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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Power/통신서비스 시장의 방향

[펌-이코노미21]통신산업 지각변동 시나리오

by 중년하플링 2005. 8. 13.


이정환 기자(cool@eocnomy21.co.kr) 2005년 08월 08일


KT와 SK텔레콤의 벽은 높았다. 이제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LG그룹의 고민은 너무도 깊다. 통신사업을 접느냐, 한번 더 '올인'하느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의 전쟁,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상황이다. 한계를 인정한다면 일찌감치 털고 빠져나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데이콤을 인수하는 회사가 앞으로 통신산업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잇달아 만난 것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핵심은 데이콤이다. 데이콤의 대주주인 LG가 이 회사를 어디에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판도가 뒤바뀌게 된다.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의 움직임도 초미의 관심사다.

먼저 현재 통신산업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선의 KT와 무선의 SK텔레콤 양강구도는 이제 확고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유선과 무선 어디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한 LG다. LG는 기를 쓰고 3강구도를 만들어내든가, 아니면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 또는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구 회장이 적진에 가서 최 회장을 만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 사이에 어떤 밀담이 있었던 것일까.


LG, 통신산업 포기할 것인가


먼저 논의를 데이콤에 모아보자. LG는 2000년 데이콤의 주식 40%를 사들여 계열사로 편입시킨 바 있다. 이어 2002년 데이콤은 한국전력의 자회사 파워콤의 주식 43%를 사들이면서 최대주주로 떠오른다. LG가 데이콤을 소유하고 데이콤이 파워콤을 소유하는 구조다. LG에게 데이콤은 유선통신사업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LG의 기대와는 달리 데이콤의 시장점유율은 참담한 수준이다. 유선전화사업의 시장점유율은 10%, 초고속 인터넷의 점유율은 2%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콤에게 가능한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데이콤과 자회사 파워콤을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파워콤은 한국전력에서 광통신망과 케이블TV 전송망 등을 분리해 설립한 회사다. 올해 8월부터는 초고속 인터넷사업에도 뛰어든다. 만약 사업영역이 겹치는 데이콤과 파워콤이 합병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이 경우 우량한 파워콤이 데이콤을 통해 우회상장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파워콤 지분을 사들이려면 2천억원이 넘는 엄청난 비용이 들겠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LG로서는 통신과 방송, 인터넷을 결합한 모델을 구축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로 데이콤이 하나로텔레콤과 합병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KT와 경쟁하려면 결국 2위와 3위 업체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서 나온 시나리오다. 파워콤이 초고속 인터넷사업에 뛰어들면서 하나로텔레콤의 발길은 더욱 바쁘게 됐다. 하나로텔레콤으로서도 어떻게든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데이콤과 파워콤, 여기에 하나로텔레콤까지 결합한다면 KT의 아성을 넘보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데이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거나 그 반대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경우 3강구도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SK와 KT에 견줄 때 여전히 경쟁력 열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세 번째는 데이콤이 SK텔레콤에 넘어가는 파격적인 시나리오다. SK텔레콤은 무선통신에서 압도적인 1위 자리를 확보했지만 유선 기반이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앞으로 통신환경이 유무선 통합쪽으로 옮겨간다면 SK텔레콤에게 최선의 파트너는 데이콤이 될 수 있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SK가 데이콤에 이어 하나로텔레콤까지 집어삼킨다면 통신산업은 유무선을 통틀어 SK와 KT의 확고한 2강구도로 재편된다. 이 경우 LG그룹의 통신사업은 단계적으로 축소 또는 철수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구 회장과 최 회장의 만남에서도 이런 지각변동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파워콤 초고속인터넷 사업 효과 주목


이런 일련의 시나리오를 둘러싼 시장의 전망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파워콤의 초고속 인터넷사업이 미칠 효과다. 하나로텔레콤은 올해 말 두루넷을 합병할 계획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에서 하나로텔레콤+두루넷 합병법인은 파워콤과 피곤한 싸움을 치러야 한다. 어떻게든 통신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덩치를 키우고 경쟁력을 확보하느냐가 지금 통신 공룡들의 최대 관심사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단 데이콤과 하나로텔레콤의 합병 시나리오에 무게를 둔다. 독자적으로 갈 경우 둘 다 너무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합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정 연구원은 두 회사가 올해 안에 반드시 합병하게 될 거라고 단언했다. 정 연구원은 "이들의 합병회사가 LG에 남느냐, SK로 가느냐는 그 다음 문제"라며 "LG의 경우 자금여력이 없고 SK는 독과점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규제가 풀어야 할 과제이나, 어떻게든 데이콤과 하나로텔레콤이 합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한 두 회사가 연합해서 이 합병회사를 인수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정 연구원은 덧붙였다. 자세한 설명을 꺼렸지만 이 경우 LG가 통신산업을 접는다는 가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상윤 푸르덴셜투자증권 연구원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모두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주가가 잔뜩 올라 있는 상황이라 인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데이콤이 파워콤을 인수하는 경우도 한전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초고속 인터넷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봐야 큰 재미를 보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다. 합병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도 김 연구원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하나로텔레콤을 SK가 가져가는 시나리오에 비중을 둔다. LG그룹의 통신부문은 이합집산 과정을 거치면서 SK와 KT의 2강구도로 흡수될 거라는 이야기다. 최근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 AIG뉴브리지컨소시엄이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김 연구원은 "LG 입장에서는 욕심이 나겠지만 5억달러에 이르는 그 엄청난 지분을 사들일 만한 여력이 거의 없다"며 "3강구도로 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고 그만큼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김시훈 연구원은 세 번째 시나리오와 관련, 좀 더 구체적으로 데이콤과 SK텔레콤이 공동으로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1단계로 파워콤의 초고속 인터넷사업 진출이 하나로텔레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된다. 파워콤은 이미 전국 전역에 광동축혼합망(HFC)을 구축해 둔 상태다. 그동안은 이 망을 하나로텔레콤이나 두루넷 등에 임대해 줬는데 이제 직접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VDSL보다 5배 이상 빠른 HFC 서비스가 시작되면 하나로텔레콤은 물론이고 KT까지도 위협을 느낄 수 있다.

