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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30 레 미제라블
  2. 2012.12.25 Les Misérables

레 미제라블

2013. 3. 30. 15:01 from Lectura




2013.3.26, 빅토르 위고/이형식

작년 연말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에 겨워 뮤지컬 10주년, 20주년 기념 공연을 모두 섭렵한 뒤에 냅다 원작까지 구매해 버렸다. 구매 당시에 선택이 3가지가 가능했는데, 각각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 그리고 동서문화사가 그것이다. 일단 다소 고전적으로 번역된 펭귄클래식을 선택했는데, 소설 자체가 예전 배경이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번역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듯.. 

5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이북으로 구매해서 가격 부담은 적었다는 점이 쉽게 지갑을 열게 만들었던것 같은데, 사고나서 읽다보니 이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저자의 장광설에 질릴 정도. 1권의 반 이상을 뮤지컬에서는 잠깐 나오는 주교의 이야기로 채운다. 이 주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얼마나 소탈하고 등등… 그 덕에 주교가 그 처럼 파격적으로 장발장을 용서한 상황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긴 했으나, 5권 전반에 걸쳐서 이 느린 진행은 그대로 계속된다. 단지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다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1789년의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겪고 나서 다시 한번 왕정을 거치게 된 1840년 무렵의 프랑스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참으로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사회상과 그 격변의 시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평면화된 역사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그 당시의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창을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의 반동에 대해서 역사책으로만 읽으면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통해 그 역사적 격동을 헤쳐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작가 스스로 아래 구절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 독자들 앞에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체나 부분 할것 없이, 간헐적 중단이나 예외 혹은 약화되는 현상 등이 어떠하건, 악으로부터 선으로의, 불의로부터 정의로의, 거짓으로부터 진실로의, 밤으로부터 낮으로의, 욕망으로부터 양심으로의, 부패로부터 생명으로의 행군이다.    -레 미제라블 5권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종교 및 비참한 상태로부터의 결별을 열망하는 작가의 사상을 느낄 수 가 있다. 결국 장발장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저지르고 오늘날 말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가장 극단적인 악의 상태로 타락했지만, 단순한 '종교' 가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구원받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구원이 사랑에 의한 깨달음이라면 사회적 차원에 대한 구원은 바로 진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듯 하다. 하지만, 그 진보는 한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가끔씩 뒷걸음칠 때도 있다. 

백성이 원하지 않는 한, 백성으로 하여금 얼떨결에 서둘러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백성의 손을 억지로 이끌려 하는 이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 레 미제라블 5   

"미래가 도래할까?" 그 많은 무시무시한 그늘들을 볼 때마다, 특히 이기주의자들과 비참한 이들을 정면으로 대할 때마다, 누구든 거의 그러한 회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유지해야 하지만, 늘 이 믿음에 반대되는 실례들을 보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시야를 가까운곳만 바라보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 

능란함만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째째함이 있다.   -레 미제라블 4권

부유한 젊은이는 경마, 사냥, 개, 담배, 도박, 좋은 식사 등 화려하고 상스러운 오락거리를 가지고 있는 바, 그 모든 것들은 영혼이 고결하고 섬세한 측면을 희생시켜 가며 자기의 천한 측면으로 하여금 몰두하게 하는 것들이다.  -레 미제라블 3권

교조 속에서 화석이 되었거나 이윤에 의해 문란해진 족속들은 문명을 이끌어 가는 데 적합치 않다. 우상이나 금화 앞에서 굽실거리다 보면, 걷는 데 필요한 근육과 전진하는 데 필요한  의지가 쇠약해진다.   - 레 미제라블 5권

끝으로 노동에 대한 작가의 다음 말은 곱씹어볼만 한다. 결국 우리는 죽는 날까지 우리가 먹을 빵을 벌어먹어야 한다. 비록 그것을 피할 수 있는 행복한 상황이 있지만 이는 결국은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은 곧 법일세. 그것을 권태롭다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형벌로 그것이 주어질 걸세. 자네가 노동자 되기를 원치 않을 경우, 자네는 노예가 될 걸세.  - 레 미제라블 4권
 
길고긴 5권의 독서가 끝나갈 무렵.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던 장발쟝의 삶이 끝나갈 무렵에야 뮤지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힘의 정체,내가 뮤지컬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 소설의 저자인 빅토르 위고의 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독서였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은 전체 독서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묘한 효과가 있다. 

