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9, 유발 하라리 / 전병근 옮김

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곳곳에서 처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만날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지구적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지구적 규모의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들은 국가단위의 조직과 민족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적 국가모델이 삶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 올라섰지만, 이 주류 사상이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통찰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오늘날 IT와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으로 빠르게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던 과거의 도덕은 빠르게 폐기되어야 하지만, 아직 새로운 도덕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저자는 과거 대중에게 ‘착취’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부적절함irrelevant’이 문제라고 본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부를 일군것은 지금까지의 경제체제였다면, 앞으로는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이 왔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로서 겪게 되는 문제점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무직 일자리들도 이미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선의 경우 ‘보편소득’을 통해서 생존의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할일 없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실험이 일-이후 세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사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퍼센트가 일을 하지 않는다. 일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는 데 삶을 바친다. 
    • - 만약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알고리즘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일의 성격에 변화함에 따라서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정보를 주입하고, 정답에 맞춰서 선택하는 능력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모두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4C(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에 중점을 둔 교육이라는 개념은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변이 아닌가 싶다. 

    • -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 -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 어느 동네의 구식 학교에 묶여 있는 15세 소년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이것이다.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 대부분은 나름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허구를 만들어 낼 것인가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무척이나 신선하다. 대부분 진실의 추구를 위해 시작된 종교들이 조직화되고 교조화되면서 권력을 갖게되고, 이렇게 확보한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진실->(사람들을 조직하기 위한) 허구->권력->희생->믿음->무지의 강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 - 진실과 권력의 동반 여행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머지않아 각자의 길을 가게 돼 있다. 권력을 바란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허구를 퍼뜨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세상에 관한 모든 허구는 베재한 채 진실만을 알고 싶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권력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 - 희생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할 뿐 아니라 믿음에 요구되는 다른 모든 책무를 대체할 때가 많다. 
    • - 세상이 짜인 방식이라는 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 있다. 

불교와 명상에 대한 설명도 눈여겨 볼만 하다. 

    • -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 
    • -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모든 허구적 이야기를 포기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자신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 -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핵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이 문제들이 주요한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21세기가 20세기와는 다를 것이며 변화의 폭도 커질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경제활동, 삶의 의미, 일상의 소비활동, 인간관계 등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것. 

‘호모데우스’ 보다는 전작인 ‘사피엔스’에 가까운 책.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

수용소 군도(1권)

2018. 9. 26. 13:17 from Lectura


- 2018.9, 알렌산드르 솔제니친 / 김학수 옮김


Jordan B. Peterson 교수가 추천한 책이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 군도>는 인간의 가장 깊은 바닥과 고귀한 정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책인듯 했다.  소련 공산주의 시절에 비밀 경찰에게 연행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도 독일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현역 장교였지만, 동료 장교와 교환한 체제비판 편지 때문에 십 몇년의 기간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다. Jordan 교수에 따르면 이 책으로 인해 구 소련이라는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야만성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양심적인 지식인이 서술한 자기고백이 거대한 체제에 큰 타격을 준 예라 할 수 있다. 

원래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의외로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개인의 경험담을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부분과 석방 이후 저자가 연구하여 추가한 그 당시 소련의 반체제 탄압에 대한 역사서 같은 부분이 잘 섞여있어서 그런듯 싶다.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구소련의 반체제 탄압 활동이 얼마나 초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는지 알 수 있고, 많은 부분에서 과거 독재체제를 경험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유사점이 있다. 

자기 자신의 직업 선택과 활동의 종류에 따라 인간 세상의 <상부>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푸른 기관> 근무자들은 하부 세계에서 더욱더 탐욕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이끄는 것은 하부 세계의 가장 강한(식욕과 성욕 이외의) 본능적 욕망, 즉 <권력>에대한 욕망과 <재물>에 대한 욕망이었다(그중에서도 특히 권력에 대한 욕망, 우리들 시대에는 그것이 금전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 그것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슬그머니 허리춤에 숨겨 둔다며, 그 악은 앞으로도 수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고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 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제 4장 푸른제모 중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 앞에서도 사람이 적응하고, 심지어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으려는 것을 보면 감동적이기도 하다. 

- 이 부띠르끼 형무소의 정원보다 천국에 가까운 곳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건 이 아스팔트 길을 통화하는 데 있어 30초 이상 걸린 적은 없었다.  - 제6장 그해 봄 중

전체는 6권 이지만, 1권만 읽은 상태로, 전체적인 감상문은 나중에 다시...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