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3, David Graeber, David Wengrow
 
조던 B. 피터슨 교수는 Hierarchy 가 인간 본성에 내재한 원형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재조차도 가지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원형이라는 개념은, 그의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동물과 차별화된 점 중 하나는 가상의 개념을 실제처럼 생각해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국가, 부족과 같은 가상의 개념에 기반해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는 이론이다. 
 
이 책은 권력이 복잡한 문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개념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인간의 협력의 정도가 복잡해 질 수록 관료주의로 대표되는 위계 질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약인가? 오늘날 전세계를 포괄하는 관료주의 체계의 효율성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개인의 자유란 먼 과거에나 가능했던 황금 시절 전설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수렵채집사회, 부족사회, 족장사회, 국가로 고도화 된 인간의 협력 모델에 대안을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본 저서이다. 
 
인간의 자유를 이루는 세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아무 때나 원하는 데로 사는 곳을 옮길 수 있는 자유
  • 지시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자유
  •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자유

 

이 세가지 자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관계에서 발생하는 명령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하고, 명령을 무시하려면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위 세가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가 상당히 체계화된 국가로 생각한 많은 고대사회들에서 위 세가지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개념의 자유를 억압 할 수 있는 국가(state) 역시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 영토 안의 무력사용에 대한 독점
  •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명령을 강제할 수 있는 관료주의
  • 카리스마에 바탕한 개인 및 단체의 경쟁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위 세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이것은 최근의 발전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이라는  지위는 의외로 허약한 기반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메리카에 존재했던 제국들은 위 세 가지 요소들 중 두가지 정도만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체계이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잉카, 마야, 올멕 문명을 우리가 생각하는 '제국'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실질적으로 잉카나 북미 인디언들의 정치체계는 부족으로 보기엔 훨씬 고도화 되어 있고, 국가로 보기에는 강제력이 작았다. 
 
고대 사회를 들여다보면 볼 수록, 수렵사회->부족->족장->국가(왕)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진화적 단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즉, 위와 같은 모델화는 현실 증거에 기반하지 않고 이론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가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들은 국가의 개념이 더욱 복잡해지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 과거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자가 나타났을때 많은 사회에서는 이런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 정치체계를 고안해 왔다. 전체 인류의 역사로 보면 개인의 자유를 체계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고도화된 국가라는 개념은 예외에 가깝다. 
 
유럽인들이 북미와 남미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개인들이 유럽식 생활방식과 인디언식 생활방식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백인이든 인디언이든 관계없이)  인디언적인 생활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들은 당시 백인들의 문명을 물질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나 화폐가 사람들을 탐욕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르제 지라르의 ‘Mimetic Desire’라는 개념과 이 책에서 탐구하고 있는 권력의 시작은 무척이나 관련이 깊다.  동물적인 욕구를 벗어난 인간의 추상적인 욕구는 모두 그 욕구의 대상 자체가 가진 가치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욕망을 모방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나, 권력과 화폐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저자인 David Graeber가 화폐의 기원을 밝히는 ’부채 그 첫 5,000년‘ 이라는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두 저서 모두에서 화폐나 권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인간 사회에 도입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많은 시간과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 그런 개념들은 인간 속성과 문명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입된 것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명성과 돈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시민들은 전체 인류역사에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우리가 그와 같은 mimetic desire를 추구해서는 행복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가, 그 욕망이 생물학적인 진화에 기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최소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우리의 삶을 지극히 관념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살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강조한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사회는 가능하다. 최근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증거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관점으로 검토하면 많은 인류의 정치체계들이 현재와는 다른 원리에 의해 조직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생각을 근거로 우리의 상상력을 제약하고 있다. 보다 자유로운 사회체계를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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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첫 5000년의 역사

2022. 9. 4. 18:01 from Lectura

  • 2022.9,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 정명진 옮김
 
인류학자가 쓴 인간 경제 생활의 역사라고 할까? 경제학자들이 현상을 설명하거나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모델이 아닌, 실제 인류가 어떤 식으로 경제적 삶을 이어왔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원시적인 경제활동이 경제학자들이 만든 상상의 산물에 가깝다는 주장을 접할 수 있다. 
 
