의 전략” 발표논문,2003년)



냉전붕괴 이후 미국의 전략이 지역방위전략으로 바뀐 직후부터 이에 걸맞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992년 한미 국방장관은 냉전종식 이후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 경우 한미동맹의 존재이유가 없어진다는 인식(맞는 인식이다!) 아래 한미동맹에 대한 연구(어떻게든 동맹은 지속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강요가 있었을 것이다)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미국의 랜드연구소와 송영선이 근무했던 한국국방연구원은 공동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1995년에 나오는데, 여기서 한미동맹은 장차 지역방어의 목적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다.



미국의 전략이 굴곡을 거쳐 ‘1-4-2-1’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2002년 12월 제34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가 개최되는데, 여기서 한미 양국은 “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할 방안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토론의 장으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을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 이것이 바로 노회찬이 밝힌 문제의 문서의 근거인 FOTA다. FOTA의 한국측 협상팀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즉 NSC, 외교부, 국방부 등의 관리들이 포함돼 있다.



이 포타란 물건은 대체 뭣하는 물건인가.



내가 앞서 소개한 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주한미군의 감축과 한미동맹의 과제’란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주한미군 재조정 협상 틀로 기능한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는 2002년 11월 6일 미국의 피터 페이스 국방차관이 이준 국방장관(당시)을 방문하여 제의했고, 이 제안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이었다.”



결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미국의 생각은 한미간의 문제로만 국한된 한미동맹의 성격을 지역방어로 바꾼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요, 우리 국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코카콜라에 햄버거 씹으며 전쟁 감상하는 미국인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순전히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한국군이나 미군이 한국의 영역을 벗어나서 작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종료되면서 당시 이승만이 유엔군과는 별도로 북침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단독의 북침이 결정될 경우 미군이나 유엔군이 자동적으로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을 다른 용도 즉 한반도 이외의 지역분쟁에 써먹으려 하니 그 조약이 방해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포타는 말하자면, 순전히 이러한 목적을 위해 미국이 한국을 커스터마이즈하는 도구라고까지 할 수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지역역할이란 표현이나, 전략적 유연성이란 표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결국 한반도 전쟁억지력 목적에서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꼴리는대로 써 먹겠다(유연성)는 것이며, 한국군도 다른 분쟁지역, 예컨대 대만 등지에 미국의 신속기동군 ‘쯔키다시’로 파견시키겠다(지역역할)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 이러면 무슨 문제가 생길 것인가. 미국이야 태평양 건너편에 있으니 아시아에서 피튀기는 전쟁이 일어나본들 군인들 빼고는 국민들 모두 코카콜라에 햄버거를 들면서 CNN으로 무슨 전쟁영화 시청하듯이 할 수 있지만, 한국군이 당장 미중분쟁에 개입한다고 해보라.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장거리 미사일인 뚱펑이 서울에, 부산에 날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가 북한정권의 붕괴를 위한 핵선제공격에 이용되는 것만도 끔찍한 시나리오인데, 한술 더 떠 미중분쟁의 희생양까지 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못해 흘러 넘친다는 것은 더 끔찍한 일 아닌가. 우리 군이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의 파견만으로도 중국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당국자가 “주한미군의 기동군화는 사활적 문제”라고 언급한 배경이 무엇인지 지금쯤은 이해가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미국방문시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주둔군 수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는 미국이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한국이 협력해야 한다”면서 “다만 내가 말한 융통성이라는 것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주한미군 역할의 유연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한 배경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다. 지금 참여정부가 만들어가는 세상이 바로 그러하다. 수구들이 시청 앞에 모여 집회를 하고, 행정부 요소요소에 포진한 수구들이 준동하고 반항한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변했다. 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들어섰다고 갑자기 숭미가 자주로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시대정신이 중요해진다. 참여정부는 최소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참여정부의 실용노선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면서 불가피하게 수구들과 손을 잡았던 것처럼, 참여정부도 50년간 굳어진 한미동맹 자체를 부인하면서 자주노선을 천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사람인지 미국사람인지 분간도 하지 못할 정도에서는 이제 벗어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진보함으로써, 급진적인(radical 이란 말의 번역어인 이 단어만큼 한국에서 오용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생각을 갖는 사람들로만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