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른 이야기들

[강악수백작] 내가 만난 유럽인 이야기

by 중년하플링 2006. 8. 3.
[잡담] 내가 만난 유럽인들.
강악수백작 | 2005·04·24 14:11 |
안녕하세요, 또 강악수백작입니다.

걍 내친김에 유럽쪽도 함 써볼랍니다.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가 본건 92년 여름이었습니다. 89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고, 붐이 일기 시작하던 때였죠.

전 유럽이 너무너무 가 보고 싶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박물관을 돌아댕기는게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박물관에 쳐박혀 살았더랬습니다… 졸라 피곤해요. --;;

게다가 영어회화라고는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고딩때 재미교포인 사촌누나가 와서 한 며칠 말도 안되는 영어 씨부려본거 외에는 전무하죠.

그런데, 사람이 너무너무 하고싶은 일을 하게되니 그게 다 되더라구요. 참 신기해요. 그래서 제가 깨달았죠. ‘아, 역시 배고프면 뭐든 하게 된다.’



여행을 가 보신 분들은 한번쯤은 서툰 영어 때문에 실수하신 기억 있을겁니다.

저도 마찬가진데…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였죠.

코벤트 가든은 대학로 같은덴데… 거리공연, 뭐 이런거 하고.

뺄뺄거리며 돌아댕기다가 왠지 만만해보이는 여자애들을 발견했습니다. 백인 여자애들 넷이었는데… 그때가 여행 시작한지 삼일째쯤 됐나… 아무튼 너무너무 이야기가 해 보고 싶은겁니다.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궁금했어요. 도대체 서양이 앞서가는 이유가 뭘까, 걔네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 하나… 이런것들.

그래서 큰 맘먹고 다가갔습니다. 인사했죠. 하이.



몇 년 후에야 깨닫게 된 건데, 아마 92년까지만 해도 동양애들이 유럽으로 여행오는게 흔한일은 아닌거 같았어요. 대한민국이 89년도에 여행 자유화가 되었으니까, 아시아에서는 일본애들을 뺀다면 물가나 이런걸 따졌을 때 20대 초반의 애들이 유럽을 돌아다니는게 흔치는 않았겠죠. 그래서 당시 전 꽤 많은 호의를 받으며 돌아다녔습니다. 나이 먹고 가니까 이젠 지겨워하는 눈치가 역력하긴 하던데..



암튼, 걔네들도 내가 신기했는지 친근하게 대해주더군요. 16살이래요. 독일.

카, 16살… 강악수백작, 여기서 작업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말보로 라이트 피더군요. 16살 짜리가… 한 대 얻어피웠습니다. 이런저런, 중학교 수준의 영어를 늘어놓고 있는데 걔가 왜 자기한테 걸었냐고 하더군요.

분위기 호의적이었으므로 따지는건 아니었습니다. 걔도 영어 잘 못하니, 뭐 서로 세련된 표현을 하지 못했던거 뿐이죠. 왜 말을 걸었느냐… 말씀드렸다시피 전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한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서양 문화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죠. 그래서 말했습니다. “아이 원투 삘 유.”



분위기 썰렁해지더군요… --;;;

저도 제 실수를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같이 자자는 소리로 알아들었을거예요. 그게 아닌데… --;;;

잠시 후, 여자들 넷은 “아이 원투 삘 유.”의 정체성에 관해 쑥덕이며 토론을 하더니 오른 팔을 우아하게 들어 중국집 간판을 가리키며 한 마디 하더군요.

“저 차이니즈 글자가 무슨 뜻이야?”

“맛 미, 자야. 테이스트란 뜻이지.”

“아하…”

“…… 나 갈게. 안녕.”

이렇게 첫번째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두 번째 작업.



빠리… 이름은 잊었는데 룩상부르 공원 맞은편의 게스트하우스 였죠.

제가 원래 혼자 돌아다니느라, 한국사람이라고는 한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브라질 여자애를 만났습니다. 예쁘더군요. 아시아 피가 섞였는지, 친근한 동양인의 외모에 귀여운 스타일이었습니다. 근데 걔가요, 와이셔츠만 입고 밑에는 빤스만 입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고마웠죠.