  • 경제학에서는 화폐의 등장을 설명하기위해 가상의 '물물교환' 경제를 상정한다. 
  • 하지만, 실제로 인류학적인 연구의 결과 인간들은 그와 같은 물물교환 경제를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기초로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물물교환은 상호간에 신뢰가 없고, 반복적인 거래를 기대하기 힘들 경우, 폭력보다는 나은 이방인 사이의 거래 방법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 역사상 대부분의 인류는 상호호혜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경제'를 기반으로 살아왔다. 
  • 표준모델에서는 물물교환->화폐->신용거래로 발전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실제 인류사회는 신용기반 상호 호혜 경재(인간경제)->화폐 -> (화폐가 없는 경우) 물물교환 형태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 시장과 자본주의는 별개의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시장 없이는 발달할 수 없지만, 시장은 자본주의 없이도 발전할 수 있다(이슬람 사회의 예)
  • 국가는 상비군을 운용하기 위해 시장과 화폐를 동시에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강제하였다(마다가스카르 식민지 정부 사례)
  • 자본주의는 끝없는 성장과 탐욕을 그 특징으로 한다. 고대의 많은 사회는 구성원들이 이 파멸적인 탐욕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주기적인 부채 탕감 정책)
 
설명에 따르면 '부채'는 상호호혜 경제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주고 받는' 메커니즘의 핵심이였다.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살아갈 경우, 이웃집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 기회에 그 이웃에게 도움을 줄 것을 거절한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였을 것이다. 때문에 '부채를 갚는다'라는 말에는 단지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가 포함된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날 누군가가 별다른 이유없이 '부채' 갚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도덕적인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과거부터 자본주의의 특징은 '끝없는 성장' 즉 탐욕이였다.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자본의 메커니즘에서 지속적으로 초과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끊임없이 부채/신용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용이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뒷받침 될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되고 사회에 공급되는 재화는 늘어나면서 자본주의는 건실하게 성장하게된다. 이런 사례로 네덜란드의 주식회사,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을 들 수 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충분한 성장기회를 찾지 못하는 경우, 자본가 계급은 자본을 증식시키기 위해 시스템 안에 있는 저소득자들을 그 재물로 삼았다. 즉, 값싼 부채를 지움으로써 초과수익을 저소득자들에게서 자본가들로 이전시키는 식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거품과 공항의 사이클을 오가며 양극화를 강화시켜 나갔다. 점점 더 많은 돈이 자본가 계급에 집중되었고, 민중봉기 같은 형태로 사회가 개입하지 않으면 결국 파탄을 맞게 되었다. 
 
오늘날 성장을 거듭한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거의 전 영역을 그 지배하에 두게되었다.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은 화폐로 치환가능해졌으며, 이제 화폐가 없는 삶/자본주의적인 논리를 따르지 않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하기 힘들정도가 되었다. 한편으로 또 한번의 공황을 목전에 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보다 인간적인 경제시스템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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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2022. 6. 2. 10:58 from Lectura

  • 2022.5 테가트 머피 지음 / 윤영수, 박경환 옮김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이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모델이 된 나라이다. 때문에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과거와 현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바탕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일본에 대한 책 중 가장 깊이를 갖춘 분석이다. 한두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 경제,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일본의 특이성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요약하기가 쉽지 않지만, 책을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의 정치체계는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 자민당은 수십년간 일당독재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지만 국가의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얻는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 
  • 오히려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진산하는 세력으로 국가적인 어젠다를 추진할 만한 역량 및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 
  • 그나마 전략적인 관점의 책임이 있는 관료는 재무성이지만 이들 조차 제한적이다. (재무성과 정치권이 영향을 주고 받는 메커니즘은, 마치 요즘 우리나라의 검찰과 국민의 힘과 비슷한 듯 싶다)
  •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해서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리더쉽을 발휘 할 수 없다. 
  • 이 같이 기형적인 정치체계의 근원은 우선은 미군정 시대로 올라간다.
  • 미군정은 일본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를 원했고, 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었다.  
  • 당시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이 강요한 헌법을 받아들이면서도 과거에 이어오던 통치 방식을 완전히 민주적으로 바꿀 의지가 없었다. 
  • 때문에, 헌법상의 정치 체계와 현실의 정치 체계가 다르게 동작하는 모순이 발생하였다. 
  • 일반적인 국가라면 이렇게 원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할때 어떻게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 하지만, 일본의 특이성은 이 같은 현실과 당위의 차이를 당연한듯 수용하는 것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 이는 메이지 유신 시절에 막부가 천황을 상징적인 주권의 소유자로 만들어 놓고, 실제 권력을 휘두르면서 나타났던 역사에서 기인한다. 
 