… '레 미제라블'은 자비와 정의라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양날 검이다. 가난과 압제 속에서 살던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되, 언제 어디에서건 잠복하여 우리 사회를 노리고 있는 집단들에게는 좋은 선동의 도구 내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작품을 웬만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정의라는 칼날이 자칫 헤픈 자비와 미신적 몽상에 감싸여 희미해질 위험도 있다… .이제 우리의 주변에, 미리엘 주교나 쟝 발쟝을 닮은, 혹은 닮은 척하는 이들은 상당히 많다. 또한 앙졸라처럼, '진보'라는 어설픈 깃발을 휘두르며 가난한 사람들 편인 양 스스로를 내세우는, 별로 정직하지 못한 지진아들도 지나치게 많다. 

바로 이 옮긴이의 말이 '레 미제라블'의 힘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발표된지가 150여년이 지난 책인 데도, 그 영향력을 경계하는 글을 옮긴이가 추가하게 만드는 힘. 아직 우리는 빅토르 위고가 염원한 문명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며, 그 때문에 이 작품이 단지 박물관의 전시물과 같이 소중한게 아니라 오늘 날에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폭약처럼 취급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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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Les Misérables

2012. 12. 25. 16:27 from 내가 쓴글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큰 감동과 기억에 남을 시간을 선사한 영화이다. 


불행하게도 19일에 선거 뒤 본 다음, 영화가 끝나자 마자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맨붕상태에 빠지게 된 사연도 있긴 했지만... 크리스마스인 오늘 조조할인으로 두 번째 보고 나니 영화 자체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이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는 서구의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은 기여를 한 점을 먼저 떠올려야 할듯 싶다. 


우선 이 이야기의 배경은 1815년과 1832년 사이의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 뒤 1862년에 빅토르위고의 소설이 나왔다. 이를 프랑스에서 1980년에 뮤지컬로 만들었고, 다시 1985년에 카메론 메킨토쉬가 영어버전으로 브로드웨이에 올렸다. 이런 배경 위에 2012년에 영화가 나오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낀 감동의 상당 부분은 저 위에 열거한 '제작자'들이 의도한 것들이리라...


2시간 30분의 이야기 속에 종교, 구원, 인생, 사랑, 정치, 혁명, 도덕, 희생... 모든 키워드 들이 녹아들어있다. 등장인물들의 삶의 궤적이 너무나 명확하게 정제되어있기 때문에 거의 신화에 가까울 정도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각 인물들이 정형화되어 나타나기 보다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배우들과 감독의 공일듯 싶다. 


여기에 놀랍도록 귀에 친숙한 멜로디로 무장하고 무대위에서는 즐길 수 없는 다양한 배경을 눈앞에 펼쳐주니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혁명에 성공헀지만, 다시 왕정이 들어선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과 우리나라의 현상황이 일부 겹쳐지기도 하지만, 19세기의 프랑스 민중(Les Miserables)과 오늘날의 한국의 노동자들을 동일시 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오히려 저렇게 피를 흘리며 쟁취한 권리를 갖고도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정치세력에 투표하는 한국의 상황은 프랑스의 혁명당시처럼 명쾌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깃발을 휘두르는 대중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극복하고 결국 삶에서 희망을 찾은 장발장의 인생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낸다. 


다른걸 제쳐두고라도 이 영화에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절망, 분노를 공감할 수 있다. 비록 시대와 상황이 다르더라도 화면에서 울고, 절규하는 주인공들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낭비하며 살아온 인생을 참회하며 울부짖는 장발장, 인생의 바닥에 떨어져 즐거웠던 예전을 회상하는 팡틴,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에포닌, 혁명 동지들이 가버린 건물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마리우스는 모두 화면을 보는 관객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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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