사실 배낭가서 저 서양 여자애들 빤스차림 많이 봤습니다. 걔네 크게 신경 안쓰고 돌아댕기더군요. 하긴, 저도 신경 안씁니다. 엉덩이가 제 가슴둘레보다 넓은데 신경써서 뭣하겠습니까… 깔려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얘랑 얘기 했는데요… 브라질이 당시 경제는 별로였는데, 걔 말 들어보니 살기는 좋은나라더라구요. 사람들이 졸라 널럴하게 사는 겁니다. 우리처럼 박터지게 일하고, 공부하고, 이런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얘기하다가… 같이 니스에 안 가겠녜요.

오… 사실입니다. 제가 제안을 받은겁니다.

뭘 망설입니까? 오케이 했죠. 걔 그때까지 와이셔츠에 빤스 차림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요?

기차역에서 바람맞았습니다… --;;; 그새 더 좋은 남자 만난 모양입니다. 세상 사는게 만만치 않더군요.





세 번째 작업.



이탈리아 볼로냐에서였죠. 볼로냐는 대학 도시로 유명하고, 움베르코 에코가 그쪽대학 교수로 있었죠. 근데 관광객은 안 가요. 거서도 저 거의 유일한 관광객이었습니다.

암튼… 거기서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헛탕치고 (아는 선배였습니다. 작업과는 상관 없는.) 삐질삐질 돌아댕겼습니다.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싼 숙소가 없어요. 유스호스텔은 시 외곽에 위치해서 교통비가 더 나올고 같고… 하룻밤을 재워줄 먹잇감을 찾아 볼로냐 중심가를 배회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의 동양인이 간땡이가 부은거죠.. --;;



역시, 하면 됩니다. 적당한 대상을 찾아낸 것입니다. 동양인 여자 두 명.



심호흡을 하고 다가갑니다. 굉장히 순진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넵니다. ‘하이.’



걔네는 태국 국비유학생이었습니다. 태국 엘리트 여성이었죠. 저는 먼저 싼 숙소가 있냐고 묻습니다. 근처 호텔을 가르쳐줍니다. 나 돈 없어, 그럽니다. 유스호스텔을 가르쳐줍니다. 뭐라고 뭐라고 막 그럽니다. 다 듣고 나서 한 마디 합니다.

‘아… 나 영어를 못해서 어딘지 모르겠다. 하는 수 없지… 근처에 공원이라도 있니?’

‘공원은 왜?’

‘거기서 잘라고.’



굉장히 불쌍한 표정, 바로 그것이 포인틉니다. (사실 공원에서 며칠 잤는데… 새벽에 춥더라구요.) 그랬더니 지네끼리 쑥덕입니다. 한참을 그러더니 재워주겠답니다. 강악수백작 표정 관리하며 묻습니다.

‘괜찮겠니? 나 폐 끼치고 싶지 않은데…’

‘괜찮아. 내 남자친구네 집이야.’

음… 그럼 그렇지… 하지만 유럽에서 하루 공짜로 잘 수 있다는게 어딥니까. 오케이 했습니다. 있다 저녁 6시에 이 자리로 나오랍니다. 강악수백작, 봉 잡은걸까요?



나중에 알게되지만.. 그 남자친구란 놈, 게이였습니다. --;;;



아무튼 그 사실을 모르는 강악수백작은 5시 반부터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정말 놀라운 터키놈을 만나게 됩니다.



그 터키놈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저도 심심했는데 반가웠죠. 한참 말을 나눕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겠습니까? ‘맑스’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

이게요… 가능해요. 둘 다 영어를 못 할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참 신기하죠? 그러니까… 뭐 굉장히 기초적인 단어를, 굉장히 심오한 생각을 하는 듯 하면서 내뱉으면… 아 글쎄 그게 토론이 되더라구요… 못 알아들었을 경우에는 그냥 ‘흠…’ 하며 생각하는 척 하면 됩니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데.. 그 쪽에서 알아들었다고 할 때는… 대략 황당하죠. 그러니까 그 새끼도 영어 못하는거 들키고 싶지 않았던거예요. 게다가 맑스, 하면 왠지 지적인 대학생 같지 않습니까??