일본 민주당 개혁 시도의 실패, 여성들의 자발적인 비혼으로 인한 출산율 급락 등 많은 이슈들이 현재의 우리나라와 너무나 유사한 점이 놀랍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역동성이 일본에 비해 높은 편이라서 일본과 정확히 같은 길을 가지는 않겠지만, 반면교사를 삼을 만한 내용이 차고 넘친다.  
과거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다시 한번 주도권을 쥔 한국은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걸을 것인가? 인구 구조상 2020년이 국력의 최고점이 될 확률은 높지만, 일본처럼 읽어버린 20~30년을 겪을 것인가?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이 가진 정치적인 역동성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근본적인 차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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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7, John Kenneth Galbraith

 

꾸준한 경제성장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만일 GDP가 지금처럼 2~3%씩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경기 침체로 인한 구조조정, 실업률 증가, 파산 증대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매일매일 사용하는 필수 소비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GDP를 신경 쓰는 이유는 필수적인 소비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지 않을 경우 파생되는 문제점 때문이다.

 

Kenneth Galbraith는 이미 1958년에 우리가 '생산'의 문제를 극복했다고 주장한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물질적인 생산성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우리가 'conventional wisdom'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인식을 하지 못할 뿐이라는 지적을 한다. 거의 60여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그가 지적한 문제가 극복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conventional wisdom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왜 그는 이미 생산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할까? 광고와 마케팅의 존재가 증명한다. 생산이 부족하다면 굳이 억지로 소비를 유발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은 불필요하다. 오늘날 기업들이 지출하는 많은 마케팅/광고 비용이야말로 생산이 충분하다는 반증이다.

 

  • Out situation is that of a factory which must be operated at top speed for three shifts and seven days a week even at some risk of eventual breakdown, not because the product is in demand - on the contrary, much ingenuity is required to clear the shipping platform - but because any lower rate of operation will leave some of the people in town without a livelihood.

 

충분한 생산을 더욱 더 늘리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소비, 심지어는 낭비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경제/사회 체제가 초과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보다 손쉽게 빚을 낼 수 있게 만들어진 다양한 장치(신용카드, 할부, 리스 등)들이 그것이다. 이처럼 부채를 늘리는 거시경제운용은 장기간에 걸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갈브레이스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성장 신화에 매달리지 말자고 제안한다. 추가적인 생산을 위해 투자되고 있는 자원을 현재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빈곤퇴치, 교육, 의료, 근무시간 단축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올바른 지적이다.  

 

  • To have failed to solve the problem of producing goods would have been to continue man in his oldest and most grievous misfortune. But to fail to see that we have solved it, and to fail to proceed thence to the next tasks, would be fully as tragic.

 

갈브레이스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85년까지는 그의 예언처럼 인플레이션이 높아졌지만, 85년 이후로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그의 예언은 그다지 정확한 편은 아니고, 이로 인해 그의 주장 전체를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갈브레이스의 주장은 최근 기본소득 논의를 통해 되살아났다. 한계를 모르고 만들어내는 생산 과잉 시대는 환경오염과 양극화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사회가 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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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 기억 꿈 사상

2021. 6. 13. 16:19 from Lectura

  • 2021.5.29,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칼융 본격 읽기 두번째 책. 먼저 읽은 '융 심리학 입문'의 말미에서 추천하길래 선택하였다. 형식은 자서전에 가깝지만, 서문에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듯이 외부적인 사건이 아닌 내면적인 사건을 주로 이야기한다. 그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인간 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 

 

과거에 태어났으면 샤먼이나 무당이 되었을 수도 있을만큼, 융은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기 시작한 환상과 우연의 일치들을 보면, 그가 정립한 ‘무의식’이라는 개념과 그 하위 개념들은 그런 초자연적인 경향을 이론화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나는 '무의식' 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신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신'이니 '데몬'이니 하는 말을 똑같이 잘 쓰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신화적으로 표현할 경우에도 '마나' '데몬' 그리고 '신'이 무의식이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서 무의식이란 인류가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접했던 '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이야기한 무의식은 단지 의식되지 않은 경험의 저수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동물이던 시절부터 축적한 거대한 정보의 보물창고에 가깝다. 사람은 무의식이라는 원천으로부터 현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건져올릴때 더욱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 

 

  •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이 같은 무의식과의 통합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의미를 던져준다. 

 

  •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달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하지만, 이성만을 중시하는 현대 문명은 사람들이 무의식과의 통합을 원활하게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보다는 방해물이 되고 있다. 

 

  •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떼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하며, 오직 이미 알고 잇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이것 역시 조건부이긴 하지만)을 살도록 요구한다. 마치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범위를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제시한 문제점을 훨씬 먼저 깊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조던 피터슨 교수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융에게서 빌려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검증되지 않은 '비합리적'인 신이 사라진 이후, 인간은 어떻게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융의 답변은 과거에 우리가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식이고, 이 무의식 안에는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냈던 많은 유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를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서 통합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삶에서 마주치는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라는 주장이다. 

 

돈, 명예, 소유물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면 어디를 둘러보아야 하는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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