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 http://www.mediamob.co.kr/yeorim/Blog.aspx
완전한 페어 플레이란 없다
아쉽게도 오늘 새벽은 사방이 고요하다. 산 너머 월드컵 경기장에선 경기 시작때 터진
불꽃이 끝이었고 아파트 건너편 동의 창문들도 조용하다.
후반 31분에 들어간 스위스의 두 번째 골. 오프사이드 기가 올라간 상태에서 스위스
선수, 흔히들 그렇듯 헛 골일지라도...하는 심정으로 차넣었다. 그걸 본 주심, 기다렸
다는 듯 골 인을 선언하고, 이에 항의하는 태극전사들 옐로 카드를 받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혹 내가 KTX 역방향 좌석에 앉아 남들과반대 방향으로 관전하다
오프 사이드가 아닌 걸 오프 사이드로 본 건 아닌가 싶어... 잠시 이 새벽에 내가 졸다
헛 걸 봤나 싶기도 하고...그런데 뭐야, 제기랄, 전반전어째 좀 과하게 우리 선수들한
테 불리한 판정을 준다 싶더니... 주심이란 놈, 잦은 방귀끝에 똥 싼다고, 결국은
한 건 크게 올리는군. 아르헨티나 출신이라고? 헹. 그 쪽에 이민 갔다온 방송인에게
들었는데 니네도 웬만한 건 맨 입으로 잘 안 해주나보더라. 초등학교 입학을 교장이
허락해준다는데 하도 허가를 안 해 주기에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아르헨티나
교사들은 선물을 무척 좋아한다더란다. 그래서 교장에게 선물을 하나 갔다 줬더니
다음날로 바로 아들내미 입학을 허락하더라나. 물론 우리네도 선물 좋아하는 사람들
좀 있지만, 적어도 입학 정도는 맨 입으로 시켜준단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런 사회 분위기라면 주심과 스위스 출신의 FIFA 회장과의 염문설이 터진다 해도
난 하나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구.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아님 바로 앞
의 대형 사고를 슬쩍 물 타버리려는 의돈지, 그 다음부터는 간간히 스위스에도 파울
을 선언, 주심다운 척 하려고 꽤 시늉은 하더라만. 그것까지 안 했음 국제전화 땡땡1
광고에 나오는 고릴라처럼 나도 TV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는데 말이다.
열광으로 시작해 허탈 모드로 끝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남자들이 왜 이따금 자기들
에게 너무도 소중한 신체의 일부를 욕에다 끼어넣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같은'.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교내 대회에서 뽑힌 한 명이 시 대회로, 그리고 시 대회에서 도 대회, 전국 대회로
나가게 되어 있던 '영어 말하기 대회'. 비록 다른 학과에선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
했지만 중학교때부터 나는 영어를 무척 좋아했다. 요즘에야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배에다 대어주는 이어폰으로 영어를 듣고 큰다지만, 우리 때 FM도 잘 들리지 않던
구석탱이 지방에서는 대부분 영어라고는 중1때 받게 된 영어교과서가 첫 경험이다.
첫 수업시간, 거의 필리핀 따갈로 발음에 가까운 영어를 자랑하시는 영어 선생님 왈,
"내 발음을 들음 혼란이 오니 부디 혼자 집에 가서 열심히들 읽어라."
하여 나는 이 촌구석에서 영어는 결국 자가발전, 즉 독학이라는 외롭고 험난한 길
임을 직감, 서점으로 달려가 교과서 영어를 녹음한 테잎을 사서는 매일같이 앵무새
처럼 테잎 속의 톰과 제인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분식집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고... 이 단순무식과격한 따라하기도 오래 하다 보니 어느덧 적어도 발음에 있어선
필리핀 따갈로 영어 발음 선생님을넘어이제는영어 말하기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
경지에 이르게 된 것.하여, 중학교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 두 번에 걸쳐교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대회 모두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예선전에서는 늘 영어 선
생님들과 청중인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본선에선 늘 순위권 밖이었
던 것. 1,2,3 등은 언제나 육성회장, 자모회장, 혹은 지역 유지 딸들의 몫이었다.