2단계로 데이콤과 파워콤이 합병하게 되면 이들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커진다. 하나로텔레콤의 실적은 더욱 나빠지고 주가도 빠지게 된다. 3단계로 SK텔레콤의 자금을 활용,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데이콤과 합병한다. 이 경우 LG와 SK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하나로텔레콤의 목을 조여가다가 값이 떨어지면 싸게 사들이자는 전략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하나로통신 대주주의 입장에서도 지분을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다. LG가 통신사업에서 아예 손을 뗄 수도 있고 SK와 제휴관계를 계속 가져갈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KT와 KTF가 합병해 덩치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


“LG, 하이닉스반도체에 눈독” 소문


LG그룹은 아직 모든 종류의 시나리오를 부정하고 있다. 특히 통신사업을 접는다는 시나리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LG그룹 관계자는 "통신 3사 모두 시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져갈 것"이라고만 밝혔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통신사업을 철수할 계획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단은 파워콤의 초고속 인터넷사업에 주목하면서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LG가 통신에서 손을 떼고 다시 반도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데이콤 등 통신사업을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다는 시나리오다. 주력 사업인 전자와 화학에 그룹의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전략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물론 LG는 이 시나리오도 전면 부정한다.
굳이 LG의 움직임이 아니라도 통신산업의 구조조정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내년이면 와이브로와 HSDPA 등 광대역 무선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출시된다. 음성통신과 데이터통신이 결합하고 유선통신이 무선통신에 흡수된다. 통신산업과 방송, 금융, 미디어, 교육 등 다른 산업의 연관성이 더욱 높아지고 합종연횡도 활발해졌다. 본격적인 유비쿼터스 시대를 앞두고 엄청난 설비투자와 선도적인 기술 개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소모적인 경쟁을 넘어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변화를 따라잡는 게 생존의 과제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LG는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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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와 LGT 엇갈린 실적의 의미

3일 발표된 KT의 2분기 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매출액은 지난 1분기보다 0.4%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44.4%나 줄어들었다. 당기순이익도 33.3%나 줄어들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인터넷과 전화사업은 각각 0.9%와 2%씩 매출이 늘었지만 무선사업은 단말기 판매가 줄어들면서 매출이 15.3%나 감소했다. 인건비가 1분기 대비 6.2%, 지난해 2분기 대비로는 17.6%나 늘어난 것도 우려스럽다. 마케팅비용도 1분기 대비 34.8%나 늘어났다.

KT의 2분기 실적은 이 회사가 앞으로도 첩첩산중,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한다는 걸 암시한다. 박원재 부국증권 연구원은 KT의 성장성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는 막강한 경쟁자 파워콤이 가세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박 연구원은 갈수록 늘어나는 인건비를 가리키면서 "인건비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담합 과징금 등 정부 규제도 계속되고 있다. KT는 지난 3월 가격담합 혐의로 11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박 연구원은 "KT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부정적 영향들에 대한 해결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KT의 매력은 배당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최남곤 연구원은 성장 산업이 없다는 이유로 "KT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는 달리, 만년 3위 LG텔레콤의 2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좋게 나타났다. 매출은 1분기보다 4.6%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이 887억원으로 112.5%나 늘어났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10%를 넘어섰다.

문제는 후발주자 LG텔레콤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이동통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김경모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LG텔레콤의 낮은 수익성이 정부의 이동통신정책의 발목을 잡고 요금 하락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사실상 SK텔레콤과 KTF 역시 LG텔레콤의 한계수익구조를 기반으로 초과이익을 실현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LG텔레콤의 실적 개선은 본격적인 요금 인하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발신번호표시 서비스 무료화가 앞당겨질 전망이다. 이동통신 3사의 발신번호표시 서비스의 매출은 3648억원에 이른다. 이 서비스의 원가율이 매우 낮고 사실상 거의 모두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걸 감안하면 무료화 정책은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가뜩이나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통신업계에 LG텔레콤의 실적 개선은 결코 즐거운 뉴스가 아니다. 유무선 통틀어 업계 1위 KT의 부진, 무선통신 만년 3위 LG텔레콤의 실적 호전, 이래저래 시장에는 전운이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