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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들

[펌] 블루오션 전략에 대한 비판

by 중년하플링 2005. 5. 27.
003|블루오션인가 몬가 하는 전략에 대하여

등급 토끼풀 하나필명/아이디니캉내캉/led805
조회수54추천수1

요새 유행하는 경영전략 책 중 블루오션이라는 책이 있다. 머 대충 내용은 간다. 남이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분야를 찾아서, 최대한 경쟁을 회피하라는 전략이 주요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다 보지는 못해서 조목조목 그 내용은 부연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가벼운 내용의 책이 한 사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현상은 정석적으로 책을 쓰고자 노력하는 기존의 저자들의 의욕을 꺾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 이름만 새로울 뿐 그 내용 자체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케팅 전략은 대략 이런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우선 해외에서 MBA 교수를 하고 있다는 한국인이다. 말 그대로 해외의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데다 한국인이라는 저자의 특성은 한국시장에서 반쯤은 먹고 들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다른 전략은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땟깔나는 외래어를 사용한 책의 제목이다. 이러한 어감이 괜찮은 낱말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좀 더 똑똑해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끔 한다. 그리고 그 시각적 이미지에서 매우 새롭고, 보기 좋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이 또 다른 전개 전략은 대대적 광고다. 더구나 그 광고가 단순히 상업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일반 시중의 신문에서 조차 그 책의 이름을 딴 전략이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범위가 넓다. 즉 상업 광고와 언론 특유의 낚시질을 병행하여 광고함으로써 마치 이 책이 매우 혁신적인 것인 양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이 그렇게 속이 알찬 것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이 책의 기본적인 내용은 각 기업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 기업들의 성공요인이 남이 안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에 지나치 않는다. 경쟁의 최대한의 회피가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딴 빈약하고 너무나 미시적인 내용은 진짜 하잘 것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서 훨씬 자세하고도 양심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책을 수도 없이 봐 왔다.

기업에서 경쟁의 회피를 위해 비어 있는 시장을 찾는 것을 병법에서는 천, 지, 인 중 지형에 속하는 영역으로 분류한다. 손자 병법에서는 지형편에서 이에 대해 주옥 같은 통찰을 하고 있다. 손자는 여기서 6가지 지형적 특성들을 제시하면서 이에 대해 각기 다른 대처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것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애'에 해당하는 지형을 선택하라는 것으로 먼저 점령하면 지키기도 매우 용이하고, 그 이득이 매우 큰 지형을 말한다. 하지만 손자는 이러한 '애' 지형을 차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아주 '정직하게' 기술한다. 지형편의 나머지 내용들에서 손자는 이 지형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조직적 조건들에 더욱 더 심혈을 기울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유동적인 상황을 대처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시 경영에 있어서도 시장은 레드 오션과 블루오션으로 단순화 시키기에는 너무나 유동적인 것이다. 기업 간의 전쟁에 있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난 이후에야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면 '블루오션'을 차지했다고 하는 것은 사업의 발전 수단이라기 보다는, 성공의 최종적 목표이다. 세상의 어느 기업이든 이 책에서 말하는 '블루오션'적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 성공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를 위해서 기업은 기술, 마케팅, 시장지배력 등 수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이 조건을 충족한 기업들 만이 자신들의 경쟁자들을 모조리 잡아먹은 뒤 레드오션을 푸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즉 기업들은 레드오션을 벗어나 블루오션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그 기업 자신이 바다를 깨끗이 청소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블루오션이라는 개념의 또 하나의 맹점은 남이 하지 않는 영역이 있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블루오션 개척의 예는 소니의 워크맨 신화이다. 하지만 소니가 맨 처음 워크맨을 만들었다고 해서, 이것이 소니의 유일한 성공요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소니는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만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고, 브랜드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이끌어 냄으로써 자신의 블루오션 아닌 '블루오션'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블루오션이라는 전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선점효과 못지 않게 그 기업의 시장 지배력, 기술력, 기업 이미지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이 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해 봤자 현대 시장의 엄청나게 빠른 대응은 당장에 수많은 후발 주자들을 양산한다. 성공한 히트 상품이 나타나면 그와 유사한 제품들은 거의 1년 안에 시장에 등장하는게 현실 경제의 속도이다. 도대체 어디에 블루오션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정직하게 '선점효과 극대화 방안'에 대해 서술한다면 나는 이 책을 이토록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귀납적 논리의 비약이 매우 심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일종의 낭만적인 기사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다. 아리따운 공주를 구하기 위해 성 안의 용과 싸울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설정이 선점 효과를 얻었다고 해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상상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다? 이 책은 한 명문 MBA 교수의 아름답고도 이상적인 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