심지어 그 중엔 발음은 고사하고 원고를 못 외워 본선에서 까지 원고를 들고 떠듬거
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학교때는 어려서 뭐가 뭔지를 몰랐지만 고등학교땐
슬그머니 분한 생각이 들었다. 1등을 한 친구는 육성회장인지 부회장인가 하는
병원장의 딸로서 장관의 조카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 친구는 서울에서 살다와서
인지 발음부터가 세련되었고 표현력도 풍부했다. 그래도 예선에선 내 점수가 더 높
았다고 영어선생님께서 귀띔을 하셨는데... 그래도 그 친구가 본선에선 컨디션이
더 좋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그래, 1등 할 만 했지. 그런데 2등, 3등들은
사정이 좀 달랐다. 발음도 시원치 않았지만 소리조차 작았고 원고를 제대로 이해
하거나 전달하지도 못 하는 듯 했는데...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혼자 방 한
구석에서 영어 원고를 소리내어 읽고 또 읽었던 것도, 마침내 원고를 다 외워선
엄마 화장대 앞에서 서툰 손짓 발짓을 연습하고 연습했던 것도...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허탈한 마음으로 화단 앞에 혼자 앉아있
을 때였다. 평소 영어선생님들 중 가장 말씀이 적고 내게 별로 관심도 안 보이셨
던 선생님께서 다가와서는 넌지시 말씀하셨다.
"영어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봐라."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선생님이셨다. 순간, 나는 'read between the linees'
라고.... 그 속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떨어진 건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난 '백'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였어. 비록 대회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영어를 싫어할 이유는 없는 거야. 그때부터 나는 더욱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마침내 그토록 어려웠던 문법의 장벽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경험을 토대
로 영어 말하기 대회의 요령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에게 전수, 동생은 드디어
교대 대회를 석권하고 마침내 시 대회에서도 1등을 하게 되었다. 음...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동생은 그 나이에 아이들이 그렇듯 엄청난 암기력과 모방 능력이 우승의
열쇠였던 듯, 자기가 그렇게 유창하게 외워서 연설한 영문 원고의 내용을 실제로는
이해는 커녕, 당시 알파벳도 쓸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로선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축구 90분은 인생 90년(이건 우리 아버지께서 설정해놓으신 희망수명이다.)과
닮았다.세상에 '페어 플레이'는 없다.
아무리 규칙이 있고 심판이 다섯이나있어도부심은 오프 사이드 깃발 올리고
주심은 오프 사이드 아니라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개인기가 뛰어나도
다른 선수들의 헤딩과 발놀림이 없으면 골을 성취할 수 없다. 개인기도 결국은
팀 웍이 있어야만 빛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생각해야 할 것이
'행운의 여신'의 미소이다. 장신의 날렵한 골 키퍼나 이따금 황금같은 슛을 어이
없이 튕겨내는 저 잔인한 골대같은 것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여, 제게....
뿐인가. 상대 선수의 비열한 반칙, 정당하지만 섬찟하기 그지없는 태클도 극복해
야 한다.그리고토고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국가가 두 번 울려퍼지거나 상대방의
압도 적인 응원 숫자, 그리고 왕서방이 경기 끝나면 출연료 떼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약소 국가라는 비애도 극복해야 한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법이 있고 법 집행 기구가 있다 해도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 주변의 가족, 사업의 파트너들이 협력해
주지 않음 안 된다. 이따금 멋 모르고 산 논밭이 고속도로가 되거나 행정수도 구역
이 되어 땅값이 껑충 뛴다든가, 아이엠에프때 전세가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산 아
파트가 나중에 미친 듯이 값이 뛴다거나, 아님, 우리 동네 편의점에 붙은 '1등 로또
당첨 두 명 배출'이란 플랜카드의 영예의 주인공이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입사 면접을 볼 때 웬일인지 면접관들이 내 옆자리 수험생에게만
상냥하게 여러 번 질문할 때, 그리고 결혼 후 첫 명절에 수십 명의 시댁 군단에
포위된 채 홀로 찌짐을 부칠 때, 그리고 결혼 몇 년만에 첫 월급 봉투를 기다리고
있는데, 밤늦게서야 술 취한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이 봉투 이대로 어딘가에 올 인
하겠다고 할 때의 충격도, 빽 못 가진 자로서의 비애도 극복해야 한다.
축구도, 인생도 온전히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겉으로는
그나마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필드같지만, 그 필드는 사실 살기 위해
물 밑에선 서로 발을 동동거리는 백조의 호수와 같다. 이천수가 그라운두에 주저
앉아 우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마음같아선 소파를 박차고 잠옷 바람으로
'피터팬'의 웬디처럼 훨훨 날아가 위로라도 해주고 싶다. 이왕이면 그가 좋아하는
세레모니처럼 상의를 펄럭거려 나의 이니셜인 석 삼자, 가로줄 뱃살 무늬라도
보여줘 웃겨주고 싶다. 하지만, 천수여, 눈물을 닦고 일어나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 그대는 축구로, 나는 인생으로, 우리는 이 수많은 장애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세상이 아무리 더티 플레이 할지라도 슬퍼하거
나 노여워 말라. 우리의 마지막 goal은 슬픔과 노여움같은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가리키는 곳이러니...
