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1.25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2. 2014.12.31 상실의 시대




- 2015.1, 강신주


‘무문관’ 48개 화두에 대해 철학자 강신주가 정리한 이야기.  ‘감정수업'과 마찬가지로 48개의 꼭지로 이루어져있고, 한편씩 찬찬히 읽어볼 수 있어서 책 읽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강신주는 ‘무문관’을 바라보는 관점을 ‘주인 되기’ 라는 키워드로 해석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나’가 되는 것을 선사들의 깨우침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일단 혼란스럽기만 한 화두들을 몇 가지의 틀에 맞추어 풀어 준다는 점에서 이해가 쉬운 면이 있다. 또한 화두를 풀어주는 배경에 있는 다양한 불교관련 이론의 소개와 종파에 대한 설명 역시 생각지 않게 얻을 수 있었던 수확. 아마도 강신주의 ‘무문관’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화두는 제12칙인 ‘암환주인'이 아닐까 싶다.


 -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


깨닫는 것은 내 앞에 존재한 모든 사람들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이를 되새겼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것들에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한 규칙들을 배우는 것이 인생 전반기를 모두 차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규칙들은 성인이 된 이후 ‘나’로 살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죽은 관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우리는 어렵게 얻은 규칙들을 파괴 해야만한다. 이걸 하지 못하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사는 손님이 되버리고 만다. 


니체의 당나귀, 사자, 아이의 비유는 그대로 이 책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은 과연 ‘파괴’를 할 수 있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삶 속에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나만의 ‘무문관’을 찾기 위한 시작으로는 좋은 길잡이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예전에 읽었던 ‘괴델, 에셔, 바흐’를 다시한번 들춰봤는데, 여기 나온 공안들의 대부분 무문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괴델..’ 에서는 공안의 목적을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함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매달린..’과 다른 강조점이면서도 무문관이 이 책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깊이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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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년하플링 :

상실의 시대

2014. 12. 31. 17:11 from Lectura



-2014.11, 무라카미 하루키 / 유유정 옮김


[그녀는 말보로를 입에 물더니 불을 당겼다.


“내가 두려운건 그런 죽음이에요. 서서히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생명의 영역을 침식하여, 정신이 들면 어둠침침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주위 사람들도 나를 두고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런 상황 말예요. 그런 건 싫어요. 절대로 견딜 수가 없어요. 난.”]


시작은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었다. 강신주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호의’ 편에서 소개하면서 상당히 박한 평가를 한다. 사랑으로 포장한 고급 포르노그라피라는...


[그래서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소설이 우리에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섹스에 대한 갈망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 강신주, 감정수업 중 


이 평을 보고나서 잠시 갸우뚱했다. ‘상실의 시대’를 22년 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지 섹스신 때문에 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학자의 저런 평가는 내 기억을 더듬어 보게 만들었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만들었다.  


오래간만에 다시 읽은 하루키의 책은 ‘해변의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성장소설이었다. 다만, 성장의 고통을 삶과 죽음의 대극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좀 특이한 부분일까?


나오코, 와타나베, 키즈키의 이야기는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에피소드이며, 철학자는 통속적인 삼각 관계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오코와 키즈키는 분화되지 않은 원초적인 미성숙을 나타내고, 나오코는 독립된 성인으로의 성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은 시절의 와타나베는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철학으로 살아가는 홀로 존재하는 어린아이였다.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와타나베군도 그런 인생살이를 슬슬 배워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세요”]


아이의 세상이 완벽한 이유는 실제로 세상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는 자신 이외에는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단지 세상이 완벽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어부가 돌아간 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잤던 여자 친구가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가 생각을 하자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며, 그리고 어떤 상처를 입을지 따위는 거의 생각도 안해 본 것이다.]


성장 한다는 것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내가 때때로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생의 불완전성을 배워나간다. 삶은 내가 조심한다고해서 해를 입히지 않고, 입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매끄러운 세계가 아닌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도리는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등장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가족이 있고, 존재의 구질구질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구질구질함을 외면하거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밝은 삶을 지향하는 성숙함도 지니고 있는 여자다. 거기에 더해 뻔뻔한 얼굴로 무지하게 야한 말을 해대는 이상한 여자이기도 하지. 


처음에 읽었을 때도 이 소설은 꽤나 재미있는 축에 속했다. 하루키의 유머감각과 야한 장면의 적절한 조합도 큰 역활을 했겠지만, 이 소설을 단지 포르노그라피 취급하는 것도 다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야하기로 치면 이것보다 야하면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없을까 싶긴 한데… 


이번에 읽은 감상은 예전에 읽었던것 보다 캐릭터들의 극단성이 더 눈에 잘띈다는 것? 미도리의 경우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읽었을 때는 정말 매력이 통통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거의 현실적이지 않을 정도의 캐릭터로 느껴진다.  

Posted by 중년하플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