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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사회

2017. 7. 19. 14:48 from Lectura



- 2017.7.19, 김민섭 지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다가, 대학의 전근대성과 부조리함을 깨닫고, 상아탑을 벗어나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며 느낀 점들을 기록한 책. 쉽게 읽히지만,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 책이다. 


다른 사람 혹은 국가가 의도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대리 사회’ 라는 개념은 상당히 와 닿는다. 그것은 부모의 기대일 수도 있고, 벗어난 삶을 고려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나로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대리 사회’라는 개념은 꽤나 정확하게 규정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대리인’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 8page,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러한 통제에 익숙해진 대리인간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 28page,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비합리와 비상식과 마주하더라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게 꼭 교수가 되기 위해 연구실에 있는 박사과정생이 아니더라도, 주체가 되어 살지 못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대리’이다. 이렇게 ‘대리’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체제’와 동일시 해서 다른 사람 역시 ‘대리’로 살아가도록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대리인의 삶’을 내제화한 이들의 행동양식은 흔히 말하는 ‘갑질’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대하는 태도. 자신 역시 시스템의 조금 더 큰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에 눈감고, 다른 이들에게 자기처럼 노력해서 큰 톱니바퀴가 되라는 태도.

  

 - 44page,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직위와 호칭에 매달린다. 자신과 직위를 동일시하고, 그 직위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 상실감에 시달린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삶을 바라봐야 한다. 경기장에 내몰린 경주마처럼 누구보다 앞서서 달려나가기만 해서는 절대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는 한발 물러나야 한다. 


 - 67page, 그렇게 나를 주체로 믿으면서도 단 한 번도 스스로 물러서서 나의 공간을 바라보지 못했다. 

 - 67page,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전체가 231page에 달하는 책인데, 메모가 67page에서 끝난걸로 알 수 있듯, 밀도가 높은 책은 아니다. 중반 이후는 지은이가 대리운전을 하면서 겪은 애피소드들의 나열에 가깝고 새로운 개념이나, 초기에 제시된 개념의 발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을 세상의 전체로 보고 살아왔던 지은이가 거리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신을 적응시키는 과정은, 그 자체로 날것의 감동과 교훈이 있다. 


 - 52page, 모든 거리에는 저마다의 문법이 있다. 그것을 익히지 않으면 어느 생태계에서든 살아남을 수 없다.


예전에 회사일로 경험한 대리운전이라는 업은 영세 업체가 난립하는 완전 경쟁 시장이었다. 경제학 이론의 가격 결정론이 가장 잘 들어맞는 시장이기 때문에, 체면이나 논리 보다는 인간의 이기심과 옹졸함을 극명하게 관찰 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런 환경에서도 저자는 대리운전 기사들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늘 존재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늘 답은 사람이다. 


대리기사라는 일에 적응하기 위한 한 지식인의 분투기로 읽으면, 안타까운 만큼이나 저자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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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