불꽃이 끝이었고 아파트 건너편 동의 창문들도 조용하다.
후반 31분에 들어간 스위스의 두 번째 골. 오프사이드 기가 올라간 상태에서 스위스
선수, 흔히들 그렇듯 헛 골일지라도...하는 심정으로 차넣었다. 그걸 본 주심, 기다렸
다는 듯 골 인을 선언하고, 이에 항의하는 태극전사들 옐로 카드를 받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혹 내가 KTX 역방향 좌석에 앉아 남들과반대 방향으로 관전하다
오프 사이드가 아닌 걸 오프 사이드로 본 건 아닌가 싶어... 잠시 이 새벽에 내가 졸다
헛 걸 봤나 싶기도 하고...그런데 뭐야, 제기랄, 전반전어째 좀 과하게 우리 선수들한
테 불리한 판정을 준다 싶더니... 주심이란 놈, 잦은 방귀끝에 똥 싼다고, 결국은
한 건 크게 올리는군. 아르헨티나 출신이라고? 헹. 그 쪽에 이민 갔다온 방송인에게
들었는데 니네도 웬만한 건 맨 입으로 잘 안 해주나보더라. 초등학교 입학을 교장이
허락해준다는데 하도 허가를 안 해 주기에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아르헨티나
교사들은 선물을 무척 좋아한다더란다. 그래서 교장에게 선물을 하나 갔다 줬더니
다음날로 바로 아들내미 입학을 허락하더라나. 물론 우리네도 선물 좋아하는 사람들
좀 있지만, 적어도 입학 정도는 맨 입으로 시켜준단 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런 사회 분위기라면 주심과 스위스 출신의 FIFA 회장과의 염문설이 터진다 해도
난 하나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구.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아님 바로 앞
의 대형 사고를 슬쩍 물 타버리려는 의돈지, 그 다음부터는 간간히 스위스에도 파울
을 선언, 주심다운 척 하려고 꽤 시늉은 하더라만. 그것까지 안 했음 국제전화 땡땡1
광고에 나오는 고릴라처럼 나도 TV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는데 말이다.
열광으로 시작해 허탈 모드로 끝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남자들이 왜 이따금 자기들
에게 너무도 소중한 신체의 일부를 욕에다 끼어넣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같은'.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교내 대회에서 뽑힌 한 명이 시 대회로, 그리고 시 대회에서 도 대회, 전국 대회로
나가게 되어 있던 '영어 말하기 대회'. 비록 다른 학과에선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
했지만 중학교때부터 나는 영어를 무척 좋아했다. 요즘에야 뱃속에서부터 엄마가
배에다 대어주는 이어폰으로 영어를 듣고 큰다지만, 우리 때 FM도 잘 들리지 않던
구석탱이 지방에서는 대부분 영어라고는 중1때 받게 된 영어교과서가 첫 경험이다.
첫 수업시간, 거의 필리핀 따갈로 발음에 가까운 영어를 자랑하시는 영어 선생님 왈,
"내 발음을 들음 혼란이 오니 부디 혼자 집에 가서 열심히들 읽어라."
하여 나는 이 촌구석에서 영어는 결국 자가발전, 즉 독학이라는 외롭고 험난한 길
임을 직감, 서점으로 달려가 교과서 영어를 녹음한 테잎을 사서는 매일같이 앵무새
처럼 테잎 속의 톰과 제인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분식집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고... 이 단순무식과격한 따라하기도 오래 하다 보니 어느덧 적어도 발음에 있어선
필리핀 따갈로 영어 발음 선생님을넘어이제는영어 말하기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
경지에 이르게 된 것.하여, 중학교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 두 번에 걸쳐교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대회 모두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예선전에서는 늘 영어 선
생님들과 청중인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본선에선 늘 순위권 밖이었
던 것. 1,2,3 등은 언제나 육성회장, 자모회장, 혹은 지역 유지 딸들의 몫이었다.