아무튼.. 당시 터키도 학생운동과 탄압이 장난이 아니었답니다. 여자애들 성고문(그놈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이브레이터.) 하고, 데모하던 여자애를 학교 옥상에서 던져버리기도 했다더군요. 80년대 한국이랑 거의 유사하죠?



암튼, 그건 두번째 문젠데… 이 놈이 슬슬 마각을 들어냅니다. 나보고 오늘 어디서 자냡니다. 음.. 아는 사람이 재워주기로 했는데… 그랬더니 자기는 그리스로 오는 배편에서 돈을 반이나 잃어버렸다며 굉장히 불쌍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랑 똑 같은 놈입니다.) 그랬더니 재워줄수 있녜요…. 나도 빈대 붙는데, 나한테 빈대 붙으려하다니…

대략 난감했습니다. 어쩌나… 사실대로 말 했죠.

‘나도 빈대야. 나 재워주기로 한 사람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

‘그럼 그 사람한테 물어보지, 뭐.’

결국 그 놈도 그날 같이 잤습니다.. --;;;



아, 이제 게이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볼로냐대학 법학과랍니다.

이탈리아 남자들 잘 생긴거 아시죠? 잘 생겼습니다. 같은 남자인데도 부럽더군요. 그런데 이탈리아 놈은 영어를 못합니다. 터키놈은 영어, 불어를 합니다. 이탈리아어랑 불어랑 비슷해서 잘 통하더군요. 게다가 태국 여자애 둘은 영어, 태국어, 이탈리아어를 합니다. 강악수백작은 한국말과 영어를 합니다.

다섯이 모여서 밥먹는데… 5개 국어가 돌아댕깁니다. 한 마디 하면 즉시에서 2-3개 국어로 번역이 됩니다. 솔직히 난 웃고만 있었습니다. 졸라 어지러워요. 터키놈 없었으면 졸라 썰렁한 자리가 될 뻔 했었죠.

이제 자러 갑니다. 밥도 얻어먹고, 커피도 얻어마시고, 그 놈은 아는 사람 아파트가 비었다고 그리로 데려가더군요. 근데 그 전에 제게 묻습니다.

“두유 스모크?”

“응, 나 담배 펴.”

“아니, 그거 말고. 스모크.”

“응. 담배 핀다니까.”

“아니, 그거 말고… 아 참…”



아하, 무슨 뜻인지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전 겁도 없이 웃으며 “오케이. 우린 좋은 친구야.” 그랬죠… --;;;

그러니까 그 놈의 은밀한 계획은… 약간의 대마를 흡입한 후 몽롱한 상태에서 저를 유혹해보려는 거였죠. 물론, 뜻대로 될 리는 없습니다.



그놈 아파트를 가니까… 마리화나를 집에서 키우더군요… --;;; 거 왜 락스탁 앤 투 스모킹배럴즈, 라는 영화보면 집에서 키우쟈나요… 그거 진짜 그렇더라구요.

음… 전 뭐 공짜로 하룻밤에 눈이 어두워 별 생각 없었습니다. 먼저 샤워했죠. 남자들끼리 있는데 귀찮아서 웃통 벗고 나왔습니다. 절 보더니 ‘음… 굿… ‘ 하더군요.

전 제 체격이 좋다는 뜻인줄 알고 계속 웃통 벗고 있었습니다… --;;; 그게 아니였어요..

아시겠지만, 서양애들 피부는 정말 안좋습니다. 동양인 제 피부가 얼마나 미끈덩하고 예뻐 보였겠습니까?

암튼, 그 놈 마리화나 피우길래 대충 구경만 하다가 자러 갔습니다. 이때까지도 전 이놈이 게이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잘려고 눕는데, 이 놈이 바지를 벗더군요. 그런데 빤스를 안입었어요. --;;; 그러고 하루종일 돌아댕긴겁니다… 지독한 놈… 큰 수건을 허리에 둘둘 말더니 그러고 잡디다…



졸라 피곤했습니다. 막 잠이 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 보니… 이놈이 한 손을 내 팬티 위에 척, 하니 올려놓고 자고 있더군요.



아, 그때 알았죠. 역시 공짜는 없다… 원하는게 이거였군…

그런데 사람이 참 웃기는게, 무지하게 피곤하니까 무섭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피해야 한다거나, 이런 생각이 드는게 아니었습니다.