심지어 그 중엔 발음은 고사하고 원고를 못 외워 본선에서 까지 원고를 들고 떠듬거
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학교때는 어려서 뭐가 뭔지를 몰랐지만 고등학교땐
슬그머니 분한 생각이 들었다. 1등을 한 친구는 육성회장인지 부회장인가 하는
병원장의 딸로서 장관의 조카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 친구는 서울에서 살다와서
인지 발음부터가 세련되었고 표현력도 풍부했다. 그래도 예선에선 내 점수가 더 높
았다고 영어선생님께서 귀띔을 하셨는데... 그래도 그 친구가 본선에선 컨디션이
더 좋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그래, 1등 할 만 했지. 그런데 2등, 3등들은
사정이 좀 달랐다. 발음도 시원치 않았지만 소리조차 작았고 원고를 제대로 이해
하거나 전달하지도 못 하는 듯 했는데...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혼자 방 한
구석에서 영어 원고를 소리내어 읽고 또 읽었던 것도, 마침내 원고를 다 외워선
엄마 화장대 앞에서 서툰 손짓 발짓을 연습하고 연습했던 것도...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허탈한 마음으로 화단 앞에 혼자 앉아있
을 때였다. 평소 영어선생님들 중 가장 말씀이 적고 내게 별로 관심도 안 보이셨
던 선생님께서 다가와서는 넌지시 말씀하셨다.
"영어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봐라."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선생님이셨다. 순간, 나는 'read between the linees'
라고.... 그 속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떨어진 건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난 '백'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였어. 비록 대회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내가
영어를 싫어할 이유는 없는 거야. 그때부터 나는 더욱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마침내 그토록 어려웠던 문법의 장벽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내 경험을 토대
로 영어 말하기 대회의 요령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에게 전수, 동생은 드디어
교대 대회를 석권하고 마침내 시 대회에서도 1등을 하게 되었다. 음...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동생은 그 나이에 아이들이 그렇듯 엄청난 암기력과 모방 능력이 우승의
열쇠였던 듯, 자기가 그렇게 유창하게 외워서 연설한 영문 원고의 내용을 실제로는
이해는 커녕, 당시 알파벳도 쓸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로선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축구 90분은 인생 90년(이건 우리 아버지께서 설정해놓으신 희망수명이다.)과
닮았다.세상에 '페어 플레이'는 없다.
아무리 규칙이 있고 심판이 다섯이나있어도부심은 오프 사이드 깃발 올리고
주심은 오프 사이드 아니라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개인기가 뛰어나도
다른 선수들의 헤딩과 발놀림이 없으면 골을 성취할 수 없다. 개인기도 결국은
팀 웍이 있어야만 빛날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생각해야 할 것이
'행운의 여신'의 미소이다. 장신의 날렵한 골 키퍼나 이따금 황금같은 슛을 어이
없이 튕겨내는 저 잔인한 골대같은 것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여, 제게....
뿐인가. 상대 선수의 비열한 반칙, 정당하지만 섬찟하기 그지없는 태클도 극복해
야 한다.그리고토고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국가가 두 번 울려퍼지거나 상대방의
압도 적인 응원 숫자, 그리고 왕서방이 경기 끝나면 출연료 떼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약소 국가라는 비애도 극복해야 한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법이 있고 법 집행 기구가 있다 해도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 주변의 가족, 사업의 파트너들이 협력해
주지 않음 안 된다. 이따금 멋 모르고 산 논밭이 고속도로가 되거나 행정수도 구역
이 되어 땅값이 껑충 뛴다든가, 아이엠에프때 전세가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산 아
파트가 나중에 미친 듯이 값이 뛴다거나, 아님, 우리 동네 편의점에 붙은 '1등 로또
당첨 두 명 배출'이란 플랜카드의 영예의 주인공이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입사 면접을 볼 때 웬일인지 면접관들이 내 옆자리 수험생에게만
상냥하게 여러 번 질문할 때, 그리고 결혼 후 첫 명절에 수십 명의 시댁 군단에
포위된 채 홀로 찌짐을 부칠 때, 그리고 결혼 몇 년만에 첫 월급 봉투를 기다리고
있는데, 밤늦게서야 술 취한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이 봉투 이대로 어딘가에 올 인
하겠다고 할 때의 충격도, 빽 못 가진 자로서의 비애도 극복해야 한다.
축구도, 인생도 온전히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겉으로는
그나마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필드같지만, 그 필드는 사실 살기 위해
물 밑에선 서로 발을 동동거리는 백조의 호수와 같다. 이천수가 그라운두에 주저
앉아 우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마음같아선 소파를 박차고 잠옷 바람으로
'피터팬'의 웬디처럼 훨훨 날아가 위로라도 해주고 싶다. 이왕이면 그가 좋아하는
세레모니처럼 상의를 펄럭거려 나의 이니셜인 석 삼자, 가로줄 뱃살 무늬라도
보여줘 웃겨주고 싶다. 하지만, 천수여, 눈물을 닦고 일어나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 그대는 축구로, 나는 인생으로, 우리는 이 수많은 장애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세상이 아무리 더티 플레이 할지라도 슬퍼하거
나 노여워 말라. 우리의 마지막 goal은 슬픔과 노여움같은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가리키는 곳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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