‘야.., 나 졸려…’



이러면서 그 놈 손을 툭, 쳐내고 그냥 잤습니다. 얼마쯤 후에 또 그놈 손이 내 팬티 위에 올라와 있더군요. 또 툭, 쳐내고 그냥 잤습니다. 그 다음엔 접근 안하더군요.

상당히 예의바른 게이였습니다. 역시 개인의 성적 취향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안하더군요.



아침이 되었습니다. 상쾌하게 웃으며 “굿모닝” 하며 인사했습니다. ^^;;;



그 뒤로 그 놈 집에서 이틀을 더 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뭔 배짱으로 그랬는지 참 웃겨요. 그땐 오로지 “숙박비를 아껴야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거던요.



참 친절한 게이였는데… 헤어질땐 친해져서 서로 주소 나눠주고, 그랬는데 그 주소록을 암스텔담에서 도단당하는 바람에… 지금쯤 잘 지내고 있겠죠?



뭔 소린지도 모르는 맑스에 대해서도 토론했으니 (순전히 기죽기 싫어서였습니다.) 뭐, 못할 말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한테 물으니까 그런거 하지 말래요. 위험하다고… 사실 그때 네오 나찌즘 때문에 동양인이 피살당했네, 뭐 이런 기사 나올때였거든요. 그래서 다들 말리는데… 영화에서나 보던 히치하이킹이 너무나 하고 싶은겁니다… --;;;

혼자 하기는 무섭고… 그래서 순진한 한국 남자애 하나 꼬셨습니다. 걔는 유레일패스도 1등석이었는데… 제가 허파에 바람집어넣어서 절 쫓아오게 만들었습니다.



근데 어디서 히치를 하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모르더군요… --;;

택시기사에게 물었습니다. 히치 하이킹 하는데까지 얼마냐구… 히치를 하겠다는 놈이 택시를 타고 가??? 이거 영 이상합니다. 아무튼, 빈 가니까 빈 가는 고속도로만 찾으면 히치를 할 수 있겠다 싶어 물어물어 갔습니다.



가니까 애들 많더군요… --;;; 젠장, 나만 히치하러 온 줄 알았는데 서양애들 되게 많았습니다. 죄다 종이에 목적지를 써서 들고 있었습니다. 저도 “WIEN” 이라고 써서 들고 있었죠. 그런데 안태워줍니다… 동양인이라 그래요. 서양애들은 즉각즉각 태워가지고 가더군요.. 해는 지는데… 젠장… 몇 시간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차 한대가 섭니다.



역시, 하고자 하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치과의사 아저씬데, 직장은 빈에 있고 고향은 헝가리랍니다. 그 아저씨는 5개 국어를 하더군요… 러시아어까지…

기 죽기 싫어서 동양의 “기”에 대해 설명해줬습니다. 도사가 되면 장풍도 나가… 이런 소리도 했다니까요… --;;; 그땐 어리니까 귀엽다고 봐줬겠죠… 나 참.





그리고… 유레일패스 분실했다고 뻥쳐서 폴리스리포트 받고, 유레일패스 한장 더 발급받고… 93년 부터는 재발급 안해준다고 하더군요… --;; 죄송해요, 저 땜에 그래요…



빠리 대학가 지하철역 자동문 고장내고… --;;; 죄송해요, 표값 아낄라고 앞에 놈 바싹 붙어 쫓아가다가 배낭이 껴버렸쟎아요… 근데 그거 프랑스 아저씨들이 날 구해주느라고 망가뜨린거예요…



생각해 보니, 참… 유럽 대륙에 못 할 짓을 많이 했군요.

아무튼, 92년 유럽 사람들은 제게 참 잘해줬어요.

근데 2001년에 잠시 들렸었는데… 이젠 걔네도 동양인이 지겨운건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험악해졌는지… 슬슬 인종차별을 느낄 수 있게 되더군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도사가 되면 장풍도 나가.’ 이런 헛소리 안하고 다닙니다…--;;

대신 왠지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고… 그러다보니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되고… 걔네들도 나한테 다가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이래서 배낭은 젊었을 때 가야해요.



추억은, 그저 